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18)
로판 속 공무원 618화(619/945)
이종족 보호 구역에서 콘스탄티나에게 기도를 올리고, 북방에서 솔로가 아님을 증명한 타니안은 다시 제도로 돌아왔다.
순례단이 제국에 입국하였을 때 정중한 환영을 받은 만큼 출국할 때도 배웅을 받는 것이 도리니까.
“제국에서의 순례길은 어떠했소? 혹시 부족한 점은 없었소?”
“주의 보우하심과 황제 폐하의 배려 덕에 더할 나위 없는 순례길이었습니다.”
“하하, 그거 참 다행인 일이구려.”
다만 황족인 아인테르가 나섰던 환영식과 달리 배웅식은 황제가 직접 나섰다.
타니안은 작년 연말에 제도에서 직접 예배를 진행하였고, 제국 영토에 존재하는 두 이교의 성지에서 기도까지 올려주었다. 황제 입장에서는 타니안이 제국의 권위와 안정성을 높여주고 가는 상황이지 않나. 그에 걸맞은 감사와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황제는 애지중지하는 황태녀와 함께 나옴으로써 극강의 성의를 표시했다.
“황태녀. 제국의 둘도 없을 친우들이 떠나는 것이니 같이 인사하자꾸나.”
“웅!”
황제의 품에 폭 안겨있던 황태녀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황제의 말에 한쪽 손을 위풍당당히 들어 올렸다.
“쟐가! 다음에두 놀러와!”
품위나 예의와는 거리가 먼 인사. 허나 순례단 중 그 누구도 불쾌해하거나 어색해하지 않았다.
“저희 또한 황태녀 전하를 다시 뵐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그저 아직 어리고 어린아이의 해맑고 순수한 인사에 기뻐할 뿐.
훈훈한 광경이다. 본래 세속의 권력과 교회의 권력은 충돌하기 마련이지만, 크펠로펜 제국은 에이만카 대제 때부터 여명 교단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덕분에 미니 황태녀와 차기 성자가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것이 가능한 거겠지.
“전하의 앞날에 주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우웅?”
잠시 황태녀를 바라보던 타니안은 옅은 미소와 함께 황태녀의 볼을 콕 눌렀다.
감히 지엄한 황족의 몸─ 그것도 황위 계승 서열 1위의 몸에 무단으로 손을 댄 참사였으나, 황제는 노하기는커녕 미소를 지으며 기뻐했다.
손을 댄 상대가 차기 성자였으니까. 그것도 황태녀에게 축복을 빌어주기 위한 접촉이었으니까.
“마지막까지 고맙소.”
“교단의 둘도 없을 친우를 위해 당연한 일입니다.”
황제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자 황제는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고문 형제님. 형제님도 언젠가는 다시 뵐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이윽고 나에게 다가온 타니안은 악수를 건네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아, 에리히 형제님이나 루이제 자매님께는 대신 안부 좀 전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타니안은 몸을 돌렸다.
지금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작년 대성당에서, 얼마 전 이종족 보호 구역에서 몇 번이나 대화를 나누었다. 이제 와서 미련을 가질 것은 없다.
‘…못 만날 리가 없지.’
게다가 타니안은 차기 성자요, 나는 살아있는 복자다. 종교적 이벤트가 터지면 반드시 만날 수밖에 없는 조합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년에 다시 만나도 이상하지 않다.
타니안이 출국한 이후로 몇 주 정도가 흘렀다.
우리의 인생에 비하면 몇 주 따위는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나, 그 몇 주 사이에 어마어마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압- 빠!”
“그래! 아빠 여깄어!”
“압빠! 압빠!”
연신 아빠를 부르며 아장아장 걸어오는 마리아.
“우부으…!”
“옳지, 우리 세실리아도 조금만 힘내자!”
아직 걷는 것에 미숙하지만, 자기 힘으로 슝슝 걸어 다니는 언니를 보며 의지를 불태우는 세실리아.
“하우웅…”
세실리아의 뒤쪽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철퍽 주저앉은 채 하품을 하는 카틀레아까지.
고작 몇 주 사이에 세쌍둥이가 자기 힘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짜기라도 한 듯 비슷한 시기에.
‘천국인가.’
아기 천사들이 귀를 파닥이며 아장아장 돌아다니는 모습은 실로 천국의 광경이었다.
비록 능숙하게 걷는 아이, 다소 미숙한 아이, 걷는 것보다 자는 게 더 중요한 아이로 나뉘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나. 결국 걷기 시작했다는 건 매한가지인데.
“압- 빠아!”
“어이쿠, 벌써 여기까지 왔네.”
그 와중에 나에게 일직선으로 걸어온 마리아가 내 품에 안기며 방실방실 웃었다.
역시 장녀라 그런지 배우는 것도 빨라.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셋 중 제일이잖아.
“잘했어요. 우리 장녀.”
기특한 마리아의 볼에 살짝 입맞춤을 하자 마리아는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부아!”
그러자 저 뒤에서 조심조심 걸어오던 세실리아가 눈에 불을 켜고 기어왔다.
훌륭한 선택이다. 걸어서는 도착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자신 있는 분야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 아닌가.
“세실리아도 고생 많았어.”
“우웅!”
세실리아의 볼에도 입을 맞추자 우리 차녀도 헤실헤실 웃기 시작했다.
자, 이제 삼녀까지 오… 면…?
“…자니?”
분명 깨어있었던 카틀레아가 어느새 바닥에 누워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 카틀레아를 보다가 조심스레 마리아와 세실리아를 내려두고, 새근새근 수면 중인 카틀레아를 침대에 올려두었다.
지금은 아빠의 품보다 수면을 택했지만, 잠에서 깨면 밝은 얼굴로 아빠에게 걸어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우리 딸들은 전부 아빠를 좋아하니까.
“압바! 압바!”
“아… 부아!”
그리고 졸지에 바닥에 방치된 마리아와 세실리아는 나에게 양팔을 뻗으며 옹알거렸다. 마치 다시 안아달라는 것처럼.
얼마든지 다시 안아줄 수 있기에 팔을 뻗으려 했으나,
‘이런.’
때마침 품 속의 통신구가 빛을 내뿜어서 팔을 거두었다.
내가 팔을 거두자 뾰로통해진 딸들 앞에 앉은 채 통신구를 꺼냈다. 어떤 용무든 간에 딸들과의 시간보다 위에 둘 수는 없으나 무슨 용무인지는 알아둬야지.
– 칼이니…?
“어머니?”
허나 가벼운 마음으로 받았던 통신구 너머로 초췌한 안색의 어머니가 보였다.
– 으에에에에에엥!”
조금만 더 자라면 천하를 좌시할 대장부의 울음소리와 함께.
– …….
“…….”
– …….
“그, 오랜만에 테레사를 보러 가도 되겠습니까?”
– 그럼. 물론이지.
어머니는 연락을 건 용무를 말하지 않았지만 상관없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이 있는 법이니.
‘힘드시구나.’
참고 참다 장남에게 구조 요청을 보낼 정도로.
어렴풋이 보이는 어머니의 다크서클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더 놀아 달라고 눈을 반짝이는 딸들을 떼어놓는 건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이 아빠도 당연히 놀아주고 싶은데, 너희 할머니가 SOS를 날리니 어쩔 수가 없어.
물론 할머니에게 손녀들을 보여줄 겸 같이 가는 방법도 있으나, 육아로 고통받는 어머니에게 다른 아기들을 데려가는 건 좀 그렇지.
그래서 대세쌍둥이 결전 병기인 전략형 장생이를 제물로 바쳤다.
“아아아아악! 왜! 왜 또 나인 거냐아아아아!”
나에게 쏠리던 관심을 순식간에 가져간 천상계 탱커 장생이.
나와 어머니를 위해 희생한 장생이의 절규는 절대 잊지 않으리라. 네가 있어 우리가 행복하다.
“다들 오랜만이다.”
그렇게 한 성수의 희생 덕에 무사히 타일글레헨에 도착했다. 당분간 장생이 밥은 좋은 것만 먹여야겠어.
“가, 가주님!”
“아이고, 가주님! 왜 이제 오셨습니까!”
그리고 내 방문에 가신들과 사용인들이 처절한 모습으로 달려들었다.
조금 쫄았다. 나에게 위해를 가할 사람들은 아니나, 풍기는 분위기가 좀비와 인간 사이의 어디쯤이었으니까.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러는 거냐.”
“그게… 그것이…”
겨우 반좀비들을 진정시키고 묻자 가신들은 입만 달싹였고, 사용인들은 조용히 바닥만 바라봤다.
“테레사 때문에?”
내 질문에 가신들이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테레사는 현 가주인 내 동생이자 아직 살아계시는 전대 가주 부부의 늦둥이 딸. 크라시우스 가문을 섬기는 가신들로서는 차마 ‘테레사 아가씨 때문에 미치겠습니다!’ 라는 말을 할 수 없었을 터.
그렇기에 더욱 걱정이다. 가문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만큼 테레사가 아무리 피곤하게 굴어도 웃으며 달래줄 사람들이다. 내 앞에서 피곤한 티를 낼 사람들이 아니다. 헌데 그런 사람들이 울부짖으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애초에 테레사는 생후 반년도 안 된 아기잖아. 대체 어떻게 가신들을 피곤하게 하는 거야.
“…아가씨께서는 실로 크라시우스 가문의 영애다운 분입니다. 아마 가주님과 에리히 도련님이 걸어온 길을 그대로 걸으시겠지요.”
눈치를 보던 시종장의 우회적 보고에 쓴웃음을 지었다.
좋게 좋게 포장했지만 결국 넘쳐나는 체력과 우렁찬 울음소리로 인해 가신들과 사용인들의 멘탈을 가루로 만들고 있다는 의미지 않나. 정말 어지간히 잘 우는 모양이다.
…
잠깐만.
“그러고 보니 유모는? 유모라면 테레사도 잘 보살필 텐데?”
지금 보니 가신들 사이에 유모가 보이지 않는다. 유모 겸 시녀장이라 가신들이 단체 행동을 하면 반드시 같이 올 수밖에 없는 사람임에도.
“시녀장은 큰 마님과 함께 아가씨를 돌보는 중입니다… 만…”
다시 눈치를 살핀 시종장은 짙은 한숨과 함께 마저 말을 이었다.
“큰 마님과 시녀장이 하루 종일 아가씨를 돌봐서 이 정도인 겁니다.”
상상도 못 한 정보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우리 형제를 기른 육아 경력자 유모, 딸을 향한 애정이 가득할 어머니가 손을 잡았는데도 개판이 났다고?
“그럼 아버지는?”
“근래 안 보이신 지 제법 됐습니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비밀 장소로 도망 치신 것 같다.
‘미래의 고통보다 현재의 안위를 택하셨구나.’
도대체 얼마나 현재가 지옥이었으면…
“나도 돕도록 하지. 하나뿐인 여동생에게 큰오빠 얼굴은 자주 보이는 게 좋을 테니.”
“감사… 감사합니다…”
내 말에 시종장은 물론 다른 가신들과 사용인들도 허리를 숙였다.
이쯤되면 무섭다. 우리 막둥이, 대체 무슨 짓을 하면서 지낸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