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83)
로판 속 공무원 583화(584/945)
아직 막둥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테레사의 탄생 이후, 여러 손님들이 테레사를 보기 위해 방문했다.
“이 나이에 외증손녀가 아닌 외손녀를 보게 될 줄은 몰랐군.”
“당신도 참. 입이 귀에 걸렸으면서 그렇게 말하기예요?”
“크흠.”
대표적으로 어머니의 친정인 아라스 백작가. 내 결혼식이 아니라면 영지에만 머무는 외조부님과 외조모님이 타일글레헨 백작령까지 행차하셨다.
마흔이 넘은 딸이 막둥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느 부모가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게다가 외조부님의 말씀처럼 두 분은 외손녀가 아닌 외증손녀를 보는 게 정상인 연세다. 그렇기에 더욱 당황스러우면서도 기쁘실 터.
“늘그막에 귀여운 외증손들을 보는 재미로 살고 있었는데, 새로운 기쁨이 찾아왔어.”
실제로 최대한 품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 중인 외조부님과 달리 외조모님은 환한 미소를 지은 채 테레사의 손을 톡톡 건드셨다.
“우으…”
“어머나.”
수면을 방해받은 것이 불쾌한지 살짝 인상을 찌푸린 테레사는 외조모님의 손가락을 잡은 뒤에야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미묘하다. 에리히한테는 깐깐한 테레사가 외조모님의 손길에는 덤덤하구나. 혹시 이번에도 울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후후, 어린 애가 벌써부터 힘이 장사구나. 미래가 기대 돼.”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외조모님은 쿡쿡 웃으며 테레사를 내려다봤다.
막 태어난 아기가 힘이 세봤자 얼마나 세겠냐만, 놀랍게도 저 앙증맞은 손가락에는 이 세상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위력이 있다. 그건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왜 잘 자는 애를 방해하고 그러시오. 그러다 깼으면 어쩌려고.”
“아버님도 만져보세요. 한 번 잠들면 볼을 건드려도 잘 자니까 걱정 마시고요.”
“…그럼 조금만.”
어머니의 권유에 외조부님도 못 이기는 척 테레사의 찐빵─ 아니, 볼을 건드셨다.
“에으으…”
연이은 손길에 잠시 칭얼거린 테레사였지만, 어머니의 장담대로 깨지 않고 숙면을 이어갔다.
신기한 노릇이다. 에리히의 목소리나 터치에는 그렇게 민감하면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둔감하다니.
‘찍혔구나.’
20살 아래 동생에게 밉보인 에리히가 안쓰러웠다. 그러게 왜 첫 만남부터 고성을 내질러가지고 화려한 첫 인상을 만들었냐.
그래도 아기 때의 기억이 평생 가지는 않을 테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언젠가는 에리히도 테레사를 웃으며 안을 날이 올 거라 믿는다.
– 똑똑
“각하. 집사장입니다.”
그렇게 잠든 테레사를 둘러싸며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와 함께 집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집사장?’
의외인 방문이다. 집사장은 아버지 시절부터 영지를 관리한 백작령의 2인자이자 알아서 업무를 처리하는 자동 사냥 비스무리한 존재다.
나 또한 영지의 기둥인 집사장을 믿고 상당한 권한을 맡겼는데, 권한이 가득한 집사장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는 영주에게 찾아왔다?
“무슨 일이지?”
심상치 않은 용무라는 의미기에 불안한 마음으로 물었고,
“현명공 각하 내외와 소공작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아.”
상상 이상으로 심상치 않은 답변이 돌아왔다.
잠깐 잊고 있었다. 가족이라면 환장을 하는 현명공이고, 외숙부의 조카라는 이유로 우리 형제를 물고 빠는 현명공이다. 그런 현명공이 테레사의 탄생을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아마 태어난 당일에 방문하려고 했던 것을 외숙부가 필사적으로 말렸을 확률이 높다. 산모도 아기도 지쳤을 때 방문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면서.
‘이제 한계셨구나.’
외숙부의 외로운 투쟁을 상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여동생과 어린 조카를 위해 버티고 버티다 기어코 무너지신 모양이다.
“막내를 보러 온 것일 테니 이쪽으로 안내해드려라.”
“예, 각하.”
일단 집사장에게 모셔오라는 답변을 돌려줬다.
조만간 방문하겠다는 연락이 아니라 이미 방문했다면 막을 수도 없는 노릇. 어차피 언젠가 현명공과 테레사를 만나게 해야 한다면, 차라리 현명공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외조부님과 외조모님이 있을 때 주선하는 것이 낫다.
“허어, 그 아이들도 왔는가.”
“오랜만에 가족이 잔뜩 모였네요.”
다소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는 외조부님과 마냥 기뻐 보이는 외조모님.
이 두 분이야말로 황제를 능가하는 대-현명공 결전 병기니까.
집사장이 물러가고 얼마 후, 우다다다 달리는 소리와 함께 벌컥 문이 열렸다.
소공작이었다.
“케, 켐니스 백작님과 켐니스 백작 부인을 뵙습니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들어온 소공작은 외조부님과 외조모님을 보자마자 꾸벅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익숙한 어른 흉내라 픽 웃음이 나왔다. 나랑 에리히 앞에서만 저러는 게 아니었구나.
“오랜만이요, 소공작. 더욱 위엄 서린 모습으로 변했구려.”
“어서 오렴, 리리. 못 본 사이에 많이 컸구나.”
손녀의 당돌한 인사에 두 분은 온화한 표정으로 화답해줬다.
그 와중에 소공작의 장단에 맞춰주는 외조부님과 그저 쬐끄만 손녀로 여기는 외조모님의 온도 차이가 인상적이었다. 겉으로만 보면 외조모님이 소공작에게 맞춰줄 것 같았는데, 그 반대라는 게 의외기는 하다.
“두 분도 계셨군요. 여기서 뵐 줄은 몰랐습니다.”
이윽고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외숙부도 모습을 보였다.
본능적으로 몸에 긴장감이 돌았다. 소공작과 외숙부가 왔다면 그다음은 현명공이다. 다행히 결전 병기가 두 분이나 계시니 현명공이 폭주하지는 않겠으나, 좋은 것만 보고 자라야 할 우리 테레사에게 못 쓸 걸 보여주─
“아버님, 어머님.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
‘뭐야 시발.’
혼란스럽다. 분명 내가 아는 외견과 목소리지만 머리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조곤조곤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취기 하나 없는 또렷한 발음. 신비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감도는 눈동자까지.
“아가씨랑 조카도 잘 지냈나요?”
‘당신 누구야.’
단순히 취하지 않은 수준을 넘어 다소곳한 모습을 연기하는 현명공의 모습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조카의 모습에 픽 웃음이 나올 뻔했다.
업무 관련으로 가끔, 아주 가아아아끔 조카 앞에서 멀쩡한 적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조용한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다. 조카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법하다.
‘시부모 앞에서 날뛰는 며느리가 어디 있어.’
동시에 조금 괘씸한 반응이기도 하다. 도대체 나를 어떻게 보고 있었길래 저러는 걸까. 며느리가 시부모님 앞에서 참하고 다소곳하게 있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내가 우리 자기를 낳고 길러주신 분들에게 막 나가겠어?
“걱정해주신 덕에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어요. 언니도 잘 지내셨나요?”
아무튼 가장 먼저 내 인사를 받아준 건 아가씨였다.
“사랑스러운 조카가 태어났는데 못 지낼 사람이 있겠어요?”
그 말에 아가씨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품에 안긴 아기를 슬쩍 들어 올렸다.
…히야아아아아…
‘귀여워…’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을 뻔했다.
귀엽다. 너무 귀여워. 저 새하얀 피부, 빵빵한 볼, 오물거리는 입, 앙증맞은 손. 하나하나가 전부 귀여워.
마치 막 태어났을 때의 리리를 보는 기분이야. 마침 우리 막내 조카도 리리처럼 예쁜 여자 아이잖아.
“안아보시겠어요?”
“그, 그래도, 괜찮나요?”
나도 모르게 거칠어지는 호흡을 가라앉히며 최대한 얌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진정해, 나 자신아. 아직 몸이 약한 아기야. 리리한테 하던 것처럼 끌어안고 뽀뽀를 하면 잘못될 수도 있어.
“조카가 외숙모 품에 안기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죠.”
전혀 이상하지 않기에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역시 아가씨가 최고다. 같은 어머니라 그런지, 귀여운 조카를 둔 입장이라 그런지 서로의 마음을 잘 알아.
“리리도 동생 얼굴 좀 보겠니?”
“도, 동생이요?”
“그럼. 리리가 훨씬 언니잖니.”
리리도 자신보다 어린 사촌의 탄생에 흥분한 듯 눈을 반짝였다.
조카가 아들 하나, 딸 셋을 낳기는 했지만 항렬상 리리의 남매라기보다는 조카에 가깝잖아. 그러니 리리에게 진정한 동생은 오직 이 아이뿐이다.
“어, 어머니. 빨리…”
톡 건드리며 터질 것처럼 얼굴이 붉어진 리리는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빨리 자기 동생을 안아서 자기한테도 보여달라는 것처럼.
‘흐헿.’
귀여운 애가 귀여운 행동을 하는 광경에 히죽 웃고 말았다.
더 이상 못 참겠다. 시부모님 앞이라 자제하고 있었는데.
“우리 리리. 그렇게 동생이 갖고 싶었어? 집에 돌아가면 엄마가 아빠랑 노력해볼까?”
“델…?”
뒤에서 당황한 듯한 자기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
현명공의 기습 둘째 선언이 있었으나, 테레사가 마왕의 심장을 찌른 성검처럼 현명공의 품에 안겼기에 큰 소란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막내, 막내 조카…”
“귀, 귀여워…”
‘효과 확실하네.’
연신 히죽거리는 현명공과 소공작을 보다가 고이 잠든 테레사를 바라봤다.
만약 내가 저런 시선을 받고 있었다면 얼굴이 간질거려 잠들지 못했을 거다. 우리 막내, 생각보다 멘탈이 굳건하구나.
“…하, 한 번만. 딱 한 번만 뽀뽀하면…”
“안 됩니다.”
봉인에 순응하지 못한 채 욕망을 발산하는 현명공을 단호히 제지했다.
뽀뽀라니. 그건 오직 어머니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다. 저 어린 녀석에게 어른들의 더러운 입술이 닿았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떡해.
“진짜 안 돼?”
“안 됩니다.”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안고 있는 것도 다시 빼앗아버리기 전에.
“히잉…”
시무룩해도 봐줄 생각 없다.
“우으?”
“어어?”
“아, 깼다.”
그렇게 현명공의 욕망을 제압한 직후, 잘만큼 잤는지 테레사가 스르륵 눈을 떴다.
“푸른 눈?”
그리고 아라스 가문의 특징인 푸른색 눈을 보자 현명공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아가씨! 조카! 나 진짜 딱 한 번만!”
“아니, 안 된다고 몇 번 말합니까!”
내가 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못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