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93)
로판 속 공무원 593화(594/945)
역시 사람은 하청이 있어야 편하고, 하청은 많을수록 부담이 분산된다.
“멍멍이! 멍멍이!”
– 왈! 왈왈!
– 멍멍!
티티까지 포함하여 다섯 마리나 되는 골든 리트리버.
“얘네! 말해! 신기해!”
“모, 목은 잡지 마!”
“나… 죽을 것… 같아…”
자다가 끌려 나온 성수 열한 마리.
동물에 환장하는 황태녀의 관심은 곧장 그 녀석들에게 향했고, 무려 열이 넘는 숫자다 보니 황궁을 돌아다닐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한 자리에 서서 방실방실 웃었다.
나에게는 긍정적인 일이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황태녀가 인절미에 올라타 황궁을 질주할 때마다 낙견을 하지는 않을까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가. 오늘은 다행히 정원에서 뒹굴다가 끝날 것 같다.
‘진작 데려올 걸 그랬나?’
가슴 졸일 일이 없는 나, 오랜만에 남매들을 봐서 즐거워하는 티티, 새로운 동물 친구들을 보고 기뻐하는 황태녀, 아침부터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게 된 성수들까지.
모두가 행복한 상황이라 슬쩍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이 녀석들하고 입궁했는데.
“아우?”
그 훈훈한 상황 속에서 티티의 등에 있던 페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웅?”
아직 시야가 낮은 황태녀도 이제야 페디를 발견했는지 똑같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페디를 올려다봤다.
그러고 보니 서로 처음 보는 사이인데 소개도 시켜주지 못했네. 황태녀가 너무 좋아하길래 잠시 잊고 있었다.
“전하. 이 아이는 제 아들인 페르디난트라고 합니다.”
“뻬르- 디… 나뜨?”
“편하게 페디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전하보다 한 살 동생이지요.”
“도옹-생?”
그 말에 황태녀의 눈이 반짝였다.
“동생! 내 동생!”
과하게 기뻐하는 황태녀의 모습에 오히려 내가 움찔했다.
뭐지? 황태녀가 벌써 동생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나? 물론 페디도 걸어 다니다가 세쌍둥이나 프리드리히를 보면 그쪽으로 방향을 꺾는 경우가 많으니, 어린 아기여도 가족이라는 개념은 있는 것 같긴 한데.
“나! 동생! 조아!”
그렇게 말한 황태녀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동생! 선물!”
이번에도 초콜릿이었다.
감동했다. 이 대부에게 초콜릿을 준 것도, 처음 보는 내 아들을 동생이라 여기며 선물을 준 것도 감격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바다! 선물!”
“아우우?”
내가 흐뭇하게 바라보자 황태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초콜릿을 페디에게 건넸다.
훈훈한 광경이지만 조금, 아주 조금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다.
“전하.”
“웅!”
“페디는 초콜릿을 먹지 못합니다.”
그러자 해맑게 웃던 황태녀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말을 들은 사람처럼.
“동생… 초콜릿, 못머거…?”
애석하게도 그렇다. 이제 막 걸어다니기 시작한 페디는 먹는 것도 조심해서 먹어야 하니까. 너무 자극적인 음식은 넉넉하게 내년부터 먹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예, 전하. 그러니 그건 전하께서 드시고─”
“마싯는데. 엄청 마싯는데…”
망연히 중얼거린 황태녀는 조금씩 울먹이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빼앵 울음을 터뜨렸다.
“으에에에엥!”
“저, 전하!?”
“동생… 부쌍해! 이러케 마싯는거, 못머거!”
그러더니 주섬주섬 초콜릿 포장지를 벗겨 자기 입에 쏙 넣었다.
“마싯는데!”
이윽고 더욱 거세게 울며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군더더기 없는 섭취라 잠깐 당황했다. 동생한테 선물을 주지 못해서 슬픈 누나치고는 너무 망설임 없던 거 아닌가?
“주인. 이건 주인이 잘못했다.”
아무튼 황태녀의 통곡에 다소 초췌한 안색의 겸손이 중얼거렸다.
“일단 받은 다음에 주인이 먹든가 했어야지.”
“그건 전하의 정성을 속이는 거잖아.”
“아침부터 우릴 속인 건 괜찮고…?”
원망 가득한 말에 머쓱히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네.
“흐이잉…”
“아.”
“이런.”
그리고 티티 위에서 멀뚱히 황태녀의 오열을 보던 페디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심상치 않은 소리를 냈다.
큰일났다. 아직 어리고 어린 페디가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이 우는 걸 지켜보는 거다. 아무리 듬직한 우리 장남이라도 분위기에 휩쓸려 울기에는 충분하다.
“흐아아아아앙!”
“아이고, 도련님! 진정하세요!”
“우리 도련님 갑자기 왜 이러실까. 도련님 좋아하는 보자기라도 드릴까요?”
“으에에에엥!”
“…일단 황태녀부터 달래야겠는데?”
두 아이의 화목한 울음소리에 슬며시 눈을 감고 말았다.
한날한시에 같이 울다니. 우리 페디랑 황태녀는 좋은 친구가 되겠구나…
***
황제 폐하께서 제국의 모든 일을 처리하는 동안, 황후인 나도 황실의 안주인이자 제국의 국모로서 바삐 움직여야 했다.
특히 지금 같은 연말은 제국 고위 가문의 안주인들과 친분을 다지기 위하여 온갖 연회를 열거나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 황후가 너무 친근하게 느껴지면 곤란하지만, 반대로 하늘 위의 아득한 존재처럼 느껴져도 안 된다. 적절한 거리감과 친밀감의 균형이야말로 원활한 관계 유지의 기반이니까.
오늘도 그 관계 유지를 위하여 제국 남부 고위 가문들과 만남을 가졌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라 반갑기도 했고, 추운 겨울 바람을 피하여 따뜻한 남부에 갈 수 있었으니 즐겁기도 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연회를 마치고 황궁에 복귀하자,
“황태녀가 울었다고?”
“예, 황후 폐하.”
예상치 못한 보고를 듣게 되었다.
업무로 바쁜 폐하, 최근 들어 황궁 밖을 자주 돌아다니는 나. 부모가 나란히 황태녀를 두고 자리를 비우는 상황이라 홀로 남을 황태녀가 걱정되기는 했다. 아무리 시녀들이 있어도 엄마, 아빠를 찾을 수 있는 아이를 남에게 맡기는 건 조금 슬픈 일이니.
하지만 요즘 들어 대부인 감찰성 장관이 이전보다 잦은 빈도로 황궁에 방문하는 중이고, 오늘은 아들과 함께 온다는 말을 들었기에 안심할 수 있었다. 장관이 자기 자식과 함께 대녀를 돌보는 거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지 않겠나.
그런데 그 안심과 믿음이 빗나갔다.
‘무슨 일이지?’
혼란스럽다. 내가 아는 장관은 대녀를 함부로 대하거나 방치할 사람이 아니다. 심지어 황태녀도 장관에게 초콜릿을 줄 만큼 잘 따르고 있다.
“다행히 황태녀께서 눈물을 보이신 건 잠시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웃음을 터뜨리셨습니다.”
‘아.’
이어지는 시녀의 말에 납득했다.그렇다면 황태녀에게 안 좋은 일이 있었다기보다는 황태녀가 갑자기 심통을 부렸다고 보는 게 옳다.
‘고생이 많았겠어.’
난데없이 황태녀의 칭얼거림을 받아줬을 장관을 떠올리며 픽 웃음을 흘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웃었다는 걸 보면 정말 필사적으로 달랬겠지.
“황태녀와 장관은 어디에 있지?”
“지금은 후원에 계십니다.”
그 말에 바로 후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번 울면 주변이 떠나가라 우는 황태녀를 홀로 감당했을 장관을 위로하기 위해, 황궁에 처음 왔을 장관의 아들을 반겨주기 위해.
“어머나.”
그리고 후원에는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멍하니 하늘을 보며 후원에 누워있는 장관. 장관이 양쪽으로 뻗은 팔에 누워 새근새근 잠에 든 황태녀와 장관의 아들. 그 주변을 맴돌며 장관의 얼굴을 핥거나 황태녀의 냄새를 맡는 동물들까지.
“화, 황후 폐하를 뵙습니다.”
“괜찮습니다. 일어나지 않아도 좋아요.”
뒤늦게 나를 발견한 장관이 급히 일어나려고 하길래 고개를 저었다.
지금 장관이 일어나면 저 아기 천사들이 잠에서 깨고 만다. 그건 슬픈 일이지.
“후후, 제가 좋은 시간을 방해한 것 같군요.”
누워있으랬더니 목만 들어 올려 나를 바라보는 장관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러다 장관의 목이 다칠 수도 있으니 황태녀는 내가─
“우으으응…”
“어머.”
내 손이 닿자 황태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돌렸다.
더 건드리면 우리 딸이 깨고 말겠지. 장관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은 이 상태로 둬야겠다.
“…벌써 나란히 잠에 들다니. 황태녀가 좋은 친구를 사귄 것 같군요.”
자연스레 손을 거두며 장관에게 말을 걸었다. 장관의 몸이 봉인당한 건 안타까운 일이나, 두 아이가 사이좋게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흐뭇할 수밖에 없다.
“전하께서 페디를 보고 동생이 생겼다 좋아하셨습니다.”
“황태녀가요?”
“예, 폐하.”
장관의 보고에 더욱 흐뭇해졌다.
그렇구나. 우리 사랑하는 샤를로테, 은근히 동생을 원하고 있었구나.
‘혼자면 쓸쓸할 수밖에 없지.’
나도 오라비 한 명, 동생 한 명을 가졌던 입장이라 남매의 기쁨을 안다. 외동으로 사는 것보다는 함께 투닥이고 웃을 수 있는 남매를 가지는 게 더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 기쁨을 우리 총명한 딸이 벌써부터 깨달았다.
“중요한 정보를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장관. 황태녀가 동생을 원하는 줄 알았다면 진작 노력했을 텐데.”
“소신이 황실의 번영에 일조한 것 같아 영광스러울 따름입니다.”
웃으며 감사 인사를 건네자 장관도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답했다. 아무래도 내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장관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황족을 더 생산하겠다는 말을 이리 가볍게 말할 거라 누가 상상이나 할까.
‘진심이지만.’
폐하께서 퇴근하시면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자. 우리 사랑하는 딸이 동생을 간절히 바란다고. 처음 보는 장관의 아들에게 동생이라 할 정도였다고.
만약 폐하도 장관처럼 농담으로 여긴다면…
‘당분간 침실에서 업무를 보게 만들어야지.’
지금부터 열심히 노력해야 내년 중에 샤를로테의 동생이 태어날 거다.
***
점심을 빵으로 해결하며 업무에 몰두한 덕분에 저녁 식사는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었다.
“…황후?”
“예, 폐하.”
“식탁이 좀 화려하구려.”
다만 식탁에 올라온 음식들이… 다소 화려하고 웅장했다.
장어, 아스파라거스, 전복, 부추, 굴.
대충 봐도 만든 이의 의도가 짙게 보이는 구성이라 식은땀이 흘렀다.
“폐하.”
“말하시오, 황후.”
“샤를로테가 동생을 원한다고 합니다.”
그 말에 무심코 침을 삼키고 말았다.
“확실히 황실의 미래를 생각하면 자식이 셋은 있어야 마음이 놓이지 않겠습니까?”
살포시 미소를 짓는 황후의 모습에 다가올 미래를 직감했다.
해가 뜰 때까지 자지 못할 내 미래를.
‘장관…!’
자리에 앉으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외출을 다녀온 황후가 황태녀에게 동생 얘기를 듣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 동안 황태녀와 놀아준 장관이 황후에게 바람을 불어넣었을 가능성이 높다.
일개 신하가 감히 황실의 일에 관여하다니. 실로 불경스럽기 짝이 없다. 황실의 미래를 걱정할 시간에 본인 가문부터…
‘…크라시우스는 걱정할 필요가 없지.’
이미 자식을 다섯이나 가진 장관의 성실함을 떠올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본인의 자식복이 넘치기에 황제의 자식복도 챙겨주는 신하라. 충신도 이런 충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