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19)
로판 속 공무원 619화(620/945)
용맹한 무인인 아버지가 도주하고, 그나마 남아있는 어머니와 유모의 연합은 위기에 몰린 상황.
사태가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기에 황급히 테레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쩐지 나도 육아 중인 걸 아는 어머니가 급히 SOS를 날리더라니.
“어머니.”
그렇게 빠른 걸음으로 테레사의 방에 도착했고,
“왔, 니?”
작은 침대 옆에 축 늘어진 어머니와 유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너무 애잔한 모습이라 흠칫하고 말았다. 상체만 겨우 침대에 기댄 두 분은 귀족의 체면을 챙길 여유조차 없었는지 바닥에 주저앉은 모습이었으니까.
아니, 자세히 보니 유모는 아예 눈까지 감고 있었다. 짧게나마 수면을 취하는 것 같지만 사실상 기절이리라.
“괜찮으십니까?”
빠르게 방 내부를 훑은 후 조심스레 어머니께 다가갔다.
두 분이 피로에 절어있든 말든 곤히 자고 있는 테레사. 저 작은 아이의 수면을 대가로 유모가 기절에 이르렀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기에 차마 큰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만약 나 때문에 테레사가 깨서 유모까지 강제 기상을 한다? 앞으로 유모를 볼 낯이 없잖아.
“든든한 장남이 와서 그런지 괜찮구나.”
아무튼 내 말에 어머니는 희미한, 아주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테레사는 한 번 잠들면 주변이 시끄러워도 잘 잔단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지.”
정말 다행인 말이기에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확실히 테레사는 주변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잘 자는 아이였다. 주변에서 아무리 대화를 해도, 어른들이 볼을 콕콕 찔러도 인상만 찌푸리고 마는 아이였으니까. 에리히의 목소리에만 귀신처럼 반응할 뿐, 한 번 자면 자기가 일어나고 싶을 때만 일어나는 아이였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내 기억 속 테레사와 현재의 테레사는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인데, 어쩌다 우리 막둥이는 타일글레헨을 뒤엎은 작은 악마가 되어버린 건가.
‘대체 어쩌다가.’
일단 어머니의 말을 믿고 테레사의 볼을 매만졌다.
‘잘 자네.’
코만 살짝 찡긋거리고 여전히 잘 자고 있다.
“자다가 깨지도 않으면 피곤할 일도 적지 않습니까?”
그런 테레사를 보다가 슬쩍 어머니께 물었다.
아기를 기르는 과정에서 힘든 일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그중 가장 큰 고난은 작은 외부적 요인에도 잠에서 깨는 점이다. 그러니 아기가 잠만 푹 자면 고난의 절반은 사라지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테레사가 많이 활발하더구나.”
내 의문에 어머니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잘 때는 천사지만, 깨어있을 때는 전사가 따로 없었지.”
차마 악마라고 표현하지 않은 건 어머니의 굳건한 이성과 애정 덕분이리라.
“배고프면 울고, 볼 일을 보면 울고, 엄마나 아빠가 보고 싶으면 울더구나. 물론 그건 당연한 일이니 기꺼이 받아들였단다.”
이어지는 어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움직이지 못하는 아기가 배가 고파서, 엉덩이가 축축해서 우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부모의 자격이 없는 거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모의 자격과 의지를 듬뿍 가지신 분들. 테레사가 원한다면 유니콘의 모유와 세계수 이파리 기저귀도 구해다 주실 분들이다.
“그런데… 너무 자주 울었어…”
잠시 입을 다문 어머니는 작게 몸을 떠셨다. 마치 지금까지 겪은 고난과 재앙을 회상하는 것처럼.
안타깝다. 어머니가 출산 경험은 세 번이지만 육아는 처음인 초보인데. 초보에게 대체 어떤 육아 난이도가 부여된 거냐고.
“테레사는 호기심 많은 성품으로 태어난 아이란다. 조금만 자라면 건강하고 활기찬 아이가 될 테니 기꺼운 일이지만, 지금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잖니.”
“예, 뭐… 아무래도 막 태어난 아기는 다 그렇지요.”
그래도 감정을 추스른 어머니는 다시 입을 여셨고,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아기가 우는 근원적 이유는 결국 자기 힘으로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테레사가 호기심 많은 성품을 타고났다면 기어다니지도 못하는 이 시기가 고역일─
“복도에서 걸음 소리만 나도 울고, 문이 열려도 울고, 창문 밖에서 눈이 내려도 울고, 내가 새 옷을 입고 와도 울고, 빌리가 조금만 수염을 길러도 울고, 기저귀가 바뀌면 울고…”
?
“예?”
“전날과 다른 시녀가 들어오면 울고, 같은 시녀라도 복장이 다르면 울고, 옷에서 다른 향기가 나면 울고, 방 청소 시간이 길어지면 울고…”
“아니, 어머니, 그게 대체.”
“최근에는 세라와 왔던 에리히가 제노비아와 함께 오니 울더구나.”
정신이 아득해지는 말이라 입만 뻐끔거리고 말았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옷깃만 스쳐도 돌연사한다는 밈이 있는 개복치마저 그 정도로 예민하지는 않을 거다. 어머니의 말 중 절반 정도만 사실이라도 테레사는 모든 일상에 울음을 터뜨린다는 말이지 않나.
‘지옥인가.’
어느새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럴 일은 없지만, 절대 그래서도 안 되지만 내 아이가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내내 울어? 심지어 배가 고프거나 볼 일을 봤다는 명확한 이유도 없어서 달래지도 못해?
‘지옥이야.’
이 세상에는 있어서 안 될 지옥이다.
어머니의 설명─ 이라는 이름의 한탄을 들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테레사는 어머니의 말처럼 호기심이 넘치는 아이다. 이것저것 만지작거리고, 잠깐 한 눈을 팔면 입에 넣으려 하고, 신기한 게 보이면 저게 뭐냐고 묻고, 물체를 설명해 주면 왜 저렇게 생긴 거냐 물을 그런 아이.
딱히 특이한 현상은 아니다. 조용하고 수줍은 아이가 있다면 활발하고 기운 넘치는 아이도 있는 법. 테레사는 크라시우스 가문의 아이답게 후자로 태어난 것에 불과하다.
다만 그 어마어마한 활동력과 호기심이 자라는 과정에서 생긴 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만지고 싶은데 만지지를 못하지.’
눈을 뜨면 보이는 물건들, 쉴 새 없이 방에 들어오는 사람들. 테레사 입장에서는 얼마나 만지고 싶고 같이 놀고 싶을까.
그러나 테레사는 걷기는커녕 기어다니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가던 인내와 호기심이 결국 임계점에 이르렀고, 사소한 것에도 울음을 터뜨리며 소란을 피우게 된 것이다.
‘기어다니기만 하면 해결될 일인데.’
사실 해결 방안은 쉽다. 돌아다니지 못해서 쌓인 울분이라면 돌아다니는 걸로 풀 수 있다. 테레사가 스스로 기어다닐 수만 있다면 가득 쌓인 호기심을 알아서 분출할 수 있다.
문제는 테레사가 기어다니려면 몇 개월 정도 더 지나야 한다는 거다. 테레사가 성질이 급해 빨리 기어다닌다고 쳐도 최소 3, 4개월이다.
‘버틸 수 있을까?’
다크서클이 보이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침을 삼켰다.
가능할까? 타일글레헨 전체가 뒤집어진 이 참사를 어머니가 3, 4개월이나 버틸 수 있는 건가? 도중에 과로로 쓰러지시는 거 아냐?
“우으으응…”
“어?”
“아, 아아…”
진지하게 고민하던 중, 옆에서 작은 웅얼거림이 들렸다.
애석하게도 나만 들은 것이 아닌지 어머니는 약간의 절망이 깃든 탄식을 흘리셨다.
“아우…”
잘만 자던 테레사가 갑자기 눈을 떴다.
어머니를 닮은 푸른 빛의 눈동자가 흉흉… 아니, 맑게 반짝였다.
***
테레사는 한 번 잠들면 아무리 짧아도 2시간은 잔다. 그동안 수많은 눈물과 땀으로 쌓아 올린 경험이니 확신할 수 있었다.
덕분에 아침부터 고생하던 라우라도 테레사가 잠들자마자 눈을 감았다. 시녀장의 업무도 다른 노련한 시녀들에게 분배했을 정도니 얼마나 피곤했을까. 차마 방에 가서 자라는 말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두었다.
헌데 겨우 잠든 테레사가 고작 1시간 만에 눈을 떴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아직 나도 라우라도 체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반면 막 잠에서 깬 테레사는 그 어떠한 때보다 예민하고 잘 운다.
“부인. 정말 괜찮겠소? 테레사에 대한 애정은 부인이나 나나 비슷하지만, 체력의 차이는 어쩔 수 없소. 내가 빠지면 그만큼 부인의 부담만 커지오.”
“괜찮아요, 빌리. 그동안 빌리는 잠도 제대로 못 잤잖아요. 며칠이라도 푹 쉬고 와요.”
문득 며칠 전, 빌리에게 했던 말이 후회가 됐다.
테레사가 울 때마다 가장 먼저 달려가 다독였던 빌리. 점점 피곤해하는 것이 눈에 보여 잠시 놓아줬고, 내 확답을 들은 빌리는 가신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도망칠 정도였다. 아마 빌리에게 휴식을 주지 않았다면 몇 주 내에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내 선택은 옳았다고 믿으나, 테레사가 그동안의 수면 주기를 깨버렸다. 이러면 빌리의 빈자리가 더더욱 커진다.
“우리 막둥이. 오빠 오랜만에 보지?”
이 참사를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칼이 막 눈을 뜬 테레사를 품에 안았다.
“좀 더 코오- 자지 왜 벌써 일어났어.”
그렇게 말한 칼은 테레사의 볼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아- 우우-?”
그런 칼을 바라보던 테레사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우으으…”
오랜만에 보는 칼이 낯선지 울먹이기 시작했다.
“어이쿠. 오랜만에 보는 오빠 앞에서 울면 슬픈데.”
하지만 칼은 초조해하지 않고 여전히 미소를 머금었다. 울먹이는 테레사를 토닥이고, 방을 돌아다니며 방 안의 가구, 창문 밖의 풍경을 테레사에게 보여주었다.
“우으…?”
그러자 테레사는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하지만, 코를 훌쩍이며 눈을 깜빡였다.
‘세상에.’
놀랍다. 테레사가 한 번 울먹이면 무조건 울음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울음을 터뜨리는 건 절대 막을 수 없었다.
게다가 우리도 칼처럼 방을 돌아다니며 테레사의 관심과 흥미를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칼 같은 성과는 얻지 못했는데.
“아, 바닥도 만지고 싶니?”
바닥에 털썩 주저 앉은 칼은 테레사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그 옆에 자연스레 누웠다.
“아- 우!”
포근한 침대가 아닌 딱딱한 바닥에 누운 테레사.
그러나 테레사는 심통을 부리기는커녕 밝게 웃었다.
이걸 원했다는 것처럼 환하게 웃었다.
‘대단해.’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운 감정까지 들었다. 칼은 우리가 몇 개월이나 달래지 못한 테레사를 한 번에 달랬구나.
이게 다섯 아이를 기르는 아버지의 능력인 건가?
***
바닥에 누운 채 꺄르르 웃는 테레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게 되네.’
그동안 부모님과 유모가 테레사를 지극정성으로 대했음에도 달래지 못했다면, 기존과 다른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는 뜻. 그렇기에 부모님이 절대 하지 않았을 야생의 행동을 했다.
그리고 그 뒤틀린 발상이 한 번에 먹혔다.우리 막둥이, 생각보다 많이 거칠고 터프한 성격이구나.
이 큰오빠는 조금 놀랐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