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9)
분명 부장은 난데 부장 개그를 직관하는 건 대체 무슨 고문일까 싶다. 뭔가 억울하기까지 하다. 나는 가끔 입이 근질거려도 꾹 참는데, 눈 앞의 신분 깡패는 거리낌없이 이러네.
‘연세가 많으셔서 그런가.’
억울하다가도 마종공의 나이에 생각이 도달하면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그 나이까지 자식은 커녕 결혼도 하지 않은 솔로 라이프를 보내는데, 이런 농담을 하는 걸로 즐겁다면 기꺼이 감수해야지. 그것이 어르신을 상대하는 젊은이의 도리다.
“아가? 무슨 생각하니?”
하지만 마종공을 향한 측은한 감정이 눈에도 나타나버렸는지, 여전히 내 머리를 쓰다듬는 마종공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저도 각하처럼 센스를 갖춰야 부하들이 더 따를 텐데,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런, 아가가 평소에 고생이 많은가 보구나. 아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거야.”
‘그건 싫은데.’
마종공은 ‘너도 나이를 먹으면 나처럼 된다’ 라는 끔찍한 저주의 낙인을 박아버렸다. 드높은 경지에 이른 마법사는 그 발언에도 힘이 담긴다는데, 조금 무서워졌다.
그리고 그런 내 마음과는 별개로 마종공은 내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아가가 말하는 아이를 만난 건 8년 전이란다. 누군가에게 마법을 가르쳐 준 건 그때뿐이었으니.”
“그렇습니까?”
그건 다행스러운 말이다. 마법을 전수한 것이 루이제가 유일하다면 적어도 아무도 모르는 마종공의 제자가 구석구석에 퍼져 있다는 의미는 아니니까. 여럿이라면 문제지만, 하나 정도면 마종공의 변덕이나 취미로 간주할 수 있는 범위다.
황제의 의심 범위도 그런 소소한 사생활까지 닿지는 않는다. 혹여나 황제가 마종공에게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면 어쩌나 했는데. 하긴 공작이나 되는 양반이니 나도 생각할 수 있는 문제 정도는 이미 고려했겠지.
아무튼 8년 전이면 루이제가 9살일 무렵이다.
‘하필 1년 차이네.’
무료분에는 8살 이야기까지 나와 있었다. 유료분부터 기가 막히게 공작과 얽혀서 마법을 배우는 부분이 나오다니, 이게 상술인가.
“정작 그 아이는 마법을 가르쳐주신 분이 각하신 걸 모르더군요. 일생의 행운을 얻은 것을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여행 중이라 소란스러워지는 건 원하지 않았단다.”
마지막 의문도 풀렸다. 정체를 숨긴 것도 그냥 여행 중의 변덕이어서 그랬던 모양. 확실히 휴식을 위한 여행 중에 오히려 시끄러워지는 건 골치 아픈 일이지.
이제 마음이 놓였다. 갑작스레 마종공과 강제 미팅을 하게 된 것은 당혹스러웠지만, 그래도 당사자 입장에서 확실히 진실을 알 수 있었다. 마종공이 이런 일로 거짓말을 하는 성격도 아니니까.
“그 아이는 잘 지내니?”
“아, 예. 건강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느새 내 머리에서 손을 뗀 마종공이 루이제의 근황을 물었다. 아무리 변덕이었다지만 가르친 정이 있는지 궁금하긴 하나 보지.
“처음 봤을 때는 어린 녀석이 세상 우울한 표정이었는데. 다행이구나.”
그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종공이 알려준 진실은 결국 로판 여주가 기연을 얻은 것에 불과한 평범한 스토리였다. 교장과 심각하게 논의한 것에 비하면 허무한 결과. 물론 대형 사건을 수습해야 하는 것보다 별거 아닌 일인 것이 더 편하긴 하다.
무난한 엔딩으로 마종공과의 용건도 끝났으니 이제 아카데미로 돌아가면 될 일이다.
“아가, 한 잔 더 주렴.”
“예, 각하.”
그런데 어르신은 왜 안 돌아가세요.
목 끝까지 치솟는 말을 애써 억누르며 마종공이 내민 찻잔에 조심스레 차를 따랐다.
분명 마종공이 내 머리채를 붙들고 감찰부로 소환한 것은 사생활 침해 때문이었다. 용서도 받았고, 루이제에 대한 일도 다 얘기했으니 이제 더 할 얘기도 없는 상황. 그런데 마종공은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카데미는 지낼만하니?”
순간 할머니가 손주에게 ‘학교는 다닐만하니?’ 라고 묻는 느낌이었지만, 절대 입 밖으로 내면 안되는 말이니 마음 속에만 담아두자.
“예, 지내다 보니 익숙해졌습니다.”
“그렇구나. 아가가 아카데미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재밌던지.”
“하하.”
내 고통이 우리 각하께는 예능이었구나.
“내가 다닐 때는…”
본인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던 마종공은 말 끝을 흐리며 어색하게 찻잔에 입을 댔다. 나도 그 모습에 조용히 시선을 내리 깔았다.
마종공이 본인의 나이 언급을 꺼려하는 것은 비밀이라고 하기도 부끄러운 공공연한 비밀. 본래 엘프는 나이에 무관심하다고 하지만, 마종공은 순수 엘프가 아닌 혼혈이다. 심지어 엘프가 아닌 인간들과 살았으니 가치관도 인간에 가깝지.
아무리 머리로는 자신의 압도적 나이가 당연하다고 생각해도, 인간에 가까운 마음은 격렬한 거부 반응을 보일 것이다. 괜히 학창 시절을 얘기했다가 본인의 나이만 까발리는 흐름으로 갈 것 같아 급히 입을 다물었겠지. 어차피 어지간한 사람들은 마종공의 나이 정도는 다 아는데.
‘100년 전 졸업생이던가.’
하지만 이 역시 절대 입 밖으로 꺼내면 안되는 말이니 마음 속에 담아두도록 했다. 과거 철혈공이 깍듯하게 대했을 때도 언짢은 기색을 보였던 것이 마종공이다. 일개 후계자인 내가 나이를 논하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른다.
“요즘 아카데미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더구나.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을 정도야.”
“교장도 각하께서 오신다면 기뻐할 겁니다.”
“그러니? 교사 자리가 남아있을지 모르겠구나.”
아니, 제발.
훅 치고 나오는 말에 내 눈이 떨리자 마종공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마탑주 일로도 바쁘니 힘들겠지. 우리 아가와 같은 곳에서 지낼 수 있을 기회인데.”
“저도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살며시 미소를 지은 마종공이 찻잔을 내려놓고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배웅을 위해 같이 일어나는 내 팔쪽으로 향하는 시선.
“필요하십니까?”
“아니, 괜찮단다.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소매를 걷으려고 하자 마종공이 손을 저으며 거절했다. 확실히 아카데미 파견 직전에 뽑았으니 아직 남았을 만하다. 빙의 전에도 헌혈 주기가 2달인가 3달 정도였나? 지금 뽑기에는 조금 아슬아슬하네.
“곧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으니 기대하렴.”
“제 피가 가치 있는 것 같아 기쁘군요.”
“그렇게 생각하니 다행이구나. 이따가 마탑에 들리렴. 돌아갈 때도 편하게 가야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 말을 끝으로 마종공은 감찰부를 떠났다. 햇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깨끗한 백발이 바닥에 질질 끌리는 모습은 언제 봐도 인상적이다. 따로 마법을 걸어서 아무리 끌고 다녀도 더러워지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로봇 청소기…’
유독 마종공이 지나간 자리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해지는 걸 보면 확실히 마법 효과가 끝내주는 것 같다. 진짜 살아있는 청소기 같기도 하고.
불경하다면 불경한 생각을 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곧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고 했지.
‘생각보다 빠르네.’
북방에서의 전쟁을 거치며 나도 모르던 내 신체적 특성을 알게 됐다. 질릴 정도로 질긴 명줄과 기가 막힌 회복력. 덕분에 북방에서 목숨을 건진 것이 몇 번인지 모를 정도고, 마종공도 내 괴랄한 몸에 주목했다.
갑자기 공작이나 되는 양반이 감찰부로 찾아와서 실험을 위해 피를 팔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지. 물론 초코파이 2개와 피를 교환한 경험이 있기에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강제도 아닌 정당한 대가를 주고 가져가는데 거부할 이유도 없고.
‘그런데 곧의 기준이 어느 정도지.’
120년 묵은 혼혈 엘프 기준의 곧… 일단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곧과는 많이 다를 것 같다.
마종공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 소리가 들렸다.
“끝났어. 들어와.”
대답과 동시에 간부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딱 다섯 명. 마침 밖에 돌아다니는 녀석 없이 다 모여있었던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마종공 방문 소식에 급하게 소환 당했을 수도 있고.
“괜찮으십니까?”
“어, 문제 없어.”
대표로 묻는 차장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별다른 문제 없이 끝난 대담이었으니까. 공작이 친히 행차한 것치고는 평화로운 결과에 차장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부장님, 저희들 있던 곳이 그리워서 오신 거죠? 역시 솔직하지 못하시다니까.”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는 걸 파악한 1과장이 바로 헛소리를 날렸다. 손을 까딱이자 쪼르르 달려오는 모습이 심히 언짢았다.
“으으으읍──!!”
“업무 문제가 아니라 사적 문제로 만난 거니 걱정하지 마라. 평소처럼 일하면 돼.”
1과장의 입술을 잡아당기며 다른 간부들에게 설명했다. 이번에는 황금공처럼 업무상 오인 사격으로 온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 불찰로 인한 참사였으니. 다시 생각해도 빡치네, 정보부장 개새끼.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마종공 각하께서 직접 오십니까? 마탑 밖에서 뵈기 힘든 분인데.”
2과장의 말에 턱을 매만지다가 입을 열었다. 공작의 사생활 문제니 침묵할까 싶었지만, 나에게 밝혔으니 감찰부가 알아도 무방한 정보라는 의미겠지.
“각하의 고유 마법을 전수받은 귀족이 있었다. 자세히 알아보려고 하니, 각하께서 친히 말씀해주시더군.”
“고유 마법을요? 누군지는 몰라도 팔자 폈군요. 마종공 각하의 제자면 숨만 쉬고 있어도 모셔가려 할 텐데.”
“루이제야.”
2과장이 급히 입술을 깨물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루이제가 내가 담당하는 동아리의 부장이라는 건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 내가 담당하는 영애가 마종공의 제자라는 기적의 확률에 웃음을 터뜨릴지, 감탄을 해야 할지,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지.
“놀라운 일이군요.”
나지막하게 내뱉은 차장의 말이 모두의 심정을 대변했다.
“읍─ 으브읍.”
“아, 그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옆에서 애달픈 신음성이 들렸다. 잠깐만 잡는다는 걸 계속 잡고 있었네.
“바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어차피 오전에는 할 일도 없어. 온 김에 잠시만 쉬다 갈게.”
“알겠습니다.”
감찰부로 소환당하기 싫었던 이유인 마종공 미팅도 끝났다. 혹시 늦을 수도 있다고 교장, 교감, 빌라르에게 전달해뒀다. 게다가 동아리 시간도 멀었고. 잠시 숨 좀 돌렸다가 돌아가도 되겠지. 그동안 고생한 나 자신을 위한 소소한 반차다.
쉬고 있는 사이 통신구가 영롱하게 빛났다.
“아.”
잠깐 돌아온 건데 벌써 소문이 퍼졌나 보다.
그냥 바로 돌아갈 걸,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