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50)
로판 속 공무원 650화(651/945)
결혼식을 여섯 번이나 치르는 사람이 있다면 매번 진심 어린 축하를 하기도 애매하다. 심지어 그 간격도 고작 반 년이라면 더더욱.그나마 이혼 후 결혼이 아니라 단순한 중혼이기에 축하와 박수 세례를 받는 거겠지.
그래도 이번 결혼은 단순히 여섯 번째 결혼이 아니라 내 인생 마지막 결혼이다. 마지막이라는 기념비적인 타이틀이 붙은 덕에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축하해. 드디어 마지막까지 왔네.”
대표적으로 내 동생인 에리히가 그랬다.
3년에 걸쳐 이어진 형의 결혼식을 직관한 에리히는 오직 이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형의 결혼식이 끝나야 동생인 자신도 결혼식을 진행할 수 있으니까.
물론 형의 결혼 여부가 동생의 결혼에 영향을 끼치는 법 따위는 없다. 가문의 후계 문제 때문에 관습적으로 연장자가 먼저 결혼하기는 하나, 나는 이미 마르와 결혼하여 기혼자가 되지 않았나. 만약 법이 있었더라도 에리히가 결혼을 유예할 사유는 아니다.
그럼에도 에리히는 고민 끝에 자신의 결혼을 미뤘다. 내 부인이 될 여섯 명 중 그 누구도 ‘동서보다 늦게 결혼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기 위하여.
“기다려줘서 고맙다.”
그렇기에 축하 인사를 건네는 에리히의 어깨를 토닥이며 감사를 표했다.
결혼 순서가 뭐 별거인가 싶겠으나, 유감스럽게도 귀족 사회에서는 신경도 쓰지 않던 사소한 문제가 거대한 돌덩어리로 돌아오는 경우가 잦다. 그런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분쟁 요소도 만들지 않는 게 편하다.
나와 에리히의 부인들 중 누가 먼저 크라시우스 가문에 이름을 올렸느냐. 괜히 이런 논쟁이 생기면 서로 피곤하니까.
“첫 번째 결혼식은 내년 3월이랬나?”
“어. 1월부터 하기에는 나도 누나도 바쁘니까. 3월이 무난할 것 같더라.”
덤덤히 답하는 에리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장관 비서라는 희대의 보좌관이 있고, 황제에게도 초-장기 휴가를 보장받았기에 냅다 1월에 결혼할 수 있었지만 보통 1월은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느라 바쁜 시기다. 제국의회 막내 1, 2위인 에리히와 제노비아가 1월부터 휴가를 신청하기는 눈치가 보인다.
그러니 첫 번째 결혼식은 3월, 자동으로 두 번째 결혼식은 9월 정도가 적당하다.
‘나쁘지 않지.’
현실과 타협한 시기지만 썩 나쁜 시기는 아니다. 벚꽃이 흩날리는 결혼식과 단풍이 무르익은 결혼식이면 보기도 좋잖아.
“형이 동생 앞길 막고 있는 것 같아 미안했는데, 이제 편히 지내도 되겠어.”
“딱히 미안한 것 같지는 않던데.”
기분 탓인가. 분명 않던데, 로 문장이 끝났지만 ‘미안했으면 동생한테 의원 대리직을 떠넘기지 않았겠지’ 라는 뒷말이 들리는 기분이다.
그것도 조금은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은퇴한다는 아버지를 막을 수는 없었고, 아직 꼬꼬마인 페디나 테레사에게 대리직을 맡길 수도 없었으니. 오직 에리히만이 내 권리와 의무를 대행할 수 있었다.
그래도 어디 가서 제국의회 의원 대리라고 하면 대접받지 않나. 피할 수 없다면 즐겨줬으면 싶다.
“우우!”
“테레사?”
“뭐야. 벌써 다 놀고 온 거야?”
그렇게 에리히와 대화를 나누던 중, 등 뒤에서 테레사의 옹알이가 들렸다.
테레사는 프리드리히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다. 덕분에 프리드리히처럼 스스로 기어다닐 수 있게 되었고, 내 저택에 놀러 온 지금도 조카들, 동물들과 함께 저택을 누비고 있었다. 테레사 입장에서 내 저택은 처음 보는 놀이터니까.
그래서 테레사가 마음껏 놀도록 가만히 두고 있었는데, 먼저 우리한테 돌아올 줄은 몰랐다.
“때래사! 가치 가!”
“꼬-모- 고오, 모!”
이윽고 황태녀와 페디의 목소리도 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고모라.’
무심코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막 기어다니기 시작한 작은 아이가 누군가의 고모라.
조카보다 어린 고모가 있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나, 그래도 보다 보면 괜히 신기해진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페디는 기어다니는 테레사에게 고모라 부르고, 테레사는 훗날 페디를 조카라 부를 터.
‘기대되네.’
어느새 내 앞까지 다가온 테레사를 품에 안았다.
과연 페디와 테레사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페디는 자기보다 어린 사람에게 조카라 불리는 걸 부끄러워할까? 아니면 테레사가 연장자에게 고모라 불리는 걸 꺼려 할까? 아니면 의외로 서로 좋아하며 장난처럼 부르고 다닐까?
지금은 알 수 없다. 적어도 10년 정도는 지나야 답을 알 수 있겠지.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어.’
어쩌면 눈 깜짝할 사이에 10년이 지날 수도 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자라는 걸 지켜보는 것이니, 어느 때보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지 않겠나. 본래 즐겁고 기쁜 일을 겪으면 시간이 평소보다 빠르게 흐른다고 하니까.
오히려 아이들이 금방금방 자랄까 봐 아쉬울 정도다. 한 살인 아이들, 두 살인 아이들, 세 살인 아이들의 매력은 각각 다른 법. 그 매력을 만족스러울 정도로 즐기기 전에 해가 지날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겠지. 나 하나 만족하자고 아이들을 평생 어린 상태로 둘 수는 없잖아. 애초에 그럴 능력도 없고.
“아! 때부!”
“압-빠!”
– 멍!
얼마 지나지 않아 방에 들어온 황태녀와 페디, 티티가 나에게 달려왔다.
“때래사! 내려저! 병아리 때래사한테 잇서!”
“예?”
황태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병아리라면 겸손을 말하는 건가?
‘겸손이 테레사한테 있다고?’
품에 안겨있던 테레사를 내려다보자 테레사는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깜빡였다.
이상하다. 이 작은 애가 병아리를 들고 다닐 것 같지는 않─
“주, 주인…”
목 부근에서 노란색 무언가가 뾱하고 튀어나왔다.
“아.”
겸손이었다. 옷에 덮여 있어서 바로 눈치채지 못했다.
“도, 도와다오… 주인의 동생이, 나를 보더니 그대로 낚아채서…!”
작은 날개를 버둥거리며 파들파들 떠는 겸손을 보니 절로 탄식이 나왔다. 얼마 전에는 아텔리우스 앞에서 영혼을 담은 병아리 코스프레를 하더니, 이번에는 아이의 품에 갇혀 생체 목걸이가 되어버렸다. 점점 전직 악신의 명예와 존엄이 바닥에 떨어지고 있다.
아니, 솔직히 봉인지에서 데려온 순간부터 명예나 존엄은 없던 것 같지만.
“테레사. 그 아이도 답답해 보이는데, 꺼내주지 않을래?”
“우우?”
일단 테레사에게 겸손을 꺼내줄 걸 부탁했다. 혹여나 테레사가 바닥에 엎드리고, 바닥과 테레사 사이에 끼인 겸손이 그대로 납작해지면 서로 곤란해진다.
물론 나름 성수인 겸손이 아이에게 깔렸다고 노랑이에서 빨갱이가 되지는 않겠지만, 세상 서러운 울음소리를 내며 울부짖을 건 뻔하다.
“우…”
아무튼 내 부탁에 테레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앙증맞은 손으로 겸손을 잡았다.
“드, 드디…! 어…?
“어?”
겸손을 잡은 테레사의 손이 입으로 이동했다.
“테, 테레사! 지지!”
“나, 난 맛이 없다! 덩치가 작아서 양도 없어!”
“우우!”
“에리히! 너도 와서 말려!”
“아니, 애 하나 막는 데 뭔 둘이나…”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겸손을 해방시킬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겸손은 한동안 식음을 전폐한 채 울부짖었다.
결혼식 준비는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무려 다섯 번, 이종족 보호 구역에서 치른 결혼식까지 포함하면 여섯 번이나 되는 결혼식을 준비한 나다. 이제 결혼식 준비 정도는 눈 감고도 진행할 수 있을 경지에 이르렀다.
덕분에 모든 준비를 마친 뒤, 시르디 남작령에 미리 방문하여 현장을 살펴볼 수 있었다.
‘소박한 곳이네.’
그리고 느긋하게 둘러본 시르디 남작령은 지금까지 본 영지들과 달리 고요하고 소박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북부 국경과 가까운 영지였으며, 그 크기는 남작령에 불과한 곳이다. 위치를 보면 리제의 고향인 아티니 남작령보다 불리하고, 덩치를 보면 위리디아 백작령보다 부족하다. 그렇기에 크라시우스 가문의 자금을 때려 박았어도 소박하고 아담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당연하지만 불만 같은 건 없다. 자연재해나 전쟁에 휘말려 폐허가 된 상태라면 모를까, 단순히 변방 작은 영지라 조용한 것은 오히려 그만한 매력이 있는 법이다.
게다가 영지가 작고 소박하면 키우는 재미도 있지. 현 시르디 남작령은 내가 원하는 대로 그릴 수 있는 백지나 마찬가지니까.
“장관님의 마지막 결혼식을… 이런 곳에서 치러도 괜찮을까 걱정입니다.”
정작 나와 나란히 말을 타고 있던 피네는 다소 풀이 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연히 괜찮지. 시르디가 번화한 곳이라 결혼식장으로 삼은 것도 아니고, 피네의 첫 영지라 삼은 거잖아. 작은 것 따위는 아무 문제도 없어.”
그런 피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작은 영지가 우리 결혼식을 계기로 발전하면 그게 더 멋지지 않을까?”
“그렇, 습니까?”
“그럼. 우리 아이들한테도 자랑하면 딱이겠다. 원래 여기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는데, 이 아빠랑 엄마가 열심히 발전시켰다고.”
아예 시르디 남작령이 아니라 시르디 백작령이라 불릴 정도로 발전시킬까 싶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저도… 장관님과 함께 만드는 영지라면 제 고향만큼이나 소중할 것 같습니다.”
내 위로에 다소 어두웠던 피네의 안색이 밝아졌다.
역시 결혼을 앞둔 새신부는 밝게 웃어야 예쁘다. 새신부라면 며칠 후에 있을 기쁨만 생각해야지, 괜한 걱정을 하는 건 서로에게 좋지 못하다.
“나, 남작 각하! 장관 각하!”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던 찰나, 우리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짖는 남성이 몇몇 병사들과 함께 달려왔다.
‘…누구더라?’
순간 누구인지 헷갈렸으나, 이윽고 남성의 정체를 떠올릴 수 있었다.
시르디 남작령이 황실 직할령이던 시절부터 시르디를 관리하던 지방관. 시르디가 남작령이 된 이후로는 특임부장인 피네를 대신하여 영지 업무를 처리 중인 유용한 인재.
‘마음에 들어.’
아마 우리가 호위도 없이 돌아다니는 것에 기겁하며 달려왔겠지만,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영지의 주인인 피네부터 불렀다는 게 흡족스러웠다.
그래야지. 아무리 내가 피네의 남편이자 상사라도 영주의 체면부터 살려줘야지.
‘오래 쓸 수 있겠어.’
조만간 시르디 남작령을 구성할 가신들을 모아야 하는데, 저 지방관도 가신 중 하나로 삼는 게 좋을 것 같다.
집사장이나 시종장 같은 자리면 충분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