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47)
로판 속 공무원 647화(648/945)
정보부장의 보고를 들은 뒤부터 머릿속으로 에리의 처우를 수십, 수백 번 정도 고민했다.
사실 다른 감찰부 출신 간부들이 나란히 승진한 상황에서 에리 혼자 현상 유지인 것이 마음에 걸렸었다. 말로는 승진하면 더 힘들다느니, 승진한 녀석들을 보며 비웃으면 된다느니 그런 말을 했지만─ 나 홀로 승진하지 못하는 건 자기가 무능해서인가 자괴감이 들 사안이다.
심지어 에리의 상관으로 승진한 정보차장은 한때 에리와 동급이었다. 물론 집행차장인 5과장도 집행부장이 된 3과장을 상사로 모시는 중이지만, 그래도 5과장은 승진을 하지 않았나. 에리는 승진도 못한 상태에서 과거 동료를 상사로 모셔야 한다.
‘정말 부하처럼 부리지도 못할 테고.’
게다가 에리는 내 부인이다. 장관의 부인이 부하로 버티고 있는데 어떤 상사가 마음껏 부릴 수 있을까. 아마 정보부장과 정보차장은 에리가 휴가 중인 것이 기꺼울 거다.
이는 에리에게도 정보부에게도 감찰성에도 좋은 일이 아니다. 에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미묘한 상황에 처했으며, 정보부는 과 하나를 원활히 통제할 수 없고, 감찰성은 정보부의 삐걱거림을 감수해야 한다. 딱히 에리의 능력에 문제가 없음에도 말이다.
그렇다고 에리를 승진시키기에는 마땅한 자리가 없다. 수석 과장이라는 직책이라도 줄까 싶지만, 그건 누가 봐도 에리 한 사람을 위한 말장난이다.
‘무보직이 나을 것 같은데.’
그렇기에 점점 마음이 1과장 변경으로 기울었다.
차라리 에리를 무보직 상태로 만들어 무기한 대기 상태로 만드는 게 옳다. 적어도 에리를 정보부에서 격리시키는 것이 서로에게 편한 일이다.
운이 좋다면 장기간 무보직 상태인 점과 에리의 특수성을 명분으로 에리의 완전한 퇴직을 황제에게 요구할 수 있다. 내가 퇴직하는 건 힘들지만, 에리 하나 정도는 어떻게든 될 것 같다.
‘황후가 있으니까.’
아직도 내 마음속 미스터리인 황후와 에리의 친분.그 친분을 이용하면 에리는 자유를 맞이할 수 있다. 사랑해 마지않는 황후가 황제의 귓가에 에리의 퇴직을 속삭인다? 그러면 황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지.
실로 완벽한 계획이다. 내가 황후와 전승공에게 대가리 좀 박고 부탁하면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 나올 수 있다.
“싫은데요?”
라고 생각했었다.
“싫어…?”
“넹. 저 계속 감찰성에 있고 싶어요.”
에리에게 1과장 자리에서 내려오고 퇴직을 노려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당당하고도 단호했다.
조금 당황스럽다. 에리가 자기 일을 귀찮아하거나 대충 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퇴직하고 편히 저택에서 지내는 게 좋지 않나? 아이들을 위해 육아에 집중하겠다는 명분이면 누구도 욕하지 않을 텐데?
“확실히 퇴직하기에는 젊은 나이기는 한데, 그래도 하양이를 생각하면 퇴직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일단 당혹감을 억누르며 다시 설득을 이어갔다. 우리 하양이를 위해 우리 중 하나는 퇴직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마르, 트릭시, 리제, 린은 저택에 24시간 상주하며 아이를 돌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하양이만 엄마가 출근을 한다? 다른 남매들은 친모의 사랑을 받는 동안 하양이 홀로 방치된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지는 대참사다.
물론 에리가 아니라 내가 돌볼 수 있지만, 황제가 나를 퇴직시켜 줄 일은 없잖아. 퇴직만 시켜주면 하양이를 하루 종일 업고 다닐 자신도 있는데.
“그럼 피네는요? 피네는 부장이라 퇴직도 힘들잖아요.”
“부장은 차장만 멀쩡하면 오래 자리 비워도 괜찮아.”
“그건 그렇죠.”
내 말에 에리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능한 차장에게 권한만 확실하게 주면 부장이 몇 년 동안 자리를 비워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건 내가 아카데미 파견 기간 동안 만들어낸 선례다.
그리고 현 특임차장은 특무성 시절 때도 유능하다고 소문이 난 인재였으며, 마침 마법사라 머리도 비상한 인물이다. 피네의 전투력을 완전히 메꾸지 못하더라도 사무 능력은 오히려 월등하다.
“그런데 과장이 오래 자리를 비우면 좀 그렇잖아. 아무리 수석 팀장이 있어도 공식적 이인자는 아닌데, 팀장들 사이 서열 문제도 있으니까.”
“으으으음…”
“혹시 지하실에 미련 있는 거면 하양이 생각해. 너 하양이가 엄마한테 이상한 냄새나- 하면서 피하는 거 보고 싶어?”
“아, 그건 좀.”
에리가 1과장으로 남았을 때의 미래를 언급하자 에리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그래. 아무리 에리가 독특하고 이상한 취미를 가졌어도 지금은 기혼 상태다. 심지어 몇 달 후면 정식으로 엄마가 된다. 그러니 미혼 시절의 취미를 이어가는 건 무리일 터.
“저 조금만 더 고민해도 돼요?”
“급한 건 아니니 느긋하게 생각해.”
한 발 물러난 에리의 모습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당장 정해야 할 문제도 아니다. 에리가 퇴직을 염두에 두는 것으로도 만족할 만한 성과지, 아무렴.
***
장관님에게 퇴직 권유를 받은 날 밤.
– 퇴직?
“응. 일단은 직책에서 내려오고, 한 1, 2년 후에 퇴직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
아리아 선배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며 조언을 구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아리아 선배는 관료 경험이 없다. 퇴직 문제로 조언을 구하기에는 썩 적합한 상대가 아니다.
하지만 나보다 먼저 아이를 낳았고, 아이를 낳기 전부터 막대한 의무를 짊어진 사람이었다. 아이와 기존 업무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먼저 선 사람이다.
그래서 아리아 선배에게 연락을 걸었다. 선배는 우리 명예 조카인 황태녀가 태어났을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황태녀와 업무 중에서 무슨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지 묻기 위해.
– 괜찮은 것 같은데?
그리고 선배의 답변이 빨랐다.
– 어차피 너 없어도 일할 사람 많잖아.
빠르기만 한 답변이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말았다.
너무하네. 나도 나름 과 하나를 휘어잡은 엘리트인데!
– 세상에 1과장을 할 사람은 네가 아니어도 많지만, 하양이 친모는 세상에 너 하나뿐이야.
‘아.’
이어지는 말에 서운함이 가라앉았다.
– 나도 마음 같아서는 샤를로테를 직접 돌보고 싶지. 장관이 샤를로테를 귀여워해주고, 샤를로테도 대부인 장관을 잘 따라줘서 고맙지만─ 사실 그 역할은 엄마인 내가 했어야 돼.
그렇게 말하는 선배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씁쓸함과 아쉬움이 묻어있었다.
이해할 수 있다. 아직 하양이를 품고 있는 나조차 하양이가 사랑스럽고 빨리 보고 싶다. 피가 이어지지 않은 황태녀를 볼 때도 너무 귀엽고 이것저것 챙겨주게 된다.
그렇다면 선배는 어떨까. 자기가 10개월 동안 품었던 아이가 세상에 나왔는데. 그 아이가 스스로 걸어 다니며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랐는데 직접 놀아주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픈 일일까.
– 그런데 난 샤를로테의 엄마지만 황후기도 하잖아. 하나뿐인 황후가 내 아이만 예뻐할 수는 없었지. 이 제국의 모든 신민들이 내 자식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럼 나도 엄마 자식이야?”
– 그러다 맞으면 덜 아프니?
심각한 분위기를 달래기 위해 농담을 꺼냈지만 조금도 먹히지 않았다.
너무해. 후배 나름의 애교였는데.
– 아무튼 나는 샤를로테의 엄마가 아닌 황후로 지내는 걸 택했지만, 그 선택에 후회는 없어. 이미 잘못된 황후를 만난 적이 있던 제국이 다시 이상한 황후를 만나면 곤란하잖아. 미래에 황제가 될 샤를로테를 위해서라도 그러면 안돼.
“그건 맞지.”
납득했다. 만약 전대 황후 같은 사람이 연달아 나오면 황실과 제국이 휘청거렸을 거다.
– 물론 많이 슬프기는 해. 나도 최대한 시간을 내서 놀아주고는 있지만, 샤를로테에게는 그것도 부족할 테니.
이윽고 살포시 미소를 지은 선배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러니 너는 하양이를 선택해. 나는 어쩔 수 없었어도, 너는 그렇게 할 수 있어.
“응…”
생각 이상으로 훌륭한 조언이라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부 1과장은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나만 해야 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하양이의 엄마는 이 세상에 나 하나뿐이다.
“고마워 선배.”
– 알았으면 하양이나 건강히 낳아. 샤를로테가 이모 아기 보고 싶다고 난리야.
“히히. 낳으면 바로 황후궁으로 놀러 갈게!”
– 아니. 그럴 것까지는 없고.
단호한 선배의 거절에 입술이 삐죽 튀어나오고 말았다.
– …맞다, 에리.
“응?”
– 너 하양이도 제법 자라면 시녀로 일할 생각 있어?
“어엉?”
그 말에 눈을 깜빡였다.
시녀? 내가?
“어디에서? 황후궁?”
– 아니. 황태녀궁.
이번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 제안이다. 황태녀가 예쁜 것만 보고 자라야 한다면서 나랑 황태녀를 최대한 떨어뜨려 놓던 선배였는데? 그런 선배가 먼저 황태녀궁 시녀 자리를 제안한다고?
“…왜?”
결국 의문을 참지 못하고 되물었다. 황태녀와 나를 격리하던 사람이 이제 와서 왜 그러냐고.
– 하양이가 자랄 즈음이면 샤를로테도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을 나이는 지났겠지.
“그런가?”
– 게다가 샤를로테가 저택에 가면 매번 너랑 만나잖아. 내가 막아봤자 의미가 없어.
맞는 말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가 나와 황태녀의 만남을 막으려면 황태녀의 저택 방문 자체를 통제해야 한다.
– 유감스럽지만 샤를로테가 너를 이모처럼 따르고 있어서… 차라리 시녀로 삼는 게 좋을 것 같더라고.
“역시 애들은 보는 눈이 있다니까?”
그러자 선배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치사하게 농담 좀 했다고 바로 전투태세야.
***
에리의 결정은 생각보다 빨랐다.
“저 퇴직할게요!”
무려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퇴직을 결정했다.
“그래. 잘 생각했어. 하양이도 엄마 품에서 꼬물거리는 게 좋을 거야.”
“넹! 기어다닐 수 있어도 제가 안고 다닐게요!”
“그러지는 말고.”
멀쩡히 돌아다닐 수 있는 애한테 왜 그래.
“아, 그리고 저 황후 폐하한테 시녀 제안받았어요!”
“…어?”
“하양이가 자라면 황태녀궁 시녀 해보래요!”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제국의 미래가 위태로워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