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36)
로판 속 공무원 636화(637/945)
황태녀에게 1부터 200까지 적는 법을 친절하게 알려준 날, 황제의 진심 가득한 감사 인사가 날아왔었다. 어찌나 열정적으로 감사 인사를 하던지 통신구 너머로도 황제의 진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흐뭇하다. 황태녀에게 곧 동생이 생길 거라는 희망을 준 것도, 무려 200이라는 거대한 숫자까지 가르쳐 준 것도 대부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지 않나. 황제도 그걸 알기에 나에게 극찬을 날린 것이겠지.
‘고생 좀 해라.’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슬쩍 손으로 가렸다. 근처에 사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창문에 비치는 내 얼굴이 너무 흑막의 미소 같았으니까.
하지만 이걸 어떻게 참아. 내가 쏘아 올린 공 덕분에 황제의 고생이 늘어났는데.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매일 시달릴 거다.’
앞으로 황태녀는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황제를 달달 볶을 것이며, 둘째가 태어나더라도 셋째와 넷째를 바랄 것이다. 그러한 욕망을 감당하는 건 오롯이 황제의 몫이다.
황제 입장에서는 피눈물을 흘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솔직히 황태녀와 놀아주는 시간은 황제보다 내가 압도적으로 길잖아. 내가 옆에서 ‘황제 폐하께 간절히 부탁하면 동생이 많이 생길 것.’ 이라는 말을 해도 황제는 막을 방법이 없다.
꼬우면 황제인 자기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면 된다. 나처럼 아이들과 언제 어디서나 놀아줄 수 있는 아빠가 되면 그런 수모도 당하지 않았을 테니.
‘가정에서는 내가 너보다 위다.’
결국 꾹꾹 참고 있던 웃음이 터져 나왔다.제국 안에서는, 관료제 안에서는 내가 황제보다 아래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진실이다.
허나 제국이 아닌 가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내가 압도적인 강자다. 내 아이들은 물론, 황태녀마저 내가 완벽히 컨트롤할 수 있으니까. 매일 업무에 치이는 황제 따위 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빠 호소인에 불과하니까.
‘왔다.’
그렇게 한참이나 낄낄거리던 중, 창문 너머로 황태녀와 시녀장이 보였다.
오늘도 황태녀와 신나게 놀아줄 시간이다.
이변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인절미를 탄 채 복도를 누비는 황태녀, 성수들을 쪼물딱거리며 히히 웃는 황태녀, 페디와 초콜릿을 나눠먹는 황태녀, 세쌍둥이를 이끌며 우다다다 돌아다니는 황태녀.
분명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으나, 딱 한마디로 인해 평화롭던 저택에 변화가 생겼다.
“쁘-디랑 아알-리나는 같은곳애 두면안대?”
황태녀는 복도와 정원을 누비며 노는 것 외에도 프리드리히가 있는 방에서 프리드리히를 구경하고, 알리나의 방에서 알리나를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그렇게 매번 왔다 갔다 하던 황태녀는 둘을 합방하면 안 되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같은 곳이요?”
“웅! 둘이 남매자나!”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황태녀를 보며 슬쩍 턱을 매만졌다.
사실 안 될 건 없다. 둘 다 걷기는커녕 기는 것도 불가능한 아이들이니 같은 방, 같은 침대에 둬도 문제 될 것은 없다. 오히려 두 방에 인력이 나뉘는 것보다 효율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따로 두는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리 어른들이 아이를 관리하더라도 아이는 변수가 많은 존재다. 갑자기 한 명이 울음을 터뜨릴 수도 있고, 한 명이 울면 옆에서 자고 있던 아이도 덩달아 울 확률이 높다.
그건 곤란한 일이다. 우는 아이를 동시에 둘이나 달래는 건 많이 힘든 일이지.
“나! 둘이 가치 있는거 보고시퍼! 둘다 쪼꼬매서 기여워!”
허나 눈을 반짝이는 황태녀에게 단호히 안 된다는 말을 하는 건 더욱 곤란한 일이었다.
과연 기대에 가득 찬 아이를 실망시키는 것이 옳은 행동일까? 프리드리히와 알리나를 같은 곳에 두는 건 두 아이의 정서 발달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릴 때부터 남매가 같이 자라면 좋은 일이잖아.
‘우는 아이를 달래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
생각해 보면 아이는 3살 때도, 5살 때도 운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수십 명이 몰려있을 때도 우는 것이 아이다.
그러니 같이 있으면 둘 다 운다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 그냥 우리가 아이들을 다른 방에 두는 것이 익숙해서 합방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안대…?”
내가 잠시 말이 없자 황태녀는 시무룩한 얼굴로 어깨를 추욱 늘어트렸고,
“압빠. 나두 가치 잇는거, 보고시퍼.”
황태녀 옆에 있던 페디도 나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나두! 나두!”
“보고시퍼! 보고시퍼!”
심지어 바닥에 주저앉아 재잘거리던 마리아와 세실리아도 황태녀의 뜻을 지지했다.
아마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황태녀와 페디의 말을 따라 하는 것 같지만.
‘그새 잠들었네.’
그 와중에 카틀레아는 티티의 품에서 평온한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너무 자연스러운 숙면이라 자는지도 모르고 있었어.
“알겠습니다. 프리드리히랑 알리나도 같이 있는 걸 좋아하겠죠.”
“그치!?”
내 말에 시무룩했던 황태녀의 얼굴이 급속도로 밝아졌다.
‘그렇게 좋을까.’
고작 아이들을 같은 침대에 눕게 하는 것인데. 그런 사소한 걸로도 이리 기뻐하는 걸 보면 신기하고도 귀엽다.
“나! 둘이 가치 있는거 보고시퍼! 둘다 쪼꼬매서 기여워!”
그리고 방금 전에 황태녀가 했던 말이 떠올라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자기도 작은 주제에 프리드리히와 알리나를 보고 작아서 귀엽다니. 작은 애가 더 작은 애를 귀여워하는 건 어른들이 보기에 흐뭇한 광경이다.
“때부?”
그래서일까. 나도 모르게 황태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전하.”
“웅!”
“전하가 제 아이들의 누나고 언니라 다행입니다.”
그 말에 황태녀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더니, 활짝 웃으며 양팔을 파닥였다.
“나두 동생들 많아서! 조아!”
실로 완벽한 대답이라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모빌을 보고 있던 프리드리히를 알리나의 옆으로 옮겼다.
“우웅?”
난데없이 터전이 옮겨진 프리드리히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더니, 자기 옆에 있는 알리나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러고는 나를 한 번, 알리나를 한 번, 다시 나를 한 번, 또다시 알리나를 한 번 돌아보았고,
“우아-”
앙증맞은 손을 쭉 뻗어 알리나의 뺨을 콕 찔렀다.
“우…”
물론 잘 자다가 터치를 당한 알리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꿈틀거렸다. 아무리 앙증맞은 손이어도 물리력이 있기는 하니까.
“아우?”
아무튼 알리나의 꿈틀거림을 본 프리드리히는 슬며시 손을 거두더니 뚫어져라 알리나를 바라봤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자신이 건드렸음에도 별 반응이 없는 알리나가 신기한 모양이다. 지금까지 프리드리히가 누군가를 터치하면 그 사람은 태양보다 밝은 얼굴로 안아주거나 놀아줬으니까. 하물며 동생을 보러 온 형, 누나들도 자신의 터치에 반응해 줬으니, 프리드리히 입장에서 무반응은 처음 겪는 일일 터.
덕분에 프리드리히가 알리나에게 호기심을 가진 것 같아 다행이다. 혹시 늘 누워있던 침대가 아닌 다른 침대에 누운 걸로 울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아우- 우- 우우-”
“우리 프리드리히. 동생 코오- 자는 거 방해하면 안 돼요.”
다만 호기심이 다소 과했는지, 기껏 거두었던 손으로 알리나에게 연속 찌르기를 시도해버렸다.
‘이걸 안 깨네.’
그리고 연속 찌르기를 당한 알리나는 살짝 인상만 찌푸릴 뿐, 전혀 동요하지 않고 꿋꿋하게 수면을 취했다.
우리 알리나. 생각보다 대범한 아이였구나. 이 아빠는 우리 딸이 강인한 아이로 자랄 것 같아 기쁘단다.
“프리드리히가 오빠니까 동생을 잘 돌봐줘야지.”
“우우?”
평온한 알리나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프리드리히를 부드럽게 타일렀다.
아직 기어다니지도 못하는 프리드리히가 내 말을 알아들을까 싶으나, 자고 있는 알리나를 건드릴 때마다 이렇게 제지하면 통하지 않을까 싶다. 반복 학습은 중요한 법이지.
“맞아! 오빠니까 동생! 잘 돌바저야대!”
“우-?”
내 말에 황태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작 프리드리히는 연신 고개만 갸웃거렸지만 괜찮다. 알아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니까.
‘보기 좋네.’
어느새 프리드리히에게 달라붙어 재잘재잘 떠드는 황태녀, 프리드리히의 연속 찌르기가 인상적이었는지 슬금슬금 알리나에게 다가가는 페디, 카틀레아처럼 티티의 배에 누워 낮잠을 즐기는 마리아와 세실리아.마지막으로 그 소란 속에서 침대에 누워있는 프리드리히와 알리나까지.
일곱이나 되는 아이들이 오순도순 모여 있는 광경을 보며 슬쩍 뒤로 물러났다. 지금은 이 아이들의 모습을 한 눈에 담고 싶다.
‘벚꽃이와 바다.’
이윽고 나란히 누워있는 두 아이의 태명이 공교롭게도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빠이자 분홍색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가 벚꽃이. 동생이자 푸른색 눈동자를 가진 아이가 바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첫눈이도 여기 있네.’
기어코 알리나의 볼을 콕 하고 누른 페디의 모습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제 단풍이만 생기면 우리 저택은 매일매일이 사계절인 곳이 된다.
***
오늘도 때부 집애서 재밋께 놀고와따!
“샤를로테. 잘 놀다 왔니?”
“웅!”
엄청 재미썻따. 나만 가는개 아니라 아빠, 엄마랑도 같이 가고십퍼서!
“맞따! 엄마!”
“왜 그러니?”
“쁘-디랑 알… 리나! 둘이 같이 잇스니 귀여워써!”
“후후, 그래?”
“웅! 웅!”
엄청엄청 기여워써! 뻬디랑 마리아, 쎄시리아, 카트레아도 조앗지만, 쁘디랑 아알리나는 작아서 더 죠아!
“나두 200밤 지나면 동생 생기는거 마찌?”
“그럼. 우리 샤를로테에게도 귀여운 동생이 생길 거란다.”
“얼마나!?”
뻬디는 동생이 잔뜩 있엇써! 나도 많았으면 조켓서!
“흐으음. 우리 샤를로테 동생은…”
내머리를 만져주던 엄마는 나를 꼬옥 안아졌다.
“셋은 있어야겠지?”
“셋! 죠아!”
“네 명은 어떠니?”
“더 죠아!”
엄마 채고!
“샤를로테. 아빠한테도 꼭 말하렴. 동생 넷은 가지고 싶다고.”
“아라써! 넷!”
“다섯이라고 해도 괜찮단다.”
“와아아아!”
엄마 진짜 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