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92)
로판 속 공무원 592화(593/945)
황태녀가 새 멍멍이를 보고 싶다며 눈을 반짝인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체감상 거의 일주일은 되지 않았나 싶다.
물론 나도 그 애타는 눈빛을 1주나 무시할 생각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황태녀의 요구지 않나. 집에 있는 애완견을 데려오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 티티에게 목줄을 채워 나갈 준비를 한 적도 있었다. 까짓 거 티티랑 제도 산책을 하는 느낌으로 몇 시간만 나갔다 오면 황태녀의 욕구를 채울 수 있으니까.
“압- 빠, 띠- 띠?”
하지만 목줄을 채우기 무섭게 페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티티에게 채워진 목줄을 꾹꾹 잡아당겼다.
실로 곤란한 일이었다. 내가 티티를 납치… 아니, 데려간다는 발상은 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티티가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자세였으니.
그렇기에 목줄이 채워진 채 헥헥거리는 티티, 그 옆에서 눈을 깜빡이는 페디를 보며 몇 번이나 고민했었다. 티티와 외출을 하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인가─ 라는 일생일대의 고민을.
“우리 페디. 아빠랑 티티는 잠깐 나갔다 올게.”
“우우?”
무슨 말이냐는 듯 자연스레 티티의 등에 타는 페디와 그런 페디를 거부하지 않는 티티. 도저히 갈라놓을 수 없는 우애로운 모습에 식은땀도 여러 번 흘리기도 했다.
사실 페디가 걸어 다니기 전에는 티티와 외출을 하는 게 가능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임신 상태인 리제가 티티와 함께 제도를 산책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 않았나. 당시의 페디는 기어다니는 걸로도 벅차서 티티의 행방을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러나 페디가 두 발로 걸어 다니며 티티의 등에 타기 시작한 이후, 저택의 그 누구도 티티를 데리고 나가지 못했다. 자기 힘으로 아장아장 걸어 티티의 등을 점거할 능력이 생긴 페디는 티티가 자기 시야에서 벗어나면 울먹이기 바빴다.
“페디. 잠깐만 티티랑 떨어지─”
“우으으…”
“알았어. 아빠가 미안해.”
비유가 아니라 정말 울먹였다. 티티를 황궁으로 데려가기 위해 등에 올라탄 페디를 바닥에 내려놓았을 때, 페디는 세상이 무너진 표정으로 훌쩍였었지.
애석한 일이다. 티티의 빈자리는 그 누구도 채우지 못했다. 심지어 열하나나 되는 동물 친구들마저 페디의 놀이 상대일 뿐, 페디가 타고 다니는 파트너가 되지는 못했다.
그러니 어쩌겠나. 페디를 울릴 바에는 황태녀의 투정을 감내하는 게 옳다. 최대한 황태녀를 달래며 흥미가 떨어질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라고 생각했다.
“때부, 미워!”
“저, 전하?”
황태녀가 울먹이며 내 가슴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토닥토닥 때리기 전까지는.
머리가 새하얘지는 기분이다. 언제나 해맑은 웃음을 흘리며 황궁을 우다다다 뛰어다니는 황태녀가 눈물까지 보이며 나를 원망한다? 대부로서도, 신하로서도 죄책감을 느낄 일이다.
더욱 미치겠는 건 그런 황태녀를 달래기 위해 티티를 데려오겠다는 확답도 하지 못한다는 거다. 황태녀를 달래면 페디가 울고, 페디가 울지 않게 하려면 황태녀가 운다.
‘이게 육아의 고통인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빼앵 소리치는 황태녀의 등을 다독였다.
티티가 두 마리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고뇌는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그럼 장관의 아들도 데려오면 되지 않나?”
“예?”
황태녀가 대부의 품에서 발버둥쳤다는 소문이 황제의 귀까지 들어갔는지, 나와 독대를 한 황제는 뭐가 문제냐는 듯 덤덤히 말했다.
“연말 예배 때는 짐도 가족과 함께 참석할 생각이네. 장관도 가족과 함께 온다면 황태녀와 장관의 아들이 만날 텐데, 미리 안면을 트는 것도 괜찮겠지.”
“그, 그것은…”
“혹시 장관의 아들이 황태녀에게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까 우려되는 거라면 걱정하지 말게. 아직 어린 아기들끼리 투닥이는 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어.”
웃음을 터뜨리는 황제의 말에 입을 열 수 없었다.
이 분위기에서 ‘내 아들이 네 딸 만났다가 노예 낙인찍히면 책임질 거냐.’ 라는 말을 어떻게 해.
‘과한 걱정이겠지?’
몇 번이나 입을 달싹이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작 태어난 지 2년과 1년이 된 아이들이다. 아무리 상황과 황제의 피를 이은 황태녀라도 벌써부터 노예를 만들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며, 내 아들이라도 노예의 자질을 보이지는 않을 거다. 황태녀와 페디는 친구로 만나는 것이지, 미래의 노예주와 노예로 만나는 게 아니다.
“제 아들이 황태녀 전하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면 그보다 영광스러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하, 장관을 닮았다면 황태녀의 친구를 넘어 일생의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걸세.”
그 말을 듣자마자 황제의 울대를 후려갈길 뻔했다.
어딜 감히 남의 아들의 진로를 마음대로 정해. 파트너가 말이 좋아 파트너지 노예나 다름없다는 건 내가 온몸으로 체험 중이잖아.
‘내 아들은 무조건 돈 많은 백수다.’
황태녀의 직속 노예를 찾을 거면 다른 놈 알아봐라.
***
샤를로테가 동물을 좋아하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상황께서 기르는 동물을 볼 때마다 손을 뻗으며 만지고 싶어했으니, 장관이 기르는 개에게도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설마 장관의 아들도 동물에게 집착할 줄은 몰랐지만 오히려 기꺼운 일이다. 황태녀와 장관의 아들에게 동물 애호라는 공통점이 있다면 더 쉽게 친해지지 않겠나. 장관이 장남을 어느 부서에 보낼지가 관건이나, 장관이 나의 심복인 것처럼 장관의 아들 역시 샤를로테의 충신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설령 별다른 직책 없이 제국의회 의원으로만 지내도 상관없다. 장관의 아들은 무수한 혈연이 얽힌 크라시우스 가문의 차기 가주. 그러한 귀족이 차기 황제와 친밀한 것만으로도 황실의 권위와 안정성은 드높아진다.
그래서 장관이 아들과 함께 입궁하는 걸 허락했었는데,
“장관?”
“예, 폐하.”
“분명 상황 폐하께 받은 개만 데리고 온다고 하지 않았나?”
내 예상보다 많은 손님이 황궁에 입궁하고 말았다.게다가 처음 보는 것도 아닌 익숙한 얼굴들이다.
‘악신.’
장관이 혹한에서 가져온 열하나의 악신들.
지금은 신격을 잃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났다지만, 악신이었던 과거는 변하지 않는 존재들이 장관의 발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송구하옵나이다, 폐하.”
내 의문에 장관은 고개를 숙이며 유감을 표했다.
아니, 송구고 뭐고 왜 데려왔냐고.나는 분명 아들과 개만 데려오라고 했잖아.
‘샤를로테가 보면 식사도 안 하고 놀 텐데.’
동물과 노는 걸 좋아하는 황태녀 앞에 말하는 동물을 보여준다? 그것도 한 손에 들어올 만큼 작은 동물들을?
뻔히 보이는 미래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분명 샤를로테는 식사를 할 생각도 못 하고 동물 친구들과 놀기 바쁠 거다.
그만 놀고 들어오라고 하면 싫다며 도망치고, 식사를 해야 한다고 붙잡으면 아빠가 밉다며 발버둥 칠 거다.
‘안 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미래다. 소중한 딸이 식사를 거르는 것도, 아빠가 밉다는 끔찍한 말을 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저것들은 돌려보내게. 황태녀가 보고 싶은 건 상황께서 하사하신 아이뿐이지 않나.”
내 단호한 명에도 장관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눈치를 봤다.
기이한 일이다. 내가 명을 내리면 묵묵히 따르거나, 그도 아니라면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며 회피하는 장관이다. 이렇게 직설적인 명령을 침묵으로 받아칠 사람이 아니다.
“아우!”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던 중, 장관의 품에 안겨 있던 아기가 불쑥 손을 뻗었다.
정확히는 장관의 발에 모여있는 악신들을 향해서.
‘아.’
그 모습을 보자마자 직감했다.
‘아들에게 진 거구나.’
저 악신들을 데려온 건 장관의 의지가 아닌 아들의 의지라는 걸.
어떻게든 아들의 뜻을 꺾기 위해 노력한 장관은 결국 아들에게 패배했다는 걸.
‘그럼 어쩔 수 없지.’
부모가 어린 자식에게 패하는 건 일상이나 마찬가지. 나도 샤를로테의 고집을 꺾지 못하는 경우가 잦으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리 황제니 제국백이니 찬란한 직함을 가지고 있으면 뭐하나. 자식 앞에서는 사정사정을 해야 겨우 음식을 먹일 수 있고 잠을 재울 수 있는 부모에 불과하거늘.
“잘 놀다 가게. 저것들이 어디 이상한 곳으로 도망치게 두지는 말고.”
“관용에 감사드립니다, 폐하.”
묘하게 진심이 담긴 듯한 감사 인사에 헛웃음을 흘렸다.
나도 장관도 아빠가 되어가는 중이라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
위풍당당히 걷는 티티, 그 위에 올라탄 페디. 그 뒤를 따르는 열하나의 짐승들.
브레멘 음악대 출몰 지역이 되어버린 황궁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라 온갖 시선이 꽂혔다.
‘망할.’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제발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마. 나도 최대한 말렸단 말이야.
“주인.”
“왜.”
“우리는 왜 여기 있는 건가?”
겸손의 말에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이 녀석들도 이번 사태의 피해자다. 주말 아침이라 꿀잠을 자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끌려 나온 것이니 어안이 벙벙하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치인-구! 가치!”
“우, 우리 페디. 쟤들은 집에 있는 걸 더 좋아할─”
“가아- 치!”
분명 티티, 엄마, 아빠, 좋아, 싫어 정도의 단어만 사용할 수 있던 페디가 ‘친구’와 ‘같이’라는 고급 단어까지 활용하며 저 성수들을 끌고 왔다.
조금 흐뭇하기는 했다. 페디 입장에서는 자기 혼자만 아빠, 티티랑 노는 것이 미안해서 동물 친구들도 끌고 나온 것일 테니까. 의도가 선하냐 악하냐를 따지자면 선한 것에 가깝다.
다만 의도와 달리 결과는 선하지 못했다는 게 문제다. 강제 기상을 당한 성수들은 지금도 휘청거리며 걷고 있지 않나.
“주인. 우리가 밤늦게까지 도련님과 놀아주다 잠든다는 걸 고려해 주기를 바란다.”
“…많이 피곤하냐?”
그 말에 겸손은 물론 다른 성수들도 나를 빤히 바라봤다.
알았어. 내가 미안하니까 그렇게 보지 마.
“좀 있으면 졸릴 일도 없을 테니까 걱정 마.”
“믿겠다, 주인. 1시간이라도 더 자면 소원이 없겠어.”
“그러게나 말이야. 사용인들도 주말에는 느긋하게 움직이던데, 우리는 왜 아침부터 이러냐고.”
“나… 자고 일어나면… 밥부터 먹을래…”
내 장담에 성수들은 곧 잘 수 있다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그런 성수들을 보다가 슬며시 티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졸릴 일이 없을 거라 말한 것은 재워준다는 의미가 아니다.곧 황태녀와 만나면 무한한 체력을 자랑하는 2살 아이에게 시달리느라 정신이 강제로 각성할 거라는 말이었다.
“우아아아! 친구! 많아!”
실제로 황태녀는 티티를 보고 한 번, 그 뒤에 있는 성수들을 보고 두 번이나 환호성을 내질렀다.
“주, 주인?”
“주인! 이건 약속과 다르지 않나!”
졸지에 아기에게 날개와 다리를 잡힌 성수들은 절박하게 항의를 했지만,
“내가 뭐라고 약속했는데.”
“야 이 악신보다 흉악한 인간아!”
내가 생각해도 치졸한 책임 회피에 울분을 토했다.
미안하다. 그런데 페디랑 황태녀는 나보다 서열이 높은데 어쩌겠어.
우리 집 식객으로 얹혀사는 거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