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90)
로판 속 공무원 590화(591/945)
황태녀의 돌잡이 사건 이후로 황제의 멘탈은 놀라울 만큼 튼튼해졌다.
“때부! 때부!”
“좋은 아침입니다, 전하. 잘 지내셨습니까?”
“웅!”
오죽하면 아장아장 걸어온 황태녀가 내 품에 폭 안겼음에도 절대 노여워하거나 질투에 찬 시선을 보내지 않을 정도겠나.
“역시 황태녀는 대부를 좋아하는군.”
그저 흐뭇한 시선으로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씰룩이는 입꼬리를 억누르기 위해 애써 손가로 입을 가렸다.
‘망할 놈.’
왜 저러는지 알 것 같아 슬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황태녀가 돌잡이 물건으로 나를 선택했을 당시, 황제는 무엇보다 훌륭한 것을 잡았다며 웃음을 터뜨렸었다.
무려 황제가 기뻐하니 다른 사람들은 어땠겠나. 모두가 앞장서 황태녀 전하께서 현명하시다고, 그 어떤 것보다 찬란한 미래를 잡았다며 박수를 치기 바빴다. 덕분에 나는 목검, 깃펜과 동급인 ‘물건’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실로 서글픈 일이다. 황실의 노비로도 모자라 황태녀의 물건이 되다니. 도대체 내 인권은 어디까지 떨어지는 걸까. 통탄스럽기 그지없다.
“때부! 이고!”
씁쓸한 심정으로 품에 안긴 황태녀의 등을 토닥이자, 꿈틀거리며 빠져나온 황태녀가 주먹을 나한테 내밀었다.
잠깐 당황했다. 이 주먹은 대체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설마 스파링 신청인가?
“전하? 이게 무엇입니까?”
“서언- 물!”
이어지는 말에 안도했다. 스파링 신청이 아니라 선물을 숨긴 거였구나.
‘벌써 선물도 줄 줄 아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막 말을 떼고 걷기 시작한 아기가 대부의 선물도 챙겨주다니. 이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솔직히 정원에서 뛰어놀다가 발견한 꽃이나 풀때기를 뜯어왔을 것 같지만, 대부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그 자그마한 손으로 가져온 거다. 충분히 기쁜 마음으로 받을 수 있지.
“감사히 받겠습니다, 전하.”
“웅! 조은거야!”
일단 미소를 지으며 황태녀의 주먹 아래 손을 대자 황태녀도 빵끗 웃으며 주먹을 풀었다.
‘응?’
이윽고 의외의 물건이 내 손 위로 떨어져 조금 놀랐다.
빨간색 포장지로 감싸진 작은 직사각형 모양의 물건. 제도에서 나름 유명한 브랜드인 초콜릿이다.
“이거! 마시써!”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 황태녀에게 시선을 돌리니, 뿌듯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는 황태녀를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많이 놀랐다. 황태녀가 벌써 초콜릿을 먹을 수 있는 나이라는 것도, 막 단것을 접해서 탐욕에 가득 찼을 황태녀가 자기 초콜릿을 나에게 양보했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다.
세상에. 아기가 자기 간식을 양보하다니. 그것도 단맛의 집약체나 다름없는 초콜릿을 주다니.
“감사합니다. 전하를 생각하며 맛있게 먹도록 하겠습니다.”
“웅!”
내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황태녀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먹지 말고 보존 마법을 걸어서 보관하자. 대부로서 대녀에게 받은 첫 선물을 먹어서 없애버릴 수는 없다.
그리고 황태녀가 초콜릿을 먹을 나이가 됐다는 걸 알았으니, 다음에 올 때는 유명 제과점의 초콜릿이나 사탕 같은 거라도 가져오자. 선물을 받았다면 그에 대한 보답을 하는 것이 도리니.
‘아직 사탕은 무리인가?’
하지만 히히 웃는 황태녀의 입 사이로 아기자기한 이빨이 보여 망설여졌다.저걸로 사탕을 깨물면 치아가 상할 것 같은데.
그래, 사탕은 다음으로 미루자. 아무리 유치라지만 사탕 먹다가 치아가 잘못되면 곤란하다.
“난, 난 아직 선물같은 거 못 받았는데…”
그 와중에 황제의 절망 가득한 중얼거림이 들렸으나 무시했다.
저 새끼는 벌받은 거다. 그러게 누가 사람을 물건 취급하래?
“전하. 이 대부와 산책이라도 하시겠습니까?”
“산책! 죠아!”
양팔을 퍼덕이는 황태녀를 조심스레 안아올렸다.
친부는 거기서 좌절하고 있어. 대부는 대녀랑 놀고 올 거니까.
“혹시 가고 싶은 곳 있으십니까?”
“하부지!”
엇.
“하부지! 집! 친구 마나!”
예상치 못한 대답이라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황태녀가 할아버지라고 부를 사람이면 상황밖에 없고, 상황의 집이면 황궁 구석에 있는 동물농장을 말하는 것일 터. 친구도 아마 거기서 사는 브레멘 음악대를 말하는 걸 거다.
‘어쩌지…’
갈등된다. 거기는 나도 가기 좀 꺼려지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상황이다. 지금은 은퇴하고 아무 존재감 없이 지내고 있다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온 제국과 귀족들을 호령한 괴물의 아지트다. 거길 내 발로 찾아가는 건 살짝 두려운 일이다.
“안대…?”
“까짓것 가보죠.”
“와!”
울상을 짓는 황태녀를 보자마자 걸음을 옮겼다.
손녀를 배송하러 왔다고 하면 상황도 별말은 안 하겠지.
유일한 방패가 사라졌다.
“멍멍이!”
“저, 전하!”
상황의 아지트에 도착한 황태녀는 이 대부를 버려두고 티티의 남매들에게 달려갔다.
배신감을 느끼고 말았다. 내가 이 두려운 곳까지 온 것은 황태녀를 위함인데, 정작 황태녀가 대부를 외면하다니.
“갑자기 손님이 찾아올 줄은 몰랐군.”
망연히 황태녀와 인절미들을 보는 사이, 스르륵 다가온 상황의 목소리에 황급히 엎드렸다.
“상황 폐하 만세. 크라시우스 가문의 가주─”
“됐으니 일어나라. 이미 황관을 내려놓은 노인에게 과한 예를 보일 필요는 없다.”
그 말에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상황이 저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엎드려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무례다.
“그래서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온 건가.”
“대부로서 황태녀 전하와 산책을 즐기려고 했는데, 전하께서 이곳에 오고 싶다 하셨습니다.”
“황태녀가?”
슬쩍 황태녀에게 시선을 돌린 상황은 미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아주,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분명 미소였다. 역시 상황도 손녀 앞에서는 무뚝뚝하지 못하구나.
“그럼 나는 신경 쓰지 말고 황태녀 옆에 있도록. 저 녀석들이 순하기는 하지만, 기운이 넘쳐서 어린 황태녀를 넘어뜨릴 수 있다.”
“예, 폐하. 주의하겠습니다.”
나도 티티를 키우는 입장이라 저 인절미들이 파워 넘친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인절미들 입장에서는 놀자고 툭 건드는 것조차 아이들에게는 덤프트럭에 치이는 수준이라는 것도 안다.
그렇기에 상황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황태녀에게 달려갔다. 아직은 인절미들이 작은 황태녀 주변을 맴돌며 눈치를 보고 있지만, 흥이 폭발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 멍? 멍멍!
– 왈왈!
‘뭐여.’
그리고 내가 다가가자 황태녀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인절미들의 관심이 쏠렸다. 아마 내 몸에 밴 티티의 냄새를 기억하는 모양이다.
“때부! 나 올려져!”
“예?”
그 와중에 인절미들과 함께 시선을 돌린 황태녀가 나에게 손을 뻗으며 외쳤다.
올려달라니. 어디로?
“멍멍이! 멍멍이 위에!”
– 멍?
“안꼬시퍼!”
명확하고 확실한 요구에 인절미 한 마리가 눈을 깜빡이더니 슬쩍 몸을 낮췄다.
“와!”
“와.”
서로 다른 의미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황태녀는 인절미가 자기 말을 들어줬다는 것에, 나는 티티의 남매들인 저것들도 보통 지능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랐다.
“멍멍이!”
아무튼 황태녀는 몸을 낮춘 인절미 등에 망설임 없이 올라탔다.
아니, 아이들은 동물을 보면 타고 싶어하는 욕망이라도 있나? 페디도 그러더니 황태녀도 이러네.
– 멍멍!
– 왈! 왈왈!
갑작스러운 탑승이었지만 인절미들은 황태녀의 탑승을 오히려 반겼다. 황태녀가 자기들을 좋아하고 같이 놀고 싶어한다는 걸 깨달은 것처럼.
‘대체 얘네 부모는 누구지.’
볼 때마다 신기하다. 애완견들이 사랑을 무럭무럭 받으면 총명하게 자라는 편이나, 얘네랑 티티는 그걸 감안해도 놀라울 정도다.
혹시 조상 중에 비범한 피가 섞인 건가? 티티도 자식을 보게 되면 이런 애들이 태어날까?
“멍멍이! 가자!”
– 멍!
“저, 전하! 혼자 가시면 위험합니다!”
기습 출발하는 황태녀의 등을 받치며 황궁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낙견 사고가 터지면 나도 죽고 제국도 죽는다…!
***
펜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아직도 사랑하는 우리 황태녀의 밝은 미소가, 샤를로테가 장관에게 줬던 초콜릿이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좋아하던 걸…’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샤를로테가 다른 것도 아닌 초콜릿을 양보했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샤를로테에게 처음 초콜릿을 선물한 것이 고작 몇 주 전의 일이다. 처음 보는 음식에 호기심을 가졌던 샤를로테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훤하고, 생전 처음 맛보는 달콤함에 눈을 동그랗게 떴던 모습은 내 가슴에 남아있다.
그날 이후로 초콜릿을 더 달라 떼를 썼지만 황후가 엄격히 하루 2개로 제한하여 야금야금 갉아먹던 샤를로테다.
그런 샤를로테가 무려 1개를 통째로 장관에게 줬다. 나에게도 주지 않았던 걸 장관에게 선물로 줬다.
“크으으으윽…!”
심장이 찢어지는 기분이다. 하나뿐인 소중한 딸을 빼앗긴 것 같다.
방심했다. 장관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 취급당했을 때는 웃어넘겼는데,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라 자신이 아끼는 걸 준다는 발상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도… 나도 우리 딸의 물건이 될 수 있는데…
‘장관이 아니라 내가 안고 있어야 했어.’
장관은 돌잡이라고 부르던 행사. 그 행사를 처음 고안한 것이 장관이라 샤를로테를 장관에게 맡겼었다. 고안자이자 대부라면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릇된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게 아니라 내가 안아야 했다. 그랬다면 샤를로테도 장관이 아닌 나를 잡았을 거다.
‘…이미 지난 일이지.’
한참을 끙끙거리다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의미겠나. 내 속만 타들어갈 뿐이다.
‘빌어먹을.’
씁쓸한 심정으로 방치하고 있던 서류를 다시 집었다. 홀로 끙끙거리면 업무가 끝나는 시간만 미뤄지고, 가족 간의 오붓한 저녁 식사 시간이 날아간다.
그런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샤를로테의 초콜릿은 양보해도 식사 시간은 양보할 수 없다.
‘음?’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서류를 집자마자 특이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 차기 성자 주도 연말 예배 지원 및 호위안. ]차기 성자가 제국 영토에서 친히 연말 예배를 할 것이라는 문장이.
나쁜 소식은 아니다. 신실한 귀족들과 백성들은 차기 성자의 모습을 보는 걸로도 기쁠 터인데, 차기 성자가 주도하는 예배까지 들을 수 있다면 일생의 영광으로 여길 거다.
‘리시우코 추기경을 보내면 되겠지.’
그리고 신성교국 고위 인사가 제국 내에서 예배를 진행한다면 제국도 그만한 성의를 보이는 것이 도리. 관례대로 제국 내 사제 중 최고위 인사인 리시우코 추기경을 보내면…
‘잠깐만.’
서명을 하려던 손이 멈췄다.
‘리시우코 추기경이 최고위 인사 맞나?’
혼란스럽다. 단순히 ‘사제’ 중 최고위는 리시우코 추기경이 맞으나, ‘모든 신앙인’으로 범위를 넓히면 살아있는 복자인 장관과 장관 부인이 있다.
그러면 장관 부부를 보내야 하는 건가…? 아니, 그렇기에는 장관은 딱히 신실한 편이 아닌데?
‘이런 망할.’
결국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장관 때문에 기존 관례가 무너지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