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45)
로판 속 공무원 645화(646/945)
아텔리우스와 성수들의 극적인 화해 이후, 좋은 소식과 애매한 소식이 연이어 터졌다.
우선 좋은 소식은 프리드리히가 마침내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는 거다. 툭하면 옆에 있던 알리나를 콕콕 찌르며 놀던 프리드리히가 좁디좁은 침대에서 벗어나 저택을 무대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알리나를 건드린 건 심심해서 그랬다는 듯, 자기 힘으로 저택을 누빌 수 있게 된 프리드리히는 저택 여기저기에서 관측됐다. 오죽하면 주방에서 프리드리히를 봤던 집사가 30분 후에는 창고 앞에서 프리드리히를 발견할 정도였겠는가.
“프-디! 혼자 가면 안대!”
“우우?”
그 어마어마한 속도에 황태녀조차 놀라며 프리드리히의 질주를 막았다. 같이 놀려고 하면 혼자 저 멀리 가있으니까.
“막내 도련님! 혼자 가시면 위험합니다!”
“저희랑 같이 놀아요!”
물론 황태녀도 어린아이에 불과하니 프리드리히가 작정하고 움직이면 따라잡기 어려우나, 다행히 우리 저택에는 티티와 성수들이 있지 않나.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한 아이 하나 정도는 얼마든지 감독할 수 있다.
이렇게 좋은 소식의 뒤를 이어 터진 애매한 소식은─
“마자! 가치 놀꺼야! 오늘 가치 아자씨 보러갈꺼니 옆에 잇써!”
황태녀와 페디만 가던 아텔리우스의 동굴에 세쌍둥이와 프리드리히도 가게 됐다는 것이다.
사실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세쌍둥이는 두 발로 걸을 수 있고, 짧은 단어를 조합하여 문장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자랐다. 그 정도로 똑똑한 아이들이 황태녀와 페디가 사흘에 한 번 사라진다는 걸, 얼마 전에는 성수들마저 자리를 비웠다는 걸 모를 수가 없다.
“아빠! 우리도! 우리도!”
“우리도 데려가! 가치 놀아!”
“놀아~”
덕분에 세쌍둥이는 나에게 달려와 어딘지도 모를 장소로 데려가 달라 떼를 썼다.
딸들이 그리 간절히 원하는데 어쩌겠나. 아텔리우스가 위험한 존재는 아닌 데다 동굴도 깔끔한 편이니 결국 데려가기로 했다. 마침 프리드리히도 침대에서 벗어났으니 같이 가기로 한 거고.
그렇게 무려 여섯의 아이들이 우르르 아텔리우스의 동굴에 가게 되었다.
‘미안합니다…’
속으로 아텔리우스에게 소소한 유감 표명과 사과를 했다.
나야 딸들이 원하니, 막내아들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니 데려가는 거지만, 아텔리우스 입장에서는 둘로도 벅찬 아이들이 순식간에 세 배로 증가한 것이다. 아이들을 보자마자 도망쳐도 할 말이 없다.
그래도 이 또한 아텔리우스가 삶의 의지를 불태울 수 있는 계기가 될 터. 토끼 몇 마리가 아닌 인간 아이 여섯 명과 정을 붙이다 보면 아텔리우스의 심장이 더욱 뜨거워질 거라 믿는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데려오면 어쩌자는 거냐.”
아텔리우스는 뜨거운 심장이 아닌 뜨거운 목소리로 꾸짖었다.
“아무리 내가 관리했다지만 동굴은 동굴이다. 바닥은 딱딱하고, 간간이 돌부리도 튀어나와 있다. 걸을 수 있는 아이들도 넘어지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판국에 기어 다니는 아이를 데려와? 손바닥과 무릎이 얼마나 아프겠느냐.”
“죄송합니다…”
심지어 논리적으로 완벽한 이유로 꾸짖어 반박도 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다. 동굴은 아무리 가꿔도 동굴이다. 저택 복도처럼 매끄러운 대리석인 것도, 그 위에 푹신한 매트를 깐 것도 아닌 자연 그대로의 돌바닥이다. 그런 곳을 연약한 아이가 기어 다니면 크게 다칠 수밖에 없다.
내가 프리드리히를 계속 안고 있으면 다칠 일도 없으나, 그럴 거면 프리드리히를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넘쳐나는 아이를 드래곤 서식지에 데려와놓고 안고만 있어? 그건 그거대로 고문이다.
“아자씨… 때부가 잘모텟서?”
“아자씨, 화내지마…”
허나 아텔리우스의 지적은 얼마 가지 못했다. 내 다리 옆에 착 달라붙어 있던 황태녀와 페디가 옹호해 줬으니까.
“아빠, 아빠…”
“아빠 혼내지마…”
“우우웅…”
게다가 오늘 처음 아텔리우스를 본 세쌍둥이도 내 다리 뒤에 숨어 울먹거렸다.
그러자 아텔리우스가 당황한 것이 눈에 보였다. 졸지에 자식들 앞에서 아비를 압박한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으니.
“화를 낸 것이 아니다. 이 아저씨가 몸이 커서, 목소리도 큰 것뿐이야.”
“지인-짜?”
“그럼. 물론이지.”
그 말과 함께 아텔리우스는 손가락을 뻗어 허공을 휘저었고, 여섯 아이들은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와아! 높아! 날아!”
“와아아!”
난데없는 비행에 움츠러들었던 아이들이 다시 웃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이 기이할 정도로 겁이 없어서 다행이다. 만약 떠오르자마자 더 겁에 질렸으면 답이 없었을 텐데.
“…앞으로는 주의해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아이들이 웃기 시작하는 걸 본 아텔리우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나에게 짧은 주의를 주며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민망하면서도 기꺼운 일이다. 처음 본 프리드리히의 안위를 생각할 정도면 아텔리우스의 심장은 충분히 뜨겁다는 의미잖아. 내 노력이 효과가 있는 것 같아 기쁠 따름이다.
“헌데 저 아이들. 대제의 후예를 빼면 다 네 자식이더냐?”
“아, 예. 맞습니다.”
“많기도 많지만 특이하기도 특이하군. 인간의 자식 중에 엘프도 있을 줄이야.”
나를 꾸짖느라 꼿꼿이 세웠던 몸을 다시 바닥에 눕힌 아텔리우스는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심지어 정령왕의 기운이 너무도 짙어.”
“엘프의 피를 이은 아이들은 네 정령왕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과연. 그렇다면 저 기운이 이해가 가는군.”
내 말에 아텔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저 아이에게 정령들이 잔뜩 붙어있는 것도 말이다.”
이윽고 카틀레아의 몸에 달라붙은 정령들을 보며 픽 웃음을 흘렸다.
사실 저 모습은 나도 익숙해지지 못했다. 머리로는 카틀레아의 뛰어난 재능을 상징하는 모습이라고 여기며 흐뭇해하고 있지만, 솔직히 쪼그만 아이가 수십, 수백의 반딧불이를 몰고 다니는 게 평범한 모습은 아니다. 아비인 나도 그런데 처음 보는 아텔리우스는 오죽할까.
“그보다 정령을 다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펠스 놈들이 세계수를 불태우면서 다시는 못 볼 줄 알았지.”
“세계수가 부활한 건 최근의 일입니다. 그것도 천운이 겹쳐서 가능한 일이었지요.”
“천운이 겹쳤다면 그것이 운명인 법이다.”
그렇게 말한 아텔리우스는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실로 신기한 일이다. 일개 인간으로 태어나 악신이었던 자들에게 주인이라 불리고, 수백 년 동안 침묵한 정령왕들을 다시금 깨우다니. 아마 너 같은 인간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다.”
“과찬이십니다.”
“이게 과찬이면 다른 인간들은 뭐가 되겠느냐.”
민망한 칭찬을 늘어놓은 아텔리우스는 손톱으로 지면을 툭툭 치더니, 다소 작아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가 세계수를 부활시켜 정령왕들을 깨웠고, 자식이 축복을 받았을 정도면 정령왕들과 친분이 있을 터. 그러니 너에게 부탁을 하나 하고 싶구나.”
“예, 말씀하십시오.”
“…내가 철이 없던 시절, 세계수의 가지를 꺾은 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전해주거라.”
그 말에 몸이 우뚝 굳고 말았다.
지금, 뭘 꺾었다고?
“그렇게 보지 말아라. 철이 없던 시절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아니, 그…”
입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엘프가 신성시 여기고, 정령과 요정들이 애지중지하는 세계수다. 그런 세계수의 가지를 꺾었다고?
‘미친.’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텔리우스가 악신들을 쥐어팬 건 나름 이유가 있었다. 근면은 이유 없이 처맞았다는 게 사실상 확실시되는 상황이나, 나머지 셋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얻어맞은 거다.
그런데 세계수 가지를 꺾어서 정령왕들과 싸운 거면 그 싸움은 아텔리우스의 패악질이 맞다. 정령왕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봉변을 당한 거다.
“만나게 되면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허나 아텔리우스도 나름 큰 각오를 하며 관계 정상화를 시도하는 것일 터.차마 그 각오를 외면할 수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흉룡 맞네.’
물론 속으로는 아텔리우스의 별명을 되새겼다.
누가 처음 지은 별명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양반은 작명가 해도 될 것 같다.
빚은 이자가 늘어나기 전에 서둘러 갚는 것이 좋고, 매도 먼저 맞는 것이 좋은 법.
그렇기에 저택으로 복귀하자마자 바로 정령왕들을 만나러 갔다. 아직까지 아텔리우스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으면 어쩌나 걱정되기는 하나, 설마 은인이라 부르는 나에게 화풀이를 하지는 않겠지.
– 아텔리우스?
그리고 갑작스레 방문한 나를 반갑게 맞이한 불의 정령왕은 아텔리우스라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흉룡이라 불리던 검은색 드래곤입니다만…”
– 아, 흉룡. 그렇게 말하니 알겠군.
본명이 아닌 별명으로 말하자 바로 알아챘다.
씁쓸하다. 얼마나 깽판을 치고 다녔으면 이름보다 흉룡이라는 흉악한 별명이 더 유명할까.
– 그 녀석이 먼저 사과를 한다라. 확실히 세계수가 불탄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나 보군. 성격이 많이 유해졌어.
“그, 괜찮으십니까? 아무리 사과를 했다지만 세계수의 가지를 꺾은 건데요.”
생각보다 덤덤한 불의 정령왕의 반응에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세계수다. 정성을 기울여 기르는 분재를 작살내도 눈이 뒤집히는데, 무려 세계수 가지를 꺾은 거다. 세계수가 있어야 이 대륙에 올 수 있는 정령 입장에서는 천인공노할 역적인 거다.
– 은인이 그 녀석의 성격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우리끼리 그놈은 부친이 없거나 모친이 없을 거라 얘기했을 정도였지. 그 정도로 괴팍한 녀석이 자의로 사과를 한 거야.
그러나 불의 정령왕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그 새끼가 사과를 한 것이 기적.’ 이라는 반응만 보였다.
이해할 수 없지만 애써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온라인에서 온갖 분탕을 치고 다니던 악플러 겸 패드리퍼가 고소를 당하지 않았음에도 먼저 사과를 한 느낌인 건가?
– 게다가 그때 가지가 꺾인 세계수는 이미 불타지 않았나. 세계수를 태운 미친놈들도 있는데 가지 하나쯤이야.
‘아.’
이어지는 말에 완전히 납득했다. 바닥 밑의 지하실을 본 덕에 아텔리우스의 만행이 순한 맛으로 변한 것이다.
대단하다, 아펠스. 또 네놈들이냐.
– 뭐, 다른 녀석들도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야. 오히려 과거의 세계수를 기억하는 자가 남아있다는 게 기쁠 정도지.
그래도 아펠스의 맹활약 덕에 드래곤과 정령왕이 화해를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다행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