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94)
로판 속 공무원 594화(595/945)
고등학교 친구와는 야자 시간에 함께 탈주하며 친해지고, 대학 친구와는 함께 술을 마심으로 가까워지며, 군대 선임과는 담배로 안면을 트기 시작한다. 이는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서로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공통된 행동을 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날한시에 같이 울음을 터뜨린 아기들은 어떨까.
“동-생! 페에-디!”
“누아!”
놀랍게도 페디와 황태녀 또한 펑펑 울음을 터뜨린 날 이후로 친해졌다.
페디가 티티를 타고 등장하면 마찬가지로 인절미 네 마리 중 하나의 등에 올라타 반겨주는 황태녀. 그런 황태녀를 향해 어눌한 발음으로 누나라 말하는 페디.
“뻬디! 이거!”
그리고 황태녀는 오늘도 페디에게 초콜릿을 건넸다.
“전하. 페디는 초콜릿을 먹지 못합니다.”
“히잉… 아직두?”
“예.”
단호한 대답에 황태녀는 시무룩하면서도 망설임 없이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초콜릿 사태 이후로 황태녀는 매일매일 페디에게 초콜릿을 건넸고, 나는 아직 때가 아니라며 거절하고 있다. 황태녀 입장에서 ‘초콜릿을 먹기에는 위험한 나이.’ 라는 개념은 이해하기 힘드니까. 아무래도 계속 건네다 보면 언젠가는 될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인디언 기우제냐고.’
무심코 웃음이 나와버렸다. 아무리 거절당해서 자기 입에 들어간다지만 매일 소중한 초콜릿을 양보할 수 있는 마음씨라니. 가슴 따뜻한 인디언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오늘은 착한 인디언을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전하.”
“웅?”
작은 입을 열심히 오물거리는 황태녀를 향해 작은 상자를 보여줬다.
“페디의 누나인 전하를 위해 이 대부가 준비한 선물입니다.”
“서언- 물?”
성인조차 두근거리게 하는 마성의 단어에 황태녀의 눈이 반짝였다.
흡족스럽다. 고작 상자만 보여줬는데도 이런 반응인데 내용물까지 보여주면 얼마나 기뻐할까.
“짠.”
“우아아아!”
일부러 과장스럽게 상자를 열자 황태녀는 탄성을 내질렀다.
작은 상자 안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10개의 초콜릿. 지금까지 황태녀가 먹은 초콜릿과 달리 알록달록하면서도 다양한 무늬를 자랑하는 화려함.
하루에 제한된 숫자만─ 그것도 같은 것만 먹던 황태녀에게는 신세계나 다름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이, 이거, 내꺼?”
어느새 탐욕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황태녀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예. 전부 전하 겁니다.”
“우아! 때부 채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빵끗 웃는 황태녀의 모습에 나도 흐뭇해졌다. 원래받는 사람의 리액션이 화려하면 주는 사람도 보람이 있는 법이다.
“대신 황후 폐하께는 비밀입니다?”
“웅! 비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황태녀를 보니 황후에게는 철저히 비밀로 할 거란 믿음이 생겼다.
그래, 황태녀가 그동안 작고 소중한 초콜릿을 확보하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했겠나. 그럴 때마다 번번이 황후라는 벽을 넘지 못하여 좌절을 맛보았겠지. 그 처절한 경험 덕에 황태녀는 황후를 속여야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거다.
그래서 황태녀와 비밀을 전제로 한 밀거래를 진행했다. 비밀만 유지된다면 황태녀에게 초콜릿을 준 것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황후만 모르면 뭐라고 할 사람은 없지.’
황태녀의 실질적 육아를 담당하는 건 황후요, 황태녀에게 일일 초콜릿 수량 제한을 건 것도 황후다.
그러니 황후만 모른다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이번 초콜릿 밀거래 사태는 영원히 어둠 속에 잠들어야 한다.
“마싯써!”
어느새 상자에 있던 초콜릿 하나를 입에 넣은 황태녀는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다.
대녀의 웃음을 본 나도, 초콜릿을 많이 먹을 수 있는 황태녀도 행복한 최고의 거래. 실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의 완성이었다.
…라고 생각했다.
“장관. 황태녀에게 초콜릿을 줬다고 들었습니다만.”
“예?”
“황태녀가 시녀장에게 자랑했습니다. 대부가 준 선물이니 엄마한테는 비밀이라고요.”
하루도 지나지 않아 밀거래가 적발되기 전까지는.
순간 헛웃음을 흘릴 뻔했다.일단 황태녀가 나와의 신의를 저버린 건 아니다. 황후에게 비밀로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니, 그 말을 받아들여 엄마 앞에서는 입조심을 했다.
‘진짜 엄마한테만 비밀로 했네.’
딱 엄마 앞에서만 말이다. 시녀장은 엄마가 아니니 말해도 된다 생각한 모양이다.
‘우리 둘만의 비밀… 이라고 해야 했나…’
황후의 온화하면서도 따가운 눈초리에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명령어를 정확히 입력하지 못한 내 잘못이다.
“장관.”
“예, 황후 폐하.”
“황태녀를 귀여워해 주는 건 고마우나, 아직 식탐을 조절할 줄 모르는 황태녀에게 많은 음식을 주는 건 지양해야 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거의 90도 수준으로 허리를 숙이며 반성의 자세를 보였다.
완전 범죄가 실패했다면 진심 사과밖에 답이 없다.
그날 이후로 황태녀와 만날 때는 시녀들의 몸수색을 받아야 했다.
“각하. 죄송하지만 음식은 가지고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그건 내가 먹을 것이네만.”
“토끼 모양의 딸기 초콜릿이 말입니까?”
거짓말을 할 거면 최소한의 성의라도 담으라는 듯한 눈빛에 머쓱히 시선을 돌렸다.
역시 안 통하네. 순수 100% 초콜릿이 아니라 딸기 첨가물이라 좀 봐줄 줄 알았는데.
“다음은 동행한 분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음. 그러게.”
내 허락에 정중히 허리를 숙인 시녀들은 티티의 몸을 툭툭 건드리거나 페디를 안았다 내려놓으며 의례적인 수색을 진행했다. 애초에 평범한 개와 아기 몸에 뭘 숨길 수 있겠어.
다만 의례적 수색은 그 둘에게만 적용되었다.
“부리를 벌려 보십시오.”
“무례하다! 내가 주인과 마님들과 도련님들과 아가씨들과 차기 성자와 황제와 황후와 황태녀 앞에서는 숙일 수밖에 없지만─”
“협조하지 않으시니 직접 확인하겠습니다.”
“그에에에엑!”
페디와 티티보다도 작은 성수들이지만, 애석하게도 저 성수들은 인간과 동일한 지능의 소유자이며 대화도 가능하다. 덩치가 작다고 넘어가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은 동물들이다.
그러니 어쩌겠나. 황태녀의 건강한 식습관을 위해서라도 철저히 확인하는 수밖에.
‘숙이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그 와중에 겸손의 구구절절한 윗사람 브리핑에 안쓰러움을 느꼈다. 사실상 지금까지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숙인 거 아니냐.
“이제… 됐어…? 나, 피곤…”
“혹시 등껍질 안도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나… 그러면 죽어…”
그 옆에서 바들바들 떠는 근면의 모습에 말없이 페디를 품에 안았다.
“압빠?”
“쉿. 잠깐만 조용히 하자.”
“우웅.”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페디의 등을 토닥이며 시녀들에게 유린당하는 성수들을 바라봤다.
“깽! 깨갱!”
“날개, 날개는 민감해애애앳!”
초콜릿 밀거래의 대가가 이리도 무겁구나.
***
오늘도 고아원에서 아이들과 놀아주었다.
아니, 오히려 아이들이 나에게 따스함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순수한 아이들.’
꺄르르 웃으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나는 황혼 교단의 만행 때문에 부모님과 이웃들을 잃은 적이 있다. 모든 것을 잃고 고아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의 나는 이 아이들처럼 밝고 명랑하게 행동할 수 있었나? 겉으로나마 괜찮은 척을 할 수 있었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한때 세상을 원망하며 주를 원망하였다. 어째서 내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가는지 눈물만 흘렸다.
‘이 아이들은 다르구나.’
좋은 인연을 만나고, 신앙의 길을 택하고, 차기 성자가 되고, 황혼 교단에게 복수하는 것에 성공한 나는 그제야 평온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헌데 무엇도 없는 이 아이들은 벌써부터 순수하고 선하게 살아가고 있다.
역시 고아원을 방문하는 건 좋은 선택이었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지금의 나에게 깨달음을 주지 않았나. 그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많은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옷을 줄 수 있지 않았나.
“찾았다!”
“다음은 언니가 술래야!”
“얘들아… 언니 조금만 쉬면 안 될까…?”
그리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는 알렉산드리아나 자매님을 보며 감사함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꼈다.
예정에도 없던 고아원 순례를 지지해 주고, 아무런 불만 없이 나와 함께 아이들을 돌봐주는 자매님. 지금도 지친 몸을 이끌며 술래잡기를 하는 자매님.
“이번에는 내가 술래를 해도 되겠니?”
그런 자매님을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 아이들에게 다가가자, 아이들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어차피 이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자기들을 찾아줄 술래니까.
“그럼 이번에는 하얀 오빠가 술래!”
그 말과 함께 뿔뿔이 흩어지는 아이들을 보다가 초췌해진 알렉산드리아나 자매님을 다독였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자매님은 마지막에 찾을 테니 푹 쉬고 계십시오.”
“아닙니다. 저렇게 좋아하는 아이들을 두고 혼자 쉴 수는 없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자매님의 다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걸 어쩐다. 단순히 쉬라는 설득은 안 통할 것 같은데.
“아, 아니면… 저는 이미 형제님에게 들켰다 치고, 같이 아이들을 찾으시겠습니까?”
“하하, 그거 좋군요.”
다행히 자매님 스스로 괜찮은 타협점을 제시하였기에 고민은 금방 끝났다.
결국 자매님도 술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거지만, 혼자 골골거리며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둘이 의지하며 다니는 게 낫지.
“이러니 아이들과 놀아주는 부부가 된 기분이군요.”
“네, 네?”
무심코 속마음을 말하자 자매님이 이번에도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의 경험상 자매님 앞에서 아이나 부부, 연인과 관련된 말을 하면 화려한 반응이 돌아왔다. 아마 보편적인 혼인 시기를 넘겨버려서 그 단어에 민감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일이다. 자매님은 신앙에 충실하셔서 미처 이성에 관심을 두지 못한 것이지, 결코 능력이 부족하여 미혼인 것이 아니다. 성품과 지성, 능력과 외모. 모든 것이 뛰어난 분 아닌가.
‘당장이라도 혼인하고 아이를 볼 수 있는 분인데.’
능력이 있으나 주를 섬기기 위하여 개인의 욕심을 자제하는 사제. 이 얼마나 멋지고 이상적인 사제란 말인가.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매님의 남편이 될 분은 참으로 복받은 사람일 겁니다.”
그렇기에 자매님을 위로하고 다독이기 위하여 진심 가득한 칭찬을 꺼냈다.
자매님이 자제심을 꺾고 택할 남자라면 완벽한 인물일 테니, 그 남자는 주의 은총을 담고 태어난 사람일 터. 복받은 사람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지 않나.
“과, 과찬이세요. 저처럼 붙임성 없는 사람이랑 만나는 게 뭐 그리 좋은 일이라고.”
내 말에 얼굴이 붉게 물든 자매님이 손사래를 쳤으나 그 반응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씀 마시지요. 저는 자매님과 함께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자 자매님의 손이 우뚝 멈췄다.
과한 칭찬은 독이 된다고 하지만 후회는 없다. 자매님 같은 사제는 어떠한 찬사를 들어도 부족함이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