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80)
로판 속 공무원 580화(581/945)
저택에서 벌어진 쇼생크 탈출기는 3분도 지나지 않아 막을 내렸다.
“잘 통하는 걸 보니 악신은 맞나 보군요.”
타니안이 성법을 통해 악신들을 구속했으니까.
‘별 능력이 다 있네.’
질질 끌려오는 열하나의 짐승들을 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악신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치는 걸 본 타니안은 짧게 기도문을 읊더니, 손에서 황금빛 사슬을 내뿜어 저택 곳곳에 흩어진 악신들을 붙잡았다.
성자의 유틸 능력은 언제 봐도 경이로울 정도다. 제자리에서 추노를 할 수 있는 능력이라니, 대단해.
“주인! 살려다오! 앞으로 식사도 적게 하고 말도 잘 듣겠다!”
“우린 이미 신성도 뭣도 없어! 신이 아니라 특이한 짐승이라고!”
“야 이 악독한 성자 놈아! 죽일 거면 차라리 신일 때 죽이지, 이렇게 영락했을 때 죽이냐! 난 이런 모습으로 절대 못 죽어!”
아무튼 각각 목이나 다리, 날개를 붙잡힌 채 끌려오는 악신들은 처절할 정도로 버둥거리며 나에게 사정을 하거나 타니안을 원망했다.
애절한 모습이기는 하다. 누가 이것들을 보고 에넨조차 경계한 악신이라고 생각하겠어.
“조금 의외입니다. 악신이라길래 해골마를 탄 괴물이거나, 온갖 동물이 혼합되어 순리를 거스르는 형태일 줄 알았는데.”
그 와중에 악신들의 모습을 살핀 타니안은 나와 비슷한 감상을 내뱉었다.
나도 처음 저것들을 봤을 때는 딱 그 생각을 했었지. 보통 악신이라고 하면 낫을 휘두르는 그림리퍼, 여러 동물이 뒤섞인 키메라, 그도 아니라면 형용할 수 없는 기괴한 형태를 떠올릴 거다. 저런 요크셔테리어, 병아리, 사슴 같은 게 아니라.
“뭐, 지금은 신격을 상실한 상태니 모습이 달라진 걸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말한 타니안은 사슬을 없애며 버둥거리는 악신들을 풀어줬다.
“그보다 형제님이 관리하는 동물들을 험하게 다루었군요. 죄송합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런 걸로 다칠 녀석들도 아니니까요.”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타니안에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생긴 걸 확인하자마자 풀어준 것도 그렇고, 내가 관리하는 동물이라 말한 것도 그렇고─ 역시 타니안은 악신들을 해코지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닌 듯하다.
그래, 이게 당연한 거다. 이미 에넨이 전 대륙을 향해 가장 오래된 근심과 죄악이 사라졌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상황에서 타니안이 독자적 판단으로 이 악신(이었던 것)들을 처리한다면 에넨의 선언을 믿지 못했다는 의미다.
“헌데 형제님. 저 아이들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름이요?”
그 말에 악신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것들도 이름이 있기는 하다. 역병, 전쟁, 기근, 죽음이라는 자칭 사흉.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라는 칠죄종.
그런데 그걸 성자 앞에서 말하는 건 많이 민망한 일이다. 여명 교단의 복자라는 놈이 ‘저희 집 애완동물들은 사흉에 칠죄종입니다!’ 라고 하기는 좀… 많이 배교자 같잖아.
‘본명은 숨기자.’
게다가 에넨조차 위협하던 악신들이 처참하게 몰락한 건 수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름과 존재가 지워졌기 때문이다.
물론 신성을 뜯어갔으니 이름이 밝혀졌다고 신앙을 회복할 일은 없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지 않나. 괜히 이것들의 본명이 퍼져 다시금 숭배를 받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아직은 없습니다. 괜찮으시다면 형제님이 지어주시지 않겠습니까?”
“호, 제가요?”
“악신이었던 과거를 벗어나 새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녀석들입니다. 주의 아들께서 친히 이름을 지어주신다면, 그것이 이 녀석들의 새로운 정체성이 되겠지요.”
그렇기에 타니안에게 짬을 때렸다. 악신의 이름을 성자가 새로 지어준다? 이것만큼 확실한 신분 세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우리 이름은 버젓이 존재하는…”
“눈치 챙겨 임마.”
“이게 뒤질 거면 혼자 뒤질 것이지.”
다행히 눈치 없는 어느 무명의 악신은 근처에 있던 다른 악신들이 제압했다.
“근심과 죄악은 형제님의 손에 사라졌으니, 이제 행복과 선만이 남았겠지요.”
잠시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던 타니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활기, 평화, 풍요, 장생.”
“뭣.”
“저기, 잠깐만.”
“나머지는 겸손, 자선, 친절, 인내, 정결, 절제, 근면이 좋겠군요.”
상상도 못한 단어의 등장에 악신들 사이에 동요가 퍼졌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타니안이 언급한 열하나의 단어는 사흉, 칠죄종과 완벽히 반대되는 개념들이었으니.
“…알고 계셨습니까?”
“역대 교황과 성자들에게는 세상에 공개할 수 없는 정보가 계승됩니다. 세상이 모를지언정, 세상의 평화를 지켜야 할 우리마저 몰라서는 곤란하니 말입니다.”
빙그레 미소를 지은 타니안은 악신들에게 다가가 하나하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리고 주께서 당신들의 업보가 없어졌다고 판단하셨다면, 그분의 종인 저도 그 뜻을 따를 뿐입니다.”
더 이상 교단은 이 악신들을 경계하며 미워하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타니안이 악신들에게 용서─ 라는 이름의 창씨개명을 날린 후.
“이왕 온 김에 아기들을 만나봐도 되겠습니까? 건강히 잘 자라라고 축복이라도 주고 싶군요.”
“영광입니다. 오히려 제가 부탁할 일이지요.”
페디와 세쌍둥이에게 축복을 주고 싶다는 말에 척수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축복은 많이 받을수록, 높은 사람에게 받을수록 좋은 법. 차기 성자의 축복이라면 내가 돈을 쥐여주며 부탁해도 모자란 일이다.
“누가 봐도 형제님 아들이군요.”
그리고 페디를 본 타니안의 감상에 절로 흐뭇해졌다.
우리 페디는 신의 아들이 봐도 내 자식이다. 세상이 인정하고 신이 인정하는 내 자식이야.
“아우?”
아무튼 처음 보는 사람이 나타나자 티티와 함께 뽈뽈 기어다니던 페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울지 않는 걸 보니 자신에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모양.
– 왈!
심지어 티티도 꼬리를 흔들며 타니안을 반겼다.
아니, 티티는 원래 사람을 좋아하지 참.
“오, 이 아이가 티티입니까? 직접 보는 건 처음이군요.”
슬쩍 무릎을 꿇은 타니안은 티티의 머리에 손을 얹은 채 기도문을 중얼거렸다.
‘아니.’
누가 봐도 축복을 내리는 모습이라 당황하고 말았다. 애완 동물에게 차기 성자의 축복이라니, 너무 과분하잖아.
“후후, 돈을 달라고 할 생각은 없으니 그렇게 보실 필요 없습니다.”
“돈이라도 드려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습니다만.”
진심 가득한 중얼거림에 타니안은 그저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이게 인맥의 힘인가…?’
애완동물한테도 축복을 줄 수 있는 귀족은 나밖에 없을 거다.
***
제도 방문은 만족스럽게 마무리되었다.
오랜만에 친우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얼굴을 봤고, 3년이나 신세를 진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다. 또한 주께서 친히 봉인하셨던 근심과 죄악이 완전히 굴복한 것도 확인하였으니, 실로 주의 가호가 있던 일정이라 하여도 부족함이 없다.
‘부디 새로운 이름에 걸맞은 새로운 삶을 살기를.’
픽 웃음을 흘리며 자그마한 악신들, 이제는 고문 형제님의 애완동물이 된 존재들을 떠올렸다.
대륙을 뒤흔들었던 역병과 전쟁, 기근, 죽음은 활기와 평화, 풍요, 장생이 되었다. 더 이상 근심이 아닌 모든 생명체가 바랄 행복이 되었다.
인간의 죄악인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겸손, 자선, 친절, 인내, 정결, 절제, 근면이 되었다. 생명체를 현혹하는 죄악이 아닌 선으로 변모한 것이다.
물론 현시점에서는 고작 이름만이 바뀐 것이나, 이름은 본질이자 모든 것이다. 저들이 그 이름을 받아들이는 날, 진정으로 대륙은 달라질 것이다.
‘형제님이라면 잘 관리하시겠지.’
딱히 근거는 없으나 어째서인지 믿음이 간다. 근심과 죄악을 없앤 형제님이라면 행복과 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행복이라…’
행복이라는 말을 되뇌자 자연스레 고문 형제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자식들에게 축복을 내리겠다고 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마워했던 형제님.
페디라는 이름의 아들과 아직 기어다니지도 못하는 세 딸을 끌어안으며 웃음을 터뜨리던 형제님.
‘그렇게 웃을 수 있는 분이셨나.’
아카데미에서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인상을 찌푸리거나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던 분이었는데,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니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원래 그런 분이 자식을 얻으며 밝아진 걸 수도 있다.
‘자식.’
네 발로 이리저리 기어다니던 페디, 침대에 누운 채 꼼지락 거리던 마리아, 세실리아, 카틀레아.
그 아이들을 떠올리니 계속 입꼬리가 올라갔다. 세상에서 제일 순수하고 귀여운 존재를 보니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나도 언젠가는 자식이 생기겠지.’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된 내가 신앙의 가족을 만난 것처럼, 언젠가는 진짜 가족을 꾸릴 수 있을 거다. 마음이 맞는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하고, 나를 닮은 아이들을 볼 수 있을 거다.
“형제님, 기쁜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그렇게 한참이나 입꼬리를 올리고 있자 내 맞은편에 앉아있던 알렉산드리아나 자매님이 물었다.
“자매님.”
“네, 형제님.”
“저를 닮은 아기가 생기면 어떨 것 같습니까?”
자매님의 동공이 급속도로 떨렸다.
***
타니안의 축복을 받은 이후로 페디와 티티의 체력이 1.4배 정도 좋아진 것 같다. 저택을 돌아다니는 속도가 빨라진 걸 보니 확실하다.
안 그래도 체력이 넘치던 페디가 더욱 강해지다니. 이 아빠는 너무 기뻐.
“주인, 주인.”
“왜 그러냐, 겸손아.”
“제발 그 망할 이름 좀 바꿔다오. 차라리 노랑이라고 불리는 게 낫지, 교만이었던 내가 겸손이라니!”
날개를 파닥이며 성을 내는 겸손을 내려다봤다.
신기한 일이다. 고작 이름이 교만에서 겸손으로 바뀌었을 뿐인데, 어째 평소보다 더 귀엽게 보인다. 이게 이름의 힘인가?
“노랑이가 낫다고?”
“진심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야!”
“노랑이라고 하면 성자가 찾아와서 빨강이로 바꿀 텐데?”
“빨강이?”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기울이던 겸손이는 이내 이해한 듯 후다닥 도망쳤다.
‘네 이름이 생명줄이야.’
그런 겸손이의 뒷모습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쳐다봤다. 저 녀석들의 새 이름은 성자가 내린 자비나 다름없다. 만약 그 이름을 버리면 에넨과 면담하게 될 확률이 높다.
그러니 처신 잘 하라고. 기껏 연명한 생을 버리기 싫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