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01)
로판 속 공무원 601화(602/945)
신부 대기실에 조용히 앉아 있으니 몸이 쑤시고 지루했다. 차라리 결혼식장 앞에 가서 장관님이랑 같이 하객들을 맞이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네가 가면 무조건 사고 터질 테니까 얌전히 있어.”
“힝…”
어머니의 굳건한 봉쇄 때문에 대기실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정말 너무하다. 내가 죄인도 아니고,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부가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해? 내가 이상한 걸 하겠다는 것도 아니잖아. 주인공이 손님들을 맞이하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부인. 에리가 다소 활발하기는 하나 사리분별은 잘 하는 아이요.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소?”
아버지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명랑하고, 조금 더 활기차기는 하지만 지능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내가 빛나야 할 결혼식장에서 사고를 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아.
“당신은 아직도 에리를 믿어요?”
허나 어머니는 여전히 단호한 기색을 보였다.
“절대, 절대 여기서 나가게 하면 안 돼요. 조금이라도 결혼식이 틀어질 가능성을 허락해서도 안 되고요. 계속 여기 있다가 결혼식만 하고, 빠르게 사위랑 나가게 할 거예요.”
언뜻 광기마저 보이는 어머니의 눈빛에 나도, 아버지도, 다른 가족들도 움찔 몸을 떨었다.
“저도 어머니 생각에 동의합니다.”
“오빠?”
이윽고 침묵을 지키던 오빠마저 어머니의 손을 들었다.
“그럴 일은 없을 거라 믿습니다만, 만약 이번 결혼식 중에 작은 사고라도 터져서 무산되면 다음이 오겠습니까? 조금만 조심해서 재앙을 피할 수 있다면 조심하는 게 맞습니다.”
“이 녀석아. 그건 너무 과한 걱정이잖냐. 결혼식이 당일에 어그러질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후작 영애인 에리가 서른 직전에야 결혼할 확률은 높았고요?”
그러자 아버지도 입을 다물고 마셨다.
안 돼, 아버지. 그러지 마. 제발 날 더 변호해 줘.
“우리 에리, 화장하고 드레스 입느라 많이 힘들었겠지. 흐트러지면 다시 정돈해야 하니까 얌전히 있으려무나.”
화장과 드레스라는 핑계를 내세웠지만 알 수 있다. 아버지도 어머니와 오빠의 말에 홀려 나에 대한 신뢰를 거두었다는걸.
원통하다. 사랑과 축하, 눈물의 배웅을 받아야 할 신부가 이런 대우를 받아? 이거 학대야, 학대!
‘라고 하면 한 대 맞겠지?’
그래도 그 불만을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어머니의 눈에서 광기와 함께 기쁨을 봤으니까. 내가 언제 결혼하나, 평생 혼자 살다가 가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하던 어머니가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으니까.
다른 남매들이 전부 결혼할 때 나 홀로 연인조차 만들지 않아 걱정이 많던 어머니다. 내가 악명 높은 감찰부에 들어가자 뒷목을 잡고 휘청거렸던 어머니다. 그런 어머니조차 어느 순간 나에게 짝을 만나라는 말 대신 건강하게 살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마침내 그 애물단지 같던 딸이 짝을─ 그것도 부인이 조금 많은 걸 빼면 완벽한 신랑감을 물어왔다. 기뻐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결혼식 끝날 때까지 조용히 있을게요.”
“그래. 잘 생각했다. 신혼을 즐겨야 하는데 결혼식에 힘을 쏟으면 피곤하기만 하지.”
내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어머니도 급격히 온화한 얼굴로 내 어깨를 다독였다.
이제 말을 번복하고 ‘진짜 나가면 안 돼?’ 라는 말을 하면 내 허리가 접혀서는 안 될 방향으로 접힐 거다. 그것만큼은 피해야지.
“에리.”
그렇게 가족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선배가 시녀들과 함께 다가왔다.
“황후 폐하를 뵙습니다.”
“엎드리지 마세요. 지금은 황후가 아닌 사랑하는 후배의 친구로 온 겁니다.”
그 말에 반쯤 엎드린 가족들이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선배는 황제 폐하와 결혼하기 전부터 마살로 가문과 연이 있었다. 아카데미가 방학에 돌입하면 우리 영지에 놀러 오기도 했으니, 서로 연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었다.
덕분에 다른 귀족들과 달리 우리 가족들은 선배를 다소 친밀하게 대할 수 있었다. 물론 선을 넘으면 황가와 공작가의 분노를 동시에 받기에 막 나가지는 않지만. 우리는 애실론처럼 될 생각이 없어.
“친구의 결혼을 기념하여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나긋나긋한 존대와 함께 황후가 친히 들고 있던 상자가 어머니의 손으로 옮겨졌다.
“이미 황후 폐하의 배려로 평생 갚지 못할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이 귀한 것까지 받겠습니까. 부디 거두어주십시오.”
황후의 손을 민망하게 할 수 없으니 바로 받았지만, 어머니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상자를 내밀었다.
그런데 저게 뭔 줄 알고 귀한 거라고 하는 거지? 궁금한데 내용물만 확인하면 안 되나?
“어머니가 안 받을 거면 제가 받─”
“에리!”
“으엑!”
어머니에게 붙잡힌 볼이 치즈처럼 늘어났다.
화장! 화장 망가져어어어엇!
내 얼굴을 보자마자 장관님이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기실에서 무슨 일 있었어?”
그 말에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완벽히 화장을 고친 상태라 볼이 조금 빨개진 건 잘 안 보일 텐데, 장관님은 부인의 사소한 변화도 바로 알아차렸다.
“나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요. 힘들다 진짜.”
“말하는 거 보니까 아직 괜찮나 보네.”
조금 서운했다. 괜찮은 건 맞지만 너무 무심한 거 아냐? 여기서는 누가 우리 아내를 힘들게 했냐고 다독일 차례인데?
‘연하라 그런지 센스가 부족해.’
부인만 많으면 뭐해. 신랑이 살아온 세월 자체가 나보다 짧고, 신랑의 다른 부인들은 전부 신랑보다 연하잖아. 그래서 연상을 대하는 센스가 너무 없어.
트릭시 언니? 언니 나이는 20%만 적용이니까 예외야. 120대인 나이를 그대로 적용하는 건 엘프 친화적이지 못해.
‘틱틱거리는 연하라 더 좋은 거지만.’
사회자에게 시선을 돌린 장관님을 보며 다시 입꼬리를 올렸다.
장관님의 많고 많은 매력 중 하나가 바로 연하라는 것. 그 덕에 센스가 부족한 건 약간 아쉬우나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처음 만날 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나와 장관님의 첫 만남.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나온다. 업무가 마음에 드는 걸 제외하면 지루하고 재미없던 감찰부 생활이 180도 변한 날이었으니까.
전대 감찰부장은 깐깐하고 재미없고 말도 없고 양심도 없고 신박함도 없는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 밑에서 굴러야 한다는 게 너무 싫어서 하루에 몇 번이나 사직서를 만지작거릴 정도였으니, 만약 그때로 돌아가라고 하면 차라리 사직서를 던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재미없는 전대 부장이 2황자파의 몰락과 함께 사라지고, 재무성 장관님이 잠깐 공백을 채운 뒤 곧바로 4과장이었던 장관님이 감찰부장이 되었다. 너무 빠른 승진이라 역대 감찰부장 목록에는 재무성 장관님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아무튼 재미없는 부장이 사라졌지만 딱히 기대하지는 않았다. 19살 귀족 자제가 갑자기 부장이 됐는데 기대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그렇다고 반항하는 건 멍청한 짓이고.’
갑작스러운 인사여도 부장은 부장. 19살이지만 전쟁에서 구른 참전자. 자제라지만 차기 제국백이 확실한 귀족.
게다가 들리는 얘기로는 전승공이 아들처럼 여기고, 황태자로 막 책봉되었던 황제 폐하께서도 밀어주는 게 눈이 보이는 인사였다. 그렇기에 다른 부원들과 달리 순순히 상사로서 인정하고 이전처럼 딱딱한 모습을 보였다. 그게 지루한 상사-부하 관계에서 최선의 선택이니.
“편하게 대해. 너무 딱딱하게 있을 필요는 없어.”
“어차피 여기 있는 간부들 빼고는 전부 털어버릴 거니까.”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기존 간부들이 19살 부장에 반발하여 이탈하자 장관님은 빠르게 새로운 간부들을 임명했고, 감찰부 전체를 엎어버릴 것을 선언했다. 그 과정에서 감찰부의 딱딱하고 지루한 위계 질서나 전통이 사라진 건 덤이었다.
두근거렸다. 내 생에 이런 상사를 두 번이나 볼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편하게 대하라는 장관님의 말을 누구보다 열심히 수행했다.
장관님은 그때부터 내 인생의 빛이었다. 하루하루 겨우 버티던 감찰부 생활을 인생의 낙으로 바꾼 은인이다.
“장관님.”
“응?”
“고마워요.”
작게 속삭이자 장관님은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는 듯 쳐다보다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게 말해도 밤에 안 봐준다.”
“이게 안 통하네.”
훅 들어온 농담을 똑같이 농담으로 받아쳤다.
결혼식치고는 가볍고 털털한 분위기지만 괜찮다. 나랑 장관님은 원래 이렇게 관계를 쌓아왔으니.
‘…고마워요.’
속으로 다시 감사의 말을 속삭였다.
세상에 둘도 없을 멋진 상사가 되어줘서. 세상에 둘도 없을 남편이 되어줘서.
어쩌면 지루한 상사 밑에서 하루하루 혼자 늙어갔을지도 모를 나를 즐겁게 해줘서.
***
결혼식이 완전히 끝나자 다섯 번째 장모님이 펑펑 눈물을 흘리셨다.
“저 애가 언제 결혼을 하나, 혹시 평생 혼자 살다 죽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사위 덕에 이제야 그 걱정이 풀렸어.”
정말 보는 사람이 다 안타까울 정도로 우셨다.
역시 에리는 인페르노 효녀가 맞다. 얼마나 속을 썩였으면 후작 부인이나 되는 분께서 이리 서럽게 우실까.
“벌써 우시면 곤란합니다. 연말에 외손주를 보실 때는 어쩌시려고요.”
미소를 머금으며 장모님을 위로하자 연신 눈물을 닦던 장모님의 눈빛이 강렬하게 빛났다.
“그렇지. 아직 외손주가 남아있었지.”
내 말에 장모님의 시선이 옆에 있던 에리에게 돌아갔다.
“너, 왜 아직도 여기서 뭉그적거리니? 빨리 사위랑 같이 신혼집에 가지 않고!”
“아니… 방금까지 위로하느라…”
“빨리!”
상상 이상으로 강렬한 태도 변화에 에리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내 손을 잡았다.
“가요. 꾸물거리면 어머니한테 엉덩이 걷어차일 것 같아요.”
몇 번째인지 모를 웃음을 터뜨리며 에리를 공주님 안기처럼 안아올렸다.나랑 같이 며칠 동안 고생해야 할 에리가 엉덩이 부상을 입으면 매우 곤란하다.
“오늘부터 바로 시작이야. 알지?”
“오늘부터 언제까지요?”
“그건 네 체력에 달렸지.”
“그럼 제가 최고 신기록이겠네요!”
그 말과 함께 에리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지? 대체 무슨 자신감이지? 얘가 허약한 건 아니지만 강인한 것과도 거리가 조금 먼데?
‘보면 알겠지.’
과연 근거 있는 자신감일지 아닐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