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30)
로판 속 공무원 630화(631/945)
피네를 무릎에 앉힌 채로 둘만의 티타임을 이어나갔다.
유드허 백작이 제공한 빵을 작게 찢어 피네의 입에 직접 먹이고, 뜨거운 차를 입김으로 식힌 뒤 피네에게 건네는 등. 피네의 진동이 극심해질만한 서비스를 무차별적으로 제공했다.
당연하지만 절대 놓아주지 않았다. 우리는 곧 결혼을 할 사이며, 깊고 뜨거운 사랑을 나눠야 할 사이다. 고작 이 정도 애정 표현에도 동요를 한다면 낙원에 도달할 수 없다.
“주, 주인님, 저 혼자 먹을 수 있습니다! 이제 놓아주셔도 됩니다!”
그 와중에 유드허 백작이 사라지자 피네의 입에서 장관 각하가 아닌 주인님이라는 호칭이 나왔다.
역시 피네다. 내 명예와 체면을 위해서 철저하게 주변 환경을 살피는 건 여전하다.
하지만 더 이상 주인님이라는 호칭을 용납할 수는 없다. 사적으로 피네는 내 부하가 아닌 부인이 될 사람이고,
“주인님이라니. 이제 피네도 작위 귀족인데 다르게 불러야지.”
공적으로는 평민이나 기사가 아닌 명실상부한 귀족의 반열에 올랐으니까.
그동안 피네는 감찰부 4과장, 특무성 묵광대장으로서 무수히 많은 공을 세웠다. 심지어 최근에는 감찰성 특임부장이라는 고위직에도 올랐으니, 작위를 하사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전설적인 출세를 한 것이다.
덕분에 황제는 작년 여름, 피네에게 계승 남작위를 하사했다. 정확히는 내가 직접 선물로 주라며 남작의 인장과 영지를 줬었지. 그것도 위리디아 백작령과 인접한 영지를.
“페넬리아 유스 오브 시르디 남작. 이제 남작께서도 저와 대등한 작위 귀족이십니다.”
미소를 지으며 피네의 볼을 쿡쿡 찔렀다.
물론 초대 남작과 300년 역사의 제국백이 대등하다는 건 양심이 없는 발언이다. 아무리 공후백자남이 전부 작위 귀족이라도 그 사이에서 급이 갈리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급 따위가 무슨 상관인가. 나와 피네의 관계가 귀족과 기사 사이에서 귀족과 귀족으로 변했다는 것이 중요한데.
“대, 대등…!”
허나 내 말을 들은 피네의 눈동자는 격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마치 들어서는 안 될 이름을 들은 마법사처럼.
“제가 어떻게 주인님과 대등하겠…!”
“피네는 내 부인이고, 내 아이의 엄마가 될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나랑 대등한 게 아니라 아랫사람인 거야?”
가불기나 다름없는 말이 이어지자 피네의 진동이 거짓말처럼 끊겼다.
매번 이런 패턴이다. 피네가 내 애정을 황송하게 여기면 피네에게 나와의 연관성을 언급하고 있다. 피네는 ‘내’ 아내고, ‘내 아이’의 엄마가 될 사람이라고. 그러니 내 사랑을 받기 충분하다고.
무엇보다 강력한 가불기는 한데, 썩 유쾌한 방법은 아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없어.’
피네는 내 부인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기에 칭찬을 받아들인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배려는 없다.
내 아이의 엄마가 될 것이기에 애정 표현을 받아들인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애정은 없다.
나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사랑하기에 철저히 나에게 맞춘다. 자신을 나의 부속품이자 명예를 위한 트로피로 여기고 있다.
‘이제 내 부인이 아니라 피네 스스로인 걸 자랑스럽게 여겨야지.’
전쟁고아인 피네를 먹이고 재우고 키운 건 내가 맞다. 굳이 비유하자면 애벌레가 나비로 우화하는 걸 옆에서 응원하고 도운 주인이다.
그런데 기껏 우화 한 나비가 하늘을 누비기는커녕 주인 곁을 맴돌고만 있다. 기특하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으나, 나비가 진정 주인의 도움에 보답하고자 한다면 훨훨 하늘을 나는 걸 보여줘야 한다.
우리가 대등한 관계에서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네.”
“예, 예…”
“묵광대 애들한테는 내가 미리 말해놨어. 피네는 나랑 계속 여기에 있을 테니, 던전 토벌은 알아서 하라고.”
그러자 피네가 황급히 일어나려고 하길래 더욱 강하게 허리를 잡았다.
일단 말은 끝까지 듣고 가.
“고작 던전 토벌이야. 부장 겸 남작이 직접 나설 필요는 없어. 오히려 상사가 다른 곳에서 쉬고 있어야 부하들이 편한 법이지.”
“하, 하지만, 전부 고생하는데 저 혼자 쉴 수는 없습니다.”
“나는 감찰성 전체가 고생하는 와중에도 휴가 중인데?”
기껏 열렸던 피네의 입이 도로 닫혔다.
그와 동시에 피네를 구속했던 팔을 슬쩍 풀었다.
“물론 특임부를 이끄는 건 피네고, 현장 지휘관도 피네야. 피네가 권한을 벗어난 것도 아니니 아무리 장관인 나라도 제지할 명분은 없지.”
그렇게 말하고는 피네의 어깨를 토닥였다.
“피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토벌에 합류해도 되고, 여기 남아있어도 돼. 피네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내 농담이나 권유에 따라 흔들리는 게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정하라는 말.
사실 여기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말을 해봤자 피네는 내 곁에 남을 거다. 제도에 있는 내가 이 북방까지 왔고, 누가 봐도 같이 있기를 바라고 있지 않나.
하지만 노골적인 선택지여도 피네가 자기 의지로 택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첫걸음이 위대한 여정의 시작이 될 터.
“…그럼.”
한참을 망설이던 피네가 내 소매를 조심스레 잡았다.
“주인님과… 있겠습니다.”
“고마워.”
만족스러운 대답이라 피네의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지금은 엎드려 절받은 느낌이지만 언젠가는 진정한 절을 받겠지. 피네가 자신의 욕심을 보이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일 거다.
‘유기견이 언제나 보호소에만 머무를 수는 없으니까.’
우화를 마친 나비는 하늘을 날고, 보호소의 유기견은 좋은 주인에게 분양을 받는다. 피네도 그러한 루트를 밟아야 한다.
분양이라고 하니 어감이 많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내가 보호소도 운영하고 분양받는 주인이면 되는 거지 뭐.
***
감찰성 특임부 1과.
재무성 감찰부 4과, 특무성 묵광대에 이어 새롭게 얻은 우리의 이름.잠시 주인의 품을 벗어났던 우리가, 다시 마땅히 섬기고 따라야 할 주인의 품으로 돌아갔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이름.
그것이 특임부 1과다. 특임부의 과 중 가장 강력한 전력을 자랑하는 우리 1과다.
‘1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같은 꿈을 꾸고 같은 수련을 했기에, 같은 목표를 위해 달려왔기에 누구보다 강하다. 이제는 특임부장이 된 대장을 뒤따르며 노력했기에 누구보다 끈끈하다.
그런 자부심과 찬란함을 품은 것이 1과다. 감찰부 시절 때문인지 1과라고 하면 본능적으로 칙칙한 지하실이 떠오르지만, 이제 우리 머릿속의 1과는 빛의 상징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1과 전체를 위하여, 부장을 위하여 헌신해야 한다.
“최대한 느린 속도로 던전을 토벌한다.”
그 방법이 다소 난감하고 난해하더라도.
“물론 무작정 속도를 늦춘다면 다른 영지에서 우려를 표할 것이고, 장관 비서께서 특임부의 능력에 의문을 가질 것이다. 전체적인 그림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유드허 백작령 주둔 기간을 늘려야 한다.”
진지한 얼굴로 경청 중인 1과를 향해 작전을 설명했다.
우리의 주인께서, 장관 각하께서 친히 북방까지 오셨다. 장관 각하와 부장이 같은 공간에 머무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이 둘도 없을 기회를 던전 토벌 따위에 낭비할 수는 없다.
그리고 우리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는지, 장관 각하께서 우리끼리 던전 토벌에 나서라는 자비로운 지시를 내리셨다. 우리가 늦게 복귀할수록 장관 각하와 부장만의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그렇다면 이를 악물고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 도리다. 가족이자 동료라면 응당 그래야지.
“질문 있습니다.”
그 위대한 과정을 설명하자 조용히 경청하던 수석 팀장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
“말해라.”
“장관 각하의 성품이라면 저희가 다음 영지로 이동하더라도 함께 움직이시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빠르게 던전을 토벌해 저희의 유능함을 장관 각하께 보여드리는 건─”
“장관 각하의 행동을 우리 따위가 확신할 수 있나?”
단호히 말을 끊자 수석 팀장이 흠칫 몸을 떨었다.
수석 팀장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각하께서 우리에게 과분한 은혜와 관심을 베푸신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우리가 그동안 부장과 함께 얼마나 강해졌는지, 얼마나 각하께 도움이 될지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허나 지금 중요한 건 부장의 원활하고 완벽한 결혼이다. 언제든 선보일 수 있는 우리의 가치보다 결점 없는 결혼에 집중해야 한다.
“만약 각하께서 우리와 동행하지 않으신다면? 돌아가는 각하를 감히 잡기라도 할 건가? 그럴 바에는 이 유드허에 확실히 머무르고 계실 동안 각하와 부장을 응원하는 게 옳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빠르게 사과하는 수석 팀장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다면 됐다.
“자. 그럼 전부 납득한 것 같으니 움직이도록 한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지연, 명심해라.”
“예, 과장님!”
“명심하겠습니다!”
의지를 불태우는 1과를 보니 나도 심장이 뜨거워졌다.
***
유드허 백작은 가신들을 이끌고 사냥이라도 나갔는지, 성을 돌아다니면서 단 한 번도 유드허 백작과 마주치지 못했다. 그저 성을 묵묵히 지키는 사용인들이 우리를 정성껏 보필할 뿐.
이건 아무리 봐도 외부인이 주인을 쫓아낸 것이 맞다. 유드허 백작령에 유입되는 공산품은 10%가 아니라 20% 정도로 늘려야겠어.
“과분한 배려를 받았네. 역시 친구는 잘 사귀고 볼 일이야.”
“옳은 말씀입니다.”
나와 손을 잡은 채 후원을 거닐던 피네는 내 말에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어쩔 줄 모르는 중일 거다. 사용인들은 주인의 지시가 아닌 이상 먼저 주인의 손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그리고 성의 주인인 유드허 백작은 먼 길을 떠났으니, 이 성에는 사실상 나와 피네만 존재한다고 봐도 무방한다.
분명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던전을 토벌 중이었는데, 졸지에 백작의 성을 둘만의 데이트 장소로 사용 중이다? 기쁨과 당혹감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
“핫.”
그렇게 피네와 후원을 구경하던 중, 특이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마구간이 후원에 있는 건 처음 보네.”
작은 크기의 마구간이 후원 구석에 있었다.
순조롭게 문명화가 진행 중인 북방 대영주들이지만, 유목민 시절의 취미와 습관은 그대로 남은 모양이다. 유목민에게 있어 말은 인생의 동반자나 마찬가지지.
…흐음.
‘승마 데이트도 나쁘지 않겠어.’
마침 마구간 안에서 당근을 우물거리던 흑마와 눈이 마주쳤다.
나와 피네를 위해 등 좀 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