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34)
로판 속 공무원 634화(635/945)
어느덧 네 번째 출산이다. 이 정도로 겪었으면 슬슬 익숙해질 법도 한데,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매번 초조하고 매번 불안하다. 매번 어디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두렵고, 매번 신을 찾게 된다.
‘별일 없을 거야.’
그럼에도 애써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며 심호흡을 했다.
앞선 세 차례의 출산 때는 아무 일도 없었잖아. 어릴 때 허약했던 리제도 무사히 프리드리히를 낳았잖아. 리제보다 튼튼한 린도 무사히 출산을 마칠 거다. 당연히 그럴 거다.
린은 임신 전부터 튼튼하고 건강했으니까. 임신 이후에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산책을 즐겼으니까.
‘괜찮을 거야.’
쉬지 않고 떠는 다리를 슬며시 붙잡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제 긍정적인 생각만 하자. 린은 건강하게 일어나 까망이를 타며 찌뿌둥했던 몸을 풀 거다. 내 여섯 번째 아이는 걷기 시작한 아이들의 관심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날 거다.
이미 이름도 정해뒀다. 남자면 리온, 여자면 알리나로 지을 생각이다. 그 아이는 카토반의 이름을 잇는 세쌍둥이와 나이어드의 이름을 잇는 프리드리히와 달리 크라시우스의 이름을 잇게 될 터.
‘리온 크라시우스 오브 위리디아.’
어쩌면 알리나 크라시우스 오브 위리디아가 될 수도 있겠지.
물론 린 앞에서 위리디아를 언급할 때는 상재가 있으면 물려주겠다고 했지만, 사실 상재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 당연히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소중한 내 아이다. 자식이 아비의 영지를 물려받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무사히 태어나기만 하렴. 이 아빠가 모든 걸, 모든 걸 준비하고 있어. 너는 우리 곁에 웃으며 나타나기만 하면 돼.
“아-빠.”
“페디?”
그렇게 마음을 진정시키던 중, 복도 너머에서 아장아장 페디가 걸어왔다.
성수들에게 페디랑 잘 놀아주고 있으라 신신당부했는데, 기어코 페디가 어른들을 찾아 여기까지 온 모양이다.
‘애들도 알 건 다 알지.’
비록 자라면서 당시의 기억은 많이 사라지겠으나, 어린아이들도 눈이 있고 귀가 있는 사람이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풍기고 언제나 자기에게 웃어주는 어른들이 심각한 얼굴로 한곳에 몰려간다? 페디라도 이변을 눈치챌 수밖에 없다.
아니. 어쩌면 세상에 찌들지 않은 순수한 아이기에 타인의 감정에 더욱 민감할 수 있다.
“소가주님.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혹시 심심하세요? 저희랑 같이 정원 산책이라도 해요. 티티도 소가주님이랑 놀고 싶을 거예요.”
그리고 페디의 등장에 복도에 있던 하녀 둘이 서둘러 페디에게 달려갔다.
이 공간이 아이가 있기에 썩 좋은 공간은 아니다. 어른들은 하나같이 긴장으로 굳은 상태고, 간혹 문 너머에서 고통 섞인 신음 소리마저 들리니까. 출산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페디에게는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페디. 아빠한테 오렴.”
“주, 주인님?”
허나 내 팔은 어느새 페디에게 뻗어졌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하녀들이 페디를 다른 곳으로 인도하는 게 맞다. 하지만 페디가 자기의 발로, 자기의 의지로 찾아오지 않았나.
아직 어리고 어린 페디가 넷째 엄마를 걱정해서 온 것. 그렇게 생각하니 도저히 돌려보낼 수 없었다.
“칼. 괜찮겠어요?”
쪼르르 달려온 페디가 내 품에 안기자, 마르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괜찮아. 동생이 태어나는데 장남이 올 수도 있는 거지.”
“그래도…”
“내가 잘 놀아주고 있을게.”
내 품에 안긴 페디의 등을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
마르도 나처럼 페디에게 트라우마가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 중일 거다. 그리고 린을 걱정하는 와중에 페디도 신경 쓰게 되었으니 정신이 없겠지.
그러니 페디는 내가 꼭 안고 있을 생각이다. 페디의 기억 속에 남을 오늘을 어른들이 딱딱하게 굳은 날이 아닌, 넷째 엄마는 비명을 지른 날도 아닌, 귀엽고 작은 동생이 태어난 날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 페디. 이따 아빠랑 같이 동생 볼까?”
“도옹-생?”
“그래, 동생. 넷째 엄마가 우리 페디한테 동생을 줄 거야.”
내 말에 페디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복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세쌍둥이, 아직 누워있기만 하는 프리드리히와 놀며 동생이라는 개념에 익숙해진 페디다. 덕분에 동생을 꺼려 하기는커녕 반기는 경지에 이르렀다.
“자. 저기 방 안에 넷째 엄마가 동생 만들고 있어. 넷째 엄마한테 힘내라고 파이팅 한번 해볼까?”
“웅! 내째 엄마! 하이팅!”
페디의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복도에 퍼져있던 긴장감이 누그러드는 게 느껴졌다.
덩달아 내 얼굴도 스르륵 녹아내리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분위기를 풀어가면 페디에게 좋은 기억만 줄 수 있─
“각하!”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동시에 복도에 있던 사람들의 몸이 그대로 굳고 말았다.
‘…왜 벌써 나오지?’
나도 모르게 페디를 들고 있던 손이 떨렸다.
3시간이다. 이제 겨우 3시간이 지났다. 아직 밤이 되기는커녕 해도 지지 않은 시간이다.
그런데 출산이 끝나기 전까지 절대 열려서는 안 될 문이 열렸다고?
‘왜?’
설마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출산에 치명적인 문제라도 생긴 건가?
만약 그런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마탑과 대성당 쪽에 최고의 치료 인력을 보내달라고 해야 하나? 아니, 이미 저 방에 있는 사람들은 최고의 인력인…
“축하드립니다! 예쁜 따님입니다!”
데…?
…
“어?”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침대에 누워 숨을 고르고 있는 린, 산파의 품에서 울고 있는 아기를 번갈아 쳐다봤다.
진짜다. 진짜 출산이 끝났다. 그것도 둘 다 건강하게.
“핫.”
멍하니 그 광경을 보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했지만, 이건 기분 좋은 변수다. 이런 변수는 언제든지 환영이다.
‘설마 3시간 만에 끝날 줄이야.’
물론 어머니가 테레사를 낳으셨을 때는 2시간 정도가 걸렸다고 들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테레사를 낳기 전에 나와 에리히를 낳은 경력자 아닌가. 처음 아이를 낳는 린과 동일 선상에 둘 수는 없다.
“각하. 안아보시겠습니까?”
“아, 그래.”
린이 내 생각보다 튼튼한 거였나 고민하는 사이, 산파가 나에게 아이를 건넸다.
예쁘고 예쁜 딸. 나의 여섯 번째 아이이자 네 번째 딸.
“알리나.”
이미 린과 상의하여 결정했던 이름을 중얼거렸다.
리온이라는 이름은 잠시 묵혀두자. 린이 다음에 아들을 낳게 되면 그때 다시 꺼내자.
“으에에에에엥!”
그리고 내 중얼거림에 알리나는 더욱 우렁차게 울었다.자기를 불렀다는 걸 알아차린 것처럼.
‘알리나…’
그 모습에 눈가가 뜨거워졌다.
이걸로 네 번째다. 벌써 네 번째로 겪는 일이다. 막 태어난 생명이, 내 피를 이은 아이가 내 품에서 우는 건 네 번째로 겪는 일이다. 세쌍둥이를 하나하나로 나누면 여섯 번째기도 하겠지.
하지만 질리지 않는다. 언제나 새롭고 즐겁고 행복하다. 부인들이 출산실에 들어가면 늘 긴장하는 것처럼, 아이가 태어나면 늘 기쁠 따름이다.
“우리 알리나. 이제 엄마 보러 가자.”
빼애앵 우는 알리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린에게 다가갔다.
10개월 동안 품고 있던 딸이 자신의 품에서 벗어났으니 얼마나 허전하겠나. 비록 안이 아닌 바깥에서 품게 되었지만, 자식을 다시 엄마의 품에 안기는 것이 순리다.
“린. 고생 많았어.”
“아, 오빠.”
그 말과 함께 알리나를 건네주자 린은 희미하면서도 밝은 미소로 반겨주었다.
“예쁜 딸이네요.”
“예쁘지. 누구 딸인데.”
린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몸은 좀 괜찮아?”
“어… 생각보다 괜찮아요. 피곤하기는 한데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고요.”
슬쩍 몸을 일으키려던 린을 도로 침대에 눕혔다.
아무리 괜찮아도 막 출산을 마친 산모다. 최대한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다.
“저 진짜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으니까 쉬고 있어. 갑자기 문이 열려서 얼마나 놀랐는데.”
그러자 린은 쿡쿡 웃음을 흘리며 알리나의 앙증맞은 볼을 매만졌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알리나 볼따구를 안 만져봤네. 사녀가 태어난 감격에 취해서 지극히 당연한 절차를 잊고 말았다.
“우리 알리나, 빨리 밖으로 나오고 싶어서 노력했나 봐요. 덕분에 엄마가 이렇게 편하네.”
“페디도 린이랑 알리나를 위해서 응원했어.”
“페디가요?”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자 린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고, 마침 마르의 품에 안긴 채 들어오던 페디가 린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내째 엄마! 하팅!”
조금 늦은 것 같은 두 번째 응원에 린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페디.”
“웅!”
“여기 페디 동생 있다?”
이번에는 린이 페디의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동생! 도옹-생!”
린을 향해 양팔을 파닥이는 페디, 그 광경을 보고 완전히 긴장이 풀렸는지 하나둘 웃기 시작하는 부인들과 사용인들.
실로 흐뭇한 광경이다. 이 순간을 위해 10개월이라는 세월을 견디는 거겠지.
“린아!”
그러던 중, 저 멀리서부터 넷째 장인어른의 목소리가 들렸다. 발걸음이 겹치는 걸 보면 장모님도 같이 오신 것 같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늦는다고는 하셨는데, 설마 출산이 끝나고 나서야 오실 줄은 몰랐지.물론 린이 3시간 만에 출산을 마칠 줄은 누구도 몰랐겠지만.
“다 끝났는데 오셨네요.”
다소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 린의 모습에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당분간 린은 두 분 앞에서 절대적 권력을 휘두를 것 같다.
***
우리 딸 알리나.
오빠의 성인 크라시우스를 잇는 소중한 아이.
‘알리나 크라시우스.’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알리나를 보며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이 아이가 내 품에 있을 때도 행복했는데, 이렇게 직접 보며 품에 안을 수 있으니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이제야 먼저 아이를 낳은 두 언니와 리제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너무 예뻐.’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아이인데도 너무 사랑스럽다.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째 엄마.”
“응?”
그렇게 한참이나 잠든 알리나를 보는 사이, 문이 열리더니 페디가 방으로 들어왔다.
“내째 엄마! 내째 엄마!”
“어마! 어마!”
“동새앵~”
그 뒤를 따라 세쌍둥이도 쪼르륵 들어왔다.
마치 병아리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이들이 걷기 시작하니까 저택 전체가 밝아진 기분이야.
“알리나 보러 왔니?”
“웅! 웅!”
페디가 대표격으로 대답하자 세쌍둥이도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봤다.
정확히는 내 품에 안긴 알리나를 본 거지만.
“그래. 마음껏 보렴.”
그래도 상관없다. 아이들의 사이가 좋다는 건 기쁜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