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33)
로판 속 공무원 633화(634/945)
외박을 마치고 저택에 복귀했다.
“압빠?”
그리고 정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티티를 탄 채 뽈뽈뽈 돌아다니는 페디를 볼 수 있었다.
감동스럽다. 이 아빠를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이 사랑스러운 우리 장남이라니. 이건 우리 페디도 아빠를 보고 싶어서 가까운 곳에 있었던 거겠지? 그런 거지?
사실 아니어도 상관없다. 의도가 어떻든 아빠를 먼저 맞이해준 것이 페디라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우리 페디! 아빠 왔어요!”
“압빠!”
– 멍!
페디를 향해 양팔을 뻗자 티티의 발걸음이 자연스레 내 쪽으로 향했다.
티티의 눈치와 지능이 비범한 건 늘 감사한 일이다. 덕분에 페디의 놀이 상대이자 친구 역할을 맡길 수 있고, 이렇게 페디를 아빠 품으로 운반해 주지 않나.
“주인?”
“주인 왔는가.”
이윽고 저택 곳곳에 흩어져있던 성수들도 하나둘 모습을 보였다.
늘 보던 애들을 며칠 만에 봐서 그런지 묘하게 반가웠다.
“나 없는 동안 별일 없었지?”
“황태녀의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잘못 잡히면 온몸이 아파.”
“별일 없었네.”
“그렇게 말할 거면 왜 물어본 건가.”
서운함이 잔뜩 묻은 겸손의 항의에 픽 웃음을 흘렸다.황태녀가 강해져봤자 뭐 얼마나 강해진다고 엄살인가.
“그래. 고생 많았다.”
그래도 이 녀석들이 황태녀와 우리 아이들의 놀이 상대로써 맹활약 중인 건 부정할 수 없다. 열하나나 되는 성수들 덕분에 육아 난이도가 급감한 것은 명확한 팩트지.
그래서 이 녀석들에게 주는 음식과 잠자리는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만약 빈약하게 대했다가 도저히 못 해먹겠다고 가출하면 곤란한 일이지.
“맞다. 너네 친구 하나 데려왔어.”
“친구?”
“혹시 우리 말고 봉인된 신이 더 있었나?”
“아니… 내 기억에… 우리 말고 다른 신격은… 없는데…?”
내 말에 성수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조금 아팠다. 자기들의 친구면 당연히 신격일 거라 생각하고 있잖아.
‘말인데.’
그것도 얘네처럼 신이었던 말이 아닌 평범한 말.
“신이 아니라 그냥 말이야.”
진지한 토의를 이어가는 성수들의 모습이 안타까워 슬쩍 입을 열자, 성수들의 수군거림이 거짓말처럼 끊겼다.
“…그냥 말이라고? 평범한 짐승이라는 뜻인가?”
“어.”
“그게 왜 우리 친구인가! 적어도 격이 비슷해야 친구라고 할 수 있지!”
그 말에 슬쩍 티티를 쳐다봤다.
격이니 뭐니 하기에는 너네 티티 선에서도 정리되고 있잖아. 그래도 특별히 너희랑 티티를 친구라고 여겨주는 중인데.
“저, 저 녀석은 주인과 오래 알고 지내지 않았나. 우리가 선배를 무시할 정도로 막 나가지는 않는다.”
겸손의 변명에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충분히 반박할 수 있는 변명이지만 반박하면 마음의 상처를 입을 게 뻔하다. 우리 아이들의 놀이 상대를 필요 이상으로 놀릴 필요는 없다.
“말이라고요?”
그 와중에 말의 형태를 한 친절은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하고 이미지가 겹치는 녀석이 왔단 말입니까?”
절망이 가득한 목소리라 흠칫하고 말았다.
그만큼 친절의 표정과 목소리는 처참하고 애절했다. 재개발 구역에 살던 빈민이 쇠파이프를 든 용역들과 마주한 것처럼.
“제가, 제가 도련님의 행복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이제 와서 다른 말이라뇨!”
“너보다 훨씬 크니까 페디가 타기는 무리야.”
“아, 그럼 됐습니다.”
내 부연 설명에 친절의 표정이 급속도로 평온해졌다.
아무래도 쟤는 본인이 악신이었다는 걸 완전히 기억에서 지운 것 같다. 그저 페디의 충마로서 저택에 머무를 뿐.
“마-알?”
허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대화를 듣던 페디가 새로운 말에 관심을 보였다.
“마알, 더 이써?”
눈을 반짝이는 페디의 모습에 친절의 안색이 다시 어두워졌다.
나도 모르게 친절의 눈치를 살폈다. 악신이라는 과거를 생각하면 다소 추하게 살고 있는 친절이나, 페디를 위해 복도를 뛰어다닌 녀석이기도 하다. 저 녀석의 말처럼 페디의 행복을 위해 노력했지.
“까만 녀석이 하나 있단다. 보고 싶니?”
“웅!”
하지만 친절에 대한 미안함보다 페디의 호기심이 더욱 중요했다.
이해해라. 어차피 페디랑 같이 놀기에는 너무 큰 녀석이다. 결국 네가 페디를 태우고 다녀야 돼.
“어찌하여 운명은 내가 있음에도 새로운 말을 내린단 말인가…!”
그렇게 페디를 안은 채 정문 밖으로 나가자, 뒤에서 원독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악신이었던 녀석이 저러니까 조금 무서웠다.
흑마는 일단 후원에 풀어두었다.
물론 저택에 따로 마구간이 있기는 하지만, 이미 다른 말들로 가득한 상태라 넣어둘 수가 없었다. 확장을 하기 전까지는 후원에 둬야지.
“마알! 까매! 엄청 커!”
– 푸르릉?
덕분에 나무 아래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흑마는 페디의 목소리에 스르륵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멀뚱히 페디를 보다가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치 네 품에 있는 아이는 누구냐고 묻는 것처럼.
“내 아들.”
– 푸힝!
짧은 대답에 흑마가 벌떡 일어났다.
이 새끼. 의외로 권력의 상하관계에 예민한 편이었구나.
“와아! 와아아!”
아무튼 흑마가 일어나자 페디는 더욱 격렬한 감탄사를 토해냈다.
엎드린 상태에서도 페디가 지금까지 봤던 동물들보다 거대했던 흑마다. 그런데 안 그래도 큰 녀석이 네 다리를 쭉 펴고 일어났다? 그 거대함을 처음 목격한 페디 입장에서는 신세계나 다름없다.
“압빠! 아빠!”
“왜 그러니?”
“나! 나! 까망이! 타볼래!”
졸지에 까망이라는 이름이 붙어버린 흑마는 페디의 말을 알아들은 듯 스르륵 몸을 낮추었다.
신기한 광경이다. 북방에서는 사람을 미친 듯이 가려 태웠던 명마가 어린아이를 스스로 태우려 하고 있다.
‘유드허 백작이 보면 오열하겠네.’
타려고 하면 온몸으로 거부를 하고, 남에게 팔면 탈출해서 돌아오고, 그렇다고 길들이려고 노력하면 시큰둥했던 까망이. 그런 까망이가 권력에 굴복하여 어린아이에게 등을 허락했으니, 유드허 백작 입장에서는 피눈물을 흘릴 일이다.
어쩔 수 없지. 유드허 백작령에 공급할 공산품은 40% 늘리자. 이거 어디까지 늘어날까 나도 궁금해지네.
“까망이는 크니까 아빠랑 같이 타자.”
“웅!”
내 제안에 페디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만약에 혼자 타겠다고 떼를 쓰면 어떻게 달래야 하나 걱정했는데.
“크흑…!”
그리고 까망이 몸에 올라타자 같이 따라온 친절이 서글픈 울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애써 무시했다. 다른 성수들이 잘 위로해 줄 거라 믿는─
“와, 이 새끼 진짜 울어?”
“그렇게 물고 빨던 도련님 뺏기니까 무슨 기분이냐? 말 좀 해봐라.”
“같이 태우고 다닌 자선은 멀쩡한데 왜 너만 그래?”
딱히 위로를 기대하지는 말아야겠다.
“아빠! 노파!”
“마음에 들어?”
“웅! 웅!”
페디의 해맑은 목소리에 친절의 흐느낌은 더욱 커졌다.
실로 애석한 노릇이다.
“그래두! 짜근애가 더 조아!”
“응?”
“흐으…?”
페디의 말에 친절의 흐느낌이 멈췄다.
“짜근애! 펴내! 나랑 집에서 잘 노라져!”
생각보다 실용적인 판단이라 웃음이 터질 뻔했다.
까망이는 다른 동물보다도 크지만 그 덩치 때문에 집에서는 돌아다닐 수 없다. 반면 친절은 작으니 집에서도 탈 수 있지.
게다가 오늘 처음 보는 까망이보다는 예전보다 같이 논 친절에게 더 마음이 갈 터.
“도, 도련님!”
덕분에 세상을 잃은 듯한 표정을 짓던 친절은 앞발로 마구 지면을 짓밟으며 흥분을 표했다.
이제 어디 가서 쟤가 전직 악신이었다고 말도 못 하겠다.
***
오빠가 북방에 다녀온 지도 몇 주가 흘렀다.
“맛있어?”
– 푸히힝!
그리고 오빠가 북방에서 데려온 흑마─ 아니, 페디가 까망이라는 이름을 붙인 아이가 마구간에 자리 잡은 지도 몇 주나 흘렀다.
까망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새 가족이었다. 피네 언니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북방에 갔던 오빠였으니까. 설마 유드허 백작에게 선물로 받았다며 까망이와 함께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어.
심지어 까망이의 지능과 능력은 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봐도 훌륭했다. 까망이의 주인이 오빠가 아니라면 탐낼 귀족들이 많았을 만큼.
‘역천자가 타던 말과 같은 혈통이라고 했지.’
일반적인 대륙의 말보다는 북방의 말이 더 뛰어나다. 이건 유목민을 야만적이라며 경멸하고 얕보는 사람들도 인정하는 진리다.
그런데 그 북방을 한때나마 통일한, 제국을 상대로 2년이나 전쟁을 이어간 인물이 타던 말? 어지간한 명마는 고개도 못 들 화려한 혈통이다. 그 혈통과 같은 피를 가지고 있다는 건 보물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까망이가 우리 저택에 왔을 때부터 관심이 갔다. 바다를 임신 중인 상태가 아니었다면 오빠에게 부탁해 몇 번이나 타봤을 거다.
“다음 달이 되면 신세 좀 질게.”
– 푸릉!
내 말에 까망이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번 달은 바다의 출산 예정일. 그러니 다음 달 정도면 까망이의 등에 탈 수 있을 거다.
기대된다. 과연 이 아이를 타고 달리면 어떤 기분일까? 속도와 지구력은 북방에서 온 말이니 뛰어날 테고, 지능이 뛰어난 아이니 승마감도 고요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누구보다 격렬하게 우렁찰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 아이만의 매력. 고요하든 우렁차든 웃으며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우리 바다가 태어나는 시기에 맞춰서 귀한 아이가 왔네.’
슬며시 배를 쓰다듬었다. 오빠도 딱히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바다가 태어날 시기에 명마가 왔다는 건 긍정적인 징조다. 우리 바다도 까망이처럼 튼튼하고 날랜 아이로 자랄 것만 같다.
“바다가 말을 탈 수 있으면 태워줄 수 있니?”
-푸르릉!
알겠다는 대답 같아서 까망이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툭하면 강하게 엄마 배를 걷어차는 바다다. 매우 활동적인 아이로 자랄 테니, 까망이와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을 거다.
분명 그럴 거다.
─라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흐으읏…!”
“마님! 천천히 심호흡부터 하십시오!”
“당황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무 문제 없이 무사히 끝납니다!”
설마 그 생각을 하고 다음 날, 바로 바다가 나오려고 할 줄은 몰랐다.
정말 급한 아이다. 아니면 빨리 엄마랑 아빠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 아이거나.
“린!”
“주인님! 지금은 접촉도 최대한 피해야 합니다!”
“아니, 손 잡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아무튼 피해야 합니다!”
저 멀리서 사용인들에게 둘러싸인 오빠를 보다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갑작스럽지만 괜찮다. 아이가 나오는 시간이 아이 마음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잖아. 페디도, 세쌍둥이도, 프리드리히도 그렇게 나왔으니까.
그러니 나는 괜찮다. 이미 마음을 다잡았고, 무사히 출산이 끝날 거라 확신했다.
우리 바다는 건강하게 태어나서, 웃는 얼굴로 나와 오빠 곁으로 찾아올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