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82)
로판 속 공무원 582화(583/945)
남편과 약 20살 차이가 나는 막냇동생의 탄생.
이 경이롭고도 갑작스러운 경사에 저택의 부인들은 물론, 감찰성에서 갈려나가던 예비 부인들까지 급히 타일글레헨 백작령으로 향했다.
“다들 어서 오렴. 바쁠 텐데 시간을 내줘서 고맙구나.”
그리고 성에 도착한 우리를 반기는 것은 평온한 얼굴로 침대에 앉은 채, 막냇동생으로 추정되는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였다.
기존의 상식을 벗어난 모습이라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경험한 출산은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흘리는 부인, 문 너머에서 기다리는 것밖에 못 하는 남편, 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태어나는 아기, 기진맥진한 산모로 이루어진 전쟁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진통부터 출산까지 고작 두 시간이 걸렸다. 그것도 출산을 하자마자 아무렇지 않다는 듯 동생을 돌보고 있었다.
“그, 괜찮으십니까?”
한참을 입을 달싹이다 겨우 말을 꺼냈다.
원래라면 왜 우리를 부르지 않았냐고, 어떤 아들이 동생이 태어나는 순간을 지키지 못하냐고 서운함을 표할 생각이었으나 너무 덤덤하시기에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사실 어머니 입장에서 출산은 그냥 식사 같은 게 아니었을까? 정말 별일이 아니라 우리를 부르지 않으신 거고, 결과만 보여주려고 하신 게 아닐까?
“후후, 보다시피 멀쩡하단다. 우리 막둥이가 빨리 오빠들을 보고 싶었는지 서둘러 나왔어.”
빙긋 미소를 지은 어머니는 애정이 가득한 눈으로 막둥이를 내려다봤다.
그러고 보니 막 세상에 나왔다면 울기 바쁜 아기가 벌써 세상 모르게 자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빨리 태어난 거야.
“너희를 낳았을 때도 난산은 아니었지만 이번이 유독 빠른 거다.”
슬쩍 아버지에게 시선을 돌리자 아버지도 다소 멍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구나. 어머니가 특이하신 게 아니라 막둥이가 특이한 거였구나.
‘좋은 게 좋은 거지.’
아무튼 어머니도 막둥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에 안심했다. 사실 어머니의 연세도 어느덧 마흔을 넘으셔서 난산을 걱정했었는데, 젊으셨을 때보다 쉽게 낳을 줄은 몰랐다. 이게 신의 가호가 아니면 무엇이 가호일까.
“저도 막둥이 좀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가까이 오렴.”
그렇기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막둥이를 구경했다.
막둥이의 모습은 막 태어난 아기가 그렇듯 쭈굴쭈굴하고 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굳이 비유하면 마른 고구마와 비슷했다.
허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변하는 외관 따위보다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우리 막둥이.’
새근새근 잠든 것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아기는 언제 봐도 귀엽다.그게 내 가족이라면 더더욱.
“…얘는 성별이…”
“예쁜 여동생이란다.”
더욱 입꼬리가 올라갔다. 남동생이어도 잔뜩 귀여워해 줬겠지만 삼연속 남자는 좀 그렇잖아. 아들이 둘이나 있으면 한 명은 딸이어야 균형이 맞는다.
‘기특하네.’
손가락으로 막둥이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어머니를 힘들게 하지 않았고, 건강하게 태어나고, 성별도 여자다. 태어나자마자 세 번이나 효도를 했다.
“참. 이름은 테레사. 테레사 크라시우스라고 정했단다.”
“테레사 크라시우스.”
자기 이름을 알아들었는지 코를 찡긋거린 테레사의 모습에 나도 어머니도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칼, 에리히 형제는 이제 칼, 에리히, 테레사 삼 남매다. 비록 오빠들과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자기보다 한 살 많은 조카도 존재하지만 상관없다. 이 아이는 누구보다 사랑받고 행복하게 자랄 테니.
나와 에리히는 크라시우스 가문의 숙명을 피하지 못하여 구르고 있지만, 이 아이만큼은 부유한 백수라는 인류의 꿈을 이루게 해줄 것이니.
“저, 저희도 아가씨를 봐도 괜찮을까요?”
“여동생… 칼을 닮은 여동생…”
조심스레 다가오는 부인들의 모습에 어머니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는 말렴. 아가씨가 아니라 딸이나 조카로 여겨줘도 충분해.”
하늘처럼 여기는 어머니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부인들은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해한다. 그 무엇보다도 혈연 관계를 중시하는 귀족들이다. 나이와 항렬이 충돌한다면 당연히 항렬이 이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부인들 입장에서 테레사는 귀여운 아기임과 동시에 애지중지 떠받들어야 할 아가씨다. 편히 대하기에는 지금껏 쌓아온 상식이 무너지는 기분을 겪을 터.
“이 아이가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가 되면 내 나이도 60이 코앞인데, 그러면 언제 잘못될지 모르잖니. 그래서 너희도 이 아이를─”
“무, 물론이에요. 당연히 딸처럼 여겨야죠.”
“저희 자식처럼 여길게요. 그러니 어머님도 그런 말씀은 마세요.”
허나 어머니의 수명을 담보로 한 압박에는 상식이고 나발이고 의미가 없었다.
사실 관리만 잘 한다면 60이어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지만,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60이면 한창때잖아요 어머니.’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냥 기겁하며 엎드리는 게 유일한 대처법이다.
그렇게 테레사의 입지가 ‘딸 같은 아가씨’로 정해진 직후.
“어머니! 막둥아!”
제국의회에서 구르고 있었을 에리히가 요란하게 등장했다.
“으에에에에에엥!”
너무 요란하게 말이다.
“야 인마! 우리 막내 울잖아!”
“자, 자고 있을 줄은 몰랐… 지익…”
본능적으로 에리히의 목에 초크를 걸자 에리히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변명했다.
그래, 그 발언은 변명에 불과하다. 아무리 몰랐더라도 소중한 테레사를 울릴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인생 첫 수면을 취하는 우리 막내를 울리다니, 눈치도 없고 염치도 없는 놈 같으니라고.
“우리 테레사. 둘째 오빠가 너무 반가워서 그런 거야. 그러니 뚝 그치고 다시 자자꾸나.”
“흐에에에에엥…”
다행히 어머니의 정성스러운 다독임에 펑펑 울던 테레사도 조금씩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남매의 첫 만남치고는 다소 소란스러운 만남이었다.
테레사가 태어난 날부터 백작령의 성에 매일 출근하기 시작했다.
무사히 태어나기는 했지만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아기다. 걱정이 되지 않는다면 사람의 마음이 없는 것이니, 적어도 테레사가 눈을 뜨고 옹알이를 하기 전까지는 매일 얼굴을 비출 필요가 있다.
“바쁠 텐데 매일 오기 힘들지 않니?”
“휴가 중인데 바쁘긴요. 오히려 이럴 때가 아니면 못 옵니다.”
걱정된다는 듯 물은 어머니셨지만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가득했다.
출가한 장남이 막내를 보기 위해 매일 본가를 방문한다. 부모로서 흐뭇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
“아, 에리히는 조금 늦는다고 합니다. 아직 막내라서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의회가 바쁜 건 잘 알고 있지. 무리해서 올 필요는 없는데…”
“글쎄요. 오히려 일터를 빠져 나가고 싶어서 안달일 것 같은데요.”
“그건 그렇겠구나.”
그 말에 어머니는 쿡쿡 웃음을 흘렸다.
“빌리도 막 의원이 됐을 때는 굳이 영지까지 와서 점심을 먹었었지.”
그리고 상당히 의외인 과거를 언급하셨다.
믿기 어렵다. 뭔가 아버지는 처음부터 엄격하고 근엄한 의원이었을 것 같은데, 그런 아버지도 처음에는 일에 치이고 연장자들에게 치이는 뉴비였구나.
‘역시 의원은 사람이 할 게 못 돼.’
행정부와 제국의회 중 행정부를 고른 내 선택은 옳았다. 정확히는 행정부가 나를 고른 거지만 아무튼 내가 옳았어.
만약 내가 제국의회를 택했다면 서른에 가까운 연장자들을 섬기며 온갖 짬을 떠맡고 있었겠지. 생각만 해도 정신이 아찔하다.
‘…그 자리를 언젠가 페디한테 줘야 하는데.’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에리히가 고생하는 건 크라시우스 가문의 숙명이나, 내 소중한 장남이 의회에서 구를 미래를 상상하니 씁쓸하기 짝이 없다.
망할. 그냥 제국백 작위는 에리히나 미래의 조카한테 넘길까? 그런데 에리히가 미치지 않는 이상 그걸 받아들일 리가 없잖아.
“저 왔습니다.”
그렇게 페디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이, 때마침 에리히가 어기적어기적 걸어왔다.
“야.”
“응?”
“네가 제국백 할 생각은 없지?”
내가 생각해도 부질없는 질문이지만 한 번 떠봤고,
“미쳤어?”
당연하게도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미안하다. 내가 괜한 걸 물었어.
“맞다. 그러고 보니 형. 며칠 전에 의회로 이상한 거 보냈더라?”
“이상한 거?”
갑작스러운 추궁이라 고개가 절로 기울어졌다.
이상한 거라니. 내가 다른 곳도 아닌 동생의 일터에 이상한 걸 보낼 정도로 막 나가는 놈은 아닌데?
“이거 말이야, 이거! 이 인장 뭔데!”
내 반응에 에리히는 품속에서 인장을 하나 꺼내며 성을 냈다.
“아, 그거.”
감히 형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행태에 울컥했지만, 내가 보낸 물건이 맞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레온 왕국에 파견을 갔을 때 알차게 파밍했던 물건 중 하나. 당시에는 조금 하자가 있었지만 수 개월 동안 수습하여 겨우 본 궤도에 올라온 물건.
“후작 인장이다. 이제 영지도 정상화돼서 가만히 있어도 수입이 들어올 거야.”
“뭔지 묻는 게 아니라 왜 준 거냐고! 형이 제국백인데 동생이 후작인 게 말이 돼!?”
“왕국 후작이면 제국 백작하고 동급인데 뭘.”
만약 에리히 손에 들린 것이 공작의 인장이라면 조금 곤란할 수 있었겠으나, 후작 인장이라면 괜찮다. 본래 제국과 왕국의 작위는 1단계 정도 차이가 난다고 보는 게 관례니까.
허나 에리히는 형의 배려에 감사하기는커녕 손을 파르르 떨며 다시 언성을 높일 준비를 했다.
“흐에에엥…”
그 전에 자고 있던 테레사가 울음을 터뜨려 실패했지만.
“넌 막내 좀 그만 울려라. 벌써 두 번째야.”
“아니… 이건 형 때문…”
억울하다는 듯 입을 달싹거린 에리히는 푹 고개를 숙이더니 어머니 품에 있는 막내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본인이 울렸으니 본인이 수습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있구나. 얘가 최소한의 양심과 상식은 있어서 다행이다.
“제가… 안겠습니다…”
“후후, 그래. 조심해서 안으렴.”
형제의 사소한 다툼을 보며 웃음을 터뜨린 어머니는 조심스레 테레사를 에리히에게 건넸다.
“으에에에에에에엥!”
그러나 테레사는 에리히의 품에 안기자 더욱 우렁차게 울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수면을 방해한 숙적이 누구인지 눈치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