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37)
로판 속 공무원 637화(638/945)
우리 아이들 중에 유독 덩그러니 떨어진 아이가 있다.
페디는 황태녀의 전담 소꿉친구나 다름없기에 예외다. 황태녀가 놀러 오기 전까지는 티티와 함께 저택을 누비며, 황태녀가 오면 성수들까지 동원하여 꼬마 장군 같은 위풍당당한 행군을 즐긴다. 쓸쓸함과는 거리가 멀다.
마리아와 세실리아도 외톨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둘이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라 그런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슬슬 말년 병장처럼 저택 구석구석에 숨기 시작하는 장생이를 찾아다니느라 바쁘다.
프리드리히와 알리나는 아직 기어다니지도 못해 혼자 침대에 누워 지냈으나, 황태녀의 제안을 기점으로 서로 오붓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오붓이라고 해봤자 프리드리히가 일방적으로 알리나를 쿡쿡 찌르는 시간이었지만.
아무튼 페디, 마리아, 세실리아, 프리드리히, 알리나가 나름 짝을 이루어 노는 것에 비해─ 딱 한 명만이 홀로 있는 시간이 잦았다.
“아우웅…”
“깼니?”
세쌍둥이 중 막내인 카틀레아.정령왕의 축복을 너무 잘 받아들여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자는 아이.
지금도 눈을 비비며 하품을 하는 카틀레아가 우리 저택 아이들 중 유일한 외톨이다.
“자, 아빠한테 오렴.”
“웅…”
아직도 졸린지 비몽사몽한 얼굴로 걸어온 카틀레아가 내 품에 안겼다.
그 모습에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카틀레아의 등을 토닥였다. 밝게 웃는 카틀레아도 귀엽지만 이렇게 잠에 취한 카틀레아도 귀엽다.
‘어서 축복을 다 소화해야 할 텐데.’
내 가슴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는 카틀레아를 보다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카틀레아가 외톨이… 라는 표현은 솔직히 과장된 표현이다. 카틀레아가 일어나기만 하면 영혼의 파트너인 마리아와 세실리아가 함께 놀아주고, 오빠인 페디도 카틀레아를 잘 챙겨주니까.
허나 다른 아이들이 다 노는 시간에 홀로 잔다는 건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일이다. 처음에는 곤히 자는 카틀레아 옆에서 떨어질 생각을 않던 마리아와 세실리아였지만, 얼마 전부터 카틀레아가 잘 때는 독자 행동을 시작했다.
‘곤란해.’
만약 이 상황이 쭉 이어지면 어떻게 될까. 세쌍둥이 중 두 언니만 친해지고, 카틀레아는 다소 어색한 관계가 되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진다. 세쌍둥이면서도 홀로 떨어진 카틀레아의 모습을 상상하니 눈물이 나올 것 같고, 언니들과 어울리지 못해 자는 척을 할 카틀레아를 생각하니 코 끝이 찡해진다.
이 재앙은 상상으로만 끝나야 한다.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카틀레아를 품에 안고 울지도 모른다.
‘그래도 1, 2년 정도랬지.’
슬슬 자기 발로 서고 싶은지 버둥거리는 카틀레아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다행히 바람의 정령왕은 카틀레아의 낮잠이 1년에서 2년 정도 이어진다고 했었다. 한 5년이나 10년 이어지는 거면 정령왕들의 멱살을 잡아서라도 해결 방법을 내놓으라고 소리쳤겠으나, 2년이면 그럭저럭 감내할 수 있는 기간이다.
아이들이 아무리 현명해도 3살 때의 기억을 평생 가져가지는 않는다. 아무리 활발한 아이여도 3살의 육체로는 놀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 카틀레아가 3살 이후부터 ‘특성: 잠자는 공주님’을 벗어던진다면 세쌍둥이의 분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아-빠. 아빠아-”
그렇게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하던 중,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방 안을 오도도도 달려 다니던 카틀레아가 나를 불렀다.
“왜 그러니, 우리… 딸…?”
그리고 카틀레아에게 시선을 돌리자마자 머리가 새하얘졌다.
“이거. 빤짝여.”
카틀레아의 주변에 붉은색과 푸른색 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마치 반딧불이처럼.
‘저게 뭔.’
우리 집에 저런 게 있었나…?
난데없는 반딧불이의 등장에 급히 트릭시를 불렀다.그럴 가능성은 적지만, 혹시 저 반딧불이가 엘프 아이들의 특성일 수도 있으니까.
“저게 뭐지…?”
허나 트릭시도 카틀레아 주변을 맴도는 붉은빛과 푸른빛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정확히는 트릭시가 오는 사이에 녹색 빛과 황색 빛까지 추가되어서, 네 가지나 되는 불빛이 카틀레아 주변을 빙빙 날아다녔다.
“처음 보는 거야?”
“그, 그래. 나도 이런 건 처음 보는구나.”
내 질문에 트릭시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트릭시도 이 현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심 ‘엘프가 아기일 때는 반딧불이가 와서 친구가 되어준단다.’ 라는 말을 해주기를 바랐는데.
‘진짜 뭐지.’
복잡 미묘한 심정으로 카틀레아 근처를 떠나지 않는 불빛들, 그 불빛을 향해 손을 허우적거리는 카틀레아를 바라봤다.
혼란스럽다. 일단 카틀레아에게 해가 되는 것 같지는 않으나, 정체도 모르는 것들을 카틀레아 주변에 방치할 수는 없다.
‘어디서 들어온 거야.’
더욱 착잡한 것은 저 반딧불이들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는 거다.
나름 제국백의 개인 저택이자 장관이 머무는 장소다. 소중한 부인과 아이들이 지내는 터전이고, 황태녀도 놀러 오는 놀이터다. 그런 만큼 황궁을 제외하면 남부러울 것 없는 방비를 유지 중이다.
그런데 저런 것들이 저택에 있는 걸 아무도 몰랐다고? 저택에서 자연 발생한 게 아닌 이상 분명 외부에서 유입된 것인데, 경비병들이 그걸 놓쳤다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설령 경비병들이 놓쳤더라도 이 저택을 쉬지 않고 돌아다니는 사용인들에게 들켰을 거다. 허나 이 반딧불이는 경비병은 물론 사용인들의 눈도 피했다.
피가 마르는 기분이다. 우리의 눈과 귀를 피하고 들어온 게 저 하찮아 보이는 불빛이라 망정이지, 안 좋은 마음을 품고 잠입한 악한이었다면? 우리 아이들이 복도나 방에서 노는 동안 악한과 마주쳤다면?
‘시발.’
절로 이가 갈렸다. 일단 저 반딧불이들의 정체를 파악하고, 저택 경비 동선을 철저히 다시 짜는 게─
“아.”
트릭시의 나지막한 탄성이 울려 퍼졌다.
“칼. 저 불빛들, 어디서 본 것 같지 않니?”
“응?”
그 말에 카틀레아의 머리에 앉은 반딧불이를 다시 바라보았다.
…
아.
“아.”
뒤늦게 무언가가 떠올랐다. 확실히 본 기억이 있다.
‘정령이잖아.’
세쌍둥이가 정령왕의 축복을 받았던 날, 어마어마한 친화력을 자랑하는 카틀레아를 환영하듯 세계수에서 빼꼼 몸을 내밀었던 정령들.
그 무수히 많던 정령 중 하급에 위치한 정령들이 저렇게 반딧불이 같은 형태를 보였다. 마침 색깔도 정령왕들처럼 적, 청, 녹, 황이네.
‘정령들이 왜 여기에 있지?’
일단 불빛들의 정체는 확인했다. 생긴 것도 세계수에서 본 정령들과 유사하고, 카틀레아의 친화력을 생각하면 정령인 게 확실하다.
하지만 정령들이 저택에서 발견된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세계수에 있어야 할 녀석들이 대체 왜.
“압-빠! 어엄-마!”
잠깐 머리가 지끈거렸으나 고민이 길지는 않았다.
정령들을 머리와 어깨, 손에 얹은 카틀레아가 해맑게 웃고 있었으니까.
“조만간 외조모님한테 인사라도 드릴까?”
“그래. 그러자꾸나.”
그 사랑스러운 모습에 나도 트릭시도 미소를 짓고 말았다.
정령왕의 축복을 받은 카틀레아에게 정령들이 해를 끼칠 일은 없다. 어쩌다 세계수에 있을 녀석들이 저택에 있는 건지는 의문이나, 그건 정령왕들에게 직접 물어보면 그만이다.
“…아까보다 늘어난 거 같지?”
“분명 아까는 넷이었는데…”
그리고 그 와중에 카틀레아에게 달라붙은 정령이 두 배로 늘어났다.
너네 어디에 있다가 계속 나오는 거야.
움직이는 정령 거치대가 되어버린 카틀레아는 저택의 슈퍼스타가 되었다.
“반짝반짝! 신기해!”
특히 황태녀는 무려 인절미에서 내려올 정도로 카틀레아와 정령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
사실 나였어도 관심을 줬을 거다. 시골이나 숲 속도 아닌 저택 한복판에서 형형색색인 반딧불이가 관측됐는데 이걸 어떻게 참아. 심지어 그 반딧불이들이 엘프 몸에 달라붙어있다면 더더욱.
“반짝반짝!”
“신기해애애.”
물론 마리아와 세실리아도 정령들에게 관심을 보였다.
‘절묘하네.’
세쌍둥이와 황태녀. 딱 정령왕들에게 축복을 받은 아이들만 정령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실로 절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도! 만져봐도대!?”
아무튼 뚫어져라 정령들을 보던 황태녀는 카틀레아에게 두근거리는 눈빛을 보냈다.
기특하다. 무단으로 손을 대는 게 아니라 카틀레아의 허락부터 구하다니. 역시 황태녀는 선량한 성품을 타고난 아이다.
“웅. 죠아.”
그 선량하고 정중한 부탁에 카틀레아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황태녀는 카틀레아도 자기 여동생으로 여기며 좋아했으니, 카틀레아가 거절할 이유가 없기도 하다.
“히잉… 얘네 나 피해…”
다만 카틀레아의 허락과 별개로 정령들은 황태녀의 손을 피했다.
익숙한 광경이다. 2학년 수학여행 당시, 사람의 손을 피하던 요정들이 딱 저런 모습이었지. 정령들도 딱히 사람을 반기는 성격은 아닌 모양이다.
“때부! 때부!”
“예, 전하.”
“나도 얘네 만지고시퍼!”
사납게 양팔을 퍼덕이는 황태녀의 모습에 픽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전하. 정령들은 아직 부끄러워서 전하를 피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동생들을 대하듯 정령들을 대한다면 언젠가는 다가올 겁니다.”
“지, 진쨔?”
“물론이지요. 제가 전하께 거짓말을 한 적이 있습니까?”
그러자 황태녀는 반짝이는 눈으로 정령들을 바라봤다.다행히 내 말에 납득하고 넘어간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만질 수 있겠지.’
정령은 요정과 마찬가지로 엘프의 가족이자 친우. 순수 인간인 황태녀의 손을 꺼리는 건 당연하나, 황태녀는 바람의 정령왕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지금은 인간을 피할지라도 언젠가는 정령들도 왕의 축복을 받은 황태녀에게 관심을 보일 거다.
이건 단순한 추측이 아닌 확신이다. 카틀레아의 주변을 떠다니는 정령들 중, 바람의 정령왕처럼 녹색을 띠는 정령들은 황태녀와 은근히 가까운 곳을 떠다니고 있으니까.
“때부! 얘네도 쪼꼬릿 먹어!?”
“아니요. 안 먹습니다.”
“히잉…”
다만 황태녀가 정령들과 친해지는 건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정령들을 동생처럼 대하라고 했지, 사람처럼 대하라는 건 아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