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20)
로판 속 공무원 620화(621/945)
어렴풋이 들리는 소음 때문에 눈이 떠졌다. 니아가 방이라도 정리하고 있는 건가?
그래도 조금이나마 눈을 붙여서 그런지 아까보다는 확실하게 피로가 가셨다. 이 정도면 밤이 될 때까지 여차저차 버틸 수 있다.
밤이 되면 테레사도 낮잠 수준이 아닌 일반적인 잠을 잔다. 즉 아침이 될 때까지 테레사가 울 일이 없다는 의미니, 하루 종일 소모한 기력을 최대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다.
“아- 우-!”
‘어?’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몸을 일으키려던 찰나, 들려서는 안 될 소리가 들렸다.
분명 테레사의 목소리다. 아직 자고 있어야 할 테레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째서?’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며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테레사가 벌써 깨어나면 곤란하다. 만약을 대비해서 나와 니아가 번갈아 자기로 한 건데, 벌써 테레사가 깨어있다면 니아가 잘 시간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전대 가주님의 부재로 육아 부담이 극심해진 니아다. 짧은 낮잠조차 취하지 못한다면 쓰러질 수 있, 는…?
“…으응?”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마자 머리가 굳고 말았다.
“아우! 우우우!”
침대에 누워있지 않고 애꿎은 곳에 있는 테레사.
“더 빨리 가달라고?”
어느새 제도에서 타일글레헨까지 온 칼.
둘 다 당혹스럽고 얼떨떨한 상황이지만,
“아- 우!”
“우리 막둥이가 원하면 그래야지.”
배 위에 테레사를 태운 칼이 방 구석구석을 누비는 것보다는 덜 당혹스러웠다.
“슈우웅!”
“우우!”
그것도 누운 상태로.
도저히 머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광경이라 멍하니 남매를 바라봤다. 툭하면 우는 테레사가 방긋방긋 웃는 것도, 방 전체를 자신의 옷으로 닦을 것처럼 돌아다니는 칼도 이해할 수가 없다.
“라우라.”
“니아?”
어깨를 톡톡 치는 감각 덕분에 겨우 정신이 돌아왔다.
“피로는 좀 풀렸어?”
니아의 말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피로가 조금 풀리기는 했다. 확실히 풀리기는 했는데…
“이게 무슨 상황이야?”
육체의 피로가 풀린 대신 정신의 피로가 쌓일 것만 같다.
아무리 칼 입장에서 테레사가 늦둥이 여동생이라지만, 칼은 현직 제국백이자 장관이다. 그 체면과 권위를 생각하면 저렇게 등으로 방바닥을 닦고 있어서는 안 된다.
“슈우우우웅!”
“아우우!”
그 와중에 왜 저렇게 빠른 거야. 몇 초 전에는 창문 쪽에 있었으면서 언제 문 쪽으로 간 거지?
“큰오빠가 자주 오지 못한 게 미안해서, 이참에 잔뜩 놀아주고 간다고 했어.”
정작 두 남매의 친모인 니아는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아니, 자세히 보니 흐뭇함을 넘어 감격에 젖은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눈망울이 촉촉한 것이 감동해도 너무 감동한 모양이다.
“동생을 위해 저렇게 헌신하다니. 얼마나 멋진 일이니.”
슬며시 눈가를 닦는 니아의 말에 다시 칼과 테레사를 쳐다봤다.
“우- 아-!”
“이것보다 빨리는 조금 힘든─”
“우으으…!”
“한계 돌파!”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지만 하나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 테레사가 칼의 품에서는 해맑고 천진난만한 아기 천사라는 걸.
하루의 절반을 우는 테레사가 칼의 품에서는 웃기만 하는 아이라는 걸.
‘참된 가주.’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감정이 치솟았다. 동생을 위해 제 몸을 방바닥에 던지고, 울보 동생을 웃게 만드는 오라비. 그런 사람이 참된 가주가 아니라면 누가 참된 가주일까. 어떤 사람을 가문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 아들처럼 키운 칼이 훌륭한 오라비이자 가주라는 현실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세월이 지나며 어릴 때와는 다른 모습도 보이는 칼이지만, 선량한 성품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어떤 직책을 가져도 칼은 칼이구나.’
잠시나마 칼의 체면이 손상되지는 않을까, 권위가 떨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한 내가 바보 같았다.
찬란한 명성과 직책도 칼의 본질을 가릴 수는 없다. 내가 어릴 때부터 지켜온 칼은 가족을 사랑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아이였으니까. 칼에게는 여동생을 위한 저 행동이 지극히 당연한 상식인 거다.
“이대로 복도까지 갈까?”
“우- 아!”
그렇게 니아처럼 감격에 젖어있는 사이, 칼이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버렸다. 누워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
“칼!”
“가주님!”
뒤늦게 나와 니아도 복도로 뛰쳐나갔다.
큰오빠가 여동생과 놀아주는 건 흐뭇하고 아름다운 광경이나, 모든 가신들과 사용인들에게 당당히 보여줄 만한 광경은 아니다. 성심성의껏 섬겨야 하는 영주가 등으로 기어다니는 걸 보는 가신들의 심정은 대체 어떻겠는가.
“가, 각하!?”
“아니, 어째서 누워 계십─ 각하! 일단 멈춰주십시오! 누워서 이동하시는데 왜 그리 빠르신 겁니까!”
이미 몇몇 가신들이 칼과 마주쳤는지 비명이나 마찬가지인 목소리가 들렸다.
***
아기를 돌볼 때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제1원칙이 존재한다.
그것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어떻든, 아기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걸 인지하고 받아들여야 진정으로 아기와 교감을 나눌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이론이 아닌 현실이다. 제국백이자 장관인 내가 아이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기어다니자 아이들은 나를 진심으로 따랐다. 티티와 성수들에게는 종의 차이 때문에 밀렸으나, 인간 중에서는 내가 제일이다.
그렇기에 테레사도 진심으로 대했다. 호기심 넘치는 아이를 품에 안고 이곳저곳 돌아다녔으며, 언젠가 기어다닐 테레사의 눈높이에 맞춰 내 배에 올린 채 바닥을 기어다녔다.
‘오랜만에 등 근육도 쓰네.’
솔직히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테레사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만족스러웠다. 어른들의 품에 안긴 높은 눈높이가 아닌, 바닥과 가까운 낮은 눈높이. 테레사가 언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었겠나.
“각하! 부디 품위를…!”
“테레사가 웃고 있는데 내 품위가 중요한가?”
집사장의 외침에 단호히 대답하자 집사장은 거짓말같이 입을 다물었다.
이미 테레사에게 몇 개월 동안 시달린 집사장이다. 머리로는 제국백의 일탈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겠으나, 가슴으로는 이 상황도 나쁘지 않다 여길 터.
“…그럼 적어도 이곳에만 머물러 주십시오. 다른 층으로도 가시면 사용인들이─”
“그건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서.”
“가, 각하!”
집사장의 애원을 뒤로하고 계단 쪽으로 향했다.
허나 어쩔 수 없다. 집사장에게 한 말처럼 어디에서 돌아다니느냐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테레사가 정하는 거지.
‘내가 애들 눈치를 얼마나 잘 보는데.’
미세한 눈빛, 미약한 고갯짓, 아기자기한 손짓. 그 세 가지만으로 아이들이 원하는 것, 가고 싶은 곳을 파악하는 스페셜리스트가 나다. 아이 다섯을 키우며 쌓은 노하우는 결코 가볍지 않아.
그래서 테레사가 관심을 가지는 곳으로 망설임 없이 이동하고 있다. 설령 그 끝에 계단이 있고, 사용인들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치욕은 찰나지만 동생의 웃음은 영원할지니.
“아- 우-!”
다행히 테레사는 내 배에 올라탄 이후로 계속 웃고 있었다.
실로 다행인 일이다.
평생 쓸 등 근육은 오늘 다 쓴 것 같다.
“아우!”
그래도 테레사가 좋아하는 걸 보니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어떠한 계단과 문도 우리의 질주를 막을 수는 없었다.
‘깨끗하네.’
그리고 묘하게 반짝이는 복도를 보자 쓴웃음이 나왔다.
내가 하도 아이들과 함께 저택을 굴러다녀서 그런지, 보다 못한 트릭시가 내 옷에 마법을 걸어주었다. 본인의 머리카락에 걸린 마법처럼 지나간 곳의 먼지를 깨끗이 없애주는 기적의 마법을.
덕분에 내가 등으로 쓸고 다닌 부분은 다른 곳들보다 깔끔했다. 청소기 성능 확실해.
“아우… 우…”
“졸리니?”
그렇게 평범하게 테레사의 방까지 걸어가던 중, 품에 안겨있던 테레사가 작게 하품을 했다.
몇 시간 동안 알차게 논 보람이 있었다. 역시 아이를 재우는 데는 열심히 놀아주는 게 최고야.
“잘 자렴. 우리 막둥이.”
부드럽게 테레사의 볼을 쓰다듬어주자 테레사는 몇 번 정도 눈을 깜빡이더니 스르르 눈을 감았다.
‘성이 뒤집어질 만하네.’
테레사가 완전히 잠든 걸 확인한 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다섯 아이를 위해 개처럼 기어다니고, 온갖 수모와 고통을 감수한 나조차 몇 시간 동안 구른 끝에 테레사를 웃게 할 수 있었다. 평범한 마음가짐으로 테레사를 돌봤다면 당연히 재앙이 닥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부모님과 유모, 다른 가신들에게 나 정도 되는 양육을 바랄 수는 없다. 나는 체력과 나이가 받쳐져서 이 짓이 가능한 거니까.
‘이를 어쩐다.’
고민 된다. 테레사가 당장 내일부터라도 기어다닐 수 있다면 이 짓은 멈춰도 된다. 하지만 테레사가 기어다니려면 최소 3, 4개월은 지나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매일 성에 와서 테레사와 놀아줄 수는 없다. 페디는 황태녀와 티티, 세쌍둥이는 장생이가 있다지만… 프리드리히는 테레사처럼 기어다니지 못하는 나이다. 동생을 위해 아들을 포기하는 건 좀.
‘저택으로 데려가야 하나?’
차라리 테레사도 저택에서 지낸다면 매일 놀아줄 수 있다. 내 아이들과 놀아주는 김에 같이 돌봐주면 충분하다.
하지만 그건 부모님께 못 할 짓이다. 타인의 손이 아닌 당신들의 손으로 테레사를 기르고 싶어 하는 분들이지 않나. 아무리 장남의 집이어도 딸을 빼앗기는 상실감을 느낄 수 있다.
당연하지만 부모님이 테레사와 함께 저택에 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부인들 입장에서는 매일매일 시부모님을 섬겨야 하는 것이니.
‘진짜 어쩌지.’
그냥 1주에 하루 정도만 성에 올까? 성에서 6일 동안 테레사의 울음을 버티고, 내가 오는 하루 동안 쉬는 건 괜찮을 것 같은데.
썩 나쁘지 않은 방법 같다. 최선이 무리라면 최악이라도 피해야 하는 법.
그렇기에 어머니에게 1주에 한 번 오겠다는 말을 전하자─
“빌리와 기사들이 돌아가면서 놀아준다면 괜찮을 수도 있겠구나.”
“예?”
어머니가 상상을 뛰어넘은 방안을 제시하셨다.
내가 등으로 돌아다니며 선보인 기적을 아버지와 가문의 기사들이 돌아가면서 한다는 방안을.
…
‘괜찮은데?’
확실히 이론상으로는 완벽하다.
그걸 현실로 옮길 수 있느냐는 별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