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84)
로판 속 공무원 584화(585/945)
테레사를 보기 위해 매일매일 영지에 방문하여 출석 도장을 찍었으나, 요 며칠 동안은 얌전히 저택에만 머물렀다.
영지에 가는 게 귀찮아져서는 아니다. 도저히 저택을 떠날 수 없는 시기가 되었기에 눈물을 머금고 막내를 포기한 것이다.
‘막내랑 놀아주다 내 자식 출산을 놓칠 수는 없잖아.’
어머니가 출산을 했다면 곧 리제가 출산할 차례라는 의미. 지금까지는 어머니와 리제의 임신 간격을 계산하여 바깥을 돌아다녔지만, 이제 리제가 언제 출산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기에 돌입했다.
물론 텔레포트가 있는 만큼 리제의 진통이 시작되면 바로 돌아갈 수 있다. 아무리 늦어도 5분이면 충분히 복귀가 가능하니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에 밖에 있던 남편이라는 미친 타이틀은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왕이면 아내의 진통이 시작됐을 때부터 옆에 있고 싶은 것이 남편의 마음이다. 마르랑 트릭시가 진통을 시작할 때는 하필 밖에 있느라 뒤늦게 저택에 복귀했었잖아. 세 번이나 그런 씁쓸함을 느끼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그리고 이건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경우지만.
‘리제가 어렸을 때는 몸이 좋지 않았지.’
정말 재수 없는 생각이지만 몸이 조금 약한 리제가 출산 중에 잘못될 수도 있다. 출산실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지 못한다면 적어도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지 않겠나.
과한 생각이라는 건 안다. 리제가 아픈 건 어렸을 때 잠깐이었고, 지금은 누구보다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가끔 티티와 함께 제도 한 바퀴 산책을 할 정도니까.
게다가 만일에 대비한 의료진도 제국 제일 수준으로 준비했다. 황태녀가 태어났을 당시에 황후를 돌봤던 의료진을 황제에게 소개받기도 했다. 트릭시가 무사히 세쌍둥이를 낳을 수 있었던 통증 완화 마법도 준비 중이다.
그러니 리제도 무사히 출산할 거다. 벚꽃이도 테레사처럼 우리의 기쁨이 될 거다.
분명 그럴 테니 과하게 걱정하지 말자. 출산을 기다리는 게 처음도 아니잖아.
‘나도 이제 경력자니까.’
매번 벌벌 떨며 걱정하는 건 아마추어나 하는 짓이다.
아무래도 세 번까지는 아마추어인 것 같다.
‘벌써 4시간째.’
초조함에 손톱을 물어뜯었지만 더럽게 튼튼한 손톱은 뜯기지도 않았다.
이 망할 손톱이 반지를 반으로 가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이게 손톱이냐, 그냥 톱날이지.
“사위. 그러다 손 상하겠어.”
손톱을 문 이빨에 더욱 힘이 들어가자 옆에 있던 셋째 장인어른이 다독여주셨다.
뒤늦게 민망함이 몰려왔다. 리제가 아팠던 시절을 기억하는 장인어른 앞에서, 나보다 더욱 걱정이 클 분 앞에서 혼자 호들갑을 떨었다 생각하니 고개를 들 수 없었다.심지어 내 등을 토닥이는 장인어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기에 더더욱.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있겠나. 리제에 대한 사위의 사랑을 확인한 것 같아 기쁠 지경인데.”
애써 웃음을 터뜨리는 장인어른을 향해 겨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진정하자. 리제가 출산할 시기라는 것도, 내가 준비할 수 있는 모든 걸 준비했다는 것도, 리제가 잘못될 확률이 극히 낮다는 것도 알고 있잖아. 설마 마음의 준비를 한 당일에 진통이 시작될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내 준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출산실의 문이 열릴 거다.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산모도 아기도 무사하다는 말을 들을 거다.
그렇기에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벚꽃이에게 지어줄 이름을 생각하는 것. 오직 그것뿐이다.
‘…차남일까, 사녀일까.’
이번에는 아들이었으면 좋겠다. 이미 여동생이 셋이나 있는 페디니 남동생 하나쯤은 괜찮잖아.
***
아프다.
지금까지 겪은 어떤 고통보다도 아프다. 스승님의 마법으로 통증이 완화된 게 이 정도야?어머니는 이것보다 더한 고통을 두 번이나 겪었던 거고?
소름이 돋았다. 만약 스승님에게 통증을 완화할 수 있는 마법이 없었다면, 나도 쌍둥이를 임신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이윽고 그 고통은 마법 없이 페디를 낳았던 마르 언니에 대한 존경심으로 변했다. 나였다면 몇 번이나 기절했을지도 몰라.
“흐으으으윽…!”
다시 몰려오는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이가 상할 수도 있다며 천을 물려줬을 때는 뭔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다 경험에서 나온 충고였다.
“마님, 조금만 더 힘내십시오! 거의 끝나갑니다!”
“아, 아까 전에도 그렇게 말했─”
“끝나갑니다!”
어눌한 발음으로 항의하자마자 돌아오는 단호한 외침에 찔끔 눈물이 나올 뻔했다. 억울해. 속는 기분인데 뭐라 항의할 수도 없어.
그러나 거의 끝났다는 말에 다시 힘이 솟았다. 몇 번이나 속은 패턴이지만 다시 속아줄 수밖에 없는 게 예비 엄마의 마음이다.
조금만 버티면, 조금만 힘내면 곧 내 아이가 세상에 나온다. 나와 오라버니 사이에서 생긴 사랑의 결실이 우리 곁에 찾아온다.
‘우리 벚꽃이.’
크라시우스 가문의 다섯째. 비록 성은 크라시우스가 아닌 나이어드를 사용할 예정이지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크라시우스의 아이.
나이어드 가문이 가진 아티니 남작령, 오라버니가 레온 왕국에서 가져온 백작령을 물려받을 예정인 우리 아이.
‘벚꽃이는 고위 귀족…!’
아무리 사교계와 거리가 먼 나라도 고위 귀족과 아닌 귀족의 차이는 잘 알고 있다. 남작으로 사는 것과 백작으로 사는 건 비교도 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다.
그 어마어마한 격차, 어마어마한 작위를 우리 아이에게 안겨줄 수 있다. 벚꽃이가 태어나기만 한다면 세상에 둘도 없을 선물을 줄 수 있다.
그러니 우리 벚꽃이. 제발 건강하게, 빠르게만 나와줘.
“으으으으윽….!”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힘내세요, 마님!”
이러다 엄마가 먼저 기절할 것 같아.
***
이번에도 자정을 넘어서야 출산실 문이 열렸다.
“멋진 아드님입니다!”
페디의 첫 남동생이 태어났다는 말과 함께.
은근히 아들을 바라기는 했지만 정말 아들이 태어날 줄은 몰랐다. 태어나자마자 효도를 하다니, 장하기도 하지.
게다가 표정을 보니 이번에도 산모와 아이 둘 다 멀쩡한 것 같다.
“수고 많았─”
“리제!”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인어른이 출산실로 들어가셨다.
역시 내색만 안 하셨을 뿐 걱정이 많으셨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도 사위를 위로해 주셨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까.
“이번에도 수고 많았다. 푹 쉬다가 편할 때 돌아가고, 보상은 집사에게 말해서 받아가라.”
“감사합니다, 각하.”
아무튼 고생했을 의사의 어깨를 토닥이며 장인어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리제의 품에 안겨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서둘러 침대에 다가가자 피곤한 얼굴로 축 늘어진 리제가 반겨줬다.
“…괜찮아?”
“네에… 몸에 힘이 안 들어가기는 하지만… 괜찮아요…”
희미하게 웃는 리제의 모습에 슬며시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출산을 도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였지만, 앞선 마르나 트릭시와 비교하면 유독 지친 것이 눈에 보인다. 어린 시절의 허약함이 조금이나마 발목을 잡은 것처럼.
“고생 많았어.”
“고생… 은요… 저만 이러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게 말한 리제는 어쩔 줄 몰라하는 장인어른과 나를 향해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들 기도해주신… 덕에… 무사히 낳을 수 있었어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리제는 벚꽃이의 얼굴을 슬쩍 우리에게 보여줬다.
그래, 아까부터 보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리던 참이었다. 건강하게 태어났다고 해서 리제부터 챙긴 거지.
“으에에에에엥!”
아까부터 들리던 울음소리마저 천사들의 노랫소리처럼 들렸다.
“아주 힘이 넘치는 울음소리구나. 커서 훌륭한 무인이 되겠어.”
첫 손주를 보자 장인어른은 감정이 북받친 듯 눈가를 닦으셨다. 어느새 출산실로 들어온 장모님도 마찬가지였다.
가문의 걱정을 한몸에 받던 아이가 어느덧 아기를 낳았다. 이 세상 어느 부모가 눈물을 참을 수 있을까.
“우리 아이예요.”
애정이 가득한 눈으로 벚꽃이를 내려다본 리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보.”
훅 치고 들어오는 호칭 정정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적어도 벚꽃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오라버니가 아닌 여보라고 불러달라 했는데, 결국 벚꽃이가 태어나면서 길고 긴 오라버니 강점기가 막을 내렸다.
출산을 세 번이나 겪은 덕에 사용인들의 뒷정리 솜씨도 예술이 되었다. 어째 아마추어에 머물고 있는 건 나뿐인 것 같다.
“페디한테도 든든한 남동생이 생겼네요.”
“2남 3녀라. 좋은 구성이구나.”
“다음에도 아들일까요?”
그리고 펑펑 울다가 겨우 잠에 든 벚꽃이를 보며 다른 부인들이 쿡쿡 웃음을 흘렸다.
“이 애의 성은 나이어드를 쓰기로 했죠?”
“응. 리제도 작위 귀족이 될 텐데, 그러면 벚꽃이가 리제 후계자잖아. 크라시우스라고 지을 수는 없지.”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태어난 아이들은 전부 성이 달랐다. 페디는 크라시우스, 세쌍둥이는 카토반, 벚꽃이는 나이어드.
그래도 조만간 태어날 바다는 다시 크라시우스를 성으로 사용하기로 했으니 아무렴 어떤가 싶다.
“벚꽃이라뇨. 이제 제대로 이름을 불러줘야죠.”
“아, 그렇지 참.”
조금 기력을 회복한 리제의 지적에 머쓱히 웃음을 흘렸다.
열 달이나 부른 태명이 입에 붙어서 그런지, 정작 이름을 지어준 사람이 이름을 부르지 않는 기괴한 상황.
“우리 프리드리히.”
새근새근 자고 있는 프리드리히의 볼을 톡 건드리며 웃음을 흘렸다.
프리드리히. 프리드리히 나이어드. 내 다섯 번째 아이이자 차남. 리제의 첫 아이이자 장남.
그리고 훗날 제국 남작위와 왕국 백작위를 동시에 물려받을 아이.
…
‘왕국 백작은 조금 애매한데.’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왕국 백작위는 조금 애매한 감이 있다. 아무리 백작이 고위 귀족의 기준점이라지만 왕국 백작은 제국에서 자작 같은 느낌이잖아.
물론 명목상 고위 귀족인 만큼 제국 자작보다는 확실히 위로 쳐주겠다만… 제국 백작과 붙으면 조금 밀릴 수도 있다.
‘후작위로 올려야겠어.’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이제 와서 다른 후작령을 구하는 건 힘드니, 레온 왕국에 압력을 넣어서 프리드리히에게 갈 백작위를 후작위로 올리는 거다.
너무 완벽한 방법이라 흡족스럽다. 왕국 후작이면 제국 백작에게도 절대 밀리지 않지.
‘백작의 자식이 후작이라.’
장남은 제국백, 장녀는 공작, 차남은 후작.
이제 린이 낳을 아이에게는 무슨 작위가 갈지 두근거릴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