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73)
로판 속 공무원 573화(574/945)
이 지옥 같은 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 열흘 짜리 휴가증에 대한 열망은 입이 얼어버린 마법사들조차 불타는 광전사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르르륵그크그그륵!”
“아그가가가각!”
좀 과하게 광기가 깃든 것 같지만, 더 이상 가지 못하겠다며 파트라슈 엔딩을 찍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낙오하는 건 죽는 거나 마찬가지야.
“여기인가?”
그렇게 마법사들과 함께 도달한 곳은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곳이었다.
거대한 구덩이, 구덩이를 둘러싼 수십 여개의 철기둥, 그 철기둥들을 잇는 은빛의 쇠사슬까지.
‘여기가 아니면 그게 더 이상하겠네.’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혹한의 땅에 이런 구조물이 있다? 봉인지가 아니라면 그게 더 곤란하다. 신들도 몰랐던 초-고대 문명의 유산이라는 의미니.
– 그런 거 없어. 이거 봉인지 맞아.
‘다행이군요.’
애매한 성능을 자랑하던 영원한 푸른 내비게이션의 확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로 코앞에 있는데도 구분하지 못하면 그게 신이겠냐. 다행히 영원한 푸른 하늘은 신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존재다.
‘흐으음.’
아무튼 은은한 빛을 내뿜는 철기둥을 향해 다가갔다. 수백 년이 지났음에도 녹 하나 없이 깨끗한 걸 보면 에넨의 기운이 깃들기는 한 것 같다.
게다가 쇠사슬에 가까이 다가가면 묘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이, 이 쇠사슬이 구덩이와 구덩이 밖을 가르는 일종의 경계선으로 보인다.
‘…이거 멀쩡한 겁니까?’
한참을 철기둥과 쇠사슬을 구경하다가 영원한 푸른 하늘에게 물었다. 이거 봉인이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거 맞냐고.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적으로 가동하는 것처럼 보이나, 다른 것도 아닌 악신을 봉인하는 곳이지 않나. 단순히 육안으로만 확인하는 건 너무 야매스러운 일이다.
– 어…
그리고 상당히 불안한 반응이 돌아왔다.
– 일단… 봉인이 유지 중이기는 하거든?
‘그럼 된 거 아닙니까?’
– 조금 헐거워.
최악은 아니지만 최선도 아니라는 말에 혀를 차고 말았다.
단순히 건물이 약해진 거라면 사람을 불러서 수리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건 종교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에넨이 직접 만든 봉인지다. 일개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 알았어. 잠깐 힘 좀 써야지.
허나 인간이 아닌 신이라면 어떻게든 수습이 가능하다.
비록 이 봉인지를 만든 건 영원한 푸른 하늘이 아니지만, 남이 만든 구조물을 보수하는 건 다른 사람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니.
– 오기 전에 말한 것처럼 봉인은 보강할 때가 가장 취약한 순간이야. 굳이 비유하자면 헐거운 문짝을 떼서 고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기억하지?
‘예, 명심하고 있습니다.’
– 뭐, 이 안에 있는 녀석들도 수백 년 동안 갇혀있었으니 기력이 없을 거야. 기껏해야 자기를 꺼내주면 부귀영화를 주겠다느니 뭐니 하는 유혹만 할 테니 무시해.
그건 쉬운 일이기에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미 악신보다 더한 새끼에게 부귀영화를 보장받고 있다. 그 새끼 말고 다른 새끼들마저 내 앞에서 부귀영화 운운한다면 신이고 나발이고 쌍욕을 박을 각오가 되어있다.
“다들 물러나 있어라.”
뒤에 있던 마법사들에게 손짓을 하자 마법사들은 허리를 숙이며 수십 미터 정도 물러났다.
혹시나 하는 사태에 대비할 인력은 나 하나로 충분하다. 어차피 마법도 못 쓰는 마법사들은 있어봤자 고기 방패야.
– 자, 그럼 시작한─
“열렸다!”
“흐하하핳! 이게 얼마 만의 태양이─ 아 시발 눈부셔.”
“빨리빨리 좀 가라! 뒤에 기다리는 신 많다고!”
?
‘뭐야 시발.’
영원한 푸른 하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온갖 괴생물체들이 구덩이에서 튀어나왔다.
– 뭐야, 얘들 왜 아직도 팔팔해!
그리고 반응을 보니 저것들이 악신인 것 같다.
머리가 새하얘졌다. 그럼 지금 봉인되어 있던 악신들이 봉인을 보강하는 틈을 타서 튀어나온 거야?
‘…좆됐다.’
일단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걸었던 검을 뽑았다. 악신에게도 물리 대미지가 통할지는 모르겠으나, 손을 놓고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 야…?
‘어?’
– 으응?
나와 영원한 푸른 하늘의 얼빠진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크으~ 하! 이 상쾌한 공기!”
“흑흑, 그리웠다, 대륙의 바람은.”
“이제 소멸해도 여한이 없어…”
우르르 튀어나와 자기들끼리 떠드는 악신(추정)들을 보며 조용히 검을 내렸다.
“뭐야 이거.”
얘네 왜 이렇게 생겼지?
***
됐다.
됐다, 됐다, 됐다, 됐어! 드디어 됐어!
‘마침내!’
드디어, 마침내, 이 끔찍하고 역겨운 감옥에서 탈출했다!
‘역시 영원한 힘은 없다!’
찬란한 빛, 시원한 바람, 촉촉한 눈의 감촉을 느끼며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빌어먹을 태양 같으니. 처음 우리를 이 감옥에 처박았을 때만 해도 네놈이 영원토록 군림할 줄 알았겠지.
하지만 빌어먹고 우둔한 태양답게 교만한 생각이었다. 이 세상에 영원한 힘은, 영원히 군림할 수 있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네놈은 그저 태양처럼 흥했다가, 결국 가라앉을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가 이 세상에 다시금 발을 디딘 것이 그 증거다. 네놈이 진정으로 영원했다면 우리도 영원히 갇혀있었을 터. 허나 우리는 봉인이 약해진 틈을 타 감옥을 빠져나왔다.
‘영원한 것은 우리다.’
이 세상에 영원한 존재는 없다. 어떠한 생명체든 죽음이라는 결말에 도달하며, 우리에게 승리한 태양도 결국 힘을 잃어 우리를 놓쳤다.
이는 진정으로 군림할 자격이 있는 존재가 우리라는 뜻이다. 피할 수 없는 역병, 생명체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전쟁, 대륙을 뒤덮는 기근,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죽음.
오직 우리만이 영원하리라. 태양조차, 하늘조차 우리 앞에 고개 숙이리라!
‘우리를 꺼낸 신실한 자는 누구지?’
한참이나 태양의 몰락을 즐기다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이 감옥을 나오기 전부터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고, 그 뒤로 흐릿하던 결계가 완전히 사라졌다. 아마 그 존재가 희미해지던 에넨의 힘을 완전히 부수고 우리를 꺼낸 것이겠지.
실로 신실하고도 기특한 자다. 수백 년 전에 갇힌 우리를 기억하고 꺼내다니. 이는 온 세상의 부와 명예, 권력을 가지기에 마땅하다.
“뭐야 이거.”
그러던 중, 인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거라니. 감히 우리를 두고 이거라니.
‘괘씸한.’
살짝 불쾌했지만 아직 과보다 공이 크기에 넘어가주기로 했다. 그래도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으면 질서가 바로 서지 않으니 호되게 야단은 치…
…
?
“뭐야 이거.”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몸을 돌리자마자 절로 멍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지금껏 본 적 없는 거대한 흑색 기둥 두 개가 눈앞에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내 덩치로도 이리 거대하게 보일 정도라면 보통 큰 기둥이 아니라는 건데? 설마 빌어먹을 태양이 우리의 탈주를 대비해서 세워둔 건가?
“이게 악신?”
하늘 쪽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자, 인간 남성처럼 생긴 존재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크다…’
혹시 우리가 갇혀있던 사이에 거인종이 탄생했나?
***
멍하니 바닥─ 정확히는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열하나의 짐승들을 내려다봤다.
아니, 솔직히 짐승이라는 말도 아깝다.
‘티티 수준인데?’
구덩이에서 튀어나온 짐승들은 전부 티티 수준의 크기였다. 그것도 내가 막 상황에게 분양을 받았던 아기 시절의 티티 크기.
심지어 생긴 것도 순했다. 나를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는 녀석은 털이 길어서 요크셔테리어가 생각날 정도의 외견이었다.
“인간? 저거 인간 맞나?”
“생긴 건 인간이 맞는데?”
“인간이 저렇게 클 리가 없잖아. 수백 년 동안 죽지 않고 자라야 저거 반 정도 크기겠다.”
그리고 요크셔테리어처럼 생긴 악신 뒤로 다른 악신들. 구체적으로는 병아리, 새끼 호랑이, 새끼 곰, 독수리 등등처럼 보이는 악신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혼란스럽다. 내가 상상한 악신은 이런 모습이 아니라 해골마를 탄 채 시꺼먼 낫을 휘두르거나, 온갖 짐승이 융합된 키메라 같은 형태를 가진 녀석들인데…?
“이, 이…!”
그렇게 한참이나 악신들을 보는 사이, 요크셔테리어 악신이 털을 푸들푸들 떨며 고함을 쳤다.
“감히 인간 주제에 나를 내려다보느냐! 당장 무릎을 꿇고 올려다봐라!”
귀여운 외관과 어울리지 않는 위엄 넘치는 목소리로.
“…무릎 꿇어도 나보다 작을 것 같은데.”
“감히!”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발언에 요크셔테리어는 더욱 흥분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덩치로 발광해 봤자 그냥 놀아달라고 떼를 쓰는 애완견처럼 보인다.
‘이거 어떻게 된 겁니까?’
요크셔테리어의 고함을 한 귀로 흘리며 영원한 푸른 하늘에게 물었다.수백 년 동안 봉인된 악신들이 봉인지 보강에 돌입하자마자 자력으로 탈출한 것은 의외의 사건이나, 이렇게 아기자기한 모습인 것은 더더욱 의외다.
이게 어딜 봐서 악신이냐고. 데려갈 주인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꼬꼬마들이지.
– 나도 모르겠… 아.
혼란스럽다는 듯 중얼거리던 영원한 푸른 하늘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말을 끊었다.
– 너 쟤네 이름 알아?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악신이 존재한다는 것도 최근에 알았는데.’
– 그래서야.
‘예?’
난데없는 선문답에 당황했지만 이윽고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
신은 신앙을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다. 사도와 신전과 신물이 개박살난 영원한 푸른 하늘은 소멸 직전까지 갔을 정도니, 이는 어떠한 신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최근에 박살이 난 영원한 푸른 하늘도 소멸 근처까지 갔는데, 무려 수백 년 전에 봉인된 악신들이라면? 그것도 성서에 악신이 아닌 악령이라 기록되고, 그조차도 직접적인 표현이 아닌 우회적 비유라고 여기는 지금이라면?
‘약해졌겠군요.’
– 난 오히려 쟤들이 살아있는 게 더 신기해.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있는 거지?
그 말을 들으니 등골이 오싹했다.
수백 년 동안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신들이다. 그럼에도 형체를 유지하고 신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면, 대체 전성기 시절에는 얼마나 강했다는 거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에넨이 괜히 봉인한 게 아니었어.
“인간! 지금 내 말을 무시하는 것이냐!”
물론 과거가 어떻든 지금은 미니 사이즈로 전락한 허약한 악신에 불과하다.
“이, 인간? 무슨 짓이냐? 왜 나를 미는 거지?”
“조용히 하고 집으로 돌아가.”
“무슨 소리냐! 내 터전은 이 대륙이다! 나는 온 생명이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죽음이요, 대륙 위에 우뚝 설─ 야! 밀지 말라고!”
요크셔테리어를 발로 툭툭 밀며 구덩이 쪽으로 몰아갔다.
“역병! 전쟁! 기근! 도와다오!”
점점 구덩이에 가까워질수록 자칭 죽음은 처절하게 소리쳤다.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은 이름이라 다른 악신들도 훑어봤다. 무슨 이름으로 묵시록 4기사와 칠죄종을 쓰고 있냐.
“예? 전쟁이요? 누가요, 제가요?”
“난 그러한 자를 모른다.”
“야 이 미친 것들아!”
내 시선을 받은 악신들은 필사적으로 시선을 피하며 자신들의 이름을 부정했다.
“아아아아아악! 안돼! 돌아가기 싫어! 이번에 떨어지면 다시 올라올 힘도 없다고!”
추하게 버둥거린 죽음은 내 신발을 입으로 물며 버티기에 돌입했다.
너무 추하다. 이게 악신이 인간과 싸우는 법인가…
‘이거 어쩌죠?’
– 그러게. 이런 것들을 봉인하려고 신성을 쓰기는 아까운데.
이기적인 말처럼 들리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덤으로 에넨이 왜 봉인지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도 알 것 같다.
탈출해도 이 꼬라지인데 관심이 갈 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