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70)
로판 속 공무원 570화(571/945)
재무성에 쳐들어가기 전, 일단 장관에게 연락부터 걸었다. 괜히 무작정 방문했다가 업무로 예민한 장관과 마주치면 온갖 쌍소리만 들은 채 쫓겨날 미래가 뻔히 보이니까.
– 장관은 바쁘지만 대부는 시간 많다.
“아, 예…”
그리고 장관의 대답은 짧고 간결했다. 그냥 오면 쫓아낼 거지만 페디랑 같이 오면 만나주겠다는 노골적인 요구.
여차하면 페디의 힘을 빌릴 생각이기는 했으나, 상대가 먼저 요구하니 조금 당혹스러웠다. 뭔가 상대방의 권력에 굴복하여 아들을 팔러 가는 아비가 된 기분이야.
“페디야, 대부님 보러 가자.”
“아우우!”
그래도 장관이 툭하면 저택에 방문하여 페디와 놀아준 덕분인지, 페디는 대부라는 단어에 반응하며 빵긋 웃었다.
실로 다행인 일이다. 장관의 지랄맞은 성격이 페디에게도 향하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사람이면 애한테 이상한 짓은 못 하지.’
장관은 아슬아슬하게 사람의 범주에 속하는 모양이고.
– 왈!
‘오.’
그렇게 페디를 안아들고 외출을 준비하는 사이, 티티가 페디의 무릎 보호대를 물고 나타났다.
장하다, 우리 티티. 날이 갈수록 덩치랑 털뿐만이 아니라 눈치도 늘어나는구나. 이 대륙에 영물이라는 게 있다면 티티도 분명 영물에 속할 거다.
“아우!”
– 멍멍!
이윽고 내 품에 얌전히 안겨있던 페디는 티티를 향해 손을 허우적거렸다. 마치 너도 같이 가자는 것처럼.
심지어 티티도 내 몸에 앞발을 얹으며 페디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흐으으음.
“같이 갈래?”
– 멍!
헥헥거리는 티티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나란히 걸었다.
일 얘기를 하다 보면 나도 장관도 잠깐 페디를 신경 쓰지 못할 수 있다. 그사이에 페디가 넘어지거나 다칠 수도 있으니, 옆에서 돌봐줄 수 있는 티티가 있다면 안심할 수 있다.이 저택에서 페디와 가장 잘 놀아주는 존재는 티티니까.
물론 나는 빼고. 아비가 되어서 애완동물에게 밀릴 수는 없지.
장관실에 입장하고 3초 후.
“가져가라.”
장관이 책상에 놓여있던 백지 한 장을 턱으로 가리켰다.
“뭡니까 이거?”
“황제 폐하께서 하사하신 거다. 필요한 만큼 적어서 제출하면 된다.”
그 말에 황급히 백지를 집어 자세히 살펴봤다.
아무 것도 적혀있지 않지만 테두리는 금색으로 장식되어 있고, 우측 하단에는 황제의 인장이 찍힌 미친 종이.
‘이런 미친.’
페디까지 동원하며 치열한 예산 따기 아가리 파이팅을 각오했지만, 상상을 초월한 미친 물건의 등장에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이거 백지 수표잖아.’
아무 숫자도 없는 종이, 권위를 통한 신뢰, 적는 대로 내뱉어주는 만능의 물건.
누가 봐도 백지 수표다. 황금공조차 사용하는 걸 본 적 없는 물건이 황제의 손에 탄생한 거다.
“거 참, 재무성에서 일한 지도 벌써 수십 년째인데 이런 물건은 처음 본다.”
장관도 기존 상식을 무너뜨리는 물건의 등장에 당황했는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거 진짜 막 적어도 되는 겁니까?”
“어차피 마지막에는 내 손 거친다. 정신 나간 숫자 적어서 제출하면 뒤에 0 두 개 정도 지우면 돼.”
100% 자유라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안심했다. 정말 적는 대로 주는 물건이었다면 나도 무서워서 함부로 못 적었어.
“뭐, 그럼 일 얘기는 끝났고.”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이리저리 돌린 장관은 징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페디만 두고 꺼져.”
“아니 씹.”
백지 수표와 맞먹는 충격을 주는 미친 발언에 절로 쌍소리가 나왔다.그 덩치랑 인상으로 그런 말을 하면 인신매매범 같잖아.
– 그르르릉…!
오죽하면 여러 번 장관과 마주친 티티도 움찔하며 경계 태세에 돌입했을까.
“아우! 아우우!”
오직 페디만이 자신을 귀여워해주는 대부를 향해 방긋방긋 웃을 뿐이었다.
우리 귀여운 페디. 낯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좋아하는 건 흐뭇한 일이지만, 세상에는 믿을 사람과 아닌 사람이 있단다…
‘…크면 알아서 터득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내 품에 있던 페디를 조심스레 장관에게 건넸다.
애초에 장관을 대부로 삼은 건 나니까. 이제 와서 내가 ‘저 미친 노인네하고 너무 친해지지 말아라.’ 라는 말을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음? 그새 좀 무거워진 것 같은데?”
“아기들은 원래 쑥쑥 크는 법이죠. 아마 내일이면 더 무거워질 겁니다.”
“하긴. 그건 그렇지.”
히죽 입꼬리를 올린 장관은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작은 사자 모양 봉제인형이었다.
‘저건 또 뭐야.’
도저히 장관이 가지고 있을만한 물건이 아니라 헛웃음이 나왔다.
백지 수표, 인신매매범 발언에 이어 이번에는 아기자기한 인형. 짧은 시간에 세 번이나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아우우! 아우! 우우우!”
“흐흐, 마음에 들었느냐?”
“아우!”
그러나 페디는 새로운 장난감에 홀린 듯, 눈을 반짝이며 인형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우리 페디… 동물 좋아하는구나… 티티랑 잘 놀 때부터 조짐이 보이기는 했는데…
“자, 선물이다.”
“뺘우!”
활짝 웃는 페디를 보며 다짐했다. 저택으로 돌아가면 인형으로 동물원을 만들겠다고.
아예 이 대륙에 없는 동물까지 직접 주문해서 만들─
– 똑똑
“재무성 장관, 안에 계십니까?”
노크 소리와 함께 외무성 장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러운 추가 손님에 장관의 시선이 나에게 향하자,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용무가 끝났으니 다른 손님이 들어와도 상관없다.
“있습니다. 들어오십시오.”
“실례하겠습니다.”
스르륵 문을 열고 들어온 외무성 장관은 북적거리는 장관실의 광경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이거 반가운 손님이 먼저 와있었군요.”
“오랜만입니다, 외무성 장관.”
나에게 악수를 건네는 외무성 장관의 손을 잡으며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내가 감찰성 장관이 된 후로 존대를 하는 외무성 장관이나, 나이와 경력, 의전서열을 보면 외무성 장관은 여전히 나보다 위다. 그러니 고개 정도는 숙이는 것이 도리.
“헌데 이거, 제가 바쁠 때 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악수를 나눈 외무성 장관은 장관의 품에 안긴 페디, 내 발치에 엎드린 티티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정상적인 광경은 아니다. 어느 장관실에서 아기와 애완동물이 돌아다니겠냐고.
“괜찮습니다. 막 용무가 끝난지라 돌아가려고 했거든요.”
“페디는 두고 가라.”
“아니 좀.”
자꾸 남의 아들 탐내지 말라고.
“이왕 계신 김에 같이 들으시죠. 감찰성 장관도 알고 있는 게 좋을 겁니다.”
“예?”
심상치 않은 말이라 흠칫 몸을 떨었다. 외무성 장관이 재무성 장관을 직접 찾아올만한 사안인데, 그걸 나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저 그냥 나가 보면 안 되겠습니까?”
“그래봤자 먼저 듣느냐 나중에 듣느냐 차이인데, 그래도 가고 싶다면야.”
“망할.”
침통한 탄식에 외무성 장관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남의 불행을 비웃다니, 이 잔인한 사람.
“결론부터 말하면 신성교국의 차기 성자가 성지 순례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허나 이어지는 외무성 장관의 말에 침통한 심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허, 이 시기에 말입니까?”
페디의 볼을 쓰다듬던 장관도 외무성 장관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만큼 차기 성자의 성지 순례는 가볍게 넘어갈 만한 사안이 아니다.
“그래서 외무성도 난리입니다. 설마 이 시기에 차기 성자가 대외 활동을 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공의회로 인해 신도들이 막고라를 펼치는 이 상황에서, 차기 성자가 신성교국 밖을 돌아다니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까.
막말로 공의회 찬성파를 규합하여 반대파를 제압할 수 있고, 혹은 반대파를 모아 교황의 권위에 도전할 수도 있다. 성자라는 이름에는 충분히 그럴 권위와 권한이 존재한다.
“일단 대륙 동부부터 순례한다고 하는데, 제국 밖에 있는 성지를 다 합해봤자 제국에 있는 성지의 절반 수준입니다. 금방 제국에 오겠지요.”
“호위 비용이 제법 깨지겠군요.”
결국 돈 때문에 왔다는 얘기라 장관은 더욱 인상을 구겼다. 다른 사람도 아닌 차기 성자의 순례를 보호하고 성지를 통제하려면 상당한 인력과 예산이 필요하니까.
“…흐이잉…”
“아.”
“아이고.”
그리고 성인이 봐도 움찔할 표정이 장관에게 깃들자, 대부를 좋아하는 페디도 울먹이기 시작했다.
“으에에에에엥!”
“아니, 좋은 것만 보고 자라도 모자란 애에게 왜 그런 걸 보여줍니까!”
황급히 장관의 품에 있는 페디를 수거했다. 예쁜 것만 보고 자라야 할 아이에게 저런 흉한 걸 보여주는 건 아동 학대나 다름없다.
“그,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졸지에 아이를 울린 장관은 손사래까지 치며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려 했으나, 한 번 터진 울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페디가 다시 장관의 품에 안긴 것은 세 시간이 지난 후였다.
***
결국 스승님에게 성지 순례를 허락받았다.
그 과정에서 스승님이 뒷목을 잡고 앓는 소리를 내기는 하셨지만, 이 역시 교단을 위한 작은 성장통이라고 믿는다.
“대신 추기경 한 명을 대동해라. 불안해서 너 혼자는 절대 못 보낸다.”
물론 내 제안이 전부 받아들여진 건 아니다. 스승님은 차기 성자가 홀로 돌아다니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너 혼자 보낼 바에는 나도 같이 가겠다고 강력히 주장하셨다.
그 굳건한 의지에 나도 스승님의 제안을 일부 수용하였다. 중요한 건 내가 성지 순례를 하는 것이지, 누구와 하느냐가 아니니까.
“그럼 순례 기간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알렉산드리아나 자매님.”
“네, 형제님. 최선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대륙을 돌아다니게 될 수행원으로 알렉산드리아나 자매님이 선정되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으로 바꾸려고 했다. 안 그래도 바쁜 시성성 성장이 나 때문에 대륙을 돌아다녀야 하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시성성 성장은 너와 함께 성지 순례를 하며 대륙 각지의 성인, 복자 후보자들을 선정할 거다. 어차피 언젠가는 진행해야 할 시성과 시복이라면 공의회에 쏠릴 관심을 줄여야 할 지금이 적기지.”
허나 이 역시 업무의 일환이라는 말에 납득했다. 대륙적 규모로 이루어지는 시성, 시복이라면 공의회의 열기도 조금은 가라앉을 터.
‘대륙적 규모라.’
살포시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야 내가 대륙을 돌아다닌다는 실감이 났다.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겠군요.’
제국과 아르메인, 유벤에 있을 친우들.
운이 좋으면 그 친우들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