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10)
로판 속 공무원 610화(611/945)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렸음에도 비몽사몽 눈을 깜빡이던 카틀레아는 완전히 잠에 들었다.
“아우웅…”
꾹 감긴 눈, 평온한 안색, 오물거리는 입, 꼼지락거리는 손과 발.
다행히 어딘가 잘못된 것 같지는 않다. 딱 카틀레아가 평소에 자던 모습 그대로다.
– 이걸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지.
그 모습을 보던 물의 정령왕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일단 물의 정령왕은 축복에 부작용 같은 건 없으며, 카틀레아의 상태를 축복이 너무 잘 먹힌 상태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부정적인 상황은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차라리 셋이 같은 증상을 보였다면, 하다못해 카틀레아가 잠에 빠진 게 아니라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면 아무런 걱정도 안 했을 거다. 그저 축복을 받으면 저렇게 되는구나─ 라며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을 거다.
헌데 멀쩡하던 아이가 갑자기 잠에 드는 건 아프거나 피곤할 때지 않나. 세 아이 중 혼자만 잠에 빠진다면 걱정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물의 정령왕이 끙끙거리자 바람의 정령왕이 입을 열었다.
– 정령왕의 축복은 그릇을 바꾼다고 했었지요. 기억하십니까?
“물론입니다.”
다른 것도 아닌 내 아이들과 대녀에게 걸린 축복이다. 사소한 설명이라도 잊을 리가 없다.
– 그릇이 변하는 과정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저희의 기운이 조금씩 저 아이들의 몸을 최적의 상태로 바꿀 것이며, 그 기운을 품고 자란 아이들은 남들보다 월등한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왕들께서 내린 축복의 기운이 바로 저 아이들에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순차적으로 조금씩 영향을 준다는 말입니까?”
– 맞습니다. 그릇을 무리하게 확장하려고 하면 깨지는 법. 그것이 최선의 방안입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수십억의 당첨금을 일시에 주는 복권이 아닌, 매달 꼬박꼬박 수백만 원을 주는 연금 복권과 비슷하다는 말.
…살짝 자괴감이 든다. 아이들의 상태를 복권에 비유하는 아빠라니.
‘아빠가 바보라 미안해.’
미취학 성인이라 이게 최선이었어.
– 하지만 이 아이, 카틀레아는 다릅니다. 굳이 그런 방법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자연의 기운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아이입니다.
그렇게 말한 바람의 정령왕은 곤히 잠든 카틀레아의 볼을 핥았다.
– 다른 사람이라면 5년에서 10년 동안 거칠 과정을 압축하여 통과하는 겁니다. 육체와 정신이 피로를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그 말에 더욱 불안해졌다.
정령왕들은 긍정적인 일처럼 말하고 있으나, 오래 걸리는 것에는 오래 걸리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 기간을 말도 안 되게 압축한다면 반드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지금은 잠에 든 것이 전부기는 하다. 허나 앞으로도 잠으로 끝날 거라는 보장은 없지 않나.
–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아이의 친화력은 저희의 상상을 넘어섰습니다.
내 불안한 눈동자를 읽었는지, 바람의 정령왕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자는 정도. 1, 2년 정도만 그렇게 지내면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을 겁니다.
“조금 더라면…”
– 글쎄요. 하루에 한 2시간? 아기 입장에서는 낮잠 수준이군요.
그러자 곳곳에서 안도에 찬 한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마 트릭시와 외조모님이겠지.
아니, 어쩌면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일 수도 있다. 왕이 이렇게 확답을 하는 걸 보면 정말 문제가 없다는 뜻이니까.
“왕들께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그렇기에 고개를 숙이며 바람의 정령왕을 비롯한 다른 왕들에게 사과를 표했다.
왕들이 선의로 내린 축복에 안절부절못했고, 괜찮은 거 맞냐며 추궁하는 듯한 발언을 연이어 쏟아냈다. 은혜를 베푼 왕들 입장에서는 불쾌해 할 일이다.
– 아비가 자식을 걱정하는 건 불이 타오르고,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마땅한 자연의 이치지. 우리가 사과를 들을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 사과에 침묵을 지키던 불의 정령왕이 부리를 열었다.
– 그리고 솔직히 나도 당황했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거든. 잠깐이나마 축복을 거두어야 하나 고민했었어.
웃음 섞인 농담에 나 역시 미소를 지었다.
저 농담이 불의 정령왕 나름의 위로와 격려일 테니.
– 그런데 신기하기는 하네. 역대 장로들도 이런 친화력을 보이지는 못했는데, 인간의 피가 짙은 아이에게 장로들을 뛰어넘을 잠재력이 있을 줄은 몰랐어.
분위기가 훈훈해지자 바닥을 어슬렁거리던 땅의 정령왕이 카틀레아가 누운 침대 위로 올라갔다.
– 콘스탄티나의 축복을 받은 건가?
– 그렇다면 이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잠들었겠지.
땅의 정령왕의 의문에 물의 정령왕이 덤덤히 답했다.
– 그냥 재능이다. 그거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어.
한치의 의심도 없는 단호한 말인지라 뿌듯했다. 자식에게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싫어할 부모는 없다.
“그럼 이 아이는 정령사로 키워야겠군요.”
아비의 사랑을 담아 말하자 정령왕들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나를 쳐다봤다.
뭔데. 왜 그렇게 보는 건데.
‘설레발이었나?’
너무 강렬한 기세인지라 움찔하고 말았다.
왕들이 인정하는 재능이라 정령사가 되기 위해 태어난 아이인 줄 알았는데, 그런 재능을 가지고도 정령사가 되기는 힘든 건가? 쉽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직업이라 저렇게 쳐다보는 거고?
– 은인.
“아, 예.”
어느새 내 머리 위로 날아온 불의 정령왕은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잘 생각했다.
“…예?”
– 이건 콘스탄티나와 세계수의 가호는 물론, 세상의 귀여움까지 받아야 가질 수 있는 재능이다. 이 재능을 두고 다른 길을 택하는 건 아까운 일이지. 아암.
– 정령술이 세계수의 소실로 퇴보하기는 했지만, 압도적 재능은 사소한 시련 따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법.
불과 물의 원투 펀치에 움츠러들었던 뿌듯함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역시 왕이 인정한 재능이면 이쪽을 진로로…
– 정령술이 극에 이르면 자연 그 자체가 된다. 손짓 한 번으로 홍수를 일으키고, 대지를 뒤엎으며, 화산을 터뜨리지.
– 태풍도 잊지 마세요.
– 그래, 태풍도 있다.
…
‘그건 좀.’
우리 귀여운 삼녀가 걸어 다니는 전략 병기가 된다는 말인지라 떨떠름한 감정이 몰려왔다.
– 물론 극단적으로 활용하면 그렇다는 거다! 역사적으로 정령술을 전투에 활용한 정령사보다, 정령을 친구처럼 여기며 지낸 정령사가 더 많아!
불의 정령왕이 다급히 말을 덧붙이길래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어떤 기술이든 활용하기 나름이지. 나도 검으로 하늘을 베고, 트릭시는 허공에서 운석도 떨구잖아.
‘정령의 친구라.’
정령왕들의 축복을 받아 정령들을 친구로 사귄 쿼터 엘프.
마치 동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우!
“부아!”
그 와중에 멀뚱멀뚱 침대에 앉아있던 마리아와 세실리아가 곤히 자고 있던 카틀레아의 볼을 콕콕 찌르기 시작했다.아무래도 늘 같이 놀던 막내가 혼자 잠에 들어 깨우려는 것 같다.
“우리 딸들. 카틀레아는 피곤해서 코오- 자야 해요.”
“아우우?”
“부아…”
마리아와 세실리아를 품에 안자 둘은 카틀레아를 힐끔거리며 팔을 뻗었다.
의외다. 어른이 안아주면 얌전히 체온을 느끼는 아이들인데, 이렇게 외부에 반응을 보이는 건 처음이다.
‘사이 좋네.’
귀여운 모습인지라 도로 침대에 내려줬다.
셋이 함께 하고 싶다면 같이 있게 해주─
“아우우!”
“부야!”
“아웅…”
안 되겠다. 다시 안자.
저러다 카틀레아 얼굴에 멍들겠어.
정령왕들의 확언처럼 카틀레아는 2시간의 낮잠을 마치고 똘망똘망한 눈을 반짝였다.
“뺘!”
그러고는 침대 끄트머리로 기어가 침대 매트를 팡팡 내려쳤다.
“내려줄까?”
“빠우!”
그 말에 노여움을 표출한 카틀레아가 나를 향해 팔을 뻗었다.
미안해. 안아달라는 거였구나. 이 아빠가 그것도 모르고…
“뺘아아~”
내 품에 안긴 카틀레아는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내 팔을 토닥였다. 빨리 그곳으로 가달라는 것처럼.
갑자기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도 축복의 여파일 수 있다. 그렇다면 순순히 따라야지.
– 우리도 같이 가도록 하지.
그렇게 나와 정령왕, 마리아와 세실리아를 안은 트릭시가 카틀레아의 인도하에 움직였고,
“뺘아! 뺘우우!”
세계수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세계수를 보자 활짝 웃는 카틀레아, 카틀레아의 웃음소리에 반응하여 하나둘 가까이 다가오는 정령들을 보며 확실히 느꼈다.
‘벌써 그릇이 변하고 있구나.’
카틀레아의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
초조함에 손이 떨렸다.
이상하다. 슬슬 황태녀가 장관의 저택에서 돌아올 때인데 소식이 없다.
‘저녁 전에는 돌아왔는데.’
아무리 바쁘더라도 저녁만큼은 가족이 함께 모이는 것. 그게 내 작고도 거대한 야망이다. 정말 어지간한 일이 터진 게 아닌 이상 이 야망은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다.
그러나 저녁이 가까워짐에도 황태녀는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실로 서글픈 일이다.
‘설마 저택에서 저녁 식사까지 하는 건가?’
그건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다. 아무리 장관이 황태녀의 대부라 할지라도, 감히 나에게서 황태녀와의 식사 시간을 가져갈 수는 없다.
그렇기에 떨리는 손을 뻗어 통신구를 잡았다. 당장 우리 딸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장관의 신혼 휴가가 유감스러워질 거라는 단호한 통보를─
– 똑똑
“폐하. 궁내성 장관입니다.”
“들어오라.”
헛기침을 하며 떨리던 손을 겨우 진정시켰다.
신하 앞에서도 불안과 초조에 떠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장관을 쪼는 건 잠깐 뒤로 미루자.
“폐하. 경축 드리옵나이다!”
문을 열고 들어온 궁내성 장관이 다짜고짜 엎드리기 전까지는 그리 생각했었다.
“장관. 갑자기 무슨 일이오?”
“황태녀 전하께옵서 정령왕의 축복을 받았다 하옵니다! 전하와 함께 있는 황후궁 시녀장의 보고이니,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경사이옵니다!”
그 말에 여전히 손에 쥐고 있던 통신구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장관의 신혼 휴가는 앞으로도 굳건해질 것 같다.
‘…정령왕의 축복은 어쩌다 받은 거지?’
물론 기쁨과 동시에 타당한 의문도 들었으나, 이건 다음에 장관의 입으로 직접 듣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