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51)
로판 속 공무원 651화(652/945)
마침내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내 인생 마지막 결혼식이 진행되는 날이고, 무려 3년이나 이어진 릴레이 결혼식이 마침표를 찍는 날이다. 축하와 박수를 받기에 마땅하다.
“축하한다. 드디어 결혼반지도 한 손으로 셀 수 없는 수준이 됐구나.”
이번에도 아침 일찍부터 찾아와 시비를 거는 장관의 말에 픽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시비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이제 피네와도 결혼반지를 교환하면 여섯 개나 되는 반/지를 끼게 된다. 다행히 사이즈가 작기에 한 손에 낄 수는 있으나, 다섯 개에서 여섯 개로 넘어감으로써 두 손으로 반지 개수를 헤아려야 한다.
허나 과거의 나라면 모를까 지금의 나는 떳떳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여섯 명과의 인연을 상징하는 반/지들이다. 그 반/지들이 많으면 오히려 기쁜 일이 아닌가?
게다가 저기 남쪽 공작령에는 두 손이 아니라 세 손을 동원해야 하는 사람도 있는데 뭘.
“제 손이 무거울수록 부인들을 향한 사랑도 무겁다는 거죠. 오히려 좋습니다.”
“하여간 말은 잘해.”
내 대답에 장관도 웃음을 흘렸다.
“얼마나 사랑이 무거우면 자식들에게도 자랑하는 거냐?”
그 말에는 순간 움찔하고 말았다.
부인이 많다는 말은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나, 결혼식 하객으로 내 자식들이 있는 건 아직 익숙해지지 못했다. 마지막 결혼식이 열리는 오늘까지도.
솔직히 그게 익숙해질 사람이 어디 있겠어. 불륜이 아닌 합법적인 중혼이지만, 자식 앞에서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건 뭔가 좀…
‘그렇다고 저택에 두고 올 수도 없고.’
아직 아이들이 침대에 누워 지내는 시기라면 사용인들에게 잠시 아이들을 맡길 수 있다.
허나 이제 우리 아이들 중에는 스스로 걸어 다니거나 기어다닐 수 있는 아이들이 많다. 가족 전체가 모이는 경사에 빠트릴 수 없을 정도로. 아마 두고 오면 왜 자기들만 빼고 놀러 가냐며 서운해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아빠와 엄마의 결혼식을 직관하는 것만큼 신기한 경험이 있겠습니까?”
“굳이 안 해도 되는 경험이기는 하지만.”
낄낄 웃음을 터뜨린 장관은 이윽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딜은 충분히 넣었으니, 이제 너 따위에게는 관심 없다는 것처럼.
“때-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관이 애타게 찾던 인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덕분에 연신 두리번거리던 장관의 표정이 급격히 온화해졌다. 자기 아들이나 손자처럼 대하던 대자가 먼저 자신을 찾아왔으니까.
“페디야! 오늘 아빠는 바쁠 테니 이 대부… 랑…?”
허나 목소리 쪽으로 반갑게 고개를 돌린 장관은 잠시 움찔하고 말았다.
근육이 우락부락한 중년 남성이 아이를 보고 흠칫 떠는 건 우스운 일이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곰이! 때부한태 가!”
“알겠습니다!”
작고 소중한 대자가 곰에 올라탄 채 다가오고 있다면 누구라도 놀라지 않겠나.
“…저 녀석들도 결혼식에 참석하는 거냐?”
“애들이 쟤네가 없으면 울더라고요.”
어이가 없다는 듯한 장관의 말에 씁쓸히 대답했다.
성수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있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저 녀석들을 빼고 아이들만 데려가는 건 불가능한 수준이다.
“드루이드도 아이 때부터 곰을 다루지는 않았을 텐데.”
장관의 중얼거림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이와 맹수는 건국 신화에서나 겨우 볼 수 있는 조합이다. 동물과 자연의 친구라는 드루이드조차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시기부터 곰 친구를 사귀지는 못했겠지.
물론 이 대륙에 드루이드가 남아있는지는 둘째 치고 말이다.
“그런데 왜 곰이 페디를 태우고 있는 거냐? 말이나 사슴도 있지 않았냐?”
“걔네는 발굽 소리가 너무 울리더라고요.”
대리석 바닥과 발굽이 부딪히면 소음이 심하다는 이유.
생각보다 실용적인 이유였는지 장관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신부 대기실에 앉은 채 하염없이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낯설다. 정성스레 화장을 한 것도,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은 것도, 다소곳하게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도 전부 낯설다.
내 삶은 화장과 거리가 멀었으며, 드레스와는 더더욱 연이 없었고,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낸 적도 드물었다. 조금이라도 편한 복장으로 바삐 움직인 것이 내 삶이었으니까. 주인님께 새로운 삶을 받은 이후로 오직 주인님을 위해 움직였으니까.
그래도… 이 상황이 낯설지언정 싫지는 않았다.
“예뻐요, 마님!”
“네! 엄청 아름다우세요!”
내 옆에서 눈을 반짝이는 유리스와 소피아.
“뻔한 표현이지만 눈이 부십니다. 이리도 빛나니 주인님께서도 반하신 거겠지요.”
결혼식 당일이면 이미 공식적인 부부나 마찬가지라며 존대를 사용하는 집사님.
“맞습니다! 크라시우스 가문의 마님으로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결혼식 끝나면 몇 년 동안 특임부 쪽은 보지도 마십쇼!”
그런 집사님 뒤에 모여 웃음을 터뜨리는 저택의 사용인들과 구 묵광대까지.
나를 주인공처럼 여겨주고, 가슴 따뜻해지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 가족들이 있었으니까. 내 인생 최고의 행복을 함께 즐겨주는 가족들이 있었으니까.
“다들 고맙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예비 마님이나 특임부장이 아닌 한 명의 가족으로서 입을 열었다.
이렇게 축하해 줘서 고맙다고. 나를 사랑해 줘서 고맙다고.
“고마우면 마님도 건강한 아이로 보답─!”
“유, 유리스!”
돌발 행동은 유리스가 했지만 정작 안절부절못하는 건 소피아였다.
평소였으면 이상한 말을 하지 말라고 꾸짖었겠지만 넘어갔다. 오늘은 기쁜 날이고, 웃어야 하는 날이니까.
그리고 유리스의 말처럼… 내 몸에 문제만 없다면 다른 부인들처럼… 나도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부장님. 얼굴 빨개졌습니다.”
특임부 1과장의 말에 황급히 헛기침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제 1시간 정도 후면 주인님과 함께 하객들 앞에 서야 한다. 주인님의 마지막 결혼식을 장식하는 자로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주인님의 마지막 결혼식을 위해. 모두가 박수를 쏟아낼 결혼식을 위해.
“피네! 나도 왔어!”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히려던 찰나, 대기실 입구 쪽에서 에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언니! 지금은 피네 언니만 있게 하자고 했잖아요!”
“가족들과 나누는 시간이란다. 그걸 방해해서는 안 되지.”
“그치만 이제 우리도 가족이잖아요!”
뒤이어 다른 부인들의 목소리도 들려 미소를 짓게 되었다.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주, 주, 주인님의, 마지막 결호오온… 을 위해, 만인이, 축하하느은… 결혼, 을, 위해…
…
‘진정하자.’
마음을 가라앉히자. 마음을 가다듬자… 마음을 진정시키자…
“피네, 괜찮아?”
“괘, 괜찮습니다.”
주인님의 속삭임에 말을 더듬어버렸다.
부끄럽다. 분명 신부 대기실에서는 완벽하게 결혼식을 마무리하자고 다짐했었다. 주인님의 첫 결혼식은 성대하게 이루어졌고, 그 뒤를 이은 네 번의 결혼식 또한 특색 있고 아름답게 이어졌다.이제 내가 마지막을 잘 장식하면 완벽하다.
처음이 드래곤의 머리처럼 웅대했으니, 마지막도 드래곤의 꼬리처럼 기품 있어야 한다. 분명 그래야 한다.
‘그래야 하는데…’
막상 주인님과 함께 사회자 앞에 서니 기껏 다잡은 마음이 흔들렸다. 하객들의 시선을 받으니 몸을 떨렸다.
이상한 일이다. 주인님의 속삭임과 쓰다듬이 아닌 이상 나를 떨리게 하는 건 없었다. 그런데 하필 이 시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이 시기에…!
“피네.”
“네, 네.”
자괴감이 고개를 들기 직전, 주인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지겹지? 어차피 우리가 부부라는 건 온 세상이 다 아는데, 굳이 이런 절차를 걸칠 필요가 있나 싶어. 오히려 그동안 결혼식에 발목이 잡혀서 부부로 지내지 못한 거잖아.”
그 말씀에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주인님이 결혼식에 진심으로 임하는 건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지?
“아무래도 결혼식을 여러 번 진행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해. 축하도 한두 번 받아야지, 여섯 번이나 받는 건 좀 그래.”
“그, 그렇습니까?”
여전히 작게 속삭이는 주인님이었지만, 그 작은 속삭임이 심장을 찌르는 기분이었다.
성대하고 아름답게 마무리해야 할 주인님의 마지막 결혼식이다. 허나 그 마지막은 이미 주인님에게 있어 지겨운─
“그러니 내 결혼식이 아니라 피네의 처음이자 마지막 결혼식이라 생각하려고. 그러면 나도 사랑하는 아내에게 축하를 보내는 입장이니까.”
“…네?”
주인님의 말에 반문을 하고 말았다.
주인님의 결혼식이 아니라니. 이 결혼식을 준비한 사람은 주인님이다. 이 자리에 모인 하객들도 주인님을 보기 위해 모인 거다. 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건 주인님이 내 고백을 받아주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인님의 결혼식이 아니라니. 축하를 받는 게 아니라 축하하는 입장이라니.
“축하해, 피네. 한 번뿐인 결혼식을 나와 함께해 줘서 고마워.”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리고 주인공 옆에 서있게 해줘서도 고맙고.”
주인님의 마지막 결혼식이 아닌 내 결혼식이라는 말을 듣자 마음이 평온해졌다.
불안감 대신 고요함이, 초조함 대신 두근거림이 몰려왔다.
“저도 주인님과 함께할 수 있어 기쁩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억지 미소가 아닌 진심 어린 미소를 담아서 주인님을 볼 수 있었다.
이 자리는 나를 축하해 주기 위해 주인님이 마련해 준 자리니까. 내가 축하를 받고 박수를 받는 자리니까.
내 인생에 다시없을 축제니까.
***
피네가 잠시 불안에 떠는 해프닝이 있었으나, 다행히 불안을 털어내고 웃을 수 있었다.
흐뭇한 일이다. 이번 결혼을 계기로 피네 마음속에 있던 족쇄가 완전히 벗겨졌을 거다.
‘벗겨질 수밖에 없지.’
유드허 백작령에서 즐긴 데이트를 기점으로 피네의 세계관은 ‘주인님 중심’에서 ‘우리 중심’으로 변하고 있었다.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공식적인 부부가 된 결혼식을 자신의 축제로 받아들였다면─ 더 이상 피네는 나를 올려다보는 위치가 아니라 나란히 어깨를 맞댄 위치로 올라왔을 것이다.
‘길었다.’
정말 길었다. 나를 숭배하는 수준인 피네를 동등한 부인으로 만드는 과정… 이게 몇 년에 걸쳐 이루어진 여정이었는지…
‘이제 편하게 즐겨야지.’
다섯 부인의 손을 거친 부케가 피네의 손에 들린 것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피네랑 열흘이나 보름 정도 오붓한 시간을 보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