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44)
로판 속 공무원 644화(645/945)
흉룡 아텔리우스.거대한 불새였던 겸손이 병아리로 전락하는 것에 결정적 기여를 한 희대의 싸움꾼.
종교 전쟁 시기의 악몽으로 군림했던 악신에게 치명타를 먹이고, 유일신으로 군림한 태양조차 봉인하는 것에 그친 죄악에게 흑역사로 남은 존재.
그리고 여러 신들과 다툰 적이 있다는 당사자의 말처럼 아텔리우스에 대한 흉흉한 제보는 겸손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 호수에서… 자고 있었는데… 거슬리니 꺼지라고 등껍질 때렸어… 그거 때문에 한동안 외진 곳에서 휴식만 했어…”
자는데 시끄럽게 굴어서 겸손을 기습했다던 아텔리우스. 정작 그런 아텔리우스는 조용히 자고 있던 근면을 후려갈겼다.
“나 원래 꼬리 아홉 개였어. 많으니까 하나만 가져가겠다고 하더라.”
본래 구미호였다던 정결은 아텔리우스에게 꼬리를 하나 쥐어 뜯겨 팔미호가 되었고, 그 후유증은 봉인되던 날까지 이어졌다.
“뭐야. 너희도 흉룡 새끼한테 당했었냐? 나도 그때 부리가 박살 나서 한동안 골골거렸는데.”
마지막으로 성수들이 악신이라고 불리던 시절, 악신들 사이에서도 유독 강한 네 악신 중 하나로 분류되었던 활기. 그런 활기마저 아텔리우스에게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나마 이 녀석은 신격이 강해서 빠르게 회복했다지만.
‘이게 뭔.’
아무튼 곳곳에서 들려오는 절규와 성토에 머리가 멍해졌다.
지금까지 확인한 피해자만 무려 넷이다. 겸손, 근면, 정결, 활기. 열하나의 성수 중 무려 넷이나 아텔리우스와 치열한 전투를 벌인 전적이 있었다.실로 경이로운 과거다.
게다가 성수들은 아텔리우스와 싸운 것이 신생에 한 번뿐이었으나, 아텔리우스는 무려 네 신격과 싸운 것 아닌가. 그 상황에서 정령왕들과도 다툼이 있었다고 하니 싸움꾼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하, 그 망할 도마뱀 새끼. 지금도 살아 있다면 부리로 눈을 쪼아 먹는 건데.”
그렇게 흉룡이라는 이름에 담긴 위업을 느끼는 사이, 활기가 날개를 퍼덕이며 분통을 터뜨렸다.
“살아 있다면?”
이상한 말이라 되묻고 말았다. 마치 아텔리우스가 죽은 걸로 아는 말이었으니까.
“주인이 흉룡을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놈은 우리가 봉인되기 전부터 소식이 끊긴 녀석이다. 아마 온갖 곳에 시비를 걸고 다닌 미친놈이니 원한을 사 죽은 거겠지.”
내 반문에 같이 날갯짓을 하며 뺙뺙거리던 겸손이 말을 이었다.
그 말에 아텔리우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자신이 가정을 꾸리기 전, 너무 혈기가 넘쳐서 여러 다툼을 일으켰다고.
‘결혼하고 얌전해진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계기다. 흉룡은 자신의 지랄맞은 성격도 보듬어준 아내를 만났기에 새 드래곤이 되었고, 더 이상 다툼이 아닌 평화를 즐기게 되었다. 일방적으로 처맞던 성수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죽은 거라 생각할 법 하다.
“활기의 말처럼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눈을 쪼아 먹었을 거다.”
“난 그 녀석 꼬리 가져갔을 거야. 꼬리가 아홉 개니 하나는 없어도 된다는 게 말이 되냐고. 그럼 지 눈은 두 개니 하나는 버리든가.”
“난… 다시 보기 싫어… 등껍질 회복하는 거 오래 걸려…”
그러나 아텔리우스가 ‘당연히’ 죽었을 거라 여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성수들을 보니 작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악연이라지만 아무튼 아텔리우스를 아는 존재들이다. 아텔리우스를 존경할 대상이나 친우로 여기지 않고, 할 말과 못 할 말을 쏟아낼 수 있는 관계다.
그렇다면 이 녀석들의 존재가 아텔리우스에게 새로운 활력이 되지 않을까? 물론 말로는 살아있다면 눈을 쪼니 마느니 하는데, 이 녀석들 능력으로는 아텔리우스가 아니라 토끼들과 승부를 봐야 하는 수준이다.
“야.”
“왜 그러나, 주인?”
“너희 나랑 외출 좀 하자.”
“어엉?”
내 앞에서 떠들던 네 성수. 덤으로 저택에 퍼져 있던 일곱 성수들을 긁어모았다.
아텔리우스에게 열하나나 되는 인연을 선물한다면 아텔리우스의 수명이 조금이나마 길어질 거다.
동굴 내에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허어.”
이윽고 아텔리우스가 먼저 침묵을 깨며 살며시 고개를 내렸다.
“어쩐지 묘하게 익숙한 기운이다 싶었거늘. 네 녀석들이었나.”
성수들의 악신 시절을 기억한다는 듯한 발언. 그 말에 멍하니 아텔리우스를 보던 활기가 파들파들 몸을 떨며 부리를 열었다.
“너, 너 이 도마뱀…! 잘도 내 부리를 부수고 아직까지 살아 있었냐…!”
“부리가 부서졌으면서 살아있는 너만 할까.”
“야 이 새끼!”
아텔리우스의 덤덤한 대꾸에 활기의 몸은 더더욱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요동으로 그쳤다. 일개 독수리 크기인 활기가 드래곤인 아텔리우스를 상대할 수는 없으니까. 오히려 부리만 부서졌던 과거와 달리 한 끼 식사로 전락할지 모른다.
“너까지 포함해서 열하나라. 딱 네 가지 근심과 일곱 죄악이로군.”
아텔리우스도 일개 독수리가 되어버린 활기가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아는지, 활기와 함께 동굴에 온 성수들을 훑어봤다.
그 와중에 활기처럼 아텔리우스의 눈을 쪼아버리겠다던 겸손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바닥만 보고 있었다. 실로 겸손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저 병아리는…”
“뺙?”
아텔리우스가 겸손을 언급하자 겸손은 병아리 울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추하다. 아무리 악신 시절에 비하면 처절할 정도로 약해졌더라도, 아예 병아리를 연기하는 건 너무하지 않냐.
“캐갱! 캥! 캐갱!”
허나 겸손의 추함이 다른 녀석들에게는 좋은 예시가 되었는지, 정결은 여우 울음소리를 내고 근면은 등껍질 안에 쏙 들어갔다.
너네 진짜 어디 가서 전직 악신이라고 하지 마라. 그게 너희를 위한 마지막 명예야.
“…내가 동굴에만 머물던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나 보군.”
그 처절한 광경에 아텔리우스는 애써 화제를 돌렸다.
이미 알 건 다 아는 것 같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니 누구도 상처받지 않은 세계가 완성─
“너희는 자존심도 없냐! 우리가 신격을 잃은 건 시대의 흐름이니 그렇다 쳐도, 신이었던 시절에 드래곤에게 당한 건 부끄러운 일이다!”
눈이 뒤집힌 활기가 겸손과 정결, 근면에게 광역 도발을 날렸다.
조금 신기한 광경이다. 보통 악신의 자존심이나 체면이 걸린 일이 생기면 장생이가 난리를 치고 활기는 구경을 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장생이가 구경을 하고 활기가 난리를 쳤다.
‘접점이 없어서 그런가?’
심드렁히 바닥에 옆드려 하품을 하는 장생이.
만약 장생이도 아텔리우스에게 처맞은 과거가 있었다면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울분을 토했겠지만, 다행히 장생이는 아무 피해도 유감도 없었다. 그래서 활기가 뭐라고 떠들든 미동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
‘잠깐만.’
길길이 날뛰는 활기를 보다가 위화감을 느꼈다.
영원한 푸른 하늘과 함께 이 녀석들의 봉인지를 확인하던 때. 갑자기 봉인지에서 뛰쳐나온 구 악신들의 처우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 신이라 물리적으로 없애지도 못하는데…
그리고당시 영원한 푸른 하늘은 신을 물리적으로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헌데 그 신들이 너도나도 아텔리우스에게 얻어 맞고 골골거린 과거를 고백하고 있다. 물리적인 타격을 확실하게 입은 것이다.
혼란스럽다. 영원한 푸른 하늘이 조금 유감스러운 면모를 보이지만, 그래도 태초의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그런 존재가 신의 특성을 헷갈릴 리는 없는데?
“저기, 어르신.”
“왜 그러지?”
내 부름에 성수들을 멀뚱히 바라보던 아텔리우스가 시선을 돌렸다.
“신은 물리적으로 없애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어르신께서는 어떻게 신들에게 타격을 입힌 겁니까?”
“아, 그거 말인가.”
직설적인 질문에 아텔리우스는 눈을 깜빡이며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온갖 강화 마법을 두른 채 타격하니 먹히기는 하더군. 없애지는 못했지만 말이야.”
“주인! 저 망할 도마뱀이 저런 놈이다! 우리를 없앨 수 있었다면 없앴을 놈이야!”
이제 활기는 입에 거품을 물 기세로 발악했다.
놀랍고 경이로운 답변이기는 하다. 물리력이 통하지 않으면 통할 때까지 팼다는 말이지 않나. 어쩐지 아텔리우스에게 당한 녀석들이 처절할 정도로 이를 갈더라.
“역병. 옛날 일이라 가만히 듣고만 있었는데 이상하군. 내가 아무 이유 없이 너를 공격한 것처럼 말하지 않나.”
그러던 중, 조용히 엎드려 있던 아텔리우스가 몸을 일으켰다.
“너는 존재 자체로도 이 대륙과 생명들에게 해악이었다. 하늘을 날면 그 아래 대지가 병에 물들었고, 대지에 발을 붙이면 개미조차 죽고 말았지. 그런 전염병 덩어리를 쫓아낸 것이 악한 행동인가?”
“너한테는 아무런 피해도 없었잖아!”
“내 비호를 받던 생명들에게는 치명적인 재앙이었다.”
활기와 아텔리우스의 대화를 듣다 보니 아텔리우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날아도 문제, 안 날아도 문제인 새가 내 근처에 있어? 그러면 나도 하던 일을 제쳐두고 쫓아내러 갔다. 토벌이 가능했다면 아예 죽였을지도 모르고.
“교만은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여 분열을 일으켰고, 그 추종자들은 자신들이 제일이라며 온갖 싸움을 일으켰다. 그 소란이 내 영역에도 퍼졌으니 내가 나선 건 당연한 일이다.”
“뺙뺙!”
“…이 자리에 교만은 없는 것 같지만.”
겸손의 꿋꿋한 병아리 코스프레에 아텔리우스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색욕도 인간들의 도덕을 무너뜨려 소란을 일으킨 걸로 기억한다. 꼬리로 생명체를 홀린다고 자랑하기에 하나 가져갔지.”
그 말에 정결은 하나 남은 꼬리를 동그랗게 말며 자기 배 밑에 깔았다. 이것만큼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것처럼.
“나태는…”
마지막으로 근면에 대한 말을 하려던 아텔리우스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왜였지? 기억이 안 나는군.”
“망할 도마뱀…”
근면의 우울한 목소리에 숙연한 감정이 들었다. 근면은 정말 이유 없이 봉변을 당했거나, 아텔리우스가 기억도 못 할 정도로 하찮은 이유에 휘말린 걸 수도 있다.
“아무튼 네 녀석들도 무고한 건 아니라는 말이다. 애초에 악신이라는 녀석들이 어디서 피해자 행세야.”
“그걸 감안해도 너는 과도하게 흉포한 놈이었다! 다른 드래곤들은 신의 난립도 인간의 일이라며 관망했는데, 왜 너만 난리였는데!”
“하긴. 확실히 그건 내 잘못이 맞다. 로드의 명이 없는 이상, 드래곤이 인간들의 세상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건 지양해야 했지.”
그렇게 말한 아텔리우스는 활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니 무승부로 하지 않겠나?”
“뭐?”
저기 몸보다 수 배는 거대한 손톱에 벌벌 떨던 활기는 아텔리우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도 너희가 주인이라 부르는 아이에게 빚이 있다. 앞으로 종종 만나게 될 텐데, 그때마다 다투는 것도 지겨운 일이지. 어차피 지난 일 아닌가.”
난데없는 화해 요청에 활기가 떨떠름한 눈빛으로 나를 돌아봤다.
‘잡아.’
그 눈빛에 입모양으로 말하자, 활기는 축 늘어진 날개로 아텔리우스의 손톱을 잡았다.
훈훈한 광경이라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