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58)
로판 속 공무원 658화(659/945)
린이 알리나를 낳은 지도 수개월이 지난 덕에 다소 어긋났던 린의 육체가 완전히 회복되었다. 이제 격한 운동을 해도 문제가 없을 만큼.
그렇기에 린은 까망이가 저택에 왔을 때부터 고대하던 까망이 승마를 시도하였고,
“얘 너무 힘이 넘치는데요?”
제도나 그 인근에서 가볍게 달리는 건 무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제도의 대로는 드넓다. 마차 여러 대가 나란히 달릴 수 있을 정도니, 말 한 마리가 귀부인을 태우고 유유히 달리는 것 정도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인도나 상가에 침범해서 애꿎은 사람만 들이박지 않으면 되니까.
허나 시범 운행을 하고 온 린의 말대로 까망이는 과하게 힘이 넘쳤다. 아무리 넓다지만 도시 내에서 달리게 하기에는 위험천만한 녀석이다.
“그럼 위리디아로 갈까? 내 영지 중에서 말이 달리기 편한 곳은 거기밖에 없는데.”
“그럴까요?”
그래서 짧은 고민 끝에 난데없는 위리디아 방문이 결정되었다. 승마를 위해 제도에서 북쪽 영지까지 간다는 것이 조금 오묘했지만, 영주가 영지를 보러 가는 게 문제는 아니잖아.
오히려 그동안 집사장을 믿는다는 명목으로 오랜 시간 영지를 방치했다. 이제 와서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생각은 없으나, 이참에 업무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확인하는 게 좋을 터.
“아, 하양이도 같이 데려가자.”
“하양이도요?”
“둘 다 북방에 있던 애들이잖아. 어차피 얘네를 타려면 위리디아까지 가야 하는데, 마구간에 둘 바에는 위리디아에 풀어두면서 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내 말에 까망이의 갈기를 쓰다듬던 린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초원을 질주하며 살아가던 명마를 마구간에 가둬두는 건 도리가 아니다. 그럴 바에는 위리디아에서 실컷 뛰어놀고, 린이나 다른 가족들이 타고 싶을 때마다 위리디아로 가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그런데 하양이는 새끼도 뱄는데 괜찮을까요?”
“그러니 넓은 곳에 있어야지. 스트레스 받으면 태교에 안 좋아.”
“태교…”
린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동물의 태교도 챙겨준다는 말이 린의 감수성을 자극한 모양이다.
린과 함께 위리디아로 가기 전, 집사장에게 미리 연락을 주었다. 평소 잠잠하던 영주가 예고 없이 방문하면 아랫사람을 털기 위해 오는 거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 않나.
하필 내 직책도 감찰성 장관이라 더욱 조심해야 한다. 열심히 업무를 처리하던 집사장을 심장마비로 잃고 싶은 게 아니라면 사전 예고는 필수지.
“어서 오십시오, 각하! 마님!”
그렇게 예고 후 위리디아로 이동하니, 성 앞에서 집사장이 일꾼들과 함께 맞이해주었다.
‘좋네.’
집사장─ 정확히는 집사장 뒤에 있는 젊은 일꾼들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위리디아를 위해 헌신하는 일꾼 중에는 젊은 피가 많다. 이는 열정적으로 일할 인재가 많다는 의미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노련한 인재들의 은퇴를 걱정하기는커녕 노련한 인재들로 집무실이 채워질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게다가 젊은 일꾼 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제법 보였다. 내가 아카데미에서 파밍한 인재 중 일부가 위리디아를 위해 일하는 중이었으니까.
‘잘 지내고 있나 보네.’
피곤과 열정이 뒤섞인 눈을 보니 미소가 멈추지를 않았다.
저 녀석들은 나에게 추천장을 받은 덕에 충성심이 어마어마한 녀석들이고, 내가 아카데미 3년 동안 눈여겨본 인재기도 하다. 당장은 경험이 부족해 우왕좌왕할지언정 언젠가는 나를 기쁘게 할 인재들이다.
“갑자기 찾아왔는데 이리 환대해 주어 고맙다.”
그래서 집사장의 어깨를 토닥이며 주머니 하나를 건넸다.
“우리 부부를 맞이하겠다고 위리디아와 영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영웅들이 귀한 시간을 내주었는데, 영주로서 어찌 그냥 넘어갈까.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가족들과 식사라도 즐길 수 있게 해라.”
“각하. 위리디아의 관료로서 각하를 맞이하는 건 무엇보다 중요한 의무이자 명예로─”
“내 기습 감찰을 통과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열심히 일하는 자들에게는 그만한 대가가 있어야지.”
그러자 황송하다는 듯 허리를 굽힌 집사장은 두 손으로 주머니를 받았다.
“각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는 제가 책임지고 완벽히 분배하겠습니다.”
“그래. 집사장이라면 어련히 잘하겠지.”
그 말과 함께 집사장을 지나쳐 다른 일꾼들과도 하나하나 인사를 나누었다.
영주가 가신도 아닌 일선 관료와도 대화를 나누는 것은 드문 일이나, 우리가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적어도 저 관료들이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는 확실히 인지를 시켜야지.
“수석 시종인 에른스트 돌레라고 합니다!”
그 와중에 가장 먼저 인사를 나눈 일꾼이 이상한 단어를 꺼냈다.
“수석 시종?”
난생처음 듣는 직책이다. 시종은 직급이 아니라 직책으로 나뉘며, 모든 시종들을 총괄하는 시종장이 따로 존재한다.
물론 능력이나 나이, 경력, 연줄 등에 따라 시종장 다음가는 2인자가 존재하기는 하겠다만, 수석 시종이라는 미묘한 직책으로 2인자를 공식 인정하는 편은 아니다.
“예! 영광스럽게도 공석인 시종장을 대리하여 위리디아 시종 전체를 총괄하는─”
“오늘부터 시종장으로 지내도록.”
내 의문에 기합 가득히 대답하던 수석 시종을 시종장으로 올려줬다.
어쩐지 수석 시종 같은 이상한 직책을 만들었나 했다. 영주가 임명해야 하는 시종장이 공석이라 임시로 1인자를 만든 거였어.
‘그러고 보니 아직 직책을 다 못 채웠구나.’
민망하다. 집사장이라는 급한 불을 끄기는 했지만, 그 뒤로 이런저런 일을 겪느라 다른 직책들을 채우지는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집사장이 일을 너무 잘 처리해서 위리디아를 관리해야 한다는 걸 잠시 망각하고 말았다. 덕분에시종장이 공석인 것처럼 다른 직책들도 전부 공석으로 방치하고 있었다.
‘삐걱였다면 문제가 있는 걸 알았을 텐데.’
무난하게 굴러가서 기형적인 구조를 방치하고 있었다. 놀라우면서도 창피한 일이다.
…아.
“시종장.”
“예…? 아, 예!”
갑작스러운 기습 승진에 정신이 반쯤 나간 시종장을 부르자, 시종장은 황급히 정신을 부여잡으며 대답했다.
“시종장이면 귀족가의 자제들을 관리해야 하는데, 그런 시종장도 일개 귀족에 불과하면 위엄이 서지 않지.”
“아닙니다, 각하! 각하께서 저에게 과분한 자리를 주셨는데, 누가 각하께서 주신 위엄을 부정하겠습니까!”
교과서에 나올 법한 이상적인 말이라 픽 웃음이 나왔다.
황제가 임명한 행정부 고위직조차 신분이 낮으면 부하들에게 은근 무시를 당하는 판국이다. 그래서 일정 직급 이상으로 올라가면 무조건 기사작, 혹은 그 이상의 작위를 받는 법이거늘.
“집사장.”
“예, 각하.”
“아직 작위들도 전부 공석이지?”
“물론입니다. 위리디아 백작령에 속한 모든 작위는 오직 각하께서만 임명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당당한 대답에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럼 내가 줄 수 있는 작위는 예전 기억과 다를 게 없다는 말이니까…
“에른스트 돌레. 시종장직과 함께 에이던 남작위도 수여할 터이니, 위리디아를 위하여 더욱 정진하라.”
적당히 아무 남작위나 던져줬다. 어차피 위리디아 내에 있는 남작령은 거기서 거기야.
***
누군가가 머리를 세게 후려친 기분이다.
각하께서 내 어깨를 토닥여주시고, 친히 악수까지 해주셨는데도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다.
“둘 다 오랜만이로군. 잘 지냈나?”
“예! 각하의 은혜 덕에─”
“네! 잘 지내고 있었어요!”
“그거 다행이군.”
한참이나 허공을 헤매던 정신은 각하께서 아멜리아 양과 올리비아 양을 독려하고 나서야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저 둘은 아카데미 재학 시절 때 각하를 뵈었다고 했었지. 그것도 각하께서 친히 써주신 추천장까지 받을 만큼 인연을 쌓았다.
능력도 좋고, 열정도 넘치고, 각하의 눈에도 든 아이들이다. 그래서 우리 중 집사장님 다음으로 영광을 누릴 자가 나온다면 저 둘 중 하나일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작위 귀족?’
설마, 설마 내가 두 번째 영광을 누리게 될 줄은 몰랐다. 각하와 아무런 인연도 없는 내가 갑작스레 남작이자 시종장이 될 줄은 몰랐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수석 시종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임시직이다. 각하께서 다른 사람을 시종장으로 임명하시면 평범한 시종으로 복귀해야 할 운명이었다.
본래 시종장이라는 자리가 그런 것이다. 평민으로 이루어진 하인이나 하녀와 달리, 시종과 시녀는 귀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에 특정 가문의 시종장은 그 가문과 밀접한 가문이나 충성스러운 가신 가문에서 배출되는 것이 상식이다.
허나 나는─ 위리디아의 시종과 시녀들은 각하는 물론 크라시우스 가문과도 연이 없었다. 위리디아 백작령이 사람을 구한다길래 누구보다 빨리 달려간 것에 불과하다. 그 과정에서 가문 사이의 거래나 정략은 존재하지 않았다.
‘감찰성 장관의 시종이 된 걸로도… 일생의 행운이라 생각했는데…’
그조차도 크나큰 행운이었다. 평범한 귀족 가문 출신인 내가, 계승권과도 거리가 먼 내가 제국 최고 실세의 시종이 되었다.
비록 각하를 가까이서 모실 수는 없으나 훗날 각하의 자제께서 위리디아 백작위를 물려받으실 터. 나는 그분의 시종이 된 것이라 생각했다. 그 미래의 인연으로도 나와 내 가족들은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에른스트 돌레. 시종장직과 함께 에이던 남작위도 수여할 터이니, 위리디아를 위하여 더욱 정진하라.”
에른스트 돌레 오브 에이던 남작이 되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이 은혜는 대체…’
입술을 깨물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눌렀다. 나를 부러움과 시기를 담아 바라보는 다른 관료들의 시선을 즐겼다.
일생의 행운을 얻었다. 평생을 갚아도 부족한 은혜를 입었다.
“오, 교배 작업의 책임자가 너였군.”
“과분하게도 그렇습니다!”
“그럼 책임자가 보기에 저 녀석들은 어떻지? 북방에서 데려온 녀석들인데.”
“후, 훌륭한 아이들입니다! 위리디아에 있는 야생마들보다도 더…!”
그렇기에 아멜리아 양과 대화 중인 각하를 보며 다짐했다.
내 시작은 크라시우스 가문과 아무런 연이 없는 평범하디 평범한 가문 출신이었으나, 반드시 크라시우스 가문을 지키는 방패가 되겠다고.
2대 위리디아 백작이 되실 분을 목숨을 걸어가며 지키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