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67)
로판 속 공무원 567화(568/945)
두 남녀가 한 침대에 누워있다면 아침 짹짹 기상이 국룰이다.
그리고 신혼의 힘은 그 국룰을 열흘 동안이나 무너뜨리기 충분했다.
“오, 오빠…! 조금만, 조금만 천천히…!”
“이것도 천천히 하는 건데.”
아침에 기상하기는커녕 아침까지 눈을 떠있던 일상.
“이, 이상해요… 물도 별로 안 마셨는데…”
“이상한 거 아니니까 참지 마.”
밤이 되어도 자기는커녕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던 일상.
“오늘로 7일째죠…?”
“그러네. 사흘만 더 있자.”
“네?”
노래방 사장님의 마음으로 기존 시간에다가 추가시간까지 얹었던 일상.
정말 알차고 보람찼던 열흘이었다. 본래 예정보다 더 머무르게 되어 일정이 다소 꼬이기는 했으나,휴가 중인 사람의 일정이 꼬여봤자 얼마나 꼬이겠나. 이미 마르에게 조금만 더 있다 간다 말해뒀으니 아무런 문제도 없다.
“경치 좋네.”
아직 침대에 기절한 듯 누워있는 린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창가로 다가가 우뚝 솟은 산사나무와 튤립들을 바라봤다.
아름다운 경치다. 비록 급히 조성한 광경이지만 현직 제국백과 백작 영애가 오붓한 신혼을 즐길 장소지 않나. 마법과 돈과 돈을 처바른 덕에 미적으로도 안전적으로도 완벽한 신혼여행 장소를 완성할 수 있었다. 나무와 꽃, 건물이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한 번만 쓰고 끝내기는 아쉬운데.’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꽃잎들을 보며 창틀을 툭툭 두드렸다.
남의 영지에 냅다 건물을 세워버린 상황이라 이 건물은 넷째 장인어른께 양도할 생각이었다. 장인어른 입장에서도 이 건물은 딸의 결혼을 추억할 수 있는 장소니 상당한 의미가 있을 터.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경치는 포기하기 아깝다. 게다가 열흘이나 머무르다 보니 건물 자체에 정이 들기도 했고.
‘그냥 우리 별장으로 쓸까?’
이 튤립 동산이 플란벨 백작령의 주력 관광지라는 게 마음에 걸리나, 다행히 이 정상 부근은 외부인이 접근하지 않는 구역이다. 관광업에 타격이 올 일은 적으니 적당한 대가만 지불하면 장인어른도 허락하실 것 같다.
그래, 돌아가면 정식으로 구매 절차를 밟자. 사위라는 놈이 장인어른 영지에 무단 건축물을 세워서 알박기를 할 수는 없지.
‘응?’
구입 비용은 레온에서 파밍한 영지로 드릴까 고민하는 사이, 탁자에 내려두었던 통신구가 빛을 뿜었다.
– 마침 깨어있었구나.
“트릭시?”
린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구석에서 통신구를 작동하자 트릭시의 얼굴이 나타났다.
– 갑자기 연락해서 미안하구나. 혹시 내가 방해한 거니?
“아니야. 그냥 경치 구경하고 있었어.”
살며시 귀를 늘어뜨리며 눈치를 보는 트릭시에게 고개를 저었다. 어제 연락을 줬다면 조금 곤란했겠지만, 지금은 모든 용무를 마치고 휴식 중이다.
“그보다 무슨 일이야? 곤란한 일이라도 생겼어?”
그렇기에 불안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와 린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는 건 저택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 심지어 오늘 복귀할 예정이라는 것도 사흘 전에 말해뒀다.
그럼에도 트릭시가 아침부터 연락을 했다는 건 그만한 일이 터졌다는 뜻. 마음이 평온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 아, 그게.
내 질문에 잠시 입을 다문 트릭시가 조심스레 답했다.
– 세계수가 이전보다 더 강한 신성을 품게 됐단다. 콘스탄티나께서도 외할머니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준이 되었고.
“…뭐?”
정말 예상치도 못한 일이라 당황했다.
콘스탄티나는 세계수 부활 이후로 잠잠히 지내고 있다. 엘프들의 숭배를 받고 있기는 하나 이종족 보호 구역에 있는 엘프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고, 재강림한 콘스탄티나도 자신의 신앙을 퍼뜨리기보다는 자신의 자식들과 평온한 삶을 보내는 것을 원하고 있다.
그런 콘스탄티나가 갑자기 일개 신도와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그 상징인 세계수의 신성이 강해졌다?
‘종교 전쟁 리턴즈인가?’
허나 과거에도 순순히 에넨에게 협조한 콘스탄티나가 이제 와서 그럴 리는 없다.
– 그래서 무슨 일인가 개인적으로 확인해 봤는데…
다시 입을 다물어버린 트릭시는 주변을 두리번거린 후에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며칠 전에 공의회가 끝나서 공식 발표만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하더구나.
그 말에 나도 침묵을 지켰다. 공의회의 결과는 공식 발표 전까지 오직 교황과 추기경, 일부 신학자들만 아는 사실. 그걸 알아냈다는 건 트릭시의 인맥 네트워크가 불타오를 정도로 돌아갔다는 의미다.
그리고 공의회 종료 시점과 맞물려 콘스탄티나와 세계수의 신성이 강해졌다면,
‘결국 인정했구나.’
교황의 뜻대로 여명 교단이 다른 신들의 존재를 공인한 모양이다.
물론 신앙이란 신을 존경하고 따름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명 교단이 다른 신들의 존재를 인정한다 한들, 그것이 신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특정 신을 존경하고 따르려면 그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다. 신앙의 기반은 인정이며, 대륙구 교단인 여명 교단의 수뇌부가 다른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 자체로도 영세한 신이었던 콘스탄티나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될 터.
…
‘영세한 신?’
본능적으로 콘스탄티나가 아닌 진짜 영세한 신이 생각났다. 세계수라는 확고한 상징, 엘프라는 종족 단위의 고정 신자가 있는 콘스탄티나는 나름 작지만 강한 신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영원한 푸른 하늘은 아무것도 없다. 영세라는 말로도 부족한 가난하고 눈물 겨운 신이며, 누가 봐도 콘스탄티나보다 나약한 신이다.
그런데 단순히 인정받은 것만으로도 콘스탄티나가 더욱 강해졌다면… 영원한 푸른 하늘은?
‘와.’
언제나 먹구름으로 가득했던 하늘이 드디어 파래지는 건가?
“끄으응…”
“아.”
마침 고이 잠들어있던 린이 끙끙거리며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린은 편히 저택에서 쉬게 하고, 나는 바로 세계수 쪽으로 가봐야겠다.
저택으로 복귀하자마자 엘프 주거 지구로 이동했다. 세계수의 신성이 강해졌다는 것을 확인하고, 영원한 푸른 하늘과 콘스탄티나의 상태도 보려면 직접 가는 수밖에 없다.
‘뭐야.’
그리고 세계수는 확실히 범상치 않은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더욱 거대해진 것 같은 덩치, 눈을 찌푸리지 않을 정도인 은은한 빛, 가지마다 매달려 있는 요정과 정령들까지.
누가 봐도 신성하다. 무신론자가 봐도 신의 존재를 인정할 법한 광경이다.
– 오, 은인.
그렇게 멍하니 자체발광 세계수를 보고 있자 하늘을 빙글빙글 돌던 불의 정령왕이 내려왔다.
– 어서 와라.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싶었는데 역시 너였군.
“아,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 인간 기준으로는 오랜만인가? 금방 본 것 같은데.
자연스레 내 머리에 올라탄 불의 정령왕은 부리로 날개를 가다듬었다.
– 참, 최근에 딸을 얻었다지?
“예. 예쁜 보물이 셋이나 생겼습니다.”
– 기회가 되면 여기로 데리고 와라. 나름 정령왕이니 축복 정도는 내려줄 수 있다.
무려 정령왕의 축복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예전에 물의 정령왕이 뱉어준 구슬도 효과가 좋았는데, 직접 내려주는 축복은 오죽할까.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 뭘, 우리가 더 고맙지.
다시 푸드득 날갯짓을 하며 사라진 불의 정령왕을 보다가 세계수로 시선을 돌렸다.
‘흠.’
기분 탓인가. 그 몇 분 사이에 더 밝아진 것 같은데.
***
행복하다. 사도와 신전이 박살 난 이후로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이 넘치는 고양감, 넘치는 신성, 넘치는 행복.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신으로서 군림하기에는 충분한 양이다.
후후…후후후후…
– 구후후후후훗…
– 조금 품위를 챙겨서 웃을 수는 없나요?
– 조용히 해! 지금 내가 품위나 챙기게 생겼어!?
괜히 시비를 거는 콘스탄티나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분노는 도로 행복으로 변했다.
그래, 콘스탄티나가 뭐라고 하든 무슨 상관이야. 나는 신인데. 명실상부한 하늘의 신이자, 모든 것을 내려다 보는 하늘인데.
– 흐헤헿…
– 완전히 맛이 가버렸네요.
땅에 붙어 사는 초목 따위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으응?’
그렇게 한참이나 웃다가 익숙한 기운이 느껴져 세계수 바깥을 살폈다.
– 오.
명예 제사장이 왔다.
흡족하다.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역시 내 명예 제사장이 맞다. 신이 힘을 되찾으니 직접 축하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
– 신실한 제사장이네.
뿌듯한 마음에 히죽히죽 입꼬리가 올라갔다. 에넨의 복자든 콘스탄티나의 은인이든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저 아이 몸에서 몇 년이나 지냈고,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 어떠한 신보다 저 아이와 가깝다.
– 아니, 그건 당신이 저주하려다가 실패해서…
– 제사자아아아앙!
질투에 찬 초목의 말은 무시하며 명예 제사장에게 말을 걸었다.
– 나 보러 온 거야?
‘예, 뭐. 그렇기는 하죠.’
만족스러운 대답이라 다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역시 신이 굳건해야 신도들도 신실해진다. 신이 중심을 잡아야 그 근처의 신도들도 안심하는 법이다.
–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잘 지냈나요?
‘아, 콘스탄티나께서도 같이 계셨군요.’
평소라면 거슬렸을 콘스탄티나의 난입도 지금은 웃으며 볼 수 있었다.
– 우리에게 아무 질문이 없는 걸 보면, 이미 이 이변의 원인을 알고 있다는 거겠죠?
‘예, 맞습니다.’
– 응?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문답을 나누는 명예 제사장과 콘스탄티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이변의 원인?
그게 뭐야? 그런 게 있었어?
–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법입니다. 이건 당신도 잘 알 텐데요?
내 반응에 오히려 콘스탄티나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몰라 그런 거.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세계수에 붙어서 연명하는 처지였는데, 원인이니 결과니 느긋하게 따질 시간이 어디 있어.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지.’
겨우 신의 명목을 유지하는 것과 정말 신에 걸맞은 위엄을 가지는 것.
전자에서 후자로 나아갈 수 있다면 평생 원인을 몰라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