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71)
로판 속 공무원 571화(572/945)
공의회로 인한 신도들의 막고라, 신전 재건을 위한 백지 수표 획득, 타니안의 기습 성지 순례.
여러 이벤트들이 연이어 터졌지만 더 이상 내가 신경 쓸 일은 없다. 막고라는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테고, 신전 재건은 아래 실무진들이 알아서 할 테고, 타니안의 성지 순례는 아직 대륙 동부에서 이루어지는 중이니까.
그렇기에 제국의 일꾼 칼은 다시 신혼-육아 휴가를 즐기는 자연인 칼로 돌아갔다.
“짠, 페디야 이것 봐라.”
페디에게 선물로 주기 위한 여러 동물 인형들과 함께.
“아우우!”
티티의 배를 베개 삼아 누워있던 페디는 대규모 선물 공세에 눈을 반짝이더니 데굴 몸을 굴려 네 발로 일어섰다.
흡족스러운 반응이다. 역시 우리 페디는 동물을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준비한 보람이 있어.’
쪼르르 기어오는 페디를 보다가 자루에 가득 담겨 있던 인형들을 하나둘 바닥에 내려놓았다.
고작 사자 하나만 준비했던 장관과 달리 나는 모든 걸 준비했다. 대표적으로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멸종위기종 호랑이, 대륙 북동부 끄트머리에서 관측된다는 백곰, 유벤 서부의 초원에서 뛰어노는 기린, 과자를 주면 코로 먹는 코끼리.
마지막으로 이 대륙에 존재하지 않는 판다까지.
‘완벽하다.’
아기가 흥미를 가질만한 모든 걸 준비했다. 이 중에서 단 하나도 페디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그건 페디가 동물을 싫어하거나, 사자의 심장을 타고났기에 그런 것일 터.
“아부우우!”
빠르게 기어온 페디는 휙휙 고개를 돌리더니, 가장 가까이에 있던 호랑이 인형을 손으로 툭 치며 방긋 웃었다.
많고 많은 동물 중 호랑이. 실로 강인한 선택이다.
‘강한 무인으로 자라겠구나.’
흐뭇한 마음에 페디의 볼을 부드럽게 매만졌다.본능적으로 강한 동물을 고르는 걸 보면 우리 페디에게도 용맹한 크라시우스의 피가 흐르는 것이겠지.
육상 동물 최강자가 코끼리라는 건 잠깐 잊기로 했다.
“칼? 이게 다 뭐예요?”
그리고 얼마 후, 저택의 물자를 점검하고 돌아온 마르는 인형으로 이루어진 동물원을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이번 동물원 개장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서프라이즈였으니까.
“우리 페디 선물. 귀엽지?”
“…귀엽기는 하네요.”
양손에 인형을 들고 까르르 웃는 페디의 모습에 마르의 표정도 녹아내렸다.
“그런데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동물원인데 이 정도는 있어야지.”
한 손으로 셀 수 있다면 그게 동물원이겠나. 적어도 50, 60은 넘어야 동물원이라고 할 면목이 서지.
‘다음에 더 사 와야지.’
어쩔 수 없다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짓는 마르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다짐했다.
1차 목표는 인형 100개, 2차 목표는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을 종류별로 가져오는 것.최종 목표는 페디의 방을 인형으로 가득 채우는 거다.
만약 페디가 인형에 질리더라도 상관없다. 우리에게는 세쌍둥이와 벚꽃이, 바다가 있으니까.
영원한 푸른 하늘의 신전은 샤티의 지식을 쥐어짜 철저히 북방식으로 건설 중이다.
– 앞으로의 신생도 요즘만 같았으면 좋겠어.
그 덕분에 영원한 푸른 하늘을 향한 신앙도 더욱 거대해졌다.
여명 교단이 공식으로 인정한 신, 각 대영지 중심지에 당당히 재건되는 신전, 제국 중앙에서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북방 문화 복원.이런 호재가 연달아 터지는데 신앙이 강해지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기는 하다.
‘그럼 이제 세계수가 아니라 북방으로 터전을 옮기는 겁니까?’
– 글쎄. 그건 생각 좀 해보려고.
이상하다. 분명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형식으로 대화를 하고 있는 건데, tv 앞에 드러누워서 배를 긁적이는 영원한 푸른 하늘의 모습이 보인다. 이게 청각의 시각화인가 뭔가 하는 그런 건가?
– 나만의 신전도 좋기는 한데, 세계수만큼 지내기 편한 곳도 드물거든. 막 재건한 신전이랑 대륙 역사에 남은 세계수 중에 어디가 더 좋겠어?
‘세계수도 작년에 부활한 거 아닙니─’
– 아무튼!
명분이 반박당하자 영원한 푸른 하늘은 빠르게 말을 돌렸다.이거 진짜 이사하기 귀찮아서 버티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 나도 요즘 힘이 세져서 이래저래 보고 듣는 게 많아졌거든? 대륙이 많이 시끄럽더라고.
그래도 필사적으로 주제를 돌리려는 것 같기에 일단 어울려줬다.
괜히 기분이 좋은 영원한 푸른 하늘을 자극했다가 애잔한 먹구름 하늘로 추락한다면 나도 피곤하고 콘스탄티나도 귀찮아진다. 그런 참사는 피해야지.
– 그 소란 때문인지 대륙에 퍼져있는 에넨의 기운이 조금 희미해졌더라.
…?
‘예?’
허나 예상 외로 심각한 주제가 튀어나왔다.
그거 큰일 아닌가? 대륙을 주름 잡던 신의 기운이 약해진다면 그 틈을 노리는 진짜배기 이교가 튀어나오거나, 공의회가 잘못됐다는 반대파가 더 기승을 부릴 거 아니야.
– 아, 일시적인 현상이니까 크게 걱정하지 마. 혼자 앉던 테이블에 갑자기 둘이나 더 앉았으니 자세를 고치기는 해야 하잖아. 딱 그런 느낌이야.
‘아, 예…’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신이 그렇다고 하니 그러려니 넘어갔다.
게다가 영원한 푸른 하늘이 애잔한 모습을 자주 보이기는 했으나, 일단은 에넨보다 먼저 세상에 등장한 고인물 신이기도 하잖아. 경험은 이쪽이 압도적이지.
– 그런데 이게, 옛날이었다면 잠깐 약해져도 큰 지장은 없거든? 여러 신들이 난립할 때는 신의 힘이 들쑥날쑥했던 게 정상이란 말이지.
그렇게 말한 영원한 푸른 하늘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마치 이 다음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하나 고민하는 것처럼.
불안하다. 아까 본인 입으로 일시적인 현상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놓고, 정작 본인이 걱정되게 만드는 행동을 하고 있다.
– 그으… 여명 교단 성서 읽어본 적 있어?
‘예, 뭐. 대충은 봤습니다.’
그리고 침묵을 깬 영원한 푸른 하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신실한 신도는 아니지만 기본적인 건 안다. 귀족인 주제에 교리나 성서에 너무 무지하면 이교도로 오해 받거든.
– 그거 마지막에 악령들을 혹한의 땅에 봉인해서 태양이 언제나 감시한다, 그런 내용 있지?
기이할 정도로 남의 교단 성서에 해박한 영원한 푸른 하늘의 말에 잠시 머리를 굴렸다.
여명 교단 성서 마지막 장은 빙의 전 세계로 치면 요한 계시록 같은 느낌이다. 기존 성서 내용과 상반된 분위기를 가지고, 인지도에 비해 정작 내용을 아는 사람은 적은 기묘한 장.
‘확실히 그런 내용이 있던 것 같─’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며 대답한 순간,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아니죠?’
그렇기에 일단 현실을 부정했다. 내가 생각하는 그게 아니라고. 악령은 단순한 비유에 불과하다고.
실제로 여명 교단 성서에는 직접적인 암시보다 우회적인 비유가 더 많이 적혀있었다. 여명 교단 신학자들조차 혹한의 땅에 봉인된 악령들을 ‘인간의 죄악과 악함을 신앙의 힘으로 억누르자.’ 같은 느낌으로 해석한 걸로 알고 있다.
– 악령 진짜 있어. 그거 종교 전쟁 시기 때 유독 시끄럽게 굴던 신들을 에넨이 모아다가 봉인한 거야.
‘…….’
– 그런데 봉인을 유지하던 에넨의 힘이 조금 약해져서… 재수 없으면 다시 튀어나올 수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악령이 비유가 아니라 진짜라는 것도, 알고 보니 악령이 아닌 악신이었다는 것도 알고 싶지 않았다.
망할.
에넨이 악신들을 봉인한 혹한의 땅은 나에게도 익숙한 곳이었다.
유목민들이 살아가는 북방보다 더욱 북쪽에 있는 지역이자, 시베리아 뺨치는 더러운 날씨 때문에 유목민들마저 침을 뱉고 도망친 곳. 그곳이 악신들의 봉인지였다.
‘어쩐지.’
뒤늦게 의문이 풀렸다. 종교 전쟁에서 한 발자국 물러난 유목민의 신이 악신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이상했는데, 그냥 자기 뒷동네에 봉인된 상태라 빠삭한 거였다. 자기 뒷마당에 악신들이 우글거리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지.
…
‘왜 하필 거기에.’
이윽고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넓고 넓은 대륙 중에 왜 하필 북방 뒷마당에 봉인한 거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인간을 비롯한 지성체들이 없는 곳이니 안전한 봉인지기는 하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봉인이 풀릴 경우, 북방이 제일 먼저 피해를 보는 곳 아닌가? 그런 곳에 봉인하는 걸 영원한 푸른 하늘이 묵인했다고?
설마 그때부터 호구였던 건가?
‘…아니겠지.’
잠시 애잔하고 불경한 추측을 했지만 금방 머리에서 지웠다.
정말로 호구처럼 악신을 짬처리 당한 거라면 영원한 푸른 하늘이 울먹이며 하소연했을 거다. 그러지 않은 걸 보면 나름 정당한 절차를 거쳐 봉인지를 선정한 거겠지.
그렇다고 믿고 싶다. 내 마음속 영원한 푸른 하늘의 애잔함은 이미 밑바닥이라고. 더 이상 추락할 곳도 없어.
“각하.”
그렇게 영원한 푸른 하늘의 존엄을 위하여 상호 간의 합의라고 생각하던 중, 크라시우스 가문의 마법사들이 우르르 다가왔다.
“아, 왔나?”
10명이나 되는 마법사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봉인지까지 갈 텔레포트도, 혹한에서 몸을 지킬 방한 마법도 넉넉하게 쓸 수 있을 터.
사실 트릭시 한 명만 있다면 마법사 100명이 있는 것보다 든든하지만, 세쌍둥이를 돌봐야 할 트릭시를 대륙 북쪽 끝까지 데려가는 건 좀 그렇잖아. 차라리 가문의 마법사들을 여럿 데려가는 게 낫다.
“다소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다. 미리 말한 것처럼 보상은 확실히 챙겨주겠으나, 생각이 변했다면 지금이라도 말해라. 도중에 돌아오는 건 힘들 테니.”
“각하를 모실 수 있다면 어느 곳이든 기쁜 마음으로 갈 수 있습니다.”
가장 앞에 서있던 마법사의 말에 픽 웃음을 흘렸다.
“그럼 가도록 하지. 마나 분배에 유의하도록.”
“예, 각하.”
허리를 숙인 마법사들을 보다가 주섬주섬 털코트를 챙겨 입었다. 아무리 마법이 있더라도 시베리아나 다름 없는 곳에 가는데 따뜻하게 입어야지.
‘내 팔자야.’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복슬복슬한 감촉을 느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하다 하다 악신의 봉인이 멀쩡한지 확인하는 업무까지 맡게 됐다. 일복도 이 정도면 경이로울 정도다.
물론 나도 사람이니 이딴 업무를 맡고 싶지는 않으나,
‘하필 북방 인근이라 무시할 수도 없어.’
악신의 봉인이 멀쩡한지 직접 확인하러 가기 vs 무시했다가 뒤늦게 봉인이 풀린 악신에게 북방이 털리기.
끔찍한 양자택일은 휴가를 즐기는 가장마저 움직이게 만들기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