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77)
로판 속 공무원 577화(578/945)
황제에게 악신들을 키우는 걸 공인받았다.
악신이라는 단어와 키운다는 단어가 한 문장에 공존할 수 있는지 의문이나,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버리고 말았다.
‘키워야 하는 악신만 열하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포켓몬도 한 번에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건 여섯 마리가 한계 아니었나? 나는 티티까지 포함하면 그 두 배인 열둘이나 키워야 한다. 포켓몬 마스터가 부럽지 않다.
“주인. 우리가 아무리 신성을 상실한 신격이라지만 인간 말도 할 줄 아는데, 평범한 짐승과 동급으로 취급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그 짐승이 상황 폐하께서 하사하신 동물인데?”
“그럼 나보다는 신분이 높겠군. 동급으로 취급해줘서 고맙다.”
기이할 정도로 눈치와 상황 판단력이 빠른 교만의 말에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신기한 일이다. 무려 교만이라는 이름이 달린 놈이라 ‘인간 따위에게 절대 굽힐 수 없다!’ 라는 말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생긴 게 병아리라 그런지 그 어느 악신보다 빠르게 굴복을 선언했다. 죽음이 아직까지도 툴툴거리는 것과 비교하면 실로 현명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그런데 저희 이제 어디로 갑니까?”
이윽고 내 목에 걸려있던 뱀, 탐욕이 입을 열었다.
“저 뱀이라 추위 같은 거에 민감한데요.”
“나도… 거북이라… 죽을 것 같아…”
이번에는 거북이의 형태를 한 나태가 처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포유류와 조류의 형태인 다른 악신들과 달리, 탐욕과 나태는 변온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혹한에서 신성을 뜯길 때도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였었지.
“주인… 돈… 많잖아… 저택 못 가면… 다른 집이라도 가자…”
“오, 그러네.”
“귀족이니까 저택 말고 다른 집도 많겠지.”
나태의 말에 다른 악신들도 시시덕거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귀가 솔깃해지는 말이다. 평민 중에서도 부유한 평민들은 집이 여러 채인 경우가 있는데, 고위 귀족인 나는 말할 것도 없다. 내 명의인 저택이나 영지는 제국 곳곳에 퍼져있다.
“이미 다른 집에도 소문 다 퍼졌을걸.”
하지만 저택은 뭐 내 명의가 아니라 쫓겨났을까. 이미 타일글레헨 백작령, 위리디아 백작령을 비롯하여 다른 처가 영지에도 정보가 공유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철없는 남편이 악신을 주워와서 잠시 쫓아냈으니, 반성할 때까지는 들여보내지 말라고.
“혹시 주인을 잘못 만난 건가?”
“우리는 봉인이 풀려서 나오고, 나오자마자 신성이 뜯긴 죄밖에 없는데.”
희망이 순식간에 절망이 되자 악신들은 원망스럽다는 듯 수군거렸다.
이 미친 것들이. 애초에 너희가 악신만 아니었어도 나까지 쫓겨날 일은 없었어.
“…근처에 한적한 곳이 있으니, 일단 거기에 가서 쉬자.”
바닥에 널브러진 악신들을 챙긴 뒤 걸음을 옮겼다.
아까 가려다가 실패한 아버지의 대피 장소.그곳에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을 정리해야겠다.
‘어떻게 빌어야 더 불쌍하게 보일까.’
그랜절부터 박아야 용서해 주려나…?
***
칼과 악령… 아니, 악신들을 잠시 저택에서 내보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악신이라니. 다른 것도 아닌 악신이 우리 저택에 있었다니.
‘악령도 낮춰서 말한 거일 줄 누가 알았겠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악령을 주워왔다는 걸로도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 기분이었는데, 그 악령조차 축소하여 말한 거였다.
어떤 의미로는 칼이 대단하다. 듣기만 해도 아찔해지는 존재를 직접 자기 손으로 주워왔다는 거잖아.
‘악신도 무서울 게 없다는 거겠지.’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대륙 제일 검인 칼에게는 악신조차 굴복한다는 사실이 조금 자랑스럽─
‘아니야.’
스멀스멀 풀리려던 마음을 황급히 다잡았다.
자랑스러운 것과 별개로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이상한 존재를 마음대로 주워온 것, 우리를 속인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반성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미 타일글레헨 백작령에 계시는 어머님, 위리디아 백작령의 집사장, 울켄에 계시는 아버님 등. 칼이 갈만한 곳에는 전부 연락을 돌렸다. 칼을 조금 혼내고 있는 중이니 받아주지 말라고.
‘몇 시간이면 될 거야.’
물론 우리도 칼을 오래 방치할 생각은 없다. 아무리 악신이라는 충격적인 존재지만 확실히 통제가 가능하다고 하고, 칼도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 그런 결정을 한 거겠지. 칼이 남들과 다른 행동을 할지언정 이유 없이 사고를 치는 사람은 아니잖아.
게다가 칼이 악신들을 제압한 것은 에넨께서 온 대륙에 알린 위업이다. 그런 위업을 이룬 영웅이 하루를 넘어 이틀, 사흘 동안 집 밖을 배회한다? 사람들이 대체 뭐라고 생각할까.
그러니 저녁 정도가 되면 부르자. 그 정도면 칼도 충분히 반성하고 사과를 할 시간이니까.
─라고 생각했었다.
“으에에에에에엥!”
페디가 울기 전까지는.
“우리 페디. 뭐가 그리 슬퍼서 울어요?”
펑펑 우는 페디를 품에 안아 조심스레 달래주었다.
동시에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모유는 방금 전에 먹였고, 기저귀도 축축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혹시 아픈 건가 싶어 이마를 만져보니 열도 없고, 어디 부딪혀서 다친 것도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울 이유가 없다.
혼란스럽다. 페디는 자기 스스로 기어다니기 시작한 후부터 배고프거나 볼일을 본 게 아니면 운 적이 없다. 무언가 필요한 게 있다면 저택을 돌아다니며 답답함을 푸니까.
그런 페디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것도 도저히 알 수 없는 이유로.
– 끼이잉…
“티티?”
그렇게 필사적으로 페디의 몸을 확인하며 달래는 사이, 티티가 입에 보자기를 문 상태로 나타났다.
…잠깐만.
“티티. 그것 좀 줘볼래?”
– 멍!
그 말을 듣자마자 티티는 보자기를 내려놓은 뒤, 어쩔 줄 몰라하며 내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마치 서럽게 우는 페디가 걱정되는 것처럼.
정말 기특한 모습이었지만 머리 한 번 쓰다듬어주지 못했다. 티티가 가져온 보자기의 정체 때문에 정신이 아득해졌으니까.
‘저거 분명…’
악신들의 꼬리에 묶여있던 보자기다. 페디를 태우고 저택을 달릴 때 사용했던 보자기야.
“흐에에에엥!”
내가 멍하니 보자기를 보고 있자 페디는 보자기를 향해 손을 뻗으며 더욱 거세게 울었다.
아니, 설마. 아닐 거야. 그건 아닐 거야.
‘악신들이 없어서… 이러는 건가?’
부정하고 싶다. 하지만 모든 정황은 내 생각이 맞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페디는 자신과 놀아주던 악신들, 동물 친구들이 사라져서 우는 거였다.
***
아버지가 알려주신 대피소에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다. 제국의회 의원들이 공유하는 낚시 명소기도 해서 걱정했는데, 아는 사람과 어색한 인사를 나눌 가능성은 사라졌다.
‘낚시 명소라.’
아무튼 조용하고 경치도 좋은 호수를 보다가 적당히 호숫가에 앉았다. 이왕 낚시 명소에 왔으니 뭐라도 잡아야 온 보람이 있지 않겠나.
물론 예정에 없던 방문이니 만큼 낚싯대가 없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쪽으로… 두 마리… 가…”
“좋아, 한 놈만 제대로 잡자.”
거북이인 나태를 호수에 집어넣어 물고기를 내 쪽으로 몰아넣고, 뱀인 탐욕을 낚싯줄처럼 삼아 호수에 담갔다.
완벽한 역할 분담이다. 물고기가 미끼를 무는 걸 기다리는 게 낚시라고? 그럴 바에는 낚싯줄이 물고기를 물게 한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방식인가.
“땅에서 사는 뱀하고 물에서 사는 뱀은 종류부터가 다른데요…”
“숨 좀 참으면 되잖아.”
“이건 숨을 참는다고 될 문제가… 아니, 저 아직 말하는 중─!”
사소한 투덜거림을 무시하며 탐욕의 머리를 다시 호수에 담갔다.
말로는 힘들다고 하는 주제에 막상 집어넣으면 물고기 한 마리를 물고 올라오더라. 이러니 믿고 쓰는 거지.
“세 마리… 더… 가…”
“들었지? 힘내자.”
내 말에 화답하듯 호수 표면에 거품이 조금 올라왔다.
아마 필사적으로 대답을 한 흔적이 아닐까 싶다.
“저거 그냥 물고문 아닌가?”
“악신보다 더한 인간이 있었네.”
등 뒤에서 끔찍한 음해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이해한다. 아직 악신 시절의 버릇이 다 빠지지 않았겠지. 드넓은 마음으로 허위 사실 유포 정도는 눈감아줄 수 있다.
“응?”
그렇게 탐욕이 물고 온 물고기를 다른 악신들에게 던져주는 걸 반복하는 사이, 품속의 통신구가 짧게 진동했다.
[ 칼, 이제 충분히 반성했나요? ]마르가 보낸 문자였다.
[ 저희도 칼이 숨길 수밖에 없던 이유를 충분히 이해했어요. 악신들을 방생하라고 할 생각은 없으니 돌아와도 좋아요. ]그것도 자비가 가득한 문자였다.
“나태야, 이제 나와라.”
“응…? 아직… 더 몰 수… 있는데…?”
“우리 집에 갈 수 있어.”
그러자 나태는 지금껏 보지 못한 속도로 육지에 올라왔다.
물고기와 싸우던 탐욕도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빠르게 몸을 말며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집! 우리 집!”
“드디어 집에 간다!”
“흑흑, 이번에 들어가면 다시는 안 나가…!”
그리고 뒤에 있던 악신들도 생으로 뜯어먹던 물고기를 집어던진 채 환호를 내질렀다.
이 순간,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가 됐다.
저택에 들어가자마자 부인들에게 대가리부터 박았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게 주의하겠습니다…”
진심이다. 갈 곳 없이 떠도는 것만큼 처량하고 막막한 것도 없더라. 심지어 나 혼자가 아닌 짐승 열하나와 같이 다니니 미칠 노릇이었다.
“부아!”
“페디?”
내 진심 사과에 마르의 품에 안겨있던 페디가 손을 휘저었다.
감동했다. 혹시 우리 페디, 아빠가 잠깐 안 보였다고 그리워한 거야?
“아빠도 우리 페디가 보고 싶… 었…?”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페디의 시선과 손은 내가 아닌 바닥을 향해있었다.
‘설마.’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있던 인색과 질투를 들어 올렸다. 이 두 녀석이 페디를 보자기에 태운 채 저택을 질주했던 녀석들이다.
“뺘아아아!”
그러자 페디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그 녀석들을 바라봤다.
이거, 내가 아니라 이 녀석들을 반기는 거지…?
‘꿈인가?’
그래, 분명 꿈일 거다. 이게 현실일 리가 없다.내가 고작 악신 나부랭이들에게 밀릴 리가 없다.
“칼.”
“마, 마르…”
그런 나를 측은한 눈으로 보던 마르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저택에서 쫓겨났을 때보다 더욱 가슴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