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49)
로판 속 공무원 649화(650/945)
정보부장의 결재를 받은 성과 보고서에 이어 집행부와 특임부에서도 보고서가 올라왔다. 장관 비서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만, 그래도 이번 보고서와 인사이동에는 내가 관여했으니 슬쩍 내용을 훑어봤다.
당연하게도 출범 1년 반에 불과한 부서기에 극적인 인사이동은 없었다. 그저 정보부 1과장이 에리에서 안젤리카 위넨으로 변한 정도였지.
그 외에도 눈여겨볼 내용이 있다면─
‘이제 피네도 휴가네.’
나와의 결혼이 코앞으로 임박한 피네가 장기 휴가를 신청했다는 것이다. 신혼 휴가에다 곧 얻을 임신 휴가, 훗날 얻을 양육 휴가까지 합하면 몇 년은 이어질 터.
다행히 특임차장은 유능한 인물이라 피네의 공백을 메울 수 있고, 구 묵광대 출신인 특임부 1과도 피네의 중도 복귀라는 재앙을 막기 위해 노력할 거다. 이제 만인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을 올리고, 피네도 우리 저택의 일원으로 녹아내리면 그만이다.
‘시르디 남작령이라.’
그런 생각을 하며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다시 살펴봤다.
시르디 남작령. 무려 부장급으로 승진한 피네에게 황제가 하사한 작위와 영지. 전쟁고아에 불과했던 피네는 뛰어난 능력과 어마어마한 공훈을 황실에게 증명했고, 불과 몇 년 만에 계승 작위와 영지를 하사받는 기염을 토했다. 아마 피네는 향후 수십 년 동안 평민들의 우상으로 남겠지.
물론 내가 위리디아 수석 지방관에게 자작위와 집사장 자리를 하사한 전례가 있기는 하나, 현 집사장은 아무리 옅다지만 귀족의 피가 조금이나마 존재했다. 게다가 피네처럼 몇 년 수준이 아닌 수십 년 동안 국가를 위해 헌신했고.
결정적으로 황제에게 받는 작위와 일개 백작에게 받는 작위는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 부인 장하다.’
그렇기에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흐뭇함이 솟아올랐다.
우리 피네가 이렇게 대단한 인물이다. 태어날 때부터 제국백 가문의 후계자였던 나와 달리,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당당히 작위 귀족이 되었다. 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그래서 나와 피네의 결혼식, 내 마지막 결혼식이 이루어질 장소는 시르디 남작령으로 정했다. 피네가 살아왔다는 증거이자 앞으로 피네가 다스릴 곳이니까.
‘변방 남작령이니 이렇게 활성화시켜야지.’
또한 시르디 남작령은 북방을 제외하면 제국 영토 중에서도 북부 변방에 속한 지역이다.심지어 크기도 일개 남작령 수준이기에 좋은 땅이냐고 하면 고개를 젓게 되는 곳이다.
그러니 내 마지막 결혼식을 시르디 남작령에서 올려야 한다. 나와 깊은 연을 맺을 마지막 기회가, 내 하객으로 올 거물들과 안면을 틀 마지막 기회가 시르디 남작령에서 열린다.
그렇게 되면 시르디 남작령에 일시적으로 막대한 재화와 인력, 거물들이 모이게 되고, 그걸 계기로 무난한 우상향을 이룰 수 있다. 이게 내가 피네에게 주는 무수히 많은 결혼 선물 중 하나.
“여차하면 위리디아 백작령에 편입하면 되고.”
픽 웃음을 흘리며 홀로 중얼거렸다.
만약 영지가 발전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시르디 남작령을 위리디아 백작령 소속으로 삼고, 내가 가진 재화를 투입하면 되니까. 남작령 하나 발전시킬 재화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각하?”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혼잣말.”
내 중얼거림에 옆에서 업무를 보던 장관 비서가 스르륵 고개를 들었다.
안 그래도 바쁜 사람을 방해한 것 같아 미안하다.
아직 결혼식을 올리기 전이지만, 피네는 미리 저택에 들어와 우리와 함께 지내기로 했다.
어차피 며칠 후면 내 부인이 되어 저택에 들어오게 되지 않나. 조금 빨리 들어오는 것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피네! 그동안 엄~청 기다렸어!”
그리고 피네의 저택 합류 소식을 들은 에리는 부푼 배를 이끌면서까지 친히 정문에 나타났다. 마침내 결혼이 임박한 친우를 환영하는 것처럼.
“언니! 어서 와!”
“이제 언니도 우리랑 같이 지내는 거지!?”
당연하지만 피네와 몇 년 동안 가족처럼 지낸 유리스와 소피아, 다른 저택의 사용인들도 우르르 몰려와 피네를 반겨주었다. 단순히 환영의 열기만 보면 그 어떤 부인을 맞이할 때보다 격렬했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사용인들 입장에서 모든 부인들은 정중하게 섬겨야 하는 인물들이나, 그중 사적인 인연이 있는 건 피네뿐이니까. 이건 다른 부인들도 잘 알고 있기에 딱히 질투를 하지는 않았다. 가족이 가족을 챙기는 것에 언짢아할 사람은 없으니.
“언니라니. 앞으로는 마님이라고 부르거라.”
집사의 진심 섞인 농담에 사용인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마, 마님이라는 건, 조금…”
“마님 맞지. 앞으로 평생 마님이라고 들을 거야.”
얼굴이 붉게 물들며 도리질을 하는 피네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러니 미리 익숙해져야겠지?”
“네, 네…”
내 설득에 피네는 삐걱삐걱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마님이라는 말이 기쁘기는 했는지,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많이 컸네.’
그 모습을 보니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 손짓 한 번, 말 한마디에 파들파들 떨던 피네가 서서히 발전하더니 이 경지에 이르렀다. 수줍음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지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으로 변했다.
역시 피네가 북방으로 던전 토벌을 갔을 때, 직접 유드허 백작령까지 가 데이트를 한 보람이 있었다. 앞으로 유드허 백작령은 내 마음속 연애의 성지야.
“장관님. 울어요?”
“어. 너무 기뻐서 눈물이 다 나올 것 같네.”
그 말에 에리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윽고 피네의 귓가에 속삭였다.
“지금 장관님이 많이 울어야 신혼 때 아래로 덜 울─”
“야 인마!”
귓속말치고는 너무 우렁찬 목소리라 기겁하고 말았다.
아직 그런 수위의 농담은 피네에게 너무 이르고 가혹한 말이다. 이제 겨우 풋풋한 연애에 익숙해진 사람인데, 그걸 아득히 초월하는 매운맛 농담은 피네의 멘탈을 뒤흔들기 충분하다.
“피네도 알 건 알아야죠!”
허나 내 호통에도 에리는 뭐가 잘못됐냐는 듯 당당했다.
하양이만 아니었어도 입술을 수백 번 정도 잡아당겼을 거다. 괜히 잘못 잡아당겼다가 입이 다치면 밥을 못 먹고, 에리가 못 먹으면 하양이도 굶을 테니까.
그리고 매우 다행히, 피네는 도중에 끊긴 에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이해했다면 저렇게 순박한 표정으로 눈만 깜빡일 리 없다.
***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휴가를 신청했다.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며 주인님의 저택에 도착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휴가 이전에도 종종 주인님의 저택에 방문하여 시간을 보냈으나, 그때는 겨우 시간을 내서 방문하는 수준이었다. 퇴근 후에 겨우 얼굴을 비추고, 출근 전에 사라져야 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이 저택에 하루 종일 지낼 수 있다. 매일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나도 이곳의 일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들이 지내는 곳에서 함께 지낼 수 있다. 나를 주인님의 여섯 번째 부인으로 인정해주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 주인님의 부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
기쁘다. 고작 기쁘다는 단어로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게 슬플 정도로.
‘타일글레헨 백작부인.’
이윽고 이 세상에서 다섯만 불릴 수 있는 이름을 떠올리니 심장이 더욱 두근거렸다.고작 며칠만 지나면 나도 얻게 될 이름. 내가 여섯 번째가 될 이름.
감찰부 4과장, 특무성 묵광대장, 감찰성 특임부장이라는 이름도 주인님을 위한 영광스러운 이름이나, 아무리 그래도 타일글레헨 백작부인보다 영광스러운 이름은 없다. 나에게는 황후라는 이름보다도 고귀하다.
“마님. 무슨 생각 하세요?”
옆에서 들리는 장난기 어린 말에 움찔 몸을 떨었다.
“…지금은 언니라고 불러.”
“그치만 며칠 후면 마님이잖아요. 미리 익숙해져야 실수를 안 해요!”
내 말에 유리스는 히히 웃으며 내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축하해요, 마님! 드디어 언니가 마님이 됐어요!”
“추, 축하해요!”
수줍음 많은 소피아마저 내 손을 잡으며 미소를 지었다.
동생 같은 아이들의 축하에 마음이 따스해졌다. 주인님 앞에서 느끼는 감정과는 다른 의미의 행복이 몸을 가득 채웠다.
“고마워.”
그렇기에 유리스와 소피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주인님의 부인이 되어도, 이 아이들의 언니라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마님.”
“응. 말하렴.”
그렇게 동생들의 머리를 쓰다듬던 중, 유리스가 내 뒤로 시선을 돌렸다.
“쟤를 마구간에 옮기는 거면 그냥 저희가 해도 되는데.”
유리스의 말에 나도 소피아도 고개를 돌렸다.
– 푸르릉?
그러자 조용히 우리를 따라오고 있던 백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드허 백작령에서 만난 그 아이가.
“괜찮아. 너희랑 같이 산책도 하고, 저 아이한테 저택 구경도 시켜줘야지.”
– 히히힝~
내 말을 알아들은 듯 백마는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며 내 뺨을 핥았다.
그래, 이 아이는 내가 직접 옮기고 싶다. 내가 이 저택에 와서 기쁜 것처럼, 이 아이도 이 저택에 온 것이 기쁠 테니까.이 아이의 짝도 주인님의 저택에 있으니까.
“히히, 저도 마님이랑 같이 있어서 좋아요!”
백마의 애정 표현에 이어 유리스도 내 품에 폭 안겼다.
“저, 저도요!”
눈치를 보던 소피아까지.
그 덕에 더욱 미소가 짙어졌다. 오늘은 나에게도, 이 아이들에게도, 백마에게도 기쁜 날이다.
이 저택의 모두가 행복한 날이다.
프리드리히와 함께 복도를 기어다니던 중, 잠시 허리를 피자 창문 너머로 까망이와 백마가 보였다.
‘사이좋네.’
오랜만에 부부가 재회한 것이 기쁜지, 두 말은 정원을 거닐며 서로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흐뭇한 광경이다. 주인에 이어 말까지 행복한 저택이라니. 이 얼마나 상서로운 징조인가.
“우- 아?”
“우리 프리드리히도 같이 볼래? 까망이랑 하양이야.”
즉석으로 지은 이름이지만 오늘부터 쟤는 하양이다. 남편이 까망이라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이지.
“우우!”
아무튼 관심을 보이는 프리드리히를 품에 안고 창문을 향해 다가갔다. 지금 중요한 건 저 녀석들의 이름이 아닌 프리드리히의 호기심이니까.
“우! 우우!”
그리고 프리드리히는 거대한 말의 덩치에 홀렸는지, 눈을 반짝이며 팔을 허우적거렸다.
역시 내 아들답게 명마를 알아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