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52)
로판 속 공무원 652화(653/945)
여름은 다른 계절에 비해 해가 일찍 뜨는 법. 덕분에 커튼 사이로 햇빛이 새어드는 시간도 평소보다 일렀다.
허나 적당한 햇빛은 기분 좋은 기상을 돕는 자연의 선물이다. 따스한 햇빛이 볼을 간지럽히면 나도 모르게 눈이 떠지니까.
‘얼마 못 잤네.’
팔을 이리저리 돌리며 가벼운 스트레칭을 한 후, 침대에서 내려와 창문으로 다가갔다.
고작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은 방 전체를 덮지 못한다. 일단 커튼부터 걷고 하루를 맞이해야지.
“으으응…”
그렇게 커튼을 걷자 따사롭고 밝은 햇빛이 방을 덮쳤고, 침대에 있던 피네가 작게 웅얼거렸다.
내가 얼마 자지 못했다면 피네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피네는 내 부인들 중 가장 건강하고 강인한 육체의 소유자. 조금 덜 잔 것 정도로는 아무런 타격이 없다.
그게 하루 이틀 정도가 아닌 보름 연속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깼어?”
“자, 장관─!”
아무튼 눈을 깜빡이던 피네는 먼저 일어난 나를 보고 다급히 몸을 일으켰지만,
“뭐라고?”
“…여보…”
내 짧은 지적에 스르륵 고개를 숙이며 부끄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흡족하다. 드디어 장관님이라는 호칭 대신 정상적이고도 부드러운 호칭을 듣는 것에 성공했다.
‘힘든 여정이었지.’
괜히 눈가가 뜨거워지고 코끝이 찡해지는 기분이었다. 결혼식을 계기로 피네의 세계관을 나 중심에서 우리 중심 세계관으로 바꾸는 것에 성공했으나, 딱딱하고 정이 없던 호칭 문제는 변함이 없었다.
그나마 유드허 백작령에서 주인님이라는 파멸적 호칭에서 장관님으로 조정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솔직히 그걸로는 매우 부족했다.
“피네. 다 좋은데, 장관님이라는 호칭은 바꿔야 하지 않을까? 이제 우린 부부잖아.”
“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물론 장관이라는 호칭이 남들에게 들려주기 부끄러운 호칭은 아니다. 지금쯤 늦잠을 자고 있을 에리도 여전히 나를 장관님이라고 부르지 않나.
게다가 피네는 주인님이라는 아찔한 호칭을 내 요구에 따라 장관님으로 조정해 줬다. 겨우 장관님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2차 조정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그래서 피네에게 압박이나 부담을 주지 않고 자발적인 조정 기회를 줬다.
“그럼 어쩔 수 없지. 피네가 다른 호칭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노력하자.”
“예… 노력하겠습니다.”
“그래. 한 열흘 정도 단둘이 노력하면 될 거야.”
“…예?”
그 말과 함께 둘만의 뜨겁고도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피네의 머리에서 장관님이라는 단어가 사라질 때까지. 피네의 입에서 자발적으로 풋풋하고 따스한 호칭이 나올 때까지.
“장관님. 조금은, 쉬면서…”
“괘, 괜찮습니까? 알겠, 습니다…”
처음에는 피네도 여유로웠다. 체력으로는 부인들 중 최고인 피네기에 내 페이스에 맞출 수 있었고, 부끄럽고 수줍어할지언정 버거워하는 느낌은 없었다.
딱 사흘 정도까지만 그랬다. 유감스럽게도 나흘부터는 버티지 못했다.
“자, 장관님…! 이제, 그만…!”
“난 장관님이 아니라 모르겠는데.”
피네의 체력보다 내 체력이 더 좋았으니까.
만약 내가 피네보다 약했다면 피네도 멀쩡했겠으나, 사흘 내내 약자가 강자의 페이스에 맞추면 문제가 생기는 게 당연하다.
아니, 오히려 사흘도 잘 버틴 거지. 어느 하얀 머리는 사흘도 못 버티고 굴복했잖아.
“자, 장관니이임… 이렇게, 하면, 장관님도 무리가…”
“난 괜찮아.”
“그, 그래도 혹여나, 저 때문, 에… 다치시기라도 하면…”
“장관님은 그런 거 몰라.”
너무도 노골적인 반응에 피네도 어쩔 줄 몰라 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피네가 쉬자는 말을 조금만 꺼내면 나는 장관이 아니라 모르겠다, 장관은 그런 거 모른다 같은 기괴한 말만 뱉어냈다. 이러면 피네가 오는 길에 눈치를 버렸더라도 내 속내를 알 수밖에 없다.
당장 장관님이 아니라 정상적인 호칭을 입에 담으라는 따뜻한 속내를.
‘비겁한 짓이기는 했어.’
민망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다른 호칭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노력하자고 한 주제에, 피네가 당장 노력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상황으로 몰고 갔다. 객관적으로 보면 추한 행동이 맞다.
하지만 어쩌겠나. 부인에게 장관님이라 불리는 것보다는 추하고 비겁한 게 낫지. 에리도 나를 장관님이라 부르기는 하나, 에리의 장관님은 진심이라기보다 장난기 섞인 호칭이기도 하고.
“아, 앞으로 부장님이라고 하면…!”
“장관님이랑 다를 게 없잖아.”
“백작님은…”
“별로야.”
“가주님…!”
“…….”
허나 추함을 각오하고도 피네의 여정은 길고 길었다. 이거 호칭 조정 문제는 다음으로 미뤄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됐을 만큼.
“여, 여보오…”
그래도 고생 끝에 복이 왔으니 웃을 수 있었다.열흘이라는 시간을 거쳐 여보라는 정상적인 호칭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고마워, 피네. 역시 부부 사이면 이래야지.”
“그, 그러면…”
“지금부터는 장관이 아니라 여보로서 노력할게.”
그 경사를 기념하며 닷새 정도 피네와 함께 한 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으으읏…”
“괜찮아?”
그렇게 흐뭇하게 미소를 짓던 중, 바닥에 발을 내딘 피네가 약한 침음성을 흘렸다.
“괜찮습니다. 몸이 조금 놀라서…”
희미한 미소를 짓는 피네의 모습에 살짝 감탄했다.
역시 피네의 강건함은 놀라울 정도다. 철혈공의 핏줄을 이은 마르, 마법이라는 치트키를 사용한 트릭시를 제외하면 최고의 회복력과 지구력을 보여주고 있어.
“그럼 오늘도─”
“버, 벌써 아침이니 식사부터 하시겠습니까?”
필사적인 화제 전환에 픽 웃음을 흘렸다.
나도 보름보다 길게 끌고 갈 생각은 없다.
***
제국의회 의사당 후원.찾는 사람은 적은 수준을 넘어 거의 없는 수준이나, 제국의 입법을 담당하는 제국의회 의사당의 일부라 철저한 관리를 받는 곳.
덕분에 이 후원은 어지간한 성이나 저택의 후원에도 밀리지 않았고, 지금처럼 머리가 복잡할 때는 바람을 쐬기 위해 방문하는 곳이다.
제국의회 의장이 된 후로는 거의 매일 오는 수준이라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지만.
‘오늘은 아무도 없군.’
휑한 후원을 둘러보다가 벤치에 앉았다.
다른 의원들은 관심도 주지 않는 후원이었으나, 막내 의원 둘은 종종 후원에 출몰하였다. 아직 젊어서 그런지 이리저리 잘도 돌아다녔지.
허나 오늘은 그 둘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홀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막내…’
다행인 일이다. 머리가 복잡한 이유가 막내 둘 때문이었으니까.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온 후원에서도 둘을 만났다면 씁쓸했을 거다.
‘이를 어찌한다.’
벤치 등받이에 눕다시피 몸을 기댄 후,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봤다.
그 둘이 고민의 원흉이기는 하나 딱히 잘못이나 실수를 저지른 건 아니다. 오히려 막내답게 열심히 일하는 중이고, 내년 초에 신청할 신혼 휴가를 위해 최대한 많은 업무를 미리 처리 중이다.
그래, 내년 초에 휴가를 동시 신청하기 위해서. 바로 그 점이 문제다.
‘둘이 동시에 자리를 비우면 곤란한데.’
제국의회 의원은 오직 제국백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또한 제국백은 이 드넓은 제국에서도 단 서른 명만 존재한다.
실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황실과 명운을 함께한다는 자부심, 황제 폐하의 수족이자 최후의 방패라는 긍지는 우리 제국백들의 자랑이다. 단 서른 명으로 이루어진 권위는 후작조차 우리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소수 정예나 마찬가지인 숫자가, 300년의 전통을 가진 숫자가 간혹 발목을 잡는다.
‘두 명이 빠지면 사실상 10%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제국백─ 즉 제국의회 의원은 숫자가 너무도 적어 한 명만 이탈해도 치명적이다. 그러니 둘이 휴가를 신청하면 오죽하겠나. 절대적인 숫자로 보면 고작 둘이나 상대적으로 보면 10%에 근접한 수치다.
그렇다고 둘의 이탈을 막을 수도 없다. 다른 이유도 아닌 결혼 때문에 휴가를 신청하는 것인데, 누구는 휴가를 허락하고 누구는 거절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도리적 문제를 떠나 제국 입법기관인 우리가 법을 무시할 수는 없다.
‘망할.’
거칠게 마른 세수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위안을 가진다면 호르펠트 백작과 하디네르 남작은 자신들의 공백을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스스로 업무를 몰아서 처리 중이다. 고맙고도 다행인 일이지.
하지만 그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운이 좋게 이번 사태는 넘어가더라도, 다음에도 비슷한 일이 생기면 그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멀리 볼 필요도 없다. 호르펠트 백작에게는 임신 및 육아 휴가가 예정되어 있고, 하디네르 남작은 내년 말에도 추가적인 결혼식을 올린다.
‘끝이 없군.’
결국 의원이 서른 명인 이상 언제나 인원 공백을 걱정하며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아무리 의원들이 노력해도 태생적인 문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제국백을 늘릴 수도 없고.’
순간 황제 폐하께 제국백 확충을 건의드려야 하나 고민했으나, 금방 그 생각을 폐기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300년 역사를 가진 우리 제국백들이다. 황권이 위태로웠을 때도 폐하를 보필하며 영광과 위기를 함께 누린 제국백들이다. 이제 와서 그 자리를 다른 자들과 공유할 생각도, 공유할 수도 없다.
‘300년 만에 새 제국백이 생기면 잘도 인정해 주겠어.’
박힌 돌은 굴러온 돌을 반기지 않는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기에.
‘…의원… 이라면…’
마침 하늘을 나는 매를 보다가 다른 쪽으로 생각이 닿았다.
제국백 숫자를 늘리는 건 불가능하다. 현실성이 없는 것도 문제이나, 건의해야 할 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 방식이다.
대신 의원을 늘리면 어떨까. 오직 제국백만 역임이 가능하던 의원 자격을 넓히고, 제국의회 의원을 더욱 늘리면 어떨까. 지금처럼 두 명의 이탈이 10% 공백으로 이어지지 않게.
물론 이 또한 300년 전통을 거스르는 꼴이다. 의원의 권위와 권한을 다른 자들과 나눠야 한다.
‘그 정도는 감내해야지.’
그래도 매번 의원 한 명 한 명의 휴가에 안절부절못할 바에는 의원을 늘리는 게 낫다. 사실 행정부와 사법부에 비해 입법부가 너무 작은 거 아니냐는 말은 옛날부터 있었고.
“좋아.”
고민 끝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다른 의원들과 논의부터 해보자. 의원 정원 확대는 아무리 의장인 나라도 함부로 건의할 사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