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65)
로판 속 공무원 565화(566/945)
린의 결혼식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결혼식을 올릴 예정인 플란벨 백작령은 첫째 장인어른의 영지인 울켄 공작령과 붙어있어 교통이 원활하고, 요룬 백작가 자체도 상업으로 번창한 가문이기에 결혼식에 필요한 물자, 인력 등을 막힘없이 마련할 수 있었다. 필요한 게 생기면 당일 배송 수준으로 물건이 날아오더라.
그렇게 신경 쓸 거 하나 없는 평온한 준비가 이어졌으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하나 생겼다.
“내가 결혼식에 참석해도 될지 모르겠구나.”
어머니가 결혼식 참석을 망설이셨다.
딱히 린을 미워해서 얼굴도 보기 싫다거나, 요룬 백작가와 다툼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머니는 배가 부풀어감에도 불구하고 제도의 저택까지 오시며 린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 배가 부풀고 있음에도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니…”
민망하다는 듯 얼굴을 붉히는 어머니의 모습에 아버지도 작게 헛기침을 하셨다.
마흔이 넘어서 생긴 아이, 장성한 아들이 둘이나 있는데 가진 막둥이, 장남이 부인까지 가졌는데 뒤늦게 생긴 깜짝 선물.
어머니는 이 어마어마한 타이틀 덕분에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꺼려하신다. 다들 겉으로는 축하한다고 하지만, 뒤에서는 나이를 먹고 유난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두렵다면서.
‘어쩌지.’
웃음이 나오면서도 민망한 고민이라 나도 마땅한 리액션을 배출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아이를 가지는 것에 정해진 나이 따위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 암묵적 관습 비슷한 것이 있지 않나. 보편적인 나이를 초월해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막내를 가지는 건 평범한 일이 아니다. 가까운 지인조차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지.
그렇다고 그걸 부끄러… 워 할 수는 있으나, 터부시할 일은 결코 아니다.
‘애초에 어머니한테 뭐라 할 사람은 없을 텐데.’
결정적으로 총알에 대가리를 관통당한 게 아닌 이상, 감히 어머니가 소중한 막내를 가진 것을 가지고 이상한 소리를 할 사람은 없다.
가끔 보면 나를 가장 과소평가하는 사람이 어머니인 것 같아. 누가 내 친모를 사교계의 씹을 거리로 삼겠냐고.
“어머니가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면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헛소문이 돌 겁니다. 린도 미움받는 며느리라는 오해를 살 수 있고요.”
그렇기에 씰룩이는 입꼬리를 애써 억누르며 어머니를 설득했다.
사실 설득이라 할 것도 없다. 이미 어머니도 린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과 그래야 한다는 이성이 가득하시다.
그저 작은, 아주 작은 민망함이 족쇄처럼 발목을 묶고 있을 뿐.
“그리고 우리 막둥이도 영지에만 있는 것보다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더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어머니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우리 막둥이는 크라시우스의 사람답게 벌써부터 활발하기 짝이 없다. 수시로 어머니의 품속에서 발길질을 하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먹고 싶은 게 있다고 떼를 쓴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낚시 중에도 제도로 달려가 막둥이가 원하는 걸 가져와야 했다. 들리는 전설로는 돈을 챙기지 않고 낚시를 갔다가 급한 대로 잡았던 물고기와 과일을 물물교환했다던데… 도대체 얼마나 고생 중이시면 그런 흉흉한 전설이 붙었을까 싶다.
“막둥이 성격 아시지 않습니까. 가족 행사에 빠지면 왜 안 데려갔냐고 성을 낼 거예요.”
“후후, 하긴. 이 아이라면 그렇겠지.”
그제야 어머니의 표정이 밝아졌다.
우리 활발한 막둥이, 미래의 형수님이나 새언니가 될 사람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다면 서럽다는 듯 발길질을 할 게 뻔하다. 어머니도 그것만큼은 사양하고 싶을 터.
“괜한 말을 해서 미안하구나. 넷째 아가한테는 비밀로 해주렴.”
“하하, 당연히 그래야죠.”
부드럽게 배를 쓰다듬는 어머니를 보다가 슬쩍 옆에 서있던 아버지와 시선을 교환했다.
잘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아버지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 깊었다.
‘내가 아니라 아버지가 설득해야 할 일 같은데.’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금방 털어냈다. 어떻게 보면 어머니에게 민망함이라는 족쇄를 건 장본인이 아버지니까. 범인이 설득하고 위로하는 것도 이상하기는 하지.
…
‘아버지 서열… 괜찮나?’
진지하게 걱정된다. 가주이자 제국백인 시절에도 어머니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던 아버지인데, 이제는 가주도 아니고 제국백도 아니며 어머니에게 막둥이라는 깜짝 선물까지 줬다. 아버지의 입지가 한없이 추락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물론 나나 에리히가 아버지를 무시할 일은 없으나, 아버지에게 중요한 건 사실상 독립한 두 아들이 아닌 함께 사는 아내지 않겠나. 안에 있는 아내에게 구박당하면 밖에서 사는 아들 둘의 존중 따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알아서 하시겠지.’
그래, 아버지는 알아서 잘 하실 거다. 막둥이로 지은 죄는 막둥이가 태어난 이후로 갚으면 된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자.
플란벨 백작령의 튤립 동산은 제국은 물론 타국에서도 나름 유명한 관광지에 속한다. 아티니 남작령이 장어로 유명하다면 플란벨 백작령은 튤립으로 이름이 높을 정도. 괜히 린이 꽃꽂이라는 취미를 가진 게 아니다.
그리고 이 대륙적 관광명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플란벨의 주인인 요룬 백작가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다.
“예쁘네.”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찾아온 튤립 동산은 절로 그런 말이 나올 만큼 아름다웠다. 형형색색의 튤립들이 조화롭게 피어났고, 경관을 해치지 않는 석상과 분수가 곳곳에 위치해있었다.
튤립의 개화 시기가 여름이 아닌 봄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다. 그런 건 마법과 돈을 처바르면 어떻게든 커버할 수 있으니.
“그렇죠? 플란벨의 자랑이에요.”
솔직한 감상에 린은 어깨를 으쓱이며 뿌듯함을 보였다.
확실히 자부심을 가질만한 곳이다. 나도 영지에 이런 장소가 있었다면 피곤할 때마다 오지 않았을까? 개 같은 황제에게 치이며 깨져가던 멘탈조차 이곳에 몸을 누이면 도로 붙을 거다.
“어릴 때부터 미래의 제 모습을 상상하고는 했어요. 나는 과연 어떤 남자와 이곳에서 결혼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상상이요.”
“어린애가 하기에는 너무 이른 상상인데?”
“어머니가 여기서 한 결혼은 절대 잊지 못하겠다고 옛날부터 자랑하셨거든요.”
배시시 미소 짓는 린의 모습에 픽 웃음을 흘렸다.
어린아이 입장에서 부모님은 세계의 전부. 그 세계의 반이 어린 시절부터 주입식 교육 수준으로 자랑했다면 린의 꿈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상상은 이루어졌어?”
“최고의 모습으로요.”
내 뺨에 입술을 맞춘 린은 몇 걸음 물러나더니 빼꼼 혀를 내밀었다.
“설마 부인이 여섯이나 되는 사람이 제 남편이 될 줄은 몰랐지만, 하나하나 따지면 제가 마르 언니 남편을 뺏은 거니 넘어갈게요.”
“치사하게 맞는 말로만 공격하네.”
일방적으로 때리고 돌아가는 린의 허리를 안으며 입술을 맞췄다.
하늘도 감탄할 듯한 장소에서, 내일이면 정식으로 부부가 될 사이끼리 뺨만 톡 하고 건드리는 건 재미가 없다.
그리고 아내가 미처 나아가지 못하는 영역에는 남편이 먼저 나아가는 것이 상식이다.
“온 김에 예행연습이라도 하고 갈까?”
대답은 듣지 않았다.
린이 나를 마주 안은 것으로도 충분했으니.
결혼식 날이 밝았다.
“저 왔습니다.”
“어, 왔냐?”
당연히 와야 하지만 막상 오면 어색한 하객이 찾아왔다.
“…저 축의금만 드리고 돌아가면 안 되겠습니까? 눈치가 너무 보이는데요.”
“어딜 상사 결혼식에 돈만 내고 튀려고. 앉아서 박수나 쳐.”
“에잉…”
머쓱한 듯 매끈한 머리를 긁적인 3과장─ 아니, 집행부장은 덩치에 맞지 않게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며 다른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해한다. 아무리 사과도 하고 보상도 해줬다지만, 집행부장 덕분에 요룬 가문은 개박살이 날 뻔했다. 그런데 그 피해자 가문이 상사의 처가가 된다? 집행부장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겠지.
“그때 힘들었던 건 맞지만,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잖아요.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고 시달린 만큼 보상도 해줬으니 이제는 괜찮아요.”
그래도 린을 포함한 요룬 가문 사람들은 집행부장의 화려한 트롤링을 용서해 주었다.
린의 말처럼 가족이나 사용인 중 누구도 잘못되지 않았고, 황금공에게 찍히기 일보 직전이었던 집행부장이 깔끔하게 일을 처리했으니까. 괜히 모함을 해서 감찰부 업무에 혼동을 준 요룬 가문의 라이벌 가문들도 그 당시에 박살이 났었다.
‘잘 마무리돼서 망정이지.’
당시 일을 생각하면 요즘도 아찔하다. 만약 누군가 다치거나 죽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나와 린의 관계는, 감찰부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네가 네 번째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와 허리를 쿡쿡 찌르는 에리의 말에 적당히 답해줬다.
“넹?”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에리는 저 멀리 뒷모습만 보이는 집행부장을 보고 납득했다.
“큰일 날 뻔하긴 했죠.”
“왜 넌 무고한 것처럼 말하냐?”
너무 뻔뻔한 반응이라 오랜만에 에리의 입술을 잡아당겼다.
당시의 일은 3과장이었던 집행부장이 주도하여 한 일이라 집행부장을 탈탈 턴 거지, 다른 과장들도 공범이나 마찬가지였다. 차이가 있다면 그저 기여도의 차이였을 정도로.
“으브으으으으!”
허나 입술을 잡힌 에리는 억울하다는 듯 손을 파닥거렸다.
더욱 괘씸하다. 순순히 반성해도 모자란 판국에 변명이나 하려고 해?
‘세상에 억울한 공무원은 없다.’
오직 재수가 없는 공무원만이 존재한다.
상사 운이 없는, 동료 운이 없는, 부하 운이 없는 공무원만 존재한다. 그중 에리는 동료 운이 없어서 집행부장에게 힘을 보탠 거다.
“저 그때 작업만 준비하고 실제로 실행은 안 했어요!”
그래도 애절하게 꿈틀거리는 에리의 모습이 갸륵하여 슬쩍 손을 놓으니, 딱 예상한 수준의 항변이 돌아왔다.
“아가리.”
“으으으읍!”
실행까지 했으면 집행부장이 아니라 네가 주범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