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46)
로판 속 공무원 646화(647/945)
오늘도 사랑스러운 부인 크리스티나, 귀엽고 깜찍한 아들 줄리안의 배웅을 받으며 감찰성으로 출근했다.
사실 배웅을 받으면 힘이 나기는커녕 의욕이 바닥을 기게 된다. 아내와 아들의 응원이 싫다는 게 아니라, 그냥 가족과 함께 저택에서 지내고 싶은 욕구가 샘솟기 때문이다. 어차피 가문에서 운영하는 상단도 있는데 퇴직하면 안 되나?
‘안 되니 이 꼴로 지내는 거지만.’
거칠게 한숨을 내쉬며 정보부 차장실 문을 열었다.
결국 오늘도 빌어먹을 출근을 했다. 2과장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하고 귀찮은 업무 시간이 시작됐다.
“오셨습니까, 차장님.”
“어, 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차장실에서 업무를 보던 정보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그나마 이 녀석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는 거다. 과거 감찰성이 감찰부이던 시절, 차장님도 차장실에 여러 부원들을 배치하고 업무를 보셨지. 그때 이것저것 훔쳐보고 주워들은 것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정보차장 노릇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별일 없었지?”
차장 자리에 앉으며 예의상 특이 사항을 확인했다. 이 녀석들이 나보다 먼저 출근해 봤자 20분, 30분 정도의 차이인지라, 그 사이에 일이 생겼을 확률은 적다.
“각 과에서 상반기 성과 보고서를 올린 것 외에는 없습니다.”
“아. 벌써 그 시기인가?”
서류 더미를 건네는 부원의 말에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6월 초가 되었다. 1월부터 정보부 소속 각 과가 수행한 업무를 파악하고, 성과를 치하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귀찮은데.’
감찰성이 정식으로 출범하고 약 1년하고도 6개월. 그동안 반기별 성과 보고서를 두 번이나 취합하였고, 두 번 다 귀찮음과 지겨움을 절절하게 느꼈다.
이게 과장일 때는 몰랐는데 차장이 되니 미칠 노릇이다. 현장을 살피기 쉬운 과장들은 자기 휘하 부원들이 무슨 공을 세웠는지, 어떤 업무를 수행했는지 바로바로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차장은 그걸 모른다.
과장들은 각 부원들의 성과 외에도 업무 집중도나 열정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차장은 알 수 없다.
덕분에 신상필벌을 따지고, 승진이나 포상 인원을 선정할 때마다 머리가 아프다. 단순히 보고서로 보는 성과와 현장에서 느낀 성과에는 괴리감이 있으니까.
‘또 이리저리 돌아다녀야겠네.’
다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현 정보부는 감찰부 시절 1과, 2과뿐만 아니라 특무성 소속 정보부 인원도 상당하다. 그러니 과거의 기억에 의존하여 일을 처리하거나, 그냥 보고서대로만 처리하면 무조건 말이 나온다.
전자대로 하면 차장이 감찰부 출신이라 같은 감찰부 출신을 옹호한다는 말이. 후자대로 하면 같은 감찰부 출신인데 너무 냉혹하다는 말이.
‘이래도 지랄, 저래도 지랄.’
갑자기 분노가 치솟는다. 솔직히 내가 각 과의 성과를 취합하더라도 결국 정보부장님에게 올려야 한다. 내가 최종 책임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만약 승진을 하지 못한다면 정보부장님의 결정이다. 보상이 다소 아쉽다면 정보부장님 때문이다. 차장인 나에게는 책임도 권한도 없다.
그런데 아래 있는 녀석들은 그걸 모른다. 망할 녀석들이 따로 없다.
‘감찰부 시절에는 차장님이 결정권자였는데.’
물론 그건 당시 부장님이 차장님에게 권한을 몰아준 덕분이었지만.
“…음?”
그렇게 과거를 그리워하며 보고서를 읽던 중, 특이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1과장의 신혼, 임신 휴가로 인해 과장이 부재중인 1과. 그 1과가 정보부의 모든 과 중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자랑하고 있다는 보고서.
‘어떻게 한 거지?’
놀라운 일이다. 아무리 부하들이 유능해도 리더가 부재중이면 잡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심지어 1과장은 있는 게 짐인 리더가 아니라, 행실이 괴팍해도 1과에 없어서는 안 될 기둥으로 군림했다.
즉 1과는 유능한 리더가 반 년이나 부재중이라는 것. 헌데 그런 과가 다른 과를 상대로 밀리기는커녕 앞서나간다?
‘엄청난 이인자가 있었군.’
신기하면서도 익숙한 상황이라 납득했다. 난 이런 상황을 3년이나 겪은 적이 있었다.
부장님이 아카데미 파견을 간 동안 감찰부를 이끌었던 차장님. 일인자의 공백을 메울 이인자가 유능하고도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기괴한 상황이 펼쳐진다.
아마 1과도 과거 감찰부 같은 상황일 것이며,
‘역시.’
실제로 1과 수석 팀장의 성과가 유독 화려했다.
이 녀석이 1과의 미니 차장님이다. 과장 없는 1과를 꿋꿋하게 이끌어나간 여장부다.
“안젤리카 위넨이라.”
내 중얼거림에 근처에 있던 부원이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차, 차장님. 혹시 안젤리카 수석 팀장이 또 사고를 쳤습니까?”
“엉?”
그 말에 절로 고개가 기울어졌다.
사고라니. 사고는커녕 1과를 멱살 잡고 이끄는 중인데? 이것도 사고라고 친다면 긍정적 사고기는 한…
‘잠깐만.’
생각해 보니 어감이 심상치 않다.또라니. 이미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 안젤리카 위넨이라는 수석 팀장이 여러 사고를 쳤었다는 듯한 말이잖아.
“…안젤리카 수석 팀장에 대한 보고는 별로 들은 적이 없는데. 어떤 인물이지?”
그 말에 부원의 눈동자가 급격히 떨렸다.
마치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생각하는 자처럼.
“그, 것이…”
“1과장님의 뒤를 이을만한 인재입니다.”
답을 망설이는 부원을 대신하여 다른 부원이 입을 열었다.
“현 집행부장님께서 감찰부 3과장 시절, 작은 1과장을 보는 것 같다 말씀하실 정도였죠.”
“아.”
친절한 설명을 듣고 나니 기억 저편의 정보가 떠올랐다.
확실히 그런 존재가 있었다. 1과장의 기행에 시달리던 부장님이 1과장에게 꼭 너 같은 부하를 만나라고 하면, 이미 1과장 같은 부하가 있다는 서글픈 반격을 들어야 했다.
그 주인공이 이 안젤리카 위넨이었다. 1과장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인재. 미니 차장님이 아니라 미니 1과장이라 불러야 하는 괴물.
‘엄청나군.’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렀다.
원조 괴물이 휴가 중이니 작은 괴물이 두각을 드러내는 중이었구나. 이러다 원조 괴물이 복귀할 즈음에는 작은 괴물이 1과를 잡아먹었겠어.
‘…잡아먹어?’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성과 보고서를 취합한 후, 빠르게 정보부장실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지?”
그리고 정보부장실에 들어가자 언제나처럼 피로에 찌든 정보부장님이 반겨주었다.
“이번 상반기 성과 보고서입니다.”
“벌써 그렇게 됐군. 시간이 야속할 정도로 빨라.”
내 말에 관자놀이를 짓누른 정보부장님은 씁쓸한 얼굴로 보고서를 받았다.
이윽고 보고서 가장 앞장에 적힌 내용을 확인한 정보부장님의 미간이 급격히 찌푸려졌다.
“차장.”
“예, 부장님.”
“승진 후보자에 이상한 이름이 적혀있네만.”
“제대로 적은 게 맞습니다.”
그러자 정보부장님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보고서를 확인하였다.
“정보부 1과 수석 팀장, 안젤리나 위넨을 1과장으로 승진시킨다. 이게 차장의 의견이 맞나?”
“예.”
단호한 대답에 정보부장님의 미간이 더더욱 찌푸려졌다.
이해한다. 현 1과장 자리는 부재중일지언정 공석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휴가를 즐기고 있는 중이니, 때가 되면 주인이 돌아오는 자리다.
그런데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올리면 1과장의 휴가가 끝났을 때 서로 민망해진다. 돌아온 사람도, 자리를 차지한 사람도, 그 인사 명령을 결정한 사람도 말이다.
“혹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장관 각하와 논의라도 한 것인가?”
“아닙니다. 엄연히 부장님이 계신데, 어찌 정보부의 일을 장관 각하와 논하겠습니까.”
찌푸려졌던 미간이 조금이나마 풀렸다. 적어도 내가 보고 체계를 무시했다는 건 아니니까.
“그럼 더욱 이해하기 어렵군. 1과장이 누구의 부인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잖나.”
어디까지나 조금이었지만.
물론 정보부장님의 의문은 지극히 당연하다. 평범한 사람을 밀어내도 욕을 먹기 딱 좋은데, 부서 최고 책임자인 장관의 부인을 밀어낸다? 그 부서 전체가 뒤엎어질 것이 뻔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 장관 되시는 분은 평범과 거리가 멀다.
“아직 확인은 못했지만, 장관 각하도 이 인사 조치에 만족하실 겁니다.”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도록. 나를 설득하지 못하면 다시 취합해 오라고 할 거니까.”
정보부장님의 엄포에 잠시 움찔했으나, 정신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예전에 장관 각하와 사적인 자리에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구 감찰부 출신 간부 중 1과장만 승진시키지 못한 걸 안타깝게 생각 중이셨습니다. 차라리 다른 부서로 옮겨야 하나 고민하실 정도였지요.”
“그래서?”
“아마 장관 각하는 1과장을 다른 부서로 옮기고 싶어도 부부 관계가 틀어질까 움직이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 저희가 유능한 인재에게 승진이라는 보상을 줄 겸, 1과장의 보직을 해제하면 어떻겠습니까?”
실로 완벽한 계획이다. 차마 부인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없는 남편을 대신해 우리가 손에 피를 묻힌다. 이 얼마나 충성스럽고도 완벽한 계획이란 말인가.
솔직히 1과장이 내 부하로 있으면 내 수명이 급격히 줄어들 것 같다. 차기 1과장인 수석 팀장도 미니 1과장이기는 한데, 적어도 그 녀석과 나는 단 한 번도 동급이었던 적이 없다. 사고를 쳐도 내 권위로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이다.
결정적으로 상사의 부인이 부하로 있는 게 말이 되냐고. 툭하면 놀리거나 뺀질 거릴 게 뻔한데.
‘이참에 치워버린다.’
신혼 휴가? 임신 휴가? 양육 휴가?
그딴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자리를 비웠다면 그 김에 아예 지워버린다. 다시는 내 눈앞에 얼쩡거리지 않게 밀어버린다.
아마 1과장도 기뻐할 거다. 돈 많고 시간 없는 관료를 돈 많고 시간 많은 백수로 만들어주는 것이니까. 나였으면 고맙다고 절을 했을 거다.
정보부장님이 헛소리 말고 돌아가라며 쫓아냈다.
결국 취합한 보고서도 처음부터 다시 정리해야 했다.
‘어째서지…!’
계획은 완벽했을 텐데!
***
장관 비서가 아닌 정보부장에게서 직통 연락이 왔다.
의외인 연락이다. 정보부장은 노련하고 유능한 인재라 휴가 중인 나한테까지 연락을 할 일이 거의 없었는데?
– 정보차장이 1과 소속 수석 팀장을 1과장으로 올리는 게 어떻겠냐며 제안했습니다.
허나 정보부장의 말에 연락한 이유를 깨달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부인이 백수가 될 뻔했다.
…
‘걔가 웬일로 남 좋은 일을 하지?’
주체할 수 없는 부러움이 솟구쳤다.나도 누가 나 좀 자리에서 몰아내줬으면 좋겠는데.
‘승진이라.’
동시에 정보차장의 제안을 되새기며 턱을 매만졌다.
내 지시가 아니라 부하의 제안이라는 명분이면, 에리를 잠시 날리는 것도 괜찮아보인다.
최종적으로 공무원의 퇴직 자체를 결정하는 건 황제지만, 내 권한이면 무보직 상태 정도는 가능하고…
‘어쩌지.’
고민되네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