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35)
로판 속 공무원 635화(636/945)
알리나의 탄생은 우리 꼬꼬마들의 관심을 잔뜩 끌기에 충분했다.
장남인 페디는 알리나라는 새로운 동생을 수시로 찾아왔으며, 걷는 것에 재미가 붙은 세쌍둥이는 그런 오빠를 따라 알리나를 구경하러 왔다.
작은 아이들 넷이 뭉쳐 다니는 광경은 실로 귀엽고도 숭고했다. 프리드리히가 기어다니기 시작하면 다섯이나 되는 꼬꼬마들이 몰려다니겠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짝아! 귀여워!”
아니, 엄밀히 따지면 이미 다섯이 몰려다니는 중이지만.
“동생! 예뻐!”
연신 귀엽다, 예쁘다는 말을 반복하며 알리나를 바라보는 황태녀. 그 모습에 나도 린도 시녀장도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요 며칠 동안 황태녀는 저택에 놀러 오지 않았다. 딱히 우리 저택이 질려서 그런 건 아니고, 린의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졌기에 잠시 외부인의 방문을 막은 것이다. 황태녀가 저택에 왔다가 린의 출산이 시작되면 황태녀를 신경 쓸 수 없잖아.
그래서 한동안 내가 페디와 함께 황궁에 방문했다. 성수들도 우르르 끌고 가니 딱히 불만을 표하지는 않더라.
그렇게 황궁에서 놀던 황태녀는 린의 출산이 끝나자 저택 방문을 허락받았고,
“우와! 우와아아!”
처음 보는 아기의 존재에 눈을 반짝였다.
다행인 일이다. 혹시 처음 보는 아기를 보며 낯설어하면 어쩌나 조금 걱정했으니까.
“때부! 때부!”
“예, 전하. 말씀하십시오.”
“얘! 이름 모야!?”
“알리나입니다.”
벌써 다섯 번째 질문이지만 미소를 머금으며 답해줬다.
아이가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알리나가 다소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일 수도 있지.
“알-리나?”
실제로 황태녀는 알이라는 글자에서 다소 주춤거렸다.
그럼에도 알리나의 이름을 임의로 줄이지 않고 꿋꿋하게 풀네임으로 부르려 노력 중이다. 이 얼마나 가상한 모습인가.
“알-리나… 알리… 나…”
몇 번이나 알리나의 이름을 중얼거리던 황태녀는 양 주먹을 꼭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알리나도, 우리 동생!”
“맞습니다, 전하. 전하께서 언니로서 알리나를 잘 돌봐주십시오.”
“웅! 맨날 놀아주구, 쪼꼴릿도 줄꺼야!”
다부진 선언에 다시금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무려 초콜릿을 나눠준다니. 아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배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하. 그러다 전하가 드실 초콜릿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으에?”
다만 황태녀는 이미 페디에게 초콜릿을 주고 있고, 세쌍둥이와 프리드리히에게 주는 날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 상황에서 알리나까지 포함하면 나눠줘야 하는 초콜릿만 여섯 개. 황태녀는 초콜릿을 구경도 하지 못하고 손가락만 빨 수도 있다.
“그, 그치만! 초콜릿 맛있는걸! 나 혼자 먹기시러!”
내 말에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황태녀는 마음을 다잡은 듯, 양팔을 파닥이며 자신의 뜻을 굳건히 내세웠다.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다. 동생들을 위하여 자기가 좋아하는 걸 기꺼이 내놓는 언니. 어릴 때부터 이리도 선량하니 황태녀는 분명 성군이 될 거다.
‘황후를 닮아서 다행이야.’
저 성품은 절대 황제에게서 나올 수 없는 성품이다. 황제를 닮았다면 초콜릿을 나눠주기는커녕, 초콜릿에 호기심을 가지는 아이들 앞에서 놀리듯이 혼자 먹었겠지.
그러니 황제가 황후와 결혼한 것은 황실의 복이요, 황태녀가 황후를 닮은 건 제국의 복이다. 반박 시 2황자다.
“그런데 때부.”
“예, 전하.”
“뻬디는 왜 동생이 계속 생겨?”
“…예?”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뻬디. 나보다 동생인데 나보다 동생 많아!”
이윽고 황태녀는 서럽고 원통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내 동생은 아직 업는데! 뻬디만 계속 늘어나구!”
“저, 전하. 이 아이들도 전부 전하의 동생─”
“나랑 가튼 고세서 안 자잖아! 우리지베 나만이써!”
얼마나 서러웠는지 나름 유창하던 발음이 급속도로 퇴화하기 시작했다.
아니, 아까는 알리나 보고 우리 동생이라며. 왜 갑자기 자기 동생, 페디 동생을 구분하는 건데.
‘많이 쓸쓸했나 보네.’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 해가 떠있을 때는 우리 저택에 와서 페디를 비롯한 동생들과 실컷 놀 수 있지만, 황궁으로 돌아가면 자기 혼자 쓸쓸히 놀아야 한다.
업무로 바쁜 황제, 내조와 사교에 열중하는 황후, 어디까지나 아랫사람인 호위 기사들이나 시종, 시녀들. 황태녀 입장에서는 마음 편히 놀 수 있는 상대가 없다. 그렇다고 우리 애들을 황궁에 24시간 둘 수는 없잖아.
덕분에 황태녀는 우리 저택에서 볼 수 있는 동생이 아닌, 자신처럼 황궁에서 먹고 자는 동생을 원하는 것일 터.
“엄마! 내 동생준다고 했는대! 아직 업써!”
그 말에 무심코 웃음이 터질 뻔했다.
황후는 작년 연말이나 올해 초 사이에 둘째를 임신했다. 앞으로 넉넉하게 반 년 정도만 지나면 황태녀의 동생이 태어나지만, 유감스럽게도 황태녀는 ‘아이 = 10개월은 지나야 태어나는 존재’ 라는 개념을 잘 모른다. 그저 매일매일 황후를 조르며 황제에게 떼를 쓸 뿐.
“이러다 둘째가 황태녀의 보챔에 학을 떼지는 않을까 걱정이라네. 빨리 나오려다가도 황태녀가 무서워서 안 나올 것 같아.”
오죽하면 몇 주 전, 황제가 그리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겠나.
물론 내 알바는 아니다. 그러게 진작에 동생 두 명 정도는 낳아주지 그랬냐.
“전하. 두 분께서는 전하께 예쁘고 튼튼한 동생을 주기 위하여 노력 중이신 겁니다.”
“노오- 력?”
아무튼 속으로 황제를 욕하다가 볼까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황태녀를 다독였다.
황제가 시달리는 건 흐뭇한 일이나, 황태녀가 서러움에 빠지는 건 대부로서 방치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황태녀는 언제나 기분 좋은 일만 겪어야 돼.
“전하와 평생을 함께 할 동생이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둘도 없을 동생이니, 두 분께서도 최선을 다해 노력 중이신 겁니다.”
“진짜?”
“물론이지요. 저도 페디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황태녀의 시선이 알리나의 손가락을 톡톡 건드리고 있던 페디에게 향했다.
그러고는 한참이나 눈을 깜빡이는 것이, 훗날 태어날 자신의 동생을 상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치마아안… 빨리 동생보고시퍼…”
다소 누그러든 황태녀의 모습에 슬며시 황태녀를 품에 안았다.
이제 조금만 위로하면 된다. 갑자기 찾아온 서러움이니 갑자기 풀리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몇 밤만 더 자면 됩니다.”
“몇 밤이나?”
“흠, 한 300밤 정도?”
300이라는 아득한 숫자에 황태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기, 길어! 시러! 못기다려!”
“하지만 전하. 그 정도는 기다려야 예쁜 동생이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너무기러! 줄여져!”
양팔을 버둥거리는 황태녀의 기세는 실로 용맹하고도 매서웠다.
사실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100이라는 숫자도 아득하게 느끼는 아이 입장에서 그 세 배인 300? 아마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영겁의 시간으로 여기지 않을까?
“어쩔 수 없군요. 그럼 제가 폐하께 잘 얘기하여 200밤 정도로 줄여보겠습니다.”
“200밤…”
내 말에 황태녀의 눈동자가 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죠아! 때부 채고!”
이윽고 흔쾌한 대답이 돌아왔다.200도 짧은 기간은 아니지만, 적어도 300보다는 나으니까.
‘원래 200일 정도지만.’
해맑게 웃는 황태녀를 보니 양심이 조금 아팠다. 처음에는 300밤 운운하며 황태녀의 멘탈을 강렬하게 공격했지만, 실제로 황태녀의 동생이 태어나는 건 길어봤자 200일 후다.
하지만 처음부터 200밤을 부르면 황태녀가 길다고 싫어할 게 뻔하지 않나. 충격 요법을 위해 잠시 거짓말 좀 해봤다.
이런 대부라 미안해.
“우우웅…”
“아-빠. 알리나, 깨써.”
“아.”
너무 떠들어서 그런지 곤히 자고 있던 알리나가 스르륵 눈을 떴다.
아빠라는 놈이 소중한 딸의 수면을 방해했구나. 이런 아빠라 미안해…
“알-리나! 깬김에 우리랑 놀─”
“안 됩니다.”
“히잉…”
그래도 알리나를 더 피곤하게 만드려던 황태녀의 야망은 차단할 수 있었다.
강제로 깬 아이는 최대한 빨리 다시 재워야지, 놀게 두면 밤에 안 자고 울기만 한다.
***
장관의 저택으로 놀러 갔던 황태녀가 돌아왔다.
“아빠! 아빠!”
한 손에 삐뚤빼뚤한 숫자가 적힌 종이를 든 채로.
저게 무슨 물건인가 싶었지만, 일단 우다다다 달려오는 황태녀를 안아줬다. 지금 황태녀가 천사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데 그깟 종이가 중요하겠나.
“아빠! 이것빠바! 내가 쓴 종이!”
게다가 내가 먼저 묻지 않아도 우리 황태녀가 먼저 설명해 줄 거라 믿었다.
총명하고 영특한 우리 딸. 이 아빠에게 이것저것 설명하고 묻는 걸 좋아하니까.
“숫자 공부를 했나 보구나.”
슬쩍 종이를 훑어보니 무려 1부터 100까지 적혀있었다. 뒷면에도 얼핏 숫자가 보이는 걸 보면 뒷면에는 100을 아득히 초월한 200까지 적은 모양이다.
장하다, 우리 딸. 놀러 가서도 열심히 공부 중이었구─
“내 동생 달력!”
…?
“응?”
“때부가 그래써! 나 200밤만 자면 동생 생긴대!”
그 말에 머리가 멍해졌다.
200밤… 이 맞기는 하다. 임신 날짜를 계산하면 200일이 지나기 전에 둘째가 태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그걸 왜 황태녀가 알고 있는 건가. 왜 황태녀의 손에 200일까지 적은 종이가 들려있는 건가.
“이거 다 그으면! 동생 생겨!”
“그, 렇지. 황태녀의 말이 맞다. 200밤이 지나면 동생이 생길 거다.”
허나 혼란을 뒤로하고 히히 웃는 황태녀를 쓰다듬었다.
상황은 이해할 수 없지만 황태녀가 좋아한다는 건 확실히 알겠으니까.
‘도대체 무슨 대화를 나눈 거냐.’
물론 속으로는 장관을 원망했다. 만약, 만약 저 동생 달력이라는 게 전부 소모될 때까지 둘째가 태어나지 않는다면? 만약 200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면?
과연 황태녀는 얼마나 울음을 터뜨릴까. 상상만 해도 두렵다.
황태녀는 황후에게도 자기가 직접 만든 동생 달력을 자랑했다.
“저희가 진작 둘째를 가졌어야 했는데, 홀로 황궁에서 지낼 황태녀의 쓸쓸함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소 서글픈 눈으로 말한 황후는 무언가 다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가 태어나면 바로 셋째를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황후?”
“황실의 번영을 위해서는 아이가 다섯은 있는 게 좋겠지요.”
“황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