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68)
로판 속 공무원 568화(569/945)
갑작스러운 이변에 호기심이 생긴 초목의 신 하나, 이변이고 뭐고 힘이 늘어나서 마냥 좋은 하늘의 신 하나.
– 원래 저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그간 여러 일을 겪으면서 변한 것 같군요.
안타깝다는 기색이 역력한 콘스탄티나의 목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확실히 영원한 푸른 하늘이 요 몇 년 사이에 겪은 일들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유목민의 신앙으로서 정주민 신앙에게 밀리는 건 스스로도 감내하고 있었으나, 사도와 제사장들, 신전과 신물이 한순간에 전멸한 건 아무리 덤덤한 신이어도 분개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분개한 건 분개한 거고, 전멸한 것은 전멸한 것. 모든 걸 탕진한 영원한 푸른 하늘은 신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나를 명예 제사장으로 삼으며 신도를 유지하고, 남의 상징인 세계수에 빌붙어 신앙을 얻어먹고 있다.
‘많이 힘들었구나…’
영원한 푸른 하늘이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동정심을 품었다.
물론 누가 봐도 쉬운 삶은 아니었으나 이 정도로 생존을 갈구할 줄은 몰랐다. 분명 처음 봤을 때만 해도 호탕한 느낌이었는데, 이제 호탕함의 파편조차 보이지 않아.
‘이번에 여명 교단에서 공의회를 진행했었습니다.’
아무튼 두 신에게 내가 파악한 정보를 공유했다.
– 공의회라,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군요.
– 아, 그건 나도 기억난다. 에넨 쪽 아이들이 모여서 떠드는 거였지? 그런데 그거랑 우리가 무슨 상관이야?
공의회라는 말에 영원한 푸른 하늘조차 뒤늦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대단하다 공의회. 생존 본능이 극도로 발달한 신조차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구나.
‘그 공의회에서 에넨이 아닌 다른 신의 존재를 공인하기로 했다 합니다.’
– …네?
– 으응?
두 신의 반응은 비슷했다.
자신이 들은 것을 의심하는 듯한 목소리,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침묵.
– 우리를?
먼저 침묵을 깬 신은 지성이 아닌 본능에 먹힌 듯한 영원한 푸른 하늘이었다.
‘예.’
– 여명 교단에서?
‘예.’
– …왜?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나 말고 교황한테 가서 물어봐.
여명 교단의 이교 인정은 두 신도 짚이는 게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애초에 여명 교단 내부에서도 교황을 비롯한 일부 진보파가 밀어붙인 사안이니, 교단 외부 신이 이유를 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기는 하다.
그리고 이유보다 중요한 것은 결과다. 종교 전쟁 승리 이후로 유일신을 주장하던 여명 교단이 다른 신의 존재를 공인하고, 그 신앙에 대한 존중과 화합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 여명 교단 172대 교황 발트사크 37세의 이름으로 주관한 성스러운 제5차 에네스티예 공의회는 주의 거룩하신 보우 하에 마무리되었다. ]덤덤한 문장으로 시작된 여명 교단의 포고문은 내가 세계수에 방문하고 며칠 후, 일제히 대륙 전역의 교회에 내걸렸다.
[ 주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들이 대륙과 만민의 영을 위하여 논의한 결과, 작금의 교단으로는 주의 뜻을 온전히 실현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에 교단은 기존의 방칙에서 벗어나 새롭게 나아가고자 한다. ]온갖 미사여구가 아닌 ‘우리 변했음.’ 이라는 단순한 문장. 너무도 간결한 문장이기에 오히려 각국 수뇌부가 긴장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굳이 미사여구를 달 필요가 없이 묵직한 사안들을 적었다는 뜻이니.
실제로 포고문에 적힌 내용은 하나하나가 기존 질서와 상식을 뒤흔들기 충분하였고,
[ 그간 획일적으로 진행하던 미사를 각국의 문화를 고려하여 현지 사제의 재량에 맡긴다. 신성교국은 미사가 교리와 어긋남이 있는지를 확인하며, 그 이상 관여하지 아니한다. ] [ 종교 전쟁 시기에 있었던 사건을 객관적으로 조사하며,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피와 과도한 무력 행위가 있었는지를 파악한다. 교단의 과가 있다면 피해를 입은 신앙 공동체의 후손에게 정식으로 사죄하고 배상한다. ] [ 이교의 신앙과 기능을 인정하며 화합한다. 이교라는 이유로 타인을 배척하지 아니하고, 같은 신앙 공동체라는 이유로 동포의 허물을 좌시하지 아니한다. ] [ 교황 피선거권을 모든 여명 교단 신도로 확대한다. ]특히 이 네 사안에 대해서는 대륙 전체가 반으로 쪼개져 논쟁을 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사를 지역마다 다르게 해? 사제의 재량에 맡겨? 그걸 여명 교단의 미사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사죄와 배상은 무슨! 올바른 신앙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막말로 이교 놈들은 당시 여명 교단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어!”
“이교를 인정하는 건 신앙을 포기하는 것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도 유일한 주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거야!”
“피선거권이… 신도 전체…? 그럼 제국의 황제가 투표권을 지닌 친제국 추기경들을 포섭하면 교황도 겸임한다는 뜻 아닌가!”
공의회의 결정이 교단을 망가뜨린다는 반발.
“융통성 없는 획일화는 반발과 혼란을 야기하는 법이다. 교리에 어긋나지 않고 현지의 민심에 부응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종교 전쟁 시기의 교단이 피를 동반했다는 건 사실이다. 당시 시대상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었다는 것조차 사실이다. 허나 과거의 업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그저 영광스러운 승리라고 인식하는 건 다른 문제다!”
“우리의 신앙이 고작 다른 신이 있다고 무너질 만큼 나약한가? 우리의 주께서는 신들 위에 군림하는 신이시다! 이교를 인정해도 우리의 믿음은 굳건하리!”
“아니, 황제가 과로사를 노리는 것도 아니고 무슨 교황 겸임이야. 추기경들 사이에서도 서로 기피하는 자리가 교황인데.”
공의회의 결정이 옳았다고 지지하는 옹호.
“발타사크는 교황의 자격이 없다! 우리의 신앙을 부수기 위한 악령이다!”
“주여, 저 거룩한 목자의 희생을 가엽게 여기소서! 눈이 먼 광신도들의 핍박 속에서 당신의 뜻을 받든 늙은 종을 보우하소서!”
중립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미친 막고라가 대륙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대륙 전체가 남녀노소, 국적, 신분을 가리지 않는 막고라에 돌입했을 무렵,
“미쳐버리겠군.”
황제는 의자에 눕다시피 앉은 채 보드카를 병째로 들이키고 있었다.
정말 멘탈을 놓아버린 듯한 모습이라 돌려 깔 수도 없었다. 저 상태의 황제를 놀리면 상황이 다시 황위에 복귀하거나, 황태녀가 아기 황제가 되는 참사가 터질 수 있다.
“추기경을 포섭해서 교황을 겸임해? 그 꽉 막힌 꼴통들을 과반이나 포섭한다고? 그럴 거면 친제국 교황을 세우지 미쳤다고 짐이 겸임을 하나?”
“본래 사람들은 자극적인 소재에 열광하는 법이지요. 이성이 아닌 감정으로 말하는 것이니 괘념치 마십시오.”
내 위로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묵묵히 보드카를 마셨다.
너 그러다 죽어 미친놈아. 이 자리에 나하고 너밖에 없는데 픽 쓰러지면 난 황제 시해범으로 의심받는다고.
“장관.”
“예, 폐하.”
“짐이 장관을 교황으로 추천한다고 하면─”
정색을 하며 노려보자 황제는 픽 웃음을 흘렸다.
“지금 짐의 심정이 딱 장관이 느끼는 기분일세.”
“…소신이 실언을 하였습니다.”
엄청난 역지사지 덕분에 황제의 기분을 절절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난 지금 업무로도 벅차죽겠는데, 대륙 최대 종교의 수장까지 맡으라고? 그 새끼는 대체 어디서 보낸 암살자냐.
“뭐, 그래도 장관의 말처럼 자극적인 토론도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지겠지. 그 시간이 좀 오래 걸리겠지만, 공의회 자체를 거스를 수는 없어.”
새로운 보드카를 책상 밑에서 꺼낸 황제는 잠시 갈등하더니 도로 바닥에 내려놓았다.
좋은 선택이다. 두 병을 연달아 마시면 황후에게 쓴소리를 들을 테니.
“공의회의 결과는 단 한 번도 취소된 적이 없었네. 심지어 교황의 정적이라 할 수 있는 신앙교리성 성장조차 공의회의 결과에 따를 것을 선언했지.”
“교단 수뇌부의 뜻은 굳건하다는 거군요.”
“그래. 그러니 시간이 해결할 문제야. 신도들이 백날 토론을 해봤자 어차피 교단을 이끄는 건 사제고, 추기경들이니까.”
그렇게 말한 황제는 책상에 대충 널브러져 있던 서류 한 장을 나에게 건넸다.
‘아.’
서류에 적힌 내용을 보자마자 다가올 미래를 직감했다.
[ 북방 고유 문화 복원 사업 ]북방에 투입될 자금과 인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거라는걸.
지금도 희희낙락거리는 영원한 푸른 하늘의 입꼬리가 귀까지 걸릴 거라는걸.
“콘스탄티나 신앙은 세계수와 엘프들이 이종족 보호 구역에 있어서 신경 쓸 것이 없으나, 북방의 영원한 푸른 하늘 신앙은 전쟁을 거치며 쇠락했지. 이 기회에 대대적으로 복원하는 게 좋지 않겠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황제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수긍했다.
에넨의 가호를 받아 천명을 수호하는 리브노만 입장에서 새로운 신의 등장은 위협이 될 수 있으나, 이교 신앙을 제국 주도 하에 복원하여 사실상 관영 교단으로 만들면 더욱 굳건한 집권 명분으로 삼을 수 있다.
마침 영원한 푸른 하늘 신앙의 전통적 영역, 마지막 제사장은 제국의 영토이자 귀족이다. 돈과 시간, 인력만 투자하면 얼마든지 복원할 수 있다.
“황실과 제사장의 피가 섞일 예정이기도 하니, 이보다 다행인 일은 없군.”
그 말에 북방에 있을 바란디가 후작을 떠올렸다.
신앙이 복구되면 그 양반도 정상적인 제사장으로 진화할까…?
‘샤티는 그래도 신앙이 있는 것 같던데.’
여차하면 샤티가 제사장 직책을 조기 계승하는 것도 방법이다. 후작위와 제사장 직책이 꼭 일치하라는 법은 없으니.
그리고 그렇게 되면 영원한 푸른 하늘 신앙에 막타를 친 내가 명예 제사장이라 불리는 이 기묘한 상황도 끝날 거다.
‘…거주지도 옮기는 건가?’
문득 궁금해졌다. 북방에서 신앙이 복원되면 영원한 푸른 하늘도 세계수가 아닌 다른 곳으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나? 자신을 섬기는 곳이 있다면 굳이 남의 상징에 얹혀살 필요도 없잖아.
‘북방에서 지내는 영원한 푸른 하늘이라.’
당연한 건데 낯설다. 이미 내 마음속 영원한 푸른 하늘은 세계수에 빌붙어 배나 벅벅 긁는 반백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