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
제 6화
아카데미 입성 – 1
아카데미의 중심이자 아카데미의 상징. 과거 아펠스 제국이 모든 건축 기술과 당대 명성을 떨친 예술가들을 동원하여 건설했다고 알려진 아카데미의 본관. 아카데미가 건설되고 수백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 본관은 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을 논할 때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건물이다.
음유시인이 본관을 보고 그 자리에서 노래를 뽑아내고, 화가는 일대의 명화를 그려냈다. 그런 일화가 드물지 않게 나오는 것이 이 본관. 이름이 따로 존재하는 것 같기는 한데 몰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다들 본관이라 부르더만.
나는 그 본관을 아련하게 올려다보았다.
‘여길 4년 전에 왔어야 했는데.’
건축 기술과 예술의 집합체? 대륙에서 손꼽히는 건물이자 여러 예술인들의 뮤즈? 어쩌라는 거냐. 난 본관이 판자집이나 게르였어도 기꺼이 본관에 입장했을 거다. 중요한 건 외면이 아닌 내면인 것을. 본관의 내면에 집중하지 못하고 외면에 홀린 것들이 지금껏 이 본관을 드나들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제어할 수 없는 분노가 느껴진다.
4년 전에 가주가 뭐라고 하든 뒤도 안 돌아보고 아카데미에 입학 해야 했다. 적어도 3년 꽉 채워 재학하고 졸업했다면 졸업 후에 결국 공무원이 되었어도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거다. 장담할 수 있다. 제국 아카데미를 다니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내가 어지간하면 눈물이 안 나오는데 눈물이 다 나오네.”
물론 안 나오지만.
염원하던 장소에 온 것에 대한 묘한 설렘 반, 그게 업무 차원에서 날아온 것에 대한 빡침 반을 가슴에 간직하며 마차에 내리고 땅에 발을 딛자마자 잠시 휘청거렸다. 워, 시바!
바로 균형을 잡자마자 마부를 돌아보았고, 다행히 마부는 말갈기를 정리하느라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다행이다. 20대 초반인 부장이 벌써 제 몸을 못 가눈다는 소식이 재무성을 강타할 뻔했다.
“이 새끼, 지금 보니 왜 이리 말라졌어? 집무실에만 박혀 있더니 근육 다 빠졌네.”
‘진짜였나.’
장관의 말이 떠올라 더듬더듬 다리를 만져본다. 이상하다, 딱히 그런 것 같진 않은데. 집무실에만 처박혀 있어서 그런가? 마차를 오랜만에 타서 몸이 적응을 못 하나? 무엇이 이유든 간에 딱히 좋은 소식은 아니다.
‘우욱, 씹.’
마차에 있을 때는 멀쩡하더니 뒤늦게 멀미가 올라왔다. 이게 그 육지 멀미인가 그건가. 그렇게 화려한 뒷북을 치는 멀미와 사투를 시작할 때 마부가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 고생했다. 조심히 돌아가도록.”
“예. 부장님도 아무쪼록 건강히 지내십시오.”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인 마부가 마부석에 올라타 빠르게 떠났다. 마부의 역할은 딱 운송까지였으니, 용무가 끝났다면 최대한 빨리 자리를 뜨는 것이 좋았다. 설마 마부 하나 가지고 삼국이 발작하지는 않겠지만, 필요 이상으로 오래 머무르면 의심의 눈길을 보낼 테니. 있으면 안될 놈이 있어선 안될 곳에 머무르면 거슬리지. 많이 겪어봐서 알아.
홀연히 떠나가는 마차를 바라보다가 본관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젠 정말로 혼자다. 21살 공무원의 아카데미 감찰관 일대기를 시작해야 할 차례다. 와, 정말 꿈에서도 원한 적 없는 일인 걸…
기운 빠지는 발걸음으로 터덜터덜 본관으로 들어가 교장실로 찾아가려고 하니, 마침 누군가 황급히 뛰쳐나왔다. 오, 마중인가.
아카데미 교직원을 상징하는 푸른 망토를 휘날리며 달려온 남성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미소를 지었다.
“아카데미 교감인 레이몬드라고 합니다. 혹시 이번에 오신다던 감찰관님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아이고, 시간에 맞춰서 마중을 나온다는 게 늦고 말았군요.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아침 회의가 길어져서 이제야 끝났습니다.”
교감이 웃는 얼굴로 악수를 청하기에 악수를 받아주었다.
“원래 회의가 정시에 끝나는 것이 드물죠.”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 분을 기다리게 해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저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정말 방금 도착했다. 마부와 작별 인사하자마자 왔으니 더 일찍 왔어도 본관에 돌아간 시간은 같았겠지. 이왕이면 속 좀 가라앉히게 조금 더 늦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지금 토할 것 같아…
칼이 정말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자 교감도 마음이 놓여 약간은 어색했던 미소가 더 자연스러워졌다. 정기적으로 와서 의례적으로 업무만 보고 사라지는 감찰관도 빈정이 상하면 작정하고 아카데미를 뒤엎을 수 있었다.
심지어 이번에 온 감찰관은 이번 화려한 신입생 라인업에 대비하여 재무성 장관이 직접 보낸 긴급 감찰관. 길어야 1주 보고 떠나는 감찰관이 아닌 못해도 몇 개월 단위는 함께 지내야 하는 인물이었다. 하필 그런 인물을 맞이해야 하는 첫 자리부터 지각했다는 것에 어찌나 가슴이 철렁했던지.
긴장을 조금 푼 교감이 칼에게 질문을 건넸다.
“재무성 장관께서 직접 보내신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성함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름은 전달이 안됐습니까?”
“감찰관은 아카데미에 도착하기 전까지 누구인지 밝히지 않는 게 관례이지 않습니까. 누군지 알면 사전에 접촉해 모의를 할 수 있다면서 말이죠.”
“그렇군요. 감찰관 업무는 처음인지라.”
그 말에 교감이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젊어 보이는 외관이 신경 쓰였는데 감찰관 업무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고 한다. 재무성 장관이 직접 지목한 인물이라고 하니 영 이상한 인물은 아니겠지만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감찰부장 칼 크라시우스입니다.”
“오, 이름 높은 부장님을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거 장관께서 각별히 신경 써주셨군요.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자연스레 넘기려던 교감이었지만 눈가가 떨리는 등 동요한 기색은 숨길 수 없었다. 미친 노인이 아카데미에 괴물을 풀었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자 교감은 급격히 말이 없어지고 은근히 걸음을 빠르게 하여 움직였다.
감찰부장 칼 크라시우스. 평생 교육자의 길에 몰두하여 교감의 자리까지 올라 아카데미에만 지내는 그도 수도 없이 들어본 이름이었다. 하지만 결코 직접 보고 싶은 인물은 아니었다. 제국의 녹을 먹는 자가 난데없이 감찰부장을 만났다는 것은 높은 확률로 인생에 손꼽히는 참사가 일어난다는 뜻이니.
자신을 조지러 온 것이 아님을 알아도 조금씩 식은땀을 흘리던 교감은 교장실에 도착하자 마치 천국의 문을 발견한 열성 신도처럼 경건히 문을 두드렸다.
“교장님. 감찰관님을 모셔왔습니다.”
“들어오세요.”
그 말에 교감이 냉큼 문을 열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감찰관님을 모셔서 영광이었습니다.”
“저도 아카데미의 대표 지성을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어색하게 웃은 교감이 칼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자 빠르게 교감실로 대피했다. 앞으로 자주 만날 사이라지만, 오늘은 아무 각오도 하지 않은 상태에 만나서 정신적 충격이 컸다.
하얗게 센 머리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현자의 모습을 그대로 옮긴 듯한 노인, 아카데미의 교장은 교장실로 들어오는 한 청년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감찰부장이 왔나.’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청년. 감찰부의 상징인 검은 제복까지 입으며 완전히 흑색인간이다.
“오랜만입니다, 감찰부장. 2년 만인가요?”
빙그레 웃으며 건네는 교장의 인사에 감찰부장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장관 각하 취임식 때 뵜으니 그 정도 지났군요. 그동안 건강하셨습니까, 교장.”
“젊은 친구들이 열심히 하니 이 늙은이는 나설 일도 없더군요. 그래서 건강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다행입니다.”
자연스레 자리에 앉은 감찰부장이 말없이 교장을 응시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눈동자가 자신에게 향하자 교장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눈 앞의 감찰부장은 이번 아카데미가 당한 신입생 참사를 위해 재무성 장관이 직접 보낸 인물이지만, 그 직책을 제외하더라도 교장보다 우위의 인물이었다.
아카데미 교장도 재무성 소속 부장인 감찰부장처럼 교육성 소속 부장의 대우를 받지만, 의전서열 상으로는 감찰부장이 교장의 위에 섰다.
그때 교장의 비서가 교장과 감찰부장 앞에 차를 내려놓으며 물러났다. 있는지도 몰랐던 조용한 움직임. 평소 괄괄한 성격의 비서도 본능적으로 위축되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저러고도 나이가 작년 졸업생 정도라니.’
실소가 절로 나올 정도다. 작년 졸업생이라고 해도 아카데미를 뽈뽈 돌아다니며 웃고 떠들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보이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아이들과 동갑이란다. 인지부조화가 올 정도다.
“유벤 연합왕국에서 들여온 차입니다. 향이 독특하기로 유명하죠. 감찰부장의 취향에도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비서가 차를 내놓았으니 분위기를 환기하기에는 딱이다. 교장의 권유에 슬쩍 차를 내려보던 감찰부장은 딱 한 모금 만을 마시더니 도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교장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아카데미가 겪는 곤란함에 대해서는 듣고 왔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국경마저 넘어 아카데미에 모이는 것은 환영할 일입니다. 곤란하지는 않지만… 저희가 그 열의 넘치는 학생들을 실망시키지 않을까 우려스럽군요.”
“그렇습니까?”
까딱, 고개를 끄덕인 감찰부장이 침묵을 이어갔다. 자신은 할 얘기가 없으니, 그쪽에서 알아서 얘기하라는 듯한 모습. 그렇다면 그에 어울려주는 수밖에. 아쉬운 것은 어디까지나 아카데미지, 그가 아니었다.
“감찰부장이 아카데미에 오셔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귀중한 학생들이 모인 것에 비해 경비 인력이 이전보다 줄어 어찌나 불안하던지. 하지만 이제 마음이 놓이는군요.”
“과찬이십니다.”
“과찬이라니요. 감찰부장의 위명은 누구나 알지 않습니까? 반년 전에 네 백작가, 1년 전에 애실론 후작가를 징벌한 것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듣는 당사자가 오히려 부끄럽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공치사에도 감찰부장은 관심이 없다는 듯 시선을 내리깔아 찻잔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교장은 멈추지 않았다. 감찰부장의 행적을 나열하며 ‘그렇기에 그 능력을 아카데미의 질서를 위해 사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로 연계할 생각이었으니.
“특히 2년 전 북방에서도…”
그 말에 찻잔을 보던 감찰부장의 시선이 교장에게 향했다.
‘이런.’
낭패다. 최대한 띄어주기 위해 기억나는 것들을 말하다보니 언급을 피해야 하는 것도 언급해버렸다.
당황한 듯 입을 다문 교장을 바라보던 감찰부장은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눈은 웃고 있지 않기에 누가 봐도 억지로 웃는 것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감찰부장. 늙어서 그런지 가끔 이러는군요.”
“실수야 누구나 할 수 있지요. 심려치 마십시오.”
실언이라는 건 부정하지 않았다. 그에 교장이 씁쓸히 웃었고 감찰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국을 위한 임무에 소홀할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 교장께서 염려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고마운 말입니다.”
“그럼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머무실 곳은 따로 전해드리겠습니다.”
감찰부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장 몸을 돌려 교장실 밖으로 나섰다. 그 모습을 보던 교장은 감찰부장이 나가는 걸 확인하고서야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나도 늙긴 늙었군. 이런 실수를 하다니.”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푸념하는 교장을 향해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실수라면… 북방 말씀이세요?”
비서도 눈과 귀가 있기에 감찰부장이 어떤 말에 반응했는지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왜 반응했는지는 모른다. 백작가니, 후작가니 하는 말에는 관심도 없던 그가 왜 북방에 반응하는 거지?
비서의 눈에 깃든 의문에 교장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 말에 대해서는 잊게. 찾아보면 알 수 있겠지만, 찾지 않는 걸 추천하지.”
“아, 예…”
“그래. 그래야지. 본인이 밝히는 걸 꺼리는데 캐내는 건 도의가 아니야.”
교장의 그 말은 비서에게 하는 충고 같기도, 스스로 되새기는 다짐 같기도 했다.
북방. 4년 전 유목민의 대대적 발호로 2년 동안 대토벌 전쟁이 이어진 땅. 그리고 감찰부장은 그 중심에 있던 인물 중 하나였다.
‘어우 씨, 진짜 죽을 것 같네.’
나는 교장실을 급하게 나와 화장실을 찾고 있었다. 마차에 내릴 때부터 조짐이 이상하던 몸은 교감과 대화할 때 위기에 도달했고, 교장실에 들어갈 즈음에는 절정에 근접했다. 까딱 잘못하면 바로 결말에 돌입할 것 같아 속을 진정시키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래서 교장이 뭐라고 했는지도 기억도 잘 안 난다. 북방이라는 단어에 본능적으로 반응해서 그제야 한 번 교장에게 집중했지.
‘망할 노인네가 쓸데없는 말을.’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언급이 꺼려지는 말이지만, 그래도 영원히 숨길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숨길 일도 아니었고. 그래서 정당하게 자리를 떠날 명분으로 사용했다. 당황했을 교장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도 당황했으니 대충 무승부로 치자고.
그래서 화장실 어딨는데. 왜 이리 넓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멀리서 보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깡패로 보이나,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위에서 쪼이고 아래에게 치이는 가련한 중간관리자에 불과하다.’ – 프롤로그 中
허구한 날 장관에게 쪼인트 까이는 칼을 멀리서 보면 대충 이런 이미지입니다. 속이 안 좋아서 입 다물고 있는 것도 직책과 위명으로 커버가 가능합니다.
나름 각 성 장관들을 제외하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관료인데, 하필 담당일진이 장관 서열 2위라.
이번 화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