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17)
로판 속 공무원 617화(618/945)
바란디가 후작령 중심지에 세워진 신전.아마 현시점에서는 북방에서 가장 거대한 종교 시설.
이종족 보호 구역에서는 콘스탄티나의 상징인 세계수 앞에서 기도를 드렸기에, 이번에는 가장 거대한 영원한 푸른 하늘의 신전으로 가 기도를 올리기로 했다. 비록 최근에 만들어진 신전이라 역사와 정통성은 부족하지만 가장 거대한 신전이라는 상징성은 굳건한 곳이니.
‘독특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신전을 눈에 담자마자 그런 감상을 품게 되었다.
이 신전은 우리의 주를 섬기는 교회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신을 섬기는 장소기에 웅장하고 성스러우나, 유목민의 신앙이기에 자유분방하고 거친 모습도 간직하고 있다.
신전 곳곳에 세워진 석상, 벽에 그려진 동물의 그림, 곳곳에 걸린 뼈로 만들어진 장신구.
‘이것이 이교의 문화.’
콘스탄티나 신앙은 세계수라는 알기 쉬운 상징이 있으나, 반대로 그 세계수를 제외하면 특별한 점이 없다. 요정과 정령이라는 존재도 결국 세계수의 부속품이나 마찬가지니까.
허나 영원한 푸른 하늘 신앙은 명확한 상징이 없으되, 사소한 부분에서도 여명 교단과 다른 점을 보였다. 정주민과 유목민이 생활과 문화가 다른 것처럼.
‘교육성에서 좋아하겠어.’
아니, 어쩌면 교단실록성에서도.
문득 떠오른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교단의 역사와 문화, 교리 등을 배우고 가르치며 계승하는 것에 몰두하는 교육성. 교단의 모든 것을 기록하며 후대에 물려주는 교단실록성.그 두 부서가 여명 교단과 다른 문화를 간직한 이교를 보게 된다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
공의회 이전이었다면 학자의 호기심보다 사제의 신앙심이 앞섰을 거다. 어찌 이리도 불경한 이교의 것을 자기 앞에 들이미냐며 언짢음을 표했을 거다.
허나 현재의 교단은 이교의 존재와 긍정적 기능을 인정했다. 사제의 신앙심을 앞세워도 이교 문화를 외면할 필요가 없다.
‘조만간 북방으로 가는 출장이 잦아지겠지.’
구체적으로는 교육성과 교단실록성 소속 형제자매님들의 학술 목표의 출장이.
지금도 순례단원 중 두 부서 소속의 형제자매님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신전을 둘러보고 있다. 아마 기도가 끝나도 조금만 더 머무르다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면 안 되겠냐 부탁하실 터.
물론 그 정도 부탁은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 성지 순례는 서두를 필요가 없는 일정이니.
“오.”
이윽고 신전의 가장 안쪽에 도착하자 어떠한 석상보다도 거대한 것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바닥에 엎드린 늑대의 몸에 등을 기대어, 나른하고 고요한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장발의 여성. 마치 고고한 하늘 위에 군림하여 지상의 신도들을 보우하는 듯한 모습.
‘영원한 푸른 하늘.’
저 석상─ 아니, 성상이 유목민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영원한 푸른 하늘의 모습일 터.
비록 이교가 만든 성상이지만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색도 칠하지 않은 투박한 성상이나 지상을 굽어살피는 저 눈빛은 너무도 완벽히 표현했다.
– 콘스탄티나 여기 없어.
– 세계수는 내 집이거든. 콘스탄티나는 초목의 신이라 대륙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있어. 돌아오면 에넨의 아이들이 정성스레 기도를 올렸다고 전해줄게.
정작 그 신의 목소리는 느긋느긋하기 짝이 없었지만 말이다.
“어떻습니까? 황제 폐하께서 친히 보내주신 장인들이 열과 성을 다해 만든 성상입니다. 북방에서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자들도 전부 투입된 대작업이었지요.”
“제가 무교였다면 하늘을 섬겼을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감사한 말씀입니다.”
내 말에 바란디가 후작은 미소를 지으며 무릎을 꿇었다. 대륙에서도 손에 꼽힐 예술품으로 남을 성상을 향해.
나 역시 바란디가 후작을 따라 무릎을 꿇었다. 영원한 푸른 하늘을 향한 예를 표하기 위하여.
비록 영원한 푸른 하늘은 이곳이 아닌 세계수에 있지만.
이미 영원한 푸른 하늘은 내 기도에 응답했지만.
‘…무얼 위한 기도인가.’
순간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기도는 신만을 위한 행동이 아닌 주민들을 위한 행동이기는 한데, 없다는 걸 아는 신에게 기도를 올리니 기분이 묘했다.
북방에서의 용무는 마쳤지만 바로 떠나지는 않았다. 처음으로 북방에 발을 들인 사제로서, 처음 이교의 문화를 접한 사제로서 보다 자세한 관찰과 기록이 필요했다.
당연히 관찰과 기록은 내 역할이 아니었다. 내가 하려고 해도 자신이 하겠다며 만류하는 분들만 다섯이 넘었으니.
그렇게 나는 특정 부서에 속한 형제자매님들이 북방을 배회하는 동안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다.
“이거… 조금 당황스럽군요.”
“그, 그러게요.”
정확히는 보내려고 했다.
아인테르 형제님이 안내해 준 방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런 깜짝 선물을 받을 줄은 몰랐네요.”
얼떨떨한 눈빛으로 방을 둘러보던 알렉산드리아나 자매님은 이윽고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나도 비슷한 심정이다. 설마 아인테르 형제님이 이런 걸 준비했을 줄은 몰랐다.
[ 주 앞에서 신실한 신도들이 사랑을 맹세하며 그 자손들에게도 믿음을 물려주고자 하니, 주께서 매우 기뻐하심이라. ] [ 사랑하고 번창하라. 의지하고 지탱하라. 이는 세상의 순리요, 주의 기쁨이로다. ] [ 홀로 나아가는 건 빠르게 기뻐하는 길이요, 함께 나아가는 건 길게 기뻐하는 길이다. ]방 곳곳에 붙은 결혼과 출산과 관련된 성서의 문구.
붉음과 분홍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 촛불.
포근하고 따뜻한 2인용 침구들.
‘누가 봐도…’
누가 봐도 그렇고 그런 방이다. 어떤 의미로 구성한 방인지 뻔히 보일 정도다.
어쩐지 다른 순례단 분들은 다른 사용인들이 일대일로 안내했으면서, 왜 나와 알렉산드리아나 자매님은 동시에 안내하나 의아하기는 했다. 반박의 여지를 주지 않고 같은 방에 몰아넣기 위함이었구나.
‘너무 티가 났나?’
민망함에 괜히 입가를 매만졌다. 내가 아인테르 형제님과 바란디가 후작 영애 사이의 따뜻함을 인식한 것처럼, 아인테르 형제님도 나와 자매님의 사이를 눈치챈 것이 분명하다.
그래, 분명 그럴 거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깜짝 선물을 준비할 리가 없다.
‘동지 사이의 배려.’
픽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같은 사랑을 품고, 같은 실연을 겪어서 그런지 남의 연애에는 기이할 정도로 해박해졌다. 이제는 실연 동지의 새로운 사랑까지 챙겨줄 정도로.
진작에 이런 눈치와 배려를 가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다섯 명 전부가 상향 평준화 상태라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였을까?
‘덕분에 지금의 인연이 있는 거지만.’
그리고 당시의 실연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지금의 인연을 만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당시의 우리는 주께서 안배하시고 보우하심이겠지.
그런 결론을 내리고 자매님을 돌아봤다.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도 내 시선을 피하지 않는 자매님이 보였다.
“친우의 선물을 사양하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요.”
“그, 그렇죠. 심지어 황족의 선물을 추기경이 거절하면 괜한 얘기가 나올 거예요.”
내 말에 자매님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아직 여러 국가를 순례해야 하는 상황이니, 성법은 잊지 말고 사용하자.
***
현명공에게 붙잡혀 광란의 알코올 파티를 즐긴 이후로 며칠 정도는 조용히 저택에 누워있었다.
애초에 불리한 싸움이었다. 내가 아무리 대륙 제일 검이니 뭐니 해도 상대는 현명공이다. 무려 체내의 알코올을 임의로 날려버려 취기를 리셋할 수 있는 괴물이다.
그러니 아무리 퍼마셔봤자 의미가 없다. 내 주량이 더 많으면 뭐 하냐고, 현명공의 주량은 수시로 리셋되는데.
“그으으윽…”
아직도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는 슬슬 일어나야 할 때다. 이 아빠가 침대에만 누워있으면 우리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걱정하고 우울해할 거다. 아비로서 그런 슬픈 현실은 인정할 수 없다.
‘망할.’
허나 그 의지로도 숙취는 이길 수 없었다.
미치겠다.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거지? 일단 1주일 동안 마실 물보다는 많이 마신 것 같은데.
‘나도 마법을 배워야 하나.’
현명공의 고유 마법인 알코올 분해술. 그 마법만 배우면 이렇게 머리를 감싸매고 끙끙거릴 일도 없다.
하지만 그걸 배우면 내 마음속 존엄성이 무너질 것 같다. 숙취 해소를 위해 배우는 마법이라니. 마종공의 부군이 처음으로 배우는 마법이 숙취 해소 마법이라니.
‘지나가다 마법이 날아와도 할 말이 없지.’
우리 마종공 각하의 명예를 더럽히는 악독한 부군이라며 테러가 날아올 수도 있다. 솔직히 그런 테러면 나도 차마 반항하지 못한 채 겸허히 받아들일 것 같고.
– 끼이잉…
“티티?”
그렇게 한숨을 내쉬는 사이, 문이 스르륵 열리며 티티가 들어왔다.
이제는 혼자서 문도 열 정도로 자란 티티의 모습에 괜히 웃음이 나왔다. 새끼였을 때는 문 앞에서 낑낑거리는 게 고작인 녀석이었지. 덕분에 문 한구석에 티티가 오고 갈 수 있는 개구멍을 만들었을 정도다.
“걱정해 주는 거야?”
– 멍!
꼬리를 흔들며 나에게 다가온 티티는 침대 위에 앞발을 올린 채 내 손을 핥았다.
감동했다. 주인이 방에서 끙끙거려서 보러 온 거구나.
“압- 바-”
이윽고 아장아장 걷는 페디,
“아우! 아우우!”
“뺘아!”
“뺘부우!”
저택을 기어다닐 수 있는 세쌍둥이가 나란히 열린 문 사이로 들어왔다.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아빠가 안 보여서 아빠를 찾으러 오는 아이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래. 아빠 일어날게.”
흐뭇하게 그 광경을 보다 조심스레 침대에서 내려왔다.
아이들이 직접 와줬는데 계속 앉아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오랜만에 저택을 누비며 같이 놀아주는 게 마땅하다.
오늘은 머리가 깨지더라도 무리 좀 하자.
정말 머리를 한 대 후려맞은 듯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 이드라펜 후작이 차기 성자와 알렉산드리아나 추기경을 위한 방을 마련했습니다. 역시 친우라 그런지 세심하게 살피더군요.
타니안과 순례단을 대접 중인 바란디가 후작의 연락.
평범하게 정보 공유를 하던 중, 무려 아인테르가 타니안과 알렉산드리아나 추기경을 같은 방에 밀어넣었다는 정보까지 알게 되었다.
‘그게 뭔.’
혼란스럽다. 타니안이 여인과 같은 방을 쓰는 것도, 그것을 아인테르가 주도한 것도 믿을 수 없다.
대체 무슨 일일까. 내가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터진 걸까.
– 그리고 차기 성자는 다음 성지 순례 장소로 아르메인 왕국을─
그 뒤로 이어진 바란디가 후작의 말에는 기계적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자기 짝을 찾은 아인테르가 타니안에게도 짝을 붙여주는 듯한 상황.아카데미 시절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