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74)
로판 속 공무원 574화(575/945)
자칭 죽음은 내 신발을 문 채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이게 마지막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징하고 추한 모습이나, 동시에 내 마음속 미약한 죄책감을 자극하기에도 충분했다. 하필 나도 티티를 키우는 애견인이잖나. 요크셔테리어처럼 생긴 녀석을 발로 밀어내고 있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물론 이것들의 정체가 악신이라는 걸 알기에 망설임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보통 악신도 아닌 에넨이 봉인까지 결심할 정도로 막강한 위세와 힘을 자랑하던 신이다. 지금이야 밑바닥까지 추락하여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방심하면 언제 부활할지 모른다.
‘후환은 남길 수 없다.’
나는 나를 태우고 다녔던 곰이도 제거한 냉정한 사나이. 오늘 처음 보는 악신쯤이야 얼마든지 처리할 각오가 되어있다.
아니, 곰이가 아니라 웅이였나?
“수백 년 정도 살았으면 거기가 네 집 아니냐? 좀 돌아가라.”
“으그그그그극!”
아무튼 내 도발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입을 열지 않았다.
아쉽다. 조금이라도 열었다면 그대로 던졌을 텐데.
– 진짜 징하네. 신으로서 자존심도 없나?
그 말에 잠깐 흠칫했다. 내가 아는 신 중 가장 추한 모습을 보인 것이 영원한 푸른 하늘이었으니까.
– 신이라 물리적으로 없애지도 못하는데…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더욱 열정적으로 발을 휘저었다.역시 짐작한 대로 인간이 신을 없애는 건 불가능했다.
만약 신을 물리적으로 토벌할 수 있었다면 여명 교단 성서 중에 이교의 신을 토벌했다는 업적이 나오거나, 이 악신들을 교단에서 자체적으로 지워버렸을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아무런 기록이 없다면 신의 물리적 소멸은 불가능하다는 것일 터.
사실 신을 칼빵이나 마법으로 죽일 수 있다면 그게 신이겠냐, 그냥 좀 강한 생명체지.
‘역시 봉인밖에 답이 없는 겁니까?’
– 응. 신이 신의 자격을 잃으려면 신앙이 소멸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얘네는 어차피 죽어가던 중이었잖아. 도로 봉인 시키면 알아서 쓰러질 거야.
결국 돌고 돌아 봉인이 답이라는 말.
골치 아픈 일이다. 이 꼬꼬마 악신들을 없애려면 물리적 타격이 아닌 봉인을 해야 하고, 봉인을 하려면 이 악물고 버티는 이것들을 도로 구덩이에 넣어야 하고, 구덩이에 넣은 뒤에도 다시 봉인을 작동시켜야 한다.
앞선 두 선결 과제는 큰 문제가 없다. 귀찮기는 하지만 시간만 투자하면 작은 짐승 열한 마리 정도는 얼마든지 구덩이에 넣을 수 있다.
– 솔직히 봉인이 아니라 구덩이에 넣기만 해도 못 나올 것 같지 않아?
허나 가장 중요한 마지막 과제에서 막혔다. 막 신성을 비축하기 시작한 영원한 푸른 하늘은 이 꼬꼬마 악신들 때문에 신성을 낭비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안전하게 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괜히 구덩이에 방치했다가 신앙을 회복하기라도 하면 골치 아플 텐데요?’
그런 영원한 푸른 하늘을 최대한 설득했다. 신이 나서지 않는다면 인간이 나서야 하는데, 지금 마법사들은 마법 사용이 막힌 상황이다. 악신들의 존재, 혹은 봉인지 자체가 마나의 유동을 막는다는 것이니 인간의 힘으로 봉인하는 건 불가능하다.
– 나도 어지간하면 그러려고 했는데, 쟤들 좀 봐봐.
여전히 시큰둥한 영원한 푸른 하늘의 지시에 따라 고개를 돌리자, 헛웃음이 나올만한 광경이 보였다.
“추워, 너무 추워…”
“에넨 이 개 같은 거… 우리를 이딴 곳에 박아뒀다고…?”
“싫어… 얼어 죽은 신이 되기는 싫어…”
내가 죽음이라는 악신과 한참을 투닥이는 사이, 열이나 되는 악신들은 도망치기는커녕 추위에 떨고 있었다.
처절한 모습이다. 아기 티티 정도의 사이즈를 자랑하는 동물들이 공처럼 모여 서로가 서로의 체온에 의지한 채 벌벌 떨고 있다.
‘파트라슈냐고.’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우리가 얼어죽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파트라슈 엔딩을 찍는 건 우리가 아니라 악신들이었다.
‘그런데 신이 얼어 죽는 경우가 있습니까?’
– 그런 경우는 없어. 하지만 추위를 극복할 힘이 없으니까 신앙이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 계속 추위에 시달릴 거야. 차라리 죽고 싶겠네.
‘그렇, 군요.’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봉인이 절실해졌다.
이것들이 악신이기는 하나,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이것들을 따뜻한 구덩이에 넣고 봉인하는 게 옳다. 이 빌어먹을 혹한 속에서 기약 없는 죽음만 기다리게 하는 건 선신도 악신으로 각성시킬만한 고문이니까.
그러니 일단 나와 노느라 체온이 올라갔을 죽음이 아닌, 저 가련한 덩어리들부터─
– 아, 잠깐만.
영원한 푸른 하늘의 제지에 발걸음을 멈췄다.
– 좋은 방법이 떠올라서 그런데, 일단 쟤들이 못 움직이게 잡아줘.
‘못 움직이게 말입니까?’
– 응. 발버둥치면 귀찮아지거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좋은 방법이라고 자신하는 걸 보면 정말 괜찮은 수단이 있는 거겠지.
반항하는 악신들을 하나하나 붙잡아 땅에 묻었다. 그래도 머리는 빼놓았으니 말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다.
“인간. 우리가 아무리 영락했다지만 한때 신으로 군림한 존재다.”
“구덩이에 넣어달라고?”
“신을 존중하여 아늑한 대지에 묻어준 그대에게 감사를 표한다.”
빠른 태세 전환을 한 병아리 모양의 악신을 뒤로하고 자칭 죽음까지 땅에 묻었다. 이걸로 열한 놈 전부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켰다.
…
‘저기.’
– 응. 왜?
‘저 남들 눈에는 동물들을 생매장 한 미친놈처럼 보이는 거 아닙니까?’
아까부터 묘하게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아마 뒤로 물러난 마법사들의 시선이 아닐까 싶다.
– 걱정 마. 마법사들은 똑똑하잖아. 이런 곳에서 튀어나온 동물들이 일반적인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지.
‘그건 그렇죠.’
마음이 놓였다. ‘감찰성 장관은 연약한 동물들을 괴롭히는 취미가 있다.’ 라는 끔찍한 소문이 도는 재앙은 피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 신성을 흡수할 거야.
‘예?’
– 신성 흡수.
아니, 못 들었다는 의미가 아니었는데.
– 저 작은 육체로는 온 힘을 다해 날뛰어도 위협이 되지 않아. 결국 중요한 건 쟤네가 다시 신앙을 회복해서 전성기 시절로 돌아가느냐 마느냐인데, 애초에 신앙이 쌓일 신성을 제거하면 그럴 걱정도 없거든. 그릇이 없는데 어떻게 물을 담겠어?
이해하기 편한 비유라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무협으로 치자면 단전을 뜯어버리겠다는 의미겠지.
확실히 좋은 방법이기는 하다. 물리적으로 죽지 않는 것들을 두들겨 팰 필요도, 구덩이는 안 된다며 처절하게 버티는 것들을 밀어낼 필요도, 시큰둥한 영원한 푸른 하늘을 애써 설득할 필요도 없다.
그래, 좋은 수준을 넘어 완벽한 방법이다. 완벽하기는 한데…
‘그럼 처음부터 흡수를 하지, 왜 봉인한 겁니까?’
그런 방법을 두고 에넨은 왜 봉인이라는 귀찮은 방법을 썼느냐가 의문이다.
– 그때는 쟤네가 강했으니까. 잘못 흡수하면 오히려 에넨의 정체성이 변질됐을걸?
바로 납득했다.
– 하지만 이제 죽기 직전일 정도로 약해졌으니… 그흐흫…
어느새 영원한 푸른 하늘은 탐욕이 가득한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추하다. 악신들이 징하고 추했다면, 영원한 푸른 하늘은 그냥 추했다. 아까 악신 중에 탐욕이라는 놈도 있던데 이건 누가 진짜 탐욕인지.
– 자! 쟤들 머리 위에 손만 얹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아, 예.’
물론 나랑 친한 추한 신과 처음 보는 추한 신 중 하나를 고르라면 전자기는 하다.
“인간? 지금 뭐 하는 거지?”
내가 갑작스레 머리에 손을 얹자, 땅에서 벗어나기 위해 낑낑거리던 자칭 죽음이 불쾌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신성 흡수.”
“뭐?”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딱딱히 굳었다.
“뭐, 뭐냐! 왜 인간 안에 하늘의 기운이… 아니, 하늘뿐만 아니라 태양과 초목도 있잖아! 인간 주제에 어떻게!?”
“살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
“말장난하지 마라! 신의 기운은 필멸자가 평생을 살아도─ 야 이, 멈춰! 그만해!”
뭔가 절박하게 버둥거리는 자칭 죽음이었지만, 신성 흡수는 영원한 푸른 하늘이 알아서 하는 중이라 딱히 와닿지는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사람의 손길이 싫어서 투정부리는 요크셔테리어로 밖에 안 보여.
“이, 인간! 멈춰라! 지금이라도 손을 떼면 용서해 주마! 너를 이 죽음의 사도로, 대륙 위에 우뚝 설 자로 만들어주마!”
“필요 없어.”
이미 에넨의 복자인데 사도는 무슨.
“부를, 평생을 써도 남을 부를 너에게 주마!”
“나 이미 돈 많아.”
아마 3대가 써도 남을걸.
“그, 그러면 명예를…!”
“명예도 권력도 충분하니 포기해라.”
어째 악역들은 말하는 레퍼토리가 다 비슷하냐.
“…와.”
“망했네 이거.”
“내 신생도 여기까지인가…”
죽음의 눈물겨운 발악을 보던 다른 악신들은 다가올 미래를 직감한 것처럼 우울히 중얼거렸다.
저것들은 포기가 빠른 것 같아 다행이다.
악신들을 악신(이었던 것)으로 만들고 복귀했다.
“…칼? 그건 뭐죠?”
“내가 다 설명할 수 있어.”
그리고 멍한 눈초리로내 품에 안긴 것들을 바라보는마르를 향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요즘 인간들은 이런 곳에 사는군.”
“야, 좋다 좋아. 내 신전보다 화려한 것 같은데?”
“나… 얼어죽을 뻔했어… 여기… 따뜻해…”
“신이 아닌 삶, 나쁘지 않을지도?”
동물인 주제에 자연스레 사람의 말을 하는 정신 나간 존재들.
“저기, 신성도 털어갔으면 양심적으로 먹고 잘 곳은 줘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러게. 이대로 두고 가면 우리 얼어 죽는데?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그냥 픽 죽는 건데?”
“와, 이 말을 듣고도 그냥 가? 독하다 독해.”
“우리가 악신이라 불리지만… 신도들한테 받은 만큼 주기는 했다… 악신보다 사악한 인간…”
신성이 뜯기고 신의 자격을 잃자마자, 필사적으로 나에게 빌붙으며 감정에 호소하던 미친 것들.
주워온 내가 봐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들이지만, 많이 힘들 것 같지만 전부 설명할 수 있다.
내가 어쩌다 이것들을 주워오게 됐는지 마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거다.
***
당대 교황인 아이는 보다 건전하고 굳건한 신앙을 위하여 스스로를 희생하였다.
이 어찌 갸륵히 여기지 않으랴. 이 어찌 가엽게 여기지 않으랴.
‘아이가 희생하는데 아비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그렇기에 대륙 곳곳에서 터지는 문제들을 처리하고, 최대한 아이들에게 향할 부담을 최소화하였다. 나의 힘은 아이들의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나의 권세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함이니.
그러다 문득 대륙 북서부에 박아두었던 악신들이 떠올랐다. 과거에는 그 힘이 강대하여 봉인으로 그쳤으나─ 이제는 소멸 직전까지 갔을 존재들.
‘슬슬 꺼낼 시기로군.’
마침 근래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피곤하기도 했으니, 그것들의 신성을 흡수하면 도움이 되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허.’
봉인지가 텅텅 비어있는 걸 보기 전까지는.
‘…진작 흡수할 걸 그랬나.’
설마 선수를 뺏길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