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38)
로판 속 공무원 638화(639/945)
요즘 저택이 때늦은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기분이다.
어느 방에 들어가든 크리스마스 전구처럼 반짝거리는 정령이 보이고, 복도를 지나다녀도 정령이 관측된다. 심지어 식사를 위해 가족들이 식당에 모이면 얘네도 같이 밥을 먹는 건지 우르르 몰려왔다.
사실 처음에는 이 기묘하고도 신기한 상황을 모두가 반겼다. 정령들이 흉측하게 생겼다면 모를까 다행히 반짝이는 반딧불이처럼 생기지 않았나. 게다가 색깔도 형형색색 다양했으니 저택이 더욱 밝아진 기분이었다.
딱 일주일 정도는 그렇게 생각했다.
“뭐야, 또 너였냐?”
밤중에 순찰을 하던 경비병이 이상한 불빛을 발견하여 달려가면 정령이 있었고,
“얘들아… 나 잠 좀 자자…”
이리저리 방황하던 정령 일부가 하녀들의 방으로 들어가 하녀들에게 눈뽕을 가했으며,
“제발 나가.”
화장실에 들어간 어느 하인은 볼 일을 보는 내내 정령들과 어색한 공존을 겪어야 했다.
물론 정령들이 우리에게 물리적인 피해를 준 건 아니다. 정령들은 매우 순하고 얌전하며, 카틀레아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손을 피하고 있다. 그저 저택을 뽈뽈뽈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사람들과 겹쳤을 뿐이다.
그렇다고 정령들을 한곳에 가둬둘 수도, 저택 밖으로 쫓아낼 수도 없기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애초에 가두거나 쫓아내봤자 아무렇지도 않게 저택에 잠입할 녀석들이지만.
‘카틀레아 근처에만 있으면 신경 쓸 필요도 없는데.’
착잡한 심정에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령들은 카틀레아 주변에서만 관측되었다. 오직 카틀레아만 따르고 좋아하는 녀석들이기에 카틀레아 주변에서 벗어나지를 않았다.
허나 그랬던 정령들이 저택 곳곳에서 관측되는 이유는 간단했다.
‘크리스마스트리…’
카틀레아 주변은 이미 포화 상태가 됐다.
여덟 마리였던 정령들은 하루가 다르게 증식하더니, 어느덧 카틀레아의 몸이 우르르 달라붙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빛나고 있었다. 저거 대충 세도 백은 되는 것 같은데.
덕분에 카틀레아의 몸에 달라붙지 못한 정령들, 카틀레아의 방에 머무르지 못한 정령들은 저택을 터전 삼아 카틀레아를 먼발치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이러다 저택도 포화 상태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다.
“카틀레아?”
“우웅?”
“안 불편하니…?”
“죠-아!”
아무튼 생체 크리스마스트리가 된 카틀레아에게 조심스레 묻자, 카틀레아는 활짝 웃으며 양팔을 파닥였다.
그래. 좋다니 다행이기는 한데…
‘이걸 방치해도 되는 건가.’
반짝이는 정령들 때문에 카틀레아의 얼굴을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이 망할 정령들 같으니. 우리 딸 얼굴 가리지 말고 당장 꺼져.
“우리 딸, 이리 온.”
과한 눈뽕에 욱신거리는 눈을 진정시키며 양팔을 뻗었다. 원래는 몇 주 정도 후에 가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
“아빠랑 엄마랑 같이 하얀 할머니 보러 갈까?”
“웅! 죠아! 갈래!”
외조모님을 뵈러 가자는 말을 하자 카틀레아가 쪼르륵 달려와 품에 안겼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정령왕들에게 이 사태를 보여주고,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며 확실하게 추궁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우리 카틀레아가 정령과 안 좋은 의미로 하나가 될 것 같았다.
“우웅?”
“아.”
그 와중에 카틀레아가 내 품에 안기자 나와 접촉한 정령들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너무 단호한 반응이라 서운하면서도 화가 났다. 무슨 사람을 병균 취급하고 있어.
나도 너네 싫어 이 망할 것들아.
저택에 퍼진 정령들을 깡그리 긁어모은 뒤, 트릭시와 함께 엘프 주거 지구로 이동했다.
처음에는 그냥 두고 갈까 싶었지만 덩그러니 남은 정령들이 사고를 치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사모해 마지않는 카틀레아가 사라졌다고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하면 그만한 참사도 없어. 수백에 이르는 반딧불이들을 어떻게 통제하고 진정시킬 건데.
“이, 이게 다 뭐니?”
그렇게 수백의 정령과 함께 엘프 주거 지구에 강림한 카틀레아는 외조모님의 환영보다 당혹감과 먼저 마주하였다.
“할-마니-”
허나 카틀레아가 쪼르르 외조모님께 달려가자 당혹감으로 가득했던 외조모님의 표정은 급속도로 온화해졌다.
“우리 카틀레아 왔니? 그동안 잘 지냈고?”
“우웅!”
카틀레아가 외조모님의 품에 폭 안기자 이번에도 정령들은 이리저리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외조모님은 순혈 엘프이자 장로이자 정령사. 흩어진 정령보다 외조모님의 접촉을 받아들인 정령이 더 많았다.
‘역시 드문 현상이 맞네.’
그 광경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외증조모와 외증손녀의 화목한 만남은 실로 흐뭇한 일이나, 외조모님도 카틀레아를 보자마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사태는 수백 년을 살아온 외조모님도 처음 겪는 일이라는 뜻.
결국 돌고 돌아 정령왕들만 남았다. 거의 불멸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정령왕들이니, 왕들만큼은 이 사태를 알 수 있을 터.
– 은인! 오랜만이로군!
마침 저 멀리서부터 불의 정령왕이 날아오고 있었다. 새 형태라 그런지 기동력이 확실히 좋아.
아무튼 잘 왔다. 온 김에 바로 카틀레아의 상태에 대해 물어보─
– …이게 다 뭐지?
?
‘뭔.’
불의 정령왕의 말에 멍하니 불의 정령왕을 바라봤다. 이게 다 뭐냐니. 당신이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우리도 몰라서 온 건데.’
정령왕이 정령에 대해서 모르면 누가 알아.
***
축복을 받은 자가 가까이 다가오면 본능적으로 알아챌 수 있다. 내 기운 중 일부를 받은 자가 근처에 있는 건데, 알아채지 못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렇기에 축복의 기운이 느껴지자마자 산책을 중단하고 날아갔다. 오늘은 산책하기 좋은 날이었지만, 좋은 날 따위는 언제든 겪을 수 있다. 지금 중요한 건 산책이 아닌 귀하디 귀한 미래의 계약자를 보는 거다.
‘무슨 일이지?’
미래의 계약자가 왔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렸으나 동시에 의아했다.
장로에게서 우리의 축복을 받은 아이들이 온다는 말은 듣지 못했고, 우리가 아이들의 방문을 독촉한 적도 없다. 오면 고맙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올 이유가 없다.
‘상관없지.’
물론 고민은 짧았다. 이유가 없든 말든 결국 이곳까지 오지 않았나. 귀한 시간을 내준 미래의 계약자와 열심히 놀아주고 좋은 인상을 심어줄 기회니까.
그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날아가니, 이윽고 장로와 함께 있는 은인과 장로의 외손녀가 보였다. 게다가 장로의 품에는 내가 바라던 작은 엘프가 안겨 있었다.
– 은인! 오랜만이로군!
반가움을 담아 멀리서부터 인사를 건넸다. 아직 거리가 있지만 이 정도 거리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
– …이게 다 뭐지?
가까워지고 나서야 이변을 눈치챘다.
미래의 계약자에게 깃든 축복의 기운 때문에 몰랐는데, 지금 보니 하급 정령들이 수백이나 모여 있었다. 그것도 불, 물, 바람, 땅 속성을 가리지 않고 전부.
뭐지? 세계수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왜 여기 있는 거지? 아니, 그보다 수백이나 정령이 모일 동안 왜 아무도 몰랐던 거지?
“오셨습니까.”
– 아, 음, 그래.
멍하니 정령들을 바라보자 은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뭐 짐작 가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그리고 이 기묘한 사태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저 정령들은 대체 뭐냐고. 대체 무슨 이유로 정령들이 이리 몰려온 것이냐고.
– …….
허나 유감스럽게도 나도 짚이는 것이 없어 입을 열지 못했다.
– 저택 주변에 세계수라도 있나?
“예?”
그저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변명만 늘어놓았다.
다행히 이 사태를 설명할 수 있는 왕이 있었다.
– 아무래도 아이들이 축복을 받은 날, 정령들이 이 아이의 몸에 붙어 은인의 저택까지 갔던 모양입니다.
나처럼 축복의 기운을 느끼고 몰려든 물과 바람, 땅. 그중에서 바람의 정령왕이 수백의 하급 정령들을 보며 사태를 파악했다.
“축복을 받은 건 몇 개월 전의 일인데, 정령들을 보기 시작한 건 1, 2주 정도 전이었습니다.”
– 그동안 잠들었을 겁니다. 정령이 계약을 맺지 않고 세계수 바깥에서 활동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그럼에도 이 아이의 몸에 붙은 건 하급 정령들이 이성보다 본능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한 바람은 미래의 계약자 주변을 맴돌던 바람의 하급 정령 하나를 혀로 핥아주었다.
– 은인의 딸에게는 어마어마한 친화력과 더불어 우리의 축복이 깃들어있습니다. 본능이 강한 하급 정령들 입장에서는 세계수보다 흥미로웠을 거고, 아직 어린아이와 계약을 맺을 수도 없으니 일단 붙고 본 거지요.
“그럼 이제야 활동하기 시작한 건…”
– 이 아이가 축복을 소화하는 중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정령들이 세계수에게 힘을 받아 활동하듯, 하급 정령들은 이 아이에게 풍기는 기운으로 활동하는 것이지요.
바람의 설명에 나도 은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미래의 계약자가 너무 강력하기에 생긴 돌발 사태였군.
– 하지만 이건… 저도 의외로군요. 아무리 친화력이 강한 정령사라도 정령과 계약을 맺는 건 필수적인 과정인데.
한참이나 정령들을 보던 바람은 조심스레 미래의 계약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참으로 대단한 아이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하급뿐만 아니라 중급이나 상급 정령들도 이 아이를 세계수로 여길 수 있겠군요.
“그, 좋은 겁니까?”
– 정령사로 자란다면 나쁜 일은 아닙니다. 좋다… 고 하기에는 이 아이의 주변이 정령으로 가득할 것 같아 애매합니다만.
그 말에 은인은 고민에 빠진 얼굴로 턱을 매만졌다.
– 하급 정령들은 정식 계약을 맺지 않으면 물리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허나 중급 정령부터는 계약자가 아니더라도 사소한 부탁을 들어줄 수 있지. 저 아이에게 수많은 친구이자 심부름꾼이 생기는 거다.
그런 은인에게 황급히 긍정적인 발언을 쏟아부었다.
바람은 상대를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러니 나라도 나서서 은인에게 이 사태가 긍정적인 사태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이건 결코 아이에게 해로운 상황이 아니라고.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 있는 정령들은 하급 중에서도 하급으로 분류되는 정령들이나, 하급 중에서도 뛰어난 아이들─ 혹은 중급 정령 정도가 되면 아이의 손과 발이 되어줄 수 있다. 침대에 누워 가만히 숨만 쉬어도 정령들이 필요한 물건을 운반해 줄 수 있다.
“그렇습니까?”
내 설득에 은인의 표정은 다소 누그러들었다.
다행히 설득이 통한 것 같다.
***
여전히 카틀레아의 몸에 붙어 반짝이는 정령들을 바라봤다.
이 정령들이 카틀레아의 재능을 상징한다고 생각하니 아까보다 예쁘게 보였다.
‘재능은 어쩔 수 없지.’
우리 애가 천재라 생긴 해프닝인데 어쩌겠어.
천재 딸을 둔 아빠가 다 이해해야지. 아무렴.
‘…그럼 이것보다 더 늘어나는 건가?’
유일한 걱정이 있다면 안 그래도 많은 정령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늘어날 예정이라는 것.
이거 카틀레아 방을 더 넓은 곳으로 옮겨야 되나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