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32)
로판 속 공무원 632화(633/945)
피네를 빼고 던전 토벌에 나선 묵광대─ 아니, 1과는 며칠이 지나도록 복귀하지 않았다.
하지만 딱히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1과는 나와 피네의 관계를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팬클럽이다. 그런 1과가 광속으로 업무를 마치고 복귀해서 나와 피네만의 시간을 방해한다? 오히려 무슨 일이 터졌다는 의미다.
‘별일 없나 보네.’
그렇기에 1과가 소식이 없어도 마음이 평온했다. 솔직히 1과가 던전 따위에 발목이 잡힐 수준은 아니지. 던전이 1과를 보고 스스로 문을 닫는다면 모를까.
“내일이나 모레쯤 돌아오겠지?”
“예. 갑자기 던전이 새로 생기는 게 아닌 이상 그럴 겁니다.”
이번에도 내 앞에 앉은 채 승마 데이트를 즐기던 피네의 귓가에 속삭이자, 피네는 귀를 붉게 물들이면서도 덤덤히 답했다.
장족의 발전이다. 이제 피네는 백허그와 귓속말을 동시에 겪어도 진동 상태에 돌입하지 않는다.
‘며칠 동안 1 대 1로 붙은 효과가 있었어.’
뿌듯했다. 1과가 유드허 백작령 내의 던전을 토벌하기 전까지는 제도로 복귀하지 않고 백작령에 머무르기로 했다. 이건 제도의 부인들에게도 미리 양해를 구했고, 흔쾌히 허락도 받은 일이다.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점이라면 내 사랑스러운 아기 천사들이 아빠를 보지 못하는 거지만, 다행히 티티와 성수들 덕에 울면서 아빠를 찾지는 않더라.
살짝 섭섭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합법적으로 하사받은 외박의 시간. 그 시간을 전부 피네와의 데이트에 쏟아부었다.
피네가 나를 더 편히 대할 수 있게. 피네가 더 솔직해질 수 있게. 피네가 더 웃을 수 있게.
“장관 각하. 괜찮으시다면… 같이 바람을 쐬지 않겠습니까?”
“유드허 백작령 서쪽에는 거대한 호수가 있다고 합니다. 장관 각하와 함께 구경하고 싶습니다.”
“손님이 여러 방을 차지하는 것도 민망하니, 장관 각하와 같은 방을… 쓰는 건…”
요 며칠 동안 피네가 나에게 먼저 요구했던 것들을 떠올리며 슬며시 눈가를 닦았다.
연인에게 느낄 감정은 아니지만 너무 감동적이었다. 마치 기어다니던 아이가 걷는 것을 본 기분과도 같았으니까.
아니, 나에게 과할 정도로 의존하며 추앙하는 피네가 마침내 자신의 의지를 내세운 거다. 걷기 시작했다는 표현도 딱히 틀린 표현은 아니다.
“이런 생각 하면 1과한테 미안한데, 던전이 한 10개 정도 더 생겼으면 좋겠어.”
“사실 저도… 장관 각하와 같은 생각입니다.”
그 말에 피네의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어떻게 한마디 한마디가 이렇게 기특하고 사랑스러울까.
“피네는 그냥 나랑 제도로 복귀할래?”
“죄, 죄송하지만 그건 안 됩니다. 제가 1과를 두고 복귀하면 장관 각하께 누가 될 겁니다.”
그 와중에 공사 구분이 철저하다는 건 피네다웠다.
“농담이야. 피네가 내 생각 해서 노력하고 있는 건 나도 알지.”
더욱 격한 손짓으로 피네의 머리를 헤집었다.
피네가 신혼 휴가와 육아 휴가를 위해, 언젠가 휴가가 끝나고 복귀할 나를 위해 강행군 중이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다. 아무리 내가 초고속 승진을 당한 놈이라지만 부서가 돌아가는 상황도 모르는 장님은 아니니까.
그래서 늘 고맙고도 미안했다. 남편이라는 놈이 2년이 넘게 신혼 휴가 중인 미친놈만 아니었다면 피네가 조금은 편했을 텐데.
‘신혼 휴가가 2년.’
이렇게 생각하니 나도 어지간한 미친놈이기는 하다.
물론 앞으로 구를 수십 년을 생각하면 2년이든 3년이든 찰나에 불과하지만.
– 푸르릉!
‘음?’
그렇게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사이, 유드허 백작에게 양도받은 흑마가 투레질을 하며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뭐야.’
이 녀석 갑자기 왜 이래?
잠잠하던 녀석의 난데없는 전력 질주에 당황하고 말았다. 굳이 건드리지 않아도 좋은 코스를 따라 자동주행하길래 가만히 두고 있었는데, 사람을 태우고 폭주한다면 직접 고삐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말리기에는 너무 진지한 얼굴로 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전력 질주인 주제에 기수에게 별 진동이 올라오지 않았고.
확실히 명마는 명마다. 다른 말들이 이따위로 달렸다면 꼬리뼈하고 굿바이 키스부터 나눴어.
– 푸힝!
“어?”
“저건.”
이윽고 흑마의 발걸음은 강을 낀 초원에 도달하고 나서야 멈췄다.
아니, 정확히는 강물을 마시고 있는 백마가 눈에 들어오는 거리에서 멈췄다.
“쟤 때문에 온 거냐?”
– 푸릉!
내 말에 흑마는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가려서 태우고, 가만히 두면 알아서 뽈뽈뽈 돌아다니는 명마가 직접 소개해 준 새로운 야생마.
‘다단계인가?’
마치 어느 빈 찬합좌가 생각나는 다단계였다.
이제 저 백마도 다른 말을 소개해 주는 거지?
그날 밤, 피네와 함께 머무르고 있는 방.
“…….”
“…….”
어색한 침묵이 나와 피네를 감싸고 있었다.
딱히 누가 이상한 말을 했다거나 실수를 한 건 아니다. 우리의 데이트는 완벽하고, 피네의 감정 표현은 점점 솔직해졌다.
그럼에도 미묘한 침묵이 감도는 이유는 간단하고도 강렬했다.
– 푸히히힝!
“야 인마! 너 뭐해!”
나와 피네를 태우고 있던 흑마가 슬쩍 몸을 낮춰 우리를 내리게 하더니, 곧장 백마에게 달려가 사랑을 나눴었으니까.
상상도 못 한 광경에 정신이 나갈 뻔했다. 설마 짝짓기 상대를 발견해서 수 km를 질주했을 거라 누가 예상이나 했겠나. 애초에 수 km 밖에 있던 애를 어떻게 관측한 건데. 말도 개처럼 후각이 좋은 편이었나? 아니면 북방의 말들은 서로 의식을 공유하는 칼라라도 있나?
‘살면서 말이 짝짓기 하는 걸 다 보네.’
아무튼 기수를 태웠으면서도 자기 사랑을 찾아 달린 흑마 덕에, 나랑 피네는 실시간으로 두 말의 사랑을 지켜봐야 했다.
당연히 썩 유쾌한 감정은 아니었다. 명마만 아니었으면 한 대 팼어.
“저, 장관 각하.”
“아, 응. 말해.”
“그으… 아까 봤던 백마도, 제법 좋은 아이인 것 같았습니다.”
겨우겨우 침묵을 깬 피네의 말에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용기를 내서 입을 연 피네다. 여기서 애매한 반응을 보이면 피네는 두 번 다시 입을 열지 않을 거다.
“그러게. 자유롭게 자란 애라 그런지 튼튼하더라. 아니면 흑마랑 같은 혈통일 수도 있고.”
우리에게 신세계를 보여준 흑마도 북방을 떠돌다가 제멋대로 유드허 부족의 영역에 정착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흑마의 혈통은 정해진 곳 없이 여기저기 방황한다는 뜻이니, 아까 만난 백마도 흑마와 같은 혈통일 가능성이 높다.
– 푸릉!
– 푸히힝!
그래서인지 사랑을 마친 백마는 쫄래쫄래 우리 뒤에 붙어 유드허 백작의 성까지 따라왔다.
명마를 공짜로 주운 것이니 기쁜 일이다. 분명 기쁜 일이기는 한데, 그 대가가 짝짓기 직관인 건 조금 가혹하지 않나.
“축하드립니다, 장관 각하. 명마의 혈통이 이어진다면 각하는 귀한 보물을 둘이나 얻으신 겁니다.”
복잡한 심정 때문에 잠깐 침묵하자, 피네가 슬며시 고개를 숙이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가 보여서 애잔했다.
“특히 검은 아이는 각하를 닮아 듬직하고 멋진 말이었습니다.”
“…어, 고마워.”
그리고 피네의 미묘한 칭찬에 한 박자 늦은 대답을 돌려주고 말았다.
어디 지나가던 똥개도 아닌 명마와 닮았다고 하는 건 칭찬이 맞다. 하지만 하필 그 명마가 공개적으로 애정 행위를 나눈 직후에 ‘너랑 그 말이랑 닮은 듯.’ 이라는 말을 들으면 아무리 칭찬이라도 기분이 묘할 수밖에 없다.
마치 나도 야외에서 공개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광인이 된 기분이니까.
“아.”
그 미묘함을 뒤늦게 깨달은 듯, 피네가 나지막한 탄식을 내뱉었다.
“가, 각하! 제 말은 그게 아니라─!”
“백마는 피네 닮아서 예쁘더라.”
일단 과하게 당황하는 피네를 진정시킬 겸 농담을 건넸다.
남에게 하면 성희롱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말이지만, 나랑 피네 사이에 이 정도는 괜찮다. 게다가 먼저 말을 닮았다고 한 건 피네기도 하고.
“걔도 우리 따라서 온 거니까 백마는 피네가 타고 다녀. 흑마는 내가 데려갈게.”
“아, 그으,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웃는 얼굴로 피네를 다독이자 피네도 겨우 마음을 가라앉혔다.
순간 ‘백마가 아니라 회색 말이었으면 더 완벽했을 텐데.’ 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괜히 그런 말을 하면 피네가 과도한 부끄러움으로 돌연사할 테니.
“그런데 조금은 미안하네. 기껏 만난 짝을 바로 이별시키는 거잖아.”
“괜찮을 겁니다. 헤어지더라도 짙은 애정을 나누지 않았습니까.”
단호함까지 느껴지는 대답에 픽 웃음이 나왔다.
그건 그렇지. 그냥 헤어지는 것과 애정을 나누고 헤어지는 건 다른 문제지.
“어쩌면 말들이 우리보다 나을지도 모르겠어.”
“예?”
허나 단호함은 순식간에 물렁물렁해졌다.
그런 피네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포옹을 했다. 이곳이 유드허 백작의 성만 아니었다면, 피네가 임무 중만 아니었다면 나도 흑마가 됐을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참아줘. 여름만 되면 황제가 데려가려고 해도 쌍욕을 박을 수 있으니까.”
“저 때문에 그러실 것 같지는…”
“쓰읍.”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피네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이런저런 제약이 많았던 만남치고는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
던전 토벌에 나섰던 1과가 돌아왔다.
평소 실력을 생각하면 다소 늦은 복귀였으나, 다음 영지로 넘어가는 것에는 아무 차질이 없는 시간에 복귀했다.
1과의 마음을 알 것 같아 부끄러우면서도 고마웠다. 이 부족한 부장을 위해 고의적으로 업무를 지연할 정도였으니.
“그럼 난 가볼게. 일이 전부 끝나면 바로 저택으로 오고.”
“예, 각하.”
“매일 하라고는 안 하겠지만, 시간이 나면 연락도 해줘.”
“예. 꼭 그러겠습니다.”
“1과장은 피네가 통신구만 만지작거리면 뺏어서 대신 걸어주고.”
“명심하겠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1과장에게도 당부를 한 주인님은 흑마와 함께 텔레포트 마법진 위로 올라갔다.
– 푸히힝…
그리고 서서히 사라지는 흑마를 보며 백마는 서글프게 울었다.
이해할 수 있다. 고작 하루에 불과했던 인연이지만 이미 이 백마에게 있어 흑마는 귀중한 존재일 터.
‘너도 나랑 같구나.’
나 또한 주인님을 뵈었던 그날에, 주인님을 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하고 귀한 분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나 또한 슬픔을 억누른 채 주인님을 떠나보내고 있다.
“백마는 피네 닮아서 예쁘더라.”
나와 이 아이가 닮았다던 주인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