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13)
로판 속 공무원 613화(614/945)
황태녀가 비행 능력을 터득하든 말든, 영원한 푸른 하늘이 말을 걸든 말든, 콘스탄티나가 에넨과 접촉하든 말든 시간은 변함없이 흐르고 흘렀다. 특이한 일들이 생겼다고 나의 일상마저 멈추는 것은 아니니까.
“아우, 우아아!”
“옳지. 우리 프리드리히, 이제 옹알이도 잘 하네.”
요즘은 그 일상 속에서 프리드리히의 옹알이를 듣는 낙으로 살고 있다.
몇 개월 후에 바다가 태어나면 밀려나겠지만, 현시점에서는 막내인 우리 프리드리히. 벚꽃이라는 태명에 걸맞게 리제처럼 따뜻한 분홍색 머리가 인상적인 내 막내.
심지어 눈도 리제를 닮은 청안이기에 남자 버전 리제로 태어난 것 같은 우리 막내.
“우리 막내도 크면 인기가 많겠어.”
픽 웃으며 프리드리히의 코를 톡 건드렸다.
리제는 3년 동안 아카데미의 아이돌이었고, 황족과 왕족의 사랑을 받았던 카피바라다. 만일 프리드리히가 리제에게서 외모뿐만 아니라 특성마저 물려받았다면 많은 영애들의 속을 태울지도 모른다. 과장 좀 보태면 제국의 국민 첫사랑이 될 수도 있지.
‘국민 첫사랑이라.’
기묘한 단어라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중세 향기를 풍기는 이 세계에서 국민 첫사랑이라는 말이 나올 수가 있는 건가.
허나 나와 리제의 아이라면 가능할 거다. 나는 프리드리히에게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배경을 줬고, 리제는 누구라도 호감을 갖는 외모와 성격을 물려줬을 테니.
“성격은 이 아빠를 닮으면 안 된다?”
“우아?”
내 말에 프리드리히는 의아하다는 듯 짧은 옹알이를 내뱉었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놀라울 정도로 감정 표현이 활발한 세쌍둥이가 특이한 거지, 아기들의 평균적 모습은 프리드리히 수준이다.
아무튼 내 바람대로 프리드리히는 나를 닮지 않았으면 한다. 솔직히 내가 여자관계와 연애 눈치가 깔끔하다고 할 수는 없잖아. 국민 첫사랑이 나 같은 여자관계를 가지게 된다면 제국 사교계가 뒤집어질 거다.
당연히 좋지 않은 의미로.
“차라리 어릴 때부터 좋은 짝을 만나게 해야 하나.”
“아우우-”
내 중얼거림에 프리드리히는 팔을 휘저으며 옹알거렸다.
마치 그런 걱정을 왜 벌써부터 하냐고 꾸짖는 것 같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라버니.”
“어?”
그렇게 프리드리히의 코와 손가락을 톡톡 건드리며 놀던 중, 펑퍼짐한 옷을 입은 리제가 다가왔다.
“아, 벌써 식사 시간이구나.”
멀뚱히 리제를 보다 자리를 비켜줬다.
우리 프리드리히는 놀라울 정도로 규칙적인 아이. 이때쯤이면 밥을 달라고 울 시간이다.
“우우!”
실제로 내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던 프리드리히가 리제를 보자마자 팔을 뻗으며 칭얼거렸다. 슬슬 배고팠는데 잘 왔다는 것처럼.
“후후, 그래. 어서 맘마 먹자?”
리제는 그런 프리드리히를 살포시 품에 안았다.
익숙한 광경이라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요즘은 리제가 프리드리히에게 모유를 먹이는 시간을 보면서 하루가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하고 있다. 워낙 규칙적이라 굳이 시계를 보지 않아도 몇 시인지 파악이 가능하더라.
“…저기. 오라버니?”
“응?”
“그렇게 빤히 보면 조금 부끄러운데…”
너무 뚫어져라 지켜봤는지 옷을 거둔 리제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이미 볼 거 다 봤는데 새삼스레─”
“오, 오라버니!”
“알았어. 미안해.”
이미 모든 걸 본 사이에 부끄러울 게 남아있나 싶지만, 남편으로서 부인의 순정을 지켜주는 건 당연한 일. 리제가 더 부끄러워하기 전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조금은 서운하다. 아직 리제는 나한테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있구나. 나는 내 모든 걸 보여줄 수 있거늘.
‘그러고 보니 호칭도 오라버니로 돌아왔어.’
분명 프리드리히가 태어났을 때는 여보라고 불렀던 리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여보와 오라버니를 혼용하더니, 이제는 자연스레 오라버니로 복귀했다. 억장이 무너지고 눈물이 절로 나올 비극이다.
내가 혼용까지는 오라버니라는 칭호가 입에 붙어서 헷갈리는 거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아예 복귀하는 건 너무하잖아.
“리제야.”
“은근슬쩍 다시 쳐다보지 마세요.”
“왜 여보라고 안 불러줘?”
그렇기에 다시 고개를 돌리며 직설적으로 물었다. 나의 잃어버린 봄날은 어디로 간 것이냐고. 두근두근거리고 오붓한 칭호는 어디로 사라진 거냐고.
“그, 그건…”
서운함이 가득한 질문에 리제가 말을 더듬었다.
“난 리제 입에서 여보라는 말이 듣고 싶은데.”
“마, 마음으로는 매일 여보라고 부르고 있어요!”
가슴 따뜻해지는 항변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관심법을 배우지 못했다.
“부부 사이에 오라버니라고 부르면, 프리드리히도 커서 나를 형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내가 생각해도 정신 나간 망상이었으나, 이미 기습을 당한 리제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당혹감을 드러냈다.
좋아. 이거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성과가 나올지도 모르겠어.
“물론 우리의 사랑은 호칭 따위에 좌지우지되지 않지만, 그래도 더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이름으로 부르는 게 좋잖아.”
막말로 오라버니는 나보다 연하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입에 담을 수 있는 호칭. 허나 여보는 이 세상에서 단 여섯만이 사용할 수 있는 호칭이다. 그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 기는 한데…”
논리적으로 완벽한 설득에 리제의 기세가 조금 누그러들었다.
사실 이 싸움은 처음부터 내가 유리한 싸움이었다. 남편이 부인에게 여보라는 말을 원하는 게 이상한 건 아니잖─
– 잠깐 시간 괜찮아?
예상치 못한 관중의 개입에 판이 깨지고 말았다.
‘무슨 일입니까?’
아쉽지만 일단 영원한 푸른 하늘의 말에 대답했다.
이 판은 언제 깔더라도 내가 유리한 판이다. 훗날을 기약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솔직히 내가 불리한 판이더라도 리제에게 말싸움으로 질 것 같지도 않고.
– 에넨 쪽 성자가 여기로 왔는데, 뭐 아는 거 있어?
‘…예?’
허나 평온하고 자신만만했던 마음은 영원한 푸른 하늘의 말에 무너지고 말았다.
에넨 쪽 성자면 타니안이잖아. 타니안이 영원한 푸른 하늘이 있는 곳으로 갔다고? 에넨 신앙과 거리가 먼 이종족들의 터전이자, 콘스탄티나의 상징인 세계수가 있는 곳으로?
왜…?
“오라버니?”
잠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자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던 리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런 리제와 리제의 품에 있던 프리드리히를 동시에 안았다.
“리제야, 여보라고 해줘.”
나 지금 머리가 너무 복잡하고 미칠 것 같아서 그래.
아무리 여명 교단이 이교를 인정했다지만, 여명 교단의 성자가 왜 이교의 중심지까지 가냐고. 설마 막고라 붙으러 가는 거야?
‘미치겠네.’
공무원 입장에서 예상하지 못한 변수만큼 끔찍한 것은 없다.
심지어 그 변수가 지인이 만들어낸 변수라면 더더욱.
“여보라고 해줘…!”
“여, 여보! 진정해요!”
급속도로 마음이 평온해졌다.
***
이종족 보호 구역에 들어서자마자 무수히 많은 시선─을 받을 줄 알았다.
이종족이 거주하는 지역에 인간. 그것도 한 명이나 두 명이 아닌 수십에 이르는 인원이 한 번에 들어왔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목적으로 왔더라도 경계의 눈빛을 받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허나 아니었다. 우리가 이종족 보호 구역에 진입하자 이종족들은 우리에게 가벼운 인사만 건넬 뿐, 그 외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인간과 익숙한 곳이라 그런가?’
이종족 보호 구역은 일종의 관광지. 하루에도 적지 않은 숫자의 인간들이 오고 가니 이종족들이 무덤덤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사제다. 여명 교단이 아닌 전통 신앙을 따르는 이종족들이라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텐데…
“형제님!”
그런 고민을 하던 중, 저 멀리서부터 사제복을 입은 남성이 달려왔다.
이종족 보호 구역 교구의 주교였다.
“어서 오십시오! 형제자매님들의 방문을 환영합…!”
“아, 주교님!”
“요즘 통 안 보이시더니 여기서 다 보네! 여기 귤이라도 좀 가져가요!”
그리고 주교 형제님은 우리를 향해 오는 동안 다섯 걸음에 한 번꼴로 이종족들에게 붙잡혔다.
신기한 광경이다. 인간 사제에게 아낌없이 선물을 퍼붓는 이종족들이라.
“마중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눈만 잠깐 쓸고 오려 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코까지 쌓인 선물을 소중히 품에 안은 주교 형제님은 머쓱한 웃음을 흘리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죄송이라니요. 갑작스레 방문한 것은 저희니, 오히려 저희가 형제님께 사죄를 드려야 합니다.”
그 말과 함께 형제님이 안고 계신 선물 일부를 나눠들었다. 저러다 선물에 시야가 가려져서 넘어지실라.
“주민들과 사이가 좋으시군요.”
“사제의 의무는 현지 주민들과 어우러지는 것. 저는 그저 의무를 지키며 지냈을 뿐입니다.”
원론적인 말이었기에 더욱 만족스러웠다.
그 의무를 지키지 못하는 사제들도 있는 판국에 인간이 아닌 이종족 주민들을 편견 없이 대하는 사제? 교단이 애지중지하며 주시해야 할 귀중한 인재요, 같은 사제라면 진지한 신앙 토론을 나눌만한 경건한 자다.
“형제님.”
“예, 말씀하십시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세계수를 보러 가도 되겠습니까?”
그렇기에 형제님과 느긋한 신앙 논쟁을 벌이기 전, 주의 인도를 수행하기 위하여 용건부터 말했다.
“세계수라.”
내 부탁에 형제님은 잠시 고민하더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외지인은 아무나 접근할 수 없지만, 형제님이 오셨다는 걸 알면 장로께서도 허락해 주실 겁니다. 본 교구와도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는 분이시라서요.”
장로라는 말에 이전에 봤던 노엘프가 떠올랐다. 분명 마종공 자매님의 외조모 되는 분이셨지.
“헌데 형제님께서 세계수에는 어인 일로…?”
형제님의 질문에 빙긋 미소를 지었다.
“태양의 아들로서 초목께 기도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 말에 형제님이 딱딱하게 굳었다.
태양의 아들이 다른 존재에게 기도를 드린다는 건 결코 가벼운 말이 아니기에.
***
리제에게 조르고 졸라 여보라는 말을 들은 이후.
– 지금 세계수 앞에 에넨 쪽 애들이 모이고 난리야. 네 가족도 왔는데?
‘…현명공 말씀입니까?’
– 아, 맞아. 현명공이라 불렀지?
영원한 푸른 하늘의 친절한 실시간 중계에 조용히 뒷목을 잡았다.
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궁금하다.
하지만 직접 보거나 들으면 얽힐 것 같아 두렵다.
‘망할.’
타니안 이 새끼야. 너 대체 거기서 뭐 하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