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85)
로판 속 공무원 585화(586/945)
오늘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였다.
자선과 친절이 이끄는 보자기에 탄 페디가 저택을 누비고, 티티가 그 옆을 바짝 붙어 달리고, 나는 그걸 질투 섞인 눈으로 보던 그런 하루였다.
“부우우!”
“도련님? 왜 그러십니까?”
“멈출까요?”
“우웅!”
그런데 웬일로 두 성수가 지쳐서 쉬는 게 아닌, 페디가 먼저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특이한 일이다. 무한한 체력을 자랑하는 페디기에 절대 이 광란의 질주를 먼저 멈추지 않았다. 제발 그만 놀자고 자선과 친절이 사정하기 전까지 페디의 위풍당당한 행진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이제 지겨운 건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페디. 저런 짐승들하고 노는 것보다 아빠랑 티티랑 오붓하게 기어다니는 게 더 좋지? 역시 저것들은 우리 페디를 만족시키지 못해. 페디는 그냥 색다른 장난감이 생겨서 흥미가 갔을 뿐이야.
이제 잠깐의 일탈이 끝나고 모든 게 정상화될 시간인 거다. 부자의 단란하고 화목한 사족보행 일대기… 가…?
“어?”
“으응?”
“와.”
나도 자선도 친절도 멍하니 눈앞의 광경을 바라봤다.
“빠우!”
섰다.
페디가 섰다.
‘꿈인가?’
순간 눈이 전달한 정보를 머리가 받아들이지 못했다. 보자기에서 뽈뽈뽈 벗어난 페디는 혼자 끙끙거리더니 두 발로 섰다. 조금 휘청거리면서도 자기 힘으로, 오직 두 발로 티티에게 다가갔다.
– 멍?
헥헥거리며 숨을 고르던 티티마저 이 난데없는 기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나 그런 티티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페디는 엎드려있던 티티의 등에 올라탔다. 마치 말에 올라탄 장군처럼.
“띠이~ 띠!”
‘뭣.’
심지어 어눌한 발음으로 티티의 이름을 말했다.
믿을 수 없다. 고작 하루 사이에 걷는 것과 말하는 걸 동시에 했다고? 우리 페디는 천재인가?
‘왜 하필 티티를.’
그러나 페디의 역사적인 첫 언어가 티티라는 사실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티티도 소중한 우리의 가족인 건 맞지만, 이 아빠랑 엄마를 내버려 두고 왜.
내가 페디에게 아빠라고 불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이족보행 동물의 존엄을 포기하며 네 발로 돌아다니고, 아들을 짐승 두 마리에게 뺏긴 광경도 피눈물을 흘리며 지켜봤는데.
눈물이 나올 것 같다. 황태녀에게 아빠라는 말을 듣지 못했던 황제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주인님. 혹시 웁니까?”
“닥쳐.”
눈치 없이 입을 여는 자선에게 핀잔을 주고 페디와 티티를 바라봤다.
페디를 등에 태운 채 조심스레 일어나는 티티. 시야가 높아져서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페디.
‘…뭐 어때.’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광경이라 픽 웃음을 흘렸다. 조금 서운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페디가 처음으로 걷는 것을, 처음으로 단어를 말하는 것을 목격했다. 지금은 티티지만 언젠가는 아빠라고 말할 거다.
그렇다면 참고 기다릴 수 있다. 언제 페디가 아빠를 불러줄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
“안 떨어지게 옆에서 받쳐줘.”
“옙.”
“옆에 붙으면 되는 거죠?”
내 지시에 자선과 친절이 쪼르륵 티티 옆에 달라붙어 페디가 떨어질만한 공간을 차단했다.
애석하게도 티티보다 작은 녀석들이기에 완벽하게 차단하지는 못했으나, 만약 페디가 떨어진다면 자신들의 몸을 에어백 삼아 다치는 걸 막을 것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아부우!”
그렇게 티티의 등에 올라타고 두 성수까지 양옆에 끼게 되자 페디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래도 앞으로는 티티가 페디를 태우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매트라도 깔아둬야겠어.’
혹시 모를 낙마─ 아니, 낙견 사태에 대비해서 아주 푹신한 걸로 깔아두자. 물론 하루 만에 까는 건 무리니 일단 페디가 자주 돌아다니는 곳 위주로 까는 게 좋겠지.
“띠이- 띠!”
– 왈!
그리고 페디가 다시 티티의 이름을 부르자 티티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저택을 돌아다녔다.
페디의 첫 번째 생일을 사흘 앞둔 시점의 일이었다.
내 아이들이 첫 생일을 맞이한다면 꼭 해보고 싶었던 게 있었다.
“주인님. 말씀하셨던 물건입니다.”
“어, 수고 많았어.”
집사가 건넨 상자를 받으며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아이의 첫 생일이라면 꼭 진행하는 행사. 이 세계에는 없지만, 다른 세계에는 존재하는 나만이 아는 행사.
‘있을 건 다 있네.’
상자를 열자 집사의 말처럼 내가 부탁했던 물건들이 전부 담겨있었다.
작은 목검, 촉이 뭉툭한 깃펜, 부드러운 비단실, 삼키기 어려운 사이즈로 만든 주화까지.
‘돌잡이 물건.’
그래, 돌잡이 물건이다. 우리 페디의 앞날을 축복할 물건들이다.
그렇기에 흐뭇한 심정으로 상자에 담긴 돌잡이 물건을 하나하나 매만졌다. 우리 페디라면 문무를 겸비하고, 건강하게 장수하며, 내가 물려준 재산으로 편하게 살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도 목검을 잡으면 제국 제일 검으로 끝날 가능성이 대륙 제일 검으로, 실을 잡으면 100살까지 살 것을 120살까지 살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이 물건들을 준비했다.
‘전부 잡으면 어쩌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돌잡이 물건들을 전부 잡으면 모든 가능성이 개화하는 건가? 그러면 세상이 페디를 가만히 두지 않을 텐데.
너무 아들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건 안다. 돌잡이가 미신이나 놀이에 불과하다는 것도 당연히 알고 있다. 솔직히 이 세계에 정착한 주제에 예전 세계의 문화를 가져오는 것도 조금 부끄럽다. 뭔가 ‘우오옷, 이세계 문화 굉장해애애앳!’ 루트를 밟는 기분이니까.
하지만 고아였던 내가 누리지 못한 건 우리 아이들이 누려봤으면 좋겠다. 내 동경 속 존재인 돌잡이를 내 아이들의 손으로 이루고 싶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욕심을 냈다. 나를 위해, 아이들을 위해.
‘다른 애들 때도 이걸로 쓰자.’
뚜껑을 덮으며 그렇게 다짐했다. 이왕 준비한 거 일회용으로 끝내는 게 아닌 가문의 보물처럼 쓰자고.
이 물건들은 페디부터 시작하여 세쌍둥이, 프리드리히, 바다를 거쳐 미래의 막내까지 이어질 거다.마치 부인들이 계승 중인 부케처럼.
“그런데 주인님.”
“응?”
“마님들께서 그건 어디에 쓰는 물건이냐고 궁금해하셨습니다.”
그 말에 다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물건이라고 합법적으로 자랑할 수 있다.
방문판매원이 된 기분으로 돌잡이 물건을 부인들에게 설명했다.
남편이 듣도 보도 못한 문화를 소개하는 기괴한 상황이지만, 다행히 부인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재밌겠네요. 잡는 물건에 따라 그 가호를 받는다니.”
당장 페디의 친모인 마르도 ‘첫 생일에 잡은 물건으로 그 아이의 가능성을 점지한다.’ 라는 말에 흥미를 보일 만큼.
“그런데 꼭 하나만 잡아야 하나요?”
“프흣.”
미미한 탐욕이 담긴 질문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부부 아니랄까 봐 마르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나도 페디가 돌잡이 물건을 전부 쓸어 담는 생각을 했는데, 마르도 마찬가지구나.
“페디의 재능 중에 가장 뛰어난 걸 고르는 거잖아. 여러 개를 잡으면 의미가 없지.”
“우리 페디라면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전부 뛰어날 텐데…”
아쉽다는 듯 중얼거리는 마르의 모습을 보니 흡족스러웠다. 어디서 이상한 미신을 가져왔다고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렇게 협조적인 반응을 보이니 감사할 따름이다.
“네 개밖에 없는 건 조금 아쉽네요. 몇 개 더 있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래도 문과 무, 금전과 건강이라면 있을 건 다 있는 거 아니니?”
그 와중에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페디를 보던 리제와 트릭시가 수군거렸다.
리제의 말도 일리는 있다. 나도 건너 건너 주워들은 거지만, 판사봉이나 청진기를 올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 단순히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니라 어느 루트를 밟느냐 세부 전공도 살피는 거지.
하지만 그런 물건은 올리고 싶지 않다. 판사봉이나 청진기 같은 특정 직업을 상징하는 건 올릴 생각이 없다.
‘우리 페디는 돈 많은 백수로 지낼 거야.’
나처럼 일에 치이는 공무원이 아니라.
“자식복… 같은 것도 물건으로 알 수 있을까요?”
그러던 중, 린의 말에 부인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본능적으로 왜 나를 보냐는 말을 할 뻔했지만 참았다. 내가 결혼 2년 만에 2남 3녀를 둔 괴물이라는 걸 떠올렸으니까.
***
사랑하는 우리 페디. 내 자랑스러운 첫아이이자 장남.
그리고 훗날 칼의 뒤를 이어 크라시우스 가문을 이끌어 갈 소가주.
“어엄~ 마!”
“네, 엄마 여기 있어요.”
어느덧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고, 엄마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자란 귀여운 아들.
그런 페디의 첫 번째 생일이 되었다. 소중한 보물이 우리 곁으로 찾아온 지 1년이나 지났다.
“어마!”
뒤뚱뒤뚱 걸어와 내 품에 폭 안기는 페디를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칼은 티티랑 엄마는 잘만 말하면서 왜 아빠는 안 불러주냐고 서운해했지만, 똑똑한 페디니 금방 아빠도 말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마르.”
이윽고 연회에 참석해 준 손님들과 인사를 나눈 칼이 다가왔다.
딱 칼의 생각을 하자마자 칼이 오다니. 역시 우리는 생각과 마음이 통하는 부부다.
“이제 자리에 앉히자. 손님들이 주인공 얼굴도 못 보고 있어.”
“후후, 그래야죠. 귀한 걸음을 해주신 분들이 아무것도 못 보고 돌아가게 할 수는 없죠.”
이리저리 뽈뽈뽈 돌아다니는 페디기에 손님 대다수가 페디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페디를 위한 연회인데 페디가 얼굴을 비추지 않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칼.”
“응?”
“우리 페디… 이왕이면 실을 잡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똑똑한 것도, 무인으로서 이름을 날리는 것도, 부유하게 사는 것도 필요 없다. 부모라면 자식이 건강한 상태로 오래 사는 것을 제일 바라는 법이니.
“나도 그래.”
그러자 칼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페디의 볼을 쓰다듬었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만 하면 다른 건 내가 다 줄 수 있으니까.”
자신감이 넘치는 말이라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페디는 나와 칼의 소망대로 실을 잡지 않았다.
“우리 페디, 마음에 드는 걸로 잡을래?”
“우우?”
그저 칼의 품에 안긴 채, 멀뚱히 물건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돌발 상황이지만 아기가 어른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건 당연한 일. 나도 칼도 다른 손님들도 페디의 갸웃거림에 미소를 지었다.
“자, 가장 좋아하는 걸로.”
“죠─ 아─?”
“그래! 좋아하는 거!”
페디의 어눌한 발음에 칼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은근슬쩍 실 쪽으로 다가갔다.
조금 추해요, 칼. 페디가 좋아하는 걸 정해주는 게 어디 있어요.
“압빠!”
“…응?”
허나 추한 칼은 오래 볼 필요가 없었다.
동그란 눈을 깜빡이던 페디가 칼의 소매를 잡더니, 활짝 웃으며 아빠라고 말해줬으니까.
“아- 바! 압빠아!”
“어… 어…”
이어지는 아빠 공격에 칼은 멍하니 페디를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압-빠! 죠- 아!”
아.
칼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