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39)
로판 속 공무원 639화(640/945)
요즘들어 황태녀가 황궁에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때부! 때부 집 갈꺼야! 때부!”
“대부도 할 일이 많단다. 그러니 가끔은 대부 혼자 있게 두는 게 어떻겠느냐.”
“아냐! 때부! 할일 업따고 해써!”
황태녀의 반박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장관은 대체 애한테 무슨 말을 하고 다니는 건지.
게다가 딱히 틀린 말이 아니라 재반박을 할 수도 없었다. 현재 제국에 존재하는 모든 관료 중에서 가장 한가한 사람은 장관이니까.
‘이를 어쩐다.’
바닥에 누워 버둥거리는 황태녀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황태녀가 장관의 저택에 가서 놀고 싶어 하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장관의 저택에는 또래 아이들이 여섯이나 있으며, 말을 할 줄 아는 동물은 열하나나 있다. 심지어 장관이 아이들을 위해 복도 전체에 푹신한 매트를 깔았다고 하니, 황태녀 입장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놀이터로 보일 거다.
그러니 황태녀가 장관의 저택을 좋아하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바쁜 나와 황후 대신 황태녀와 놀아주는 장관에게도 고마워 황태녀의 외출을 막을 생각도 없다.
만약 황태녀가 대부만 좋아했다면 많이 서운했겠지만, 다행히 황태녀는 대부를 좋아하는 만큼 아빠와 엄마도 사랑하는 착한 아이다. 장관의 저택에서 신나게 놀면 미련 없이 황궁으로 돌아오는 성실한 아이다.
‘정령만 아니었어도.’
하지만 그런 황태녀가 정령에 홀려 황궁 복귀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놈의 정령 때문에. 안 그래도 볼거리와 놀 거리가 많은 장관의 저택에 새롭게 추가된, 이 대륙 어디에서도 보지 못할 진귀한 존재 때문에.
“때부가 반짝반짝 만지려면 친해지라 해써! 계속 가치 잇서야 친해져!”
그리고 장관이 황태녀에게 이상한 말을 했기 때문에.
다시 한숨이 나올 것 같다. 아직 어린 황태녀가 정령에게 홀린 건 당연한 일이다. 황제인 나조차 정령은 수백 년 전 서적에서나 접했는데, 황태녀가 정령들을 보면 얼마나 신기하겠나. 황태녀 나이대의 아이들은 반짝이는 것과 날아다니는 것에 환장하는 법이다.
그래서인지 황태녀는 정령에 과도할 정도로 관심이 꽂혀버렸고, 그 관심을 통제해야 할 장관은 황태녀를 부추겼다. 정령들을 만지기 위해서는 정령과 친해져야 한다는 말로.
“빤짝빤짝! 내 동생! 만질꺼!”
졸지에 정령들을 동생으로 삼아버린 황태녀의 모습에 쓴웃음을 흘렸다. 황태녀에게 편견이 없다는 건 좋은 일이나 정령을 가족으로 삼을 만큼 편견이 없을 줄은 몰랐다.
“황태녀. 반짝이들은 대부와 외출 중이라, 오늘 가봤자 만나지 못해.”
“그럼 나두 갈래! 때부 잇는고스로 갈래!”
아무튼 바닥에 누운 황태녀를 끌어안으며 토닥였지만, 황태녀는 여전히 떼를 쓰며 버둥거렸다.
마음 아픈 일이다. 평상시의 황태녀라면 이미 이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고 고집을 접었을 시간이다. 안 된다는 걸 깨닫고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였을 착한 아이다.
동시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얼마나 정령이 마음에 들었으면 그 현명하고 착한 황태녀가 이렇게 고집을 부릴까. 차라리 장관에게 보내주는 것이 황태녀에게 좋지 않을까 고민될 정도다.
‘아니야.’
허나 빠르게 고민을 털어내고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막는 건 곤란한 일이나, 하고 싶은 걸 전부 하게 하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황태녀가 아무리 장관을 좋아해도 황태녀의 집은 이 황궁. 신하의 집을 자신의 집으로 여기는 버릇이 들면 황실도 신하들도 난처해진다.
“대부도 일이 있어서 간 거니 그건 곤란하단다. 오늘은 황궁에 있으려무나.”
그렇기에 지금은 단호히 황태녀를 막아야 한다. 내가 평생 황태녀를 잡겠다는 것도 아니고 방문 횟수만 조금 조절하겠다는─
“히잉… 아빠 미워!”
…?
“어…?”
잠시 내 세상이 멈췄다.
그 뒤의 일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울음을 터뜨린 황태녀를 급히 황후가 데려간 것. 딱 이 정도까지만 머리에 남았다.
이는 심각한 문제다. 사랑하는 부인과 귀여운 딸의 모습만 머리에 남을 정도로 정신이 나갔다는 의미지 않나. 가족이 아닌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다쳤다는 뜻이지 않나.
아빠가 밉다니. 우리 황태녀가, 우리 사랑스러운 샤를로테가 이 아빠에게 밉다는 말을 하다니.
“어떻게 생각하나.”
– 실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우 마음을 다잡고 장관에게 연락을 걸자, 장관은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밉다. 장관이 밉다. 저택에 정령 같은 걸 키워서 이 참사를 만들어낸 장관이 너무 밉다.
‘참자.’
그러나 그 격렬한 감정을 표출하지는 않았다.
내가 아는 장관은 자신이 주도하여 정령을 저택에 풀어둘 성격이 아니다. 아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령과 동거하게 된 것이겠지. 그런 상황에서 화를 내봤자 내 꼴만 더 비참해진다.
게다가 정령의 존재가 제국에게 이로우냐 해가 되느냐 따진다면 당연히 전자다. 아펠스의 만행으로 인하여 수백 년 전에 사라진 존재가 제도에 존재한다? 그것도 여명 교단이 콘스탄티나 신앙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이후에?
‘성령이나 다름없지.’
이는 황실과 제국의 권위를 더욱 드높일 수 있는 사안이다. 정령의 존재를 용인할 경우, 장관의 저택이 북적거린다는 걸 제외하면 이득만 잔뜩 있다.
그래서 참을 수 있다. 아비의 고통보다 황제의 이성이 겨우겨우 앞섰다.
만약 아비의 고통이 앞섰다면 내가 무슨 결정을 내렸을지 나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장관. 삼녀의 재능 덕분에 정령이 모인 거라고?”
슬며시 뒷목을 매만지다가 애써 화제를 돌렸다.
장관에게 연락을 건 것은 마음의 상처를 토로하기 위해서도 있으나, 사태 파악 때문이기도 하니.
– 예, 폐하. 본래 정령들은 정식으로 계약자를 구하지 않으면 세계수의 기운으로만 활동할 수 있으나, 제 삼녀가 세계수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해진다고 합니다.
미묘한 뿌듯함이 깃든 장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장관의 삼녀는 움직이는 세계수, 걸어 다니는 정령 요새라고 봐도 무방하다.
‘굳이 세계수까지 가지 않아도 정령과 접할 수 있다라.’
이건 나쁘지 않다, 라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하다.과장을 조금 보태면 신의 축복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특정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존재를 제도에서 볼 수 있고, 유사시에 다른 지역으로 옮길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이득이다. 심지어 세계수가 위치한 엘프 주거 지구는 외부인의 접근이 매우 힘든 곳이지 않나.
덕분에 아펠스가 세계수를 불태우기 이전에도 정령을 만난 인간은 극히 드물었다. 정령의 집인 세계수는 엘프들이 애지중지하는 나무였으니, 타종족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세계수 접근은 여전히 힘들지라도 정령을 보기 위해서는 장관의 허락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정령사를 육성할 수도 있다.’
정령사. 정령의 친구가 되어 정령의 힘을 빌릴 수 있다는 신비의 존재.수백 년 전에도 극히 드문 존재였으며, 인간인 정령사는 한 시대에 한 명만 있어도 많다는 기록이 남을 정도의 희귀종.
이제 제국은 그러한 존재를 양성할 수 있다. 아니, 정확히는 독점을 할 수가 있다.
‘세계수도 장관의 삼녀도 전부 제국에 있으니까.’
설령 정령사의 자질을 타고난 사람이 없어 정령사를 양성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타국은 정령사의 자질조차 파악하지 못할 테니까.
“장관.”
– 예, 폐하. 말씀하소서.
“삼녀는 정령사로 키울 생각인가?”
– 소신의 딸이 따로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 길을 응원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재능을 발휘할 수 있게 지원할 생각입니다.
아비로서 정석적인 대답이라 만족스러웠다. 사실상 변수만 없다면 정령사로 키울 거라는 말을 좋게 포장한 것이니.
“허면 장관. 그 아이를 위해 미리 초석을 다지는 건 어떻겠나?”
– 초석… 말씀이십니까?
“선천적 재능도 중요하지만 후천적인 학습도 중요한 법이지. 아무리 그릇이 커도 물을 채워줄 사람이 없다면 의미가 없어.”
그 말과 함께 최대한 진지한 표정을 만들었다. 지금 건넬 제안은 장관의 적극적 협조가 없다면 많이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제국 아카데미에 정령부를 만드는 게 좋을 것 같네만.”
– 예?
그러자 장관이 다소 멍한 표정으로 반문을 했다.
“물론 당장 만들자는 건 아닐세. 정령술에 대한 지식도 전무하고, 정령사 자체도 존재하지 않는데 무슨 정령부겠나. 다만 장관의 삼녀가 아카데미에 입학하려면 10년도 넘게 남았으니 미리 준비하자는 거지.”
제국 건국 이전부터 살아있던 엘프들은 정령에 대해 알 것이다. 세계수가 부활했으니 정령과 다시 계약을 맺은 엘프들도 있을 것이다.
그 엘프들을 설득하여 정령학의 기반을 다진다. 그러한 과정을 10여 년에 걸쳐 진행한다면 정령부라는 새로운 학부를 만들 수도 있다.
문제가 있다면 정령부에 입학할 인간 정령사가 있느냐는 건데,
‘이건 엘프 장로나 장관을 설득해야지.’
정령술에 관심이 있는 귀족 자제들을 모집하고, 자제들을 세계수나 장관의 저택으로 보내 정령과 만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제국인 정령사가 탄생할 수 있다.
‘대가만 충분하다면 거절할 가능성은 낮다.’
정령부 창설은 장관의 삼녀를 위한 일이나 다름없다. 자신의 외증손녀, 혹은 딸을 위한 국가적 사업에 반대를 할 사람은 드물다.
– 정령부라…
실제로 내 말을 들은 장관은 솔깃한 표정으로 턱을 매만졌다.
좋아. 살짝만 더 밀면 이 자리에서 바로 확답을─
“폐하. 특무성 장관입니다.”
문 너머에서 작은 노크 소리와 함께 특무성 장관의 방문을 알렸다.
아쉽다. 아주 조금만 더 밀면 됐는데.
“장관. 차후에 짐이 다시 연락하도록 하지.”
– 예, 폐하. 편하실 때 연락 주소서.
허나 특무성 장관이 갑작스레 방문할 정도면 그만한 일이 터졌다는 뜻. 느긋하게 진행해도 될 정령부 문제 때문에 특무성 장관의 대면을 미룰 수는 없다.
그렇게 장관과의 통신을 끊고 특무성 장관의 입장을 허락하니,
“로드께서 폐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뭐?”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일이 터졌음을 듣게 되었다.
황실의 큰어른이신 드래곤 로드께서 대화를 청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