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15)
로판 속 공무원 615화(616/945)
대륙 종교 역사에 영원토록 남을 기도 약탈 사건.
“초목의 응답을 직접 듣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나, 본래 기도란 주의 응답을 바라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정성을 담아 하는 것. 하늘께서 친히 응답해 준 것이 독특한 일이지요.”
허나 그 희대의 약탈 사건에도 불구하고 타니안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기도를 한다고 무조건 신이 응답을 한다면 에넨은 24시간 콜센터를 운영해도 부족하다. 대륙 각지에서 억 단위의 신도들이 기도를 올릴 텐데 그걸 어떻게 다 응답해. 자동 ARS도 하루에 수천만 번, 수억 번을 돌리면 고장 날 거다.
그래서 타니안은 콘스탄티나의 응답을 듣지 못했지만 세계수 앞에서 기도를 드렸다는 것에 의의를 가졌고─
“이제 북방으로 가야겠습니다.”
“음?”
– 엉?
영원한 푸른 하늘의 본거지였던 북방으로 간다고 선언했다.
“하늘께서는 응답해 주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굳이 북방까지 가 기도를 드릴 필요는 없을 텐데요.”
– 그러게. 게다가 지금 북방으로 가면 좀 추울 텐데?
북방은 이름 그대로 대륙의 북쪽에 위치한 곳. 여름이어도 다소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곳이기에 겨울의 추위는 칼바람이나 다름없다. 악신들이 봉인되었던 혹한보다는 따뜻하나, 그건 비교 대상이 혹한이라 그런 거다.
“제가 북방에서 겨울을 보낸 적이 있어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북방의 겨울은 그곳의 원주민들도 학을 떼는 추위를 자랑합니다. 무리해서 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차기 성자가 제국 영토에서 감기라도 걸리면 난감한 일. 그렇기에 진심을 담아 타니안을 만류했다.
“괜찮습니다. 이미 겨울 삼국도 다녀왔는데 북방이라고 다르겠습니까?”
허나 타니안의 대답에 납득하고 말았다.
그건 그렇지. 이미 대륙 북동부 끄트머리를 다녀왔는데 북방이라고 못 갈 건 없지.
“게다가 아무리 하늘께서 응답해 주셨더라도 기도는 예정대로 진행해야 합니다. 다소 불경한 언행이나, 기도는 신만을 위한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정말 불경한 언행이었기에 잠시 입을 다물고 말았다.
기도는 오직 신을 위한 경배와 찬양을 위한 행위다. 그런 기도가 신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건 차기 성자여도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다.
“기도는 신도들을 위한 행위기도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굳건하고, 우리의 주께서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증거지요.”
내 침묵에 타니안은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주를 위한 기도는 조용한 곳에서 홀로 지내도 됩니다. 허나 신도들과 주민들의 심리적 위안을 위해서라면 대대적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신앙도 민심과 다를 것이 없군요.”
중요한 건 퍼포먼스라는 말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다. 세속의 국가들도 왕권과 국가의 권위가 굳건함을 과시하기 위해 대규모 축제를 여는 경우가 잦다. 그 과시가 교단으로 치면 기도라는 것 아닌가.
“북방의 대영주들에게는 제가 잘 말해두겠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사실 저희 중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지역이라 조금 긴장했었습니다.”
타니안의 너스레에 픽 웃음을 흘렸다.
타니안은 신성교국에서 온 귀빈이요, 내 아이들에게 축복을 내려준 은인이다. 이종족 보호 구역에 온 것이 조금 원망스러울지언정 타니안의 편의는 얼마든지 봐줄 수 있다.
게다가 타니안이 북방으로 가는 건 신도와 주민들을 위한 행위지 않나.
‘북방을 패싱했으면 온갖 낭설이 나왔겠지.’
만약 타니안이 북방으로 가지 않았다면 대륙 사람들은 여명 교단이 하늘을 가볍게 여긴다 생각했을 거다. 그러면 하늘의 영향을 받는 북방 유목민들은 자신들이 여전히 배척받는 중이라고 오해했을 터.
타니안은 그 불안과 초조를 방지하기 위하여 직접 움직이겠다고 선언했다. 제국의 귀족이자 북방의 관리자로서 고마운 일이다.
…
‘왜 갈 필요가 없다고 한 겁니까?’
이윽고 근원적인 의문이 들었다. 타 종교의 차기 성자마저 걱정하는 문제를, 왜 북방의 신이 스스로 방치한 거지?
– 유목민을 정주민의 시야로 이해하려고 하지마. 남들이 뭐라고 하든 불안해할 애들이 아니야.
그리고 돌아오는 답은 자신의 신도들을 향한 굳건한 신뢰였다.
– …애초에 제사장이라는 애부터가 신앙심이 없는데 뭘. 북방을 지나쳤다고 불안해할 만큼 열렬히 믿는 애들도 드문데.
아니, 신뢰가 아니라 불신이었나?
눈물이 절로 나올 것 같은 말이기에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타니안을 따라 북방까지 가지는 않았다. 이미 북방에는 바란디가 후작이라는 거물이 버티고 있으니,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충분히 타니안과 순례단을 반겨줄 수 있다.
바란디가 후작은 제국에 열셋밖에 존재하지 않는 후작 겸 영원한 푸른 하늘 신앙의 제사장. 순례단을 맞이하는데 이만큼 좋은 조건이 존재하겠나.
물론 영원한 푸른 하늘의 말처럼 우리 제사장의 신앙심은 미약하나, 정치력과 눈치는 발군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쬬카! 온김에 놀다가!”
어차피 타니안을 따라갈 생각이었어도 현명공에게 붙잡혀 못 갔겠지만.
잘 기도하고 간다며 유유히 사라지는 순례단을 배웅한 뒤, 나는 그대로 현명공에게 붙잡혀 공작성으로 끌려갔다.
귀빈이 무사히 떠났으니 나도 이만 가보겠다고, 나는 휴가 중이니 더 일할 필요가 없다고 항변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휴가즁이니 외숙모랑 노라줄쑤 잇는거아냐!?’같은 논리에 반박당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
현명공이 만들어준 특제 알코올(위스키에 브랜디 섞음)을 마시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휴가 중인 조카가 외숙모와 노는 건 이상하지 않다. 업무 중이면 붙잡을 수 없지만, 휴가 중인 백수는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 그걸 잠시 망각했다.
“히힣, 어때죠카? 마싯찌!?”
“식도가 얼얼한 게 짜릿합니다.”
“헿! 맘에 들엇쓰니 댜행이댜!”
이상하다. 방금 내 말의 어디가 마음에 들었다는 표현이었지? 가련한 식도와 위장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항의였는데?
‘내 위가 이쯤에 있었구나.’
뜨거운 식도와 위장의 위치를 느끼며 배를 매만졌다.
엑스레이도 없는 세계에서 위장의 위치를 파악하게 되다니. 현명공의 능력은 실로 경이롭다.
“그럼 한쟌더!”
연신 히죽거린 현명공은 양손에 든 위스키 병과 브랜디 병을 내 잔에 들이부었다.
환장하겠다. 방금 막 비웠는데 또 마시게 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물도 이런 속도로 마시면 죽어.
“괜찮습니다. 전 이제 그만 마셔도─”
“쫄려?”
“더 주십시오.”
취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또박또박한 한마디에 절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다른 건 다 참아도 나를 알코올에 쫀 패배자 취급하는 건 참을 수 없다.
“죠오오아! 역씨 우뤼 죠카! 대륙쩨일검!”
내 대답에 현명공은 만족스럽다는 듯 더욱 거침없이 술을 부었다.
현명공의 만행이 멈춘 건 내 잔이 표면장력을 이룰 때였다.
“외숙모님.”
“으잉? 왜에?”
“저택에는 내일 돌아가겠다고 연락하겠습니다.”
그 말에 현명공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내 어깨를 퍽퍽 두드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여어어억씨! 우뤼죠까 채고! 외숙모랑 가치해뜨는 거 보고자쟈!”
강렬한 두드림에 기껏 표면장력을 이루었던 술이 흘러넘쳐 내 손을 적셨다.
‘망할.’
이 넘치는 술이 다음날 역류할 위액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
타일글레헨 백작의 연락에 조용하던 후작령이 발칵 뒤집어졌다.
– 곧 북방으로 차기 성자가 향할 겁니다. 영원한 푸른 하늘을 향한 기도를 올릴 예정이니, 가장 거대한 신전으로 안내해 주십시오.
대륙을 휘어잡은 여명 교단의 거물이 북방까지 온다는 말. 차디찬 겨울바람을 피하여 축 늘어진 몸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사안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방문이나 이는 기회다. 차기 성자는 지난 3년 동안 아카데미에 재학하였고, 내 예비 사위인 이드라펜 후작과도 우정을 나눈 사람이라 들었다.헌데 그 이드라펜 후작이 마침 북방에 있다.
“저 역시 유목민과 함께 살아갈 자인데, 미리 겨울에 익숙해져야지요. 추울 때마다 제도로 내려가면 어찌 바란디가의 사위라 하겠습니까.”
예비 사위가 했던 말이 떠올라 코끝이 찡해졌다.
차기 성자의 친우가 내 예비 사위로서 북방에 방문한다. 그렇다면 차기 성자에게, 국적을 가리지 않는 대륙의 거물에게 좋은 인상을 심을 수 있다.
그렇기에 기회다. 남들은 결코 가질 수 없는 인맥을 가질 기회.
“하늘께서 보우하심인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제국에서는 역천자라 불리는 카간이 제국의 손에 죽고, 제사장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하늘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있든 말든 내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늘이 우리에게 관여한다면 역사 이래 최강의 전사가 전사할 리 없다. 아버지의 제사장 자리를 계승한 내가 눈치를 보며 고생했을 일도 없다. 하늘의─ 신의 가호가 없기에 그 모든 일들이 생긴 거다. 그래서 하늘을 경외하지 않았다.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이제는 가호가 따른다.’
그런데 요즘은 어떠한가. 일개 부족장인 내가 수많은 귀족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후작이 되었다. 내 딸이 황족과 결혼할 예정이다. 유목민의 신앙이었던 영원한 푸른 하늘이 여명 교단의 인정을 받았다.
이는 가호라고 할 수밖에 없다. 가호가 아니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이게 하늘의 뜻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그동안 침묵한 것은 정주민과 유목민의 대립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만일 역천자가 승리했다면 제국과 가아르 카간국은 여전히 적대 관계를 유지했을 테니.
그리고 정주민과 유목민이 하나의 울타리 안에 들어온 지금, 유목민은 정주민의 부와 문화를 전해 받으며 발전 중이다. 하늘이 전쟁이 아닌 평화로운 공존을 원했다면 이 모습을 보고 기뻐할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다. 신의 뜻을 인간이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상관없지.’
그래도 괜찮다. 추측이어도 상관없다.
이것이 우리에게 이로운 것은 사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