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11)
로판 속 공무원 611화(612/945)
세쌍둥이와 황태녀가 정령왕의 축복을 받은 이후로 여러 일들이 있었다.
우선 카틀레아는 바람의 정령왕의 말처럼 낮잠 시간이 늘어났다. 하지만 2시간 정도만 눈을 붙이면 체력을 100% 회복한 것처럼 저택을 뽈뽈뽈 돌아다녔으니, 마리아와 세실리아가 막내의 부재에 심심해하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또한 정령왕들이 하사한 기운을 빠르게 자기 것으로 만드는 중인 카틀레아는 온갖 정령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카틀레아가 세계수 앞에 나타나자 세계수 근처에서 놀던 정령들이 일제히 카틀레아에게 달라붙을 정도였으니까. 당시 카틀레아의 몸은 반딧불이들이 달라붙은 거목처럼 반짝였다.
– 아직은 하급이나 중급 정령들의 관심을 끄는 정도지만, 조금만 지나면 상급이나 그 이상의 정령들도 이 아이와 어울리고 싶어 안달이 날 거다.
불의 정령왕의 말처럼 지금의 카틀레아에게 관심을 보이는 건 자그마한 정령들뿐이었으나, 카틀레아는 쿼터 엘프. 앞으로 살아갈 세월이 길고도 길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상급과 최상급 정령들마저 우리 삼녀에게 관심을 보일 터.
‘어쩌면 왕들과도 연을 맺을 수 있지.’
세쌍둥이는 이미 왕들에게 축복을 받은 상황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세계수 부활에 공헌한 은인이기에 가능한 일 아니겠나. 은혜를 갚은 것과 연을 맺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허나 카틀레아는 왕들조차 인정하는 재능의 소유자다. 시간만 지나면 왕들도 홀릴 능력자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딸이라면 분명 그렇게 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우웅…”
오늘도 어김없이 낮잠 중인 카틀레아의 볼을 건들자 카틀레아는 입을 오물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미안하다. 아빠가 우리 딸의 수면을 방해했나 보구나.
“잘 자렴.”
그런 카틀레아의 이마에 살며시 입을 맞춘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고 있는 딸에게 모든 관심을 쏟기에는 내 관심이 필요한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
“아우!”
“뺘아아!”
내가 일어나자 양팔을 퍼덕이는 마리아와 세실리아.
정령 친화력보다는 다른 쪽에 재능이 있을 두 아이는 나를 향해 손을 뻗으며 활짝 웃었다.
“우리 딸들. 아빠랑 산책이라도 할까?”
그 말에 마리아와 세실리아는 더욱 격렬히 팔을 휘저었다.
아마 좋다는 의미겠지. 비록 대화는 할 수 없을지라도 아이들이 원하는 것도 정도는 알 수 있는 게 부모다.
“장생이도 같이 찾아보자.”
“아우우!”
“삐야아!”
어째 아빠랑 산책하자는 말보다 장생이라는 말에 더 기뻐하는 것 같지만 착각일 거다. 분명 착각일 거라 믿는다.
…착각 맞지?
‘나도 털을 길러야 하나.’
조금 씁쓸하다. 장생, 그 비겁한 녀석은 매끄러운 털을 가진 덕분에 아이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진정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건 나이거늘.
“장생이보다 아빠가 더 좋지?”
추한 질문이라는 건 알지만 무심코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하지만 장생이는 이 아이들에게 있어 애완동물에 불과하다. 애완동물보다는 아빠를 더 사랑하고 따르지 않겠나.
그렇지? 제발 그렇다고 해줘.
“아웅!”
다행히 내 질문에 마리아가 나를 향해 더욱 밝은 미소를 지었다.
순간 눈물이 나올 뻔했다.
문을 열자 복도에서 자유형 중인 황태녀와 마주할 수 있었다.
“때부! 안녕!”
“예, 전하. 좋은 점심입니다.”
나를 보자마자 해맑게 미소를 지은 황태녀는 몸을 빙글 돌려 등을 바닥에 붙였다.
아니, 자세히 보면 황태녀의 등은 복도와 미세하게 떨어져 있었다.
‘기묘한 축복이네.’
정령왕의 축복을 받은 뒤로 생긴 여러 가지 일. 그중 하나는 황태녀에게 미세한 비행 능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황태녀는 모든 정령왕의 축복을 받지는 못했으나, 바람을 다스리는 왕의 축복을 받았다. 사람 하나는 가볍게 허공에 띄우는 존재의 축복이 황태녀에게 깃든 것이다.
그 덕에 황태녀는 자신의 몸을 허공에 띄울 수 있게 되었다.
’10cm 정도지만.’
비행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아주 미세한 비행이지만 어떤가. 아무튼 몸이 허공에 뜨는 건 사실이고, 당사자인 황태녀도 기뻐하는데.
“때부! 이것바! 나 계속 날고이써!”
몸을 일으킨 황태녀는 위풍당당히 두 발로 서서 나를 올려다봤다. 당연하게도 황태녀의 두 발은 바닥에 붙어있지 않고 허공에 떠있었다.
10cm 정도만.
“신기하지!?”
“예, 전하. 실로 경이롭고도 놀라운 광경입니다.”
그래도 어깨를 으쓱이는 황태녀에게 박수를 치며 동조했다.
10cm가 아니라 1cm라도 나는 건 나는 거다. 심지어 며칠 전에 축복을 받은 아이가 자기 능력으로 날아다닌다면 대단한 것이 맞다. 똑같이 축복을 받은 세쌍둥이는 날기는커녕 기어다니고 있는 상황이니까.
“웅! 아빠랑 엄마도! 대단하다고 해줘써!”
히히 웃는 황태녀의 모습에 픽 웃음을 흘렸다. 황태녀가 나는 법을 터득한 날, 황제의 다급했던 표정과 목소리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 장관! 황태녀가, 황태녀가 하늘을 날고 있다!
“…실례지만 혹시 낮술 하셨습니까?”
물론 너무 갑작스럽고도 다급한 연락이라 처음에는 취한 줄 알았다. 멀쩡한 황태녀가 하늘을 날고 있다고 소리치는데 누가 믿겠어. 차라리 황제가 취했을 가능성이 더 높지.
“때부! 나와써!”
그러나 언제나처럼 저택에 놀러 온 황태녀가 시녀장의 품이 아닌 허공에서 인사를 건네는 것을 봤을 때, 황제가 느꼈을 당혹감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극소수의 마법사들은 비행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나, 말 그대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아무리 노련한 대마법사라도 그쪽 스킬트리를 밟지 않았다면 쓰지 못하는 것이 비행 마법이다.
그런 고인물의 영역에 꼬꼬마 황태녀가 발을 들였다. 지금은 10cm에 불과하지만 훗날은 어떻게 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뻬디! 내 등에타! 나랑 날쟈!”
“저, 전하!”
“절대 안 됩니다!”
“히잉…”
그 와중에 페디를 등에 태우려고 했던 황태녀를 뜯어말리느라 고생하기도 했고. 대체 자기가 날 수 있으니 동생이랑 같이 날자는 발상은 어떻게 하는 건지.
‘마음이 따뜻하다는 증거기는 하지만.’
본인의 즐거움을 홀로 독식하지 않고 동생과 나누려는 마음. 악한 성품을 타고났다면 절대 발휘할 수 없는 자비이자 배려다.
그렇기에 황태녀의 돌발 행동을 볼 때마다 당혹스러운 동시에 흐뭇하다. 이 아이는 선한 마음을 타고 태어났으니, 우리 같은 어른들이 잘못 가르치지만 않는다면 최소 평군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상황이라는 희대의 명군, 황제라는 노력과 아가리의 천재가 제국을 굳건히 다졌다면 황태녀는 평범히 자리만 지켜도 된다. 나와 뉘렌 공작가가 성심을 다해 황태녀를 보필할 거다.
“전하.”
“우웅?”
“장생이라면 전하와 함께 하늘을 날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에 황태녀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진쨔!?”
“그럼요. 장생이는 작지 않습니까.”
“마쟈! 장생이, 작아!”
기특하고 순수한 황태녀에게 장생이를 등에 태울 권한을 선물했다.
그래, 장생이면 딱이다. 어린 황태녀의 기준으로 봐도 장생이는 매우 작고 아담한 동물이다. 황태녀의 등에 태우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같이 장생이를 찾아볼까요?”
“웅!”
“참. 이 아이들도 장생이랑 놀고 싶어 합니다.”
품에 안고 있던 마리아와 세실리아를 보여주자 황태녀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죠아! 가치 놀쟈!”
지금쯤 숙면 중일 장생이에게 속으로 사과를 건넸다.
우리 아이들과 황태녀의 행복을 위해 네가 이번에도 희생하렴.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아아! 그아아아아악!”
장생이도 아이들과 노는 게 즐거운지 우렁차게 울부짖었다.
좋은 현상이기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동물과 함께하면 정서적으로 안정된다고 하던가? 확실한 건 아니지만 오늘부터 그렇게 믿기로 했다. 내가 틀렸다고 지적할 사람도 없는데 그 정도는 괜찮겠지.
– 이야, 죽음이었던 녀석이 저런 꼴이 됐네.
그렇게 장생이와 세 아이─ 아니, 지나가다 합류한 페디까지 합하여 네 아이의 평화로운 한때를 구경하다 움찔 몸을 떨었다. 너무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으니까.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잠시 동요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덤덤히 인사를 건넸다. 영원한 푸른 하늘이 짠한 모습은 자주 보여도, 나에게 피해를 준 적은 없다.
…없었나? 딱히 기억에 남는 원한이 없는 걸 보면 없는 것 같기는 한데.
– 나야 잘 지냈지. 요즘처럼만 지내면 소원이 없겠어.
내 인사에 영원한 푸른 하늘은 큭큭 웃음을 흘렸다.
공의회 이후로 부유한 백수가 된 영원한 푸른 하늘만이 흘릴 수 있는 웃음이었다. 나도 저 신처럼 살았으면 소원이 없겠어.
– 맞다. 최근에 엘프 주거 지구에 왔었다며?
‘정령왕들이 찾길래 잠시 얼굴 좀 비췄습니다.’
– 미안. 그때 자느라 누가 온 줄도 몰랐어.
생각보다 본격적인 백수 생활이라 잠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자느라 손님이 오는 걸 몰랐다니. 백수 중에서도 상위 티어 백수만이 보일 수 있는 묘기가 아닌가.
‘예, 뭐. 그럴 수도 있죠. 자기 집에서 자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요.’
허나 굳이 영원한 푸른 하늘을 놀리거나 구박하지는 않았다. 사실 올 때마다 신이 말을 거는 게 특이한 거지, 원래 인간은 죽을 때까지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게 정상이다.
…
‘그러고 보니 콘스탄티나께서도 아무 반응이 없었는데, 그분도 같이 주무신 겁니까?’
– 아, 걔?
뒤늦게 떠오른 의문점을 말하자 영원한 푸른 하늘은 작게 하품을 하며 말을 이었다.
– 최근에 에넨 쪽 애가 제국을 돌아다니고 있잖아. 그거 관련해서 에넨이랑 대화하느라 바빠.
‘에넨의 성자가 돌아다니는 거랑 콘스탄티나가 무슨 연관이…’
– 그건 나도 모르지. 자기 신앙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른 신에게 하는 경우는 없거든.
순간 ‘혹시 당신이 왕따 당하는 건 아닙니까?’ 라는 생각을 할 뻔했지만 겨우 참았다.
– 뭐, 별일은 아닐 거야. 기껏해야 에넨 쪽 애가 자기 신도나 성지에 접근하지 말아달라는 얘기 중이겠지.
그 말에 납득했다. 확실히 그런 일이라면 바쁠 만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