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09)
로판 속 공무원 609화(610/945)
기대했던 선물 대신 1할짝과 2토닥을 받은 황태녀는 잔뜩 심통이 났다. 어직 어린 황태녀가 정령왕의 위엄, 축복의 가치를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 어떻습니까?
“조아! 채고!”
그러나 바람의 정령왕의 빠른 대처 덕에 뾰로통했던 황태녀는 금방 웃을 수 있었다.
바람의 정령왕. 바람이라는 원소가 형상화된 존재이자 바람을 지배하는 자. 이는 사람 하나 정도는 얼마든지 허공에 띄워 날릴 수 있다는 의미.
그렇기에 바람의 정령왕이 앞발을 휘두르자 황태녀는 두둥실 허공에 떠올랐고, 벌써 5분이 넘게 하늘을 날고 있다. 에리의 드래곤 태우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안전한 놀이다.
– 후후, 만족스러운 선물이지요?
“우웅…!”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려던 황태녀는 잠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아냐! 별로야!”
– 오호, 그래요?
부정적인 대답이었지만 나도 바람의 정령왕도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별로라고 말한 황태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으니까.
“더 날아야대! 그래야 죠아!”
– 어쩔 수 없군요.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자신의 계략이 성공하자 황태녀는 히히 웃음을 흘리며 양팔을 파닥였다.
조금 감탄했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하여 잠시나마 감정을 숨기다니. 실로 군주의 자질을 타고난 아이지 않나.
“인간, 날아!”
“어떻게? 어떻게?”
“마법? 마법인가?”
“우웅?”
다시 황태녀가 훨훨 날아다니기 시작하자 세계수 근처에 있던 요정들이 다가왔다. 같은 요정이 아닌 인간이 하늘을 떠다니자 관심이 가는 모양.
“바람! 바람!”
“바람 아줌마 기운, 인간한테 있어!”
“그럼, 아줌마 친구?”
“아줌마 친구, 우리 친구!”
그러고는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더니 황태녀의 머리카락이나 옷에 달라붙었다.
“놀자! 놀자!”
“하늘 나는 거! 재밌어!”
“죠- 아!”
갑작스러운 접촉임에도 황태녀는 빵긋 웃었다.
아이와 아이들이 만나니 소란스러워진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저러다 황궁에서도 날고 싶다 조르시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시녀장이 씁쓸히 중얼거렸다.
시녀장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황태녀가 좋아하니 차마 말릴 수는 없고, 방치하기에는 훗날이 두려운 상황 아닌가. 황궁에서도 날고 싶다고 조르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초콜릿도 동생에게 양보하는 전하 아니십니까. 아무리 날고 싶어도 꾹 참으실 겁니다.”
그런 시녀장을 애써 위로했다. 황태녀는 욕망이 있을지언정, 그 욕망을 참지 못하는 아이가 아니라고.
실제로 하루 섭취 분량이 엄격히 제한된 초콜릿도 페디에게 나눠주고 있지 않나. 자제력이 없는 아이라면 할 수 없는 업적이다.
“와아! 와아!”
– 끄이이익…
‘아.’
그 와중에 계속 황태녀 손에 붙잡혀있던 땅의 정령왕이 단말마를 내며 희미해졌다.
그래도 역소환당한 건 아니라 다행이다. 요정들에 이어 인간 아이의 손에도 역소환을 당했다면 얼마나 수치스럽고 원통할까.
“저기.”
– 말하세요, 은인.
“저분은 그냥 둬도 괜찮은 겁니까?”
내 말에 바람의 정령왕도 점점 희미해지는 땅의 정령왕을 바라봤다.
– 저래 보여도 우리 중 가장 튼튼한 존재입니다. 땅은 만인이 발을 딛고, 뿌리를 내리며, 무수히 많은 자원을 품은 어머니. 요정들의 짓궂은 장난 정도는 땅에 나무 막대기를 꽂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군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전문가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거겠지.
그냥 그렇다고 치자.
감동의 가족 상봉이 끝나자 정령왕들도 외조모님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 몇 번을 봐도 귀엽군.
그리고 불의 정령왕은 세쌍둥이를 보자마자 흡족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인간이든 정령이든 미적 기준은 동일하다. 그렇다면 제아무리 정령왕이라도 우리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은 버텨낼 수 없을 터.
– 엘프의 몸에서 세쌍둥이가 나온 건 희귀한 일이지요. 그 기적과도 같은 일이 세계수가 부활한 이후에 생겼다라. 실로 세상의 은총을 받고 태어난 아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놀랄까 봐 몸을 낮춰 앉은 바람의 정령왕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을 쏟아냈다.
맞는 말이다. 아이 자체가 귀한 엘프 종족에서 쌍둥이─ 그것도 그냥 쌍둥이가 아닌 세쌍둥이가 태어났다. 그 시기마저 세계수가 부활한 직후였으니, 엘프와 정령들 입장에서는 신과 세계의 귀여움을 받는 아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 흐음.
– 왜 그러십니까?
– 이 아이들, 묘하게 우리를 익숙해하는 것 같군.
물의 정령왕의 말에 픽 웃음을 흘렸다.
말하는 매, 말하는 거북이, 말하는 호랑이, 말하고 이리저리 뜯기는 뱀. 아이들은 물론 평범한 어른들이 봐도 놀랄 수밖에 없는 구성이나, 애석하게도 우리 저택에는 이미 비슷한 것들이 존재한다. 이제 와서 정령왕들을 본다고 놀랄 아이들이 아니다.
물론 온몸이 불꽃으로 뒤덮인 불의 정령왕은 아이들도 신기하게 보는 중이지만─
“떽. 만지면 안 돼.”
“아부우…”
손을 뻗을 때마다 단호히 접근을 차단했다.
“저런 거 만지면 뜨거워서 아야해요. 알았지?”
“아우!”
고개를 끄덕이는 마리아를 품에 안자 불의 정령왕이 서운하다는 듯 부리를 열었다.
– 아이들이 나를 만져도 별일이 없다는 건 은인도 알지 않나. 온도 정도는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
“그건 압니다만,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불을 만져도 된다는 인식을 심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 맞는 말이군…
내 말에 불의 정령왕은 침통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미안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다. 세쌍둥이가 불의 정령왕을 마구 만졌다가 ‘불 = 만져도 괜찮은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만한 재앙이 없다. 어른들이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불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으니까.
– 불을 끄고 다니든가 해야지 원.
– 자네, 불이 없으면 생닭하고 비슷한 외견이지 않나.
– 생닭이라니. 하필 비유해도 그런 건가.
어느새 자기들끼리 투닥이는 불의 정령왕과 물의 정령왕을 보다가 다른 아이들도 품에 안았다.
계속 마리아만 안고 있어서 그런지 뚫어져라 쳐다 보더라. 딸들을 서운하게 할 수는 없으니 셋 다 안고 있는 게 옳다.
– 그만 떠들고 축복부터 내려줍시다. 아이들은 낯선 환경에 오면 불안해하는데, 처음 보는 저희가 계속 눈앞에 어슬렁거리면 피곤하지 않겠습니까?
– 흠.
– 그도 그렇지. 어서 끝내자고.
– 그래… 사실 나도 피곤해…
정령왕 중 유일한 양심 포지션 같은 바람의 정령왕의 말에 다른 정령왕들도 아이들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각자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이들의 앞날을, 아이들의 건강을, 아이들의 성공을 기원하는 말을 중얼거렸다.
이윽고 화염처럼 붉고 따스한 기운이 아이들을 감싸 안았다. 물처럼 푸르고 시원한 기운이 아이들을 쓰다듬었다. 풀처럼 녹색에 싱그러운 기운이 아이들을 간지럽혔다. 땅처럼 노랗고 굳건한 기운이 아이들을 받쳐줬다.
“아우?”
“바우우!”
“뺘아!”
알록달록한 기운이 자신들 주변을 맴돌자 세쌍둥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손을 휘저었다. 마치 저 기운들을 만지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 호기심에 부응하듯, 색색의 기운들은 아이들의 손을 타고 몸에 흡수됐다.
“아아… 왕들의 축복…”
신비하고도 웅장한 광경에 외조모님은 눈물까지 보이며 기뻐하셨다.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 축복의 의미를 잘 아는 존재는 외조모님일 테니.
– 끝났다.
나지막한 종료 선언에 세쌍둥이의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리고내 수색에 아이들은 간지럽다는 듯 웃음을 터뜨릴 뿐, 딱히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다.’
무려 네 왕의 축복이다. 하나만 받아도 과분한 축복이 동시에 네 번이나 꽂힌 상황이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변화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다.
– 무슨 걱정을 하는지는 안다. 좋은 약도 과하게 복용하면 몸이 뒤틀리는 법이니.
날개를 파닥이며 내 머리에 앉은 불의 정령왕은 덤덤히 말을 이었다.
– 허나 우리의 축복은 육신이라는 그릇에 과도한 내용물을 넣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저 아이들의 그릇을 무엇이든 담을 수 있게 바꾸는 것 또한 우리의 축복이지.
“무엇이든…”
– 그래, 무엇이든. 저 아이들은 세상을 이루는 네 원소의 가호를 받아 세상을 담는 그릇이 될 거다.
자신만만한 말을 들으니 새삼 세쌍둥이가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았다는 걸 느꼈다.
“아비로서 대신 감사드립니다.”
– 무얼. 다 우리가 좋아서 하는 거지.
그렇게 말한 불의 정령왕은 다시 푸드득 날아가더니 외조모님의 어깨에 앉았다.
– 그러니 너도 그만 울어라. 왕의 축복을 받은 엘프가 흔한 건 아니었다만, 없던 것도 아니지 않나.
“예, 예… 알겠습니다.”
연신 눈가를 닦는 외조모님의 모습에 트릭시가 조용히 다가갔다.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닌 감동해서 우는 것이니 외손녀가 금방 달랠 수 있을 터. 너무 신경 쓰지는 말자.
– 그러고 보니 중요한 걸 말하지 않았군.
물의 정령왕의 목소리가 들려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
– 앞으로 저 아이들은 병에 걸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고의로 전염병 창궐지에 달려가는 게 아닌 이상, 어떠한 병도 저 아이들을 덮치지 못한다.
뭣.
– 그리고 그건 저 인간 황제의 딸도 마찬가지. 만약 저 아이들이 아프면 인간의 병이 아닌 신의 저주 같은 것이니 알아둬라.
“…다시 감사드립니다. 정말 과분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 내가 할 말도 불의 정령왕과 같다. 다 우리가 좋아서 한 일이다.
그 말을 끝으로 물의 정령왕은 엉금엉금 기어나갔다.
저 귀여운 뒷모습이 오늘따라 상남자의 뒷모습처럼 보였다.
“우우웅…”
“우리 카틀레아, 졸리니?”
“아웅…”
얼마 지나지 않아 품에서 들려오는 칭얼거림에 빙긋 미소를 지었다.
작게 하품을 하며 눈을 몽롱하게 뜨는 카틀레아. 누가 봐도 졸음이 밀려오는 모습이기에 슬며시 침대에 눕혀줬다.
…
‘왜 카틀레아만 이러지?’
뭔가 이상하다. 똑같이 놀고 똑같이 축복을 받은 마리아랑 세실리아는 멀쩡한데, 왜 카틀레아만 꾸벅꾸벅 조는 거지?
“물의 정령왕이시여!”
– 응?
내 부름에 막 문을 지나가려던 물의 정령왕이 고개를 돌렸다.
“혹시, 축복에 부작용도 있습니까?”
– 그런 건 없다. 부작용이 있다면 어찌 감히 축복이라는 말을 쓰겠나.
“헌데 카틀레아가 축복을 받고 졸려하는 기색을 보여서…”
– 뭣.
그러자 물의 정령왕이 지금껏 보지 못한 속도로 달려왔고, 장로님 근처에 있던 정령왕들도 급히 카틀레아에게 달려왔다.
– 진짜로군. 혼자만 졸고 있어.
– 세상에. 정말 이런 일이 생기는 건가요?
– 직접 보고도 믿기가 어렵네…
왕들의 수군거림에 분위기가 잠시 냉각됐다.
뭔데. 대체 무슨 일인데. 겨우 진정한 외조모님도 다시 울고 계시잖아.
– …축복이 너무 잘 먹혔다.
“예?”
그건 또 무슨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