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6)
이번 수학여행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누구일까. 올해 황금공 라인 가문에 오인 사격을 했는데 황금공 영지로 가게 생긴 나? 원래는 적당한 영지를 골라서 여유롭게 가려고 했던 학생회? 유감스럽게도 둘 다 아니다. 진정한 피해자는 따로 있다.
“보야르 공작령, 이라고 들었습니다.”
“예. 그렇게 됐습니다.”
바로 하루하루 호위 대상에게 아무 일도 없기를 기도하는 삼국 전력이다. 그리고 이 세계의 신께서는 유감스럽게도 기도를 그리 열정적으로 들어주는 존재가 아니다. 기도 메타에 올인하면 타니안 정도가 아닌 이상 망한다.
“보야르 공작령이라면 저도 들어봤습니다. 바다가 아름다운 곳이라지요? 내륙인 아카데미에서 지내는 학생들에게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동감입니다.”
담담하게 말하는 빌라르지만, 실상은 ‘왜 내륙인 아카데미에서 해안가인 보야르까지 가는 거냐.’ 라는 처절한 비명이다. 이해한다. 나도 보야르로 가는 것이 아카데미 내부 결정이었다면 다른 곳으로 가는 걸 유도했을 테니. 그런데 황금공이 원하는 상황이다. 못 막지 이건.
“처음 이루어지는 수학여행이라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앞으로 아카데미의 주요 일정이 될 테니 흥미롭겠지요.”
=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 이거 무리해서 건드리려 했다가는 내가 박살 난다.
“충분히 공감되는군요.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난 여행은 즐거운 법이니 말입니다. 단지 첫 수학여행이라 시행착오가 많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 수학여행을 가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보야르가 최선인가? 다른 곳은 불가능한가?
“하하, 저도 걱정이 많았지만 아카데미에서 정말 놀라울 정도로 노력하더군요.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 어림도 없지. 무조건 보야르다.
밝게 웃으며 주고 받은 대화지만 속내는 영 좋지 못했다. 이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대화가 아니라, 나도 싫은 일을 상대에게 통보하는 자리인지라. 미안하다, 빌라르. 아카데미의 모두가 황금공에게 통보 받은 입장이다.
“보야르의 바다는 매력적이라고 합니다. 에메랄드빛인 곳도 있고, 사파이어 같은 곳도 있다더군요. 빌라르 경께서도 이 기회에 편히 즐기셨으면 합니다.”
“말씀만 들어도 두근거리는군요. 감사합니다.”
예상치 못한 재난에 어두웠던 빌라르의 표정이 그제서야 조금 밝아졌다. 방금 내 말로 삼국 호위 전력, 최악이어도 빌라르 하나만큼은 보야르 공작령에 진입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예정대로 아카데미 인근 영지가 수학여행 장소였다면 이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삼국 전력은 아카데미에 대기하다가 유사시 뛰쳐나오거나, 교직원의 부탁으로 잠시 근처를 지나가는 중이라는 기괴한 핑계라도 댈 수 있다.
그런데 남쪽 끝인 보야르? 아카데미 대기는 말도 안되고, 핑계는 전혀 먹히지 않는 장소다. 인근 영지여도 조금 무리해야 하는데 보야르는 말할 것도 없지. 그런 상황에서 내가 힘을 써준다니 마음이 놓였을 거다.
‘너네 없으면 나도 망해.’
아카데미 내부에서 열린 박람회 때도 변수를 막기 위해 삼국 전력을 부스로 끌어들였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카데미 외부, 심지어 무수히 많은 인파가 있을 휴양지다. 나 홀로 동아리를 감시할 자신이 없다.
문제가 있다면 아직 황금공에게 삼국 전력의 진입을 허락받지 못했다는 것. 그래도 황금공이 사람의 말을 귓등으로 듣는 사람은 아니다. 외국 주요 인사의 호위를 위한 명목이라고 하면 충분히 이해하겠지.
대신 그 허락을 내가 직접 연락해서 받아야 한다는 것이 곤란할 뿐이다. 나 아직 요룬 백작가 이후로 황금공 보기 어색한데.
“감찰관님께서도 이번 여행으로 피로를 푸셨으면 좋겠군요.”
“감사한 말씀입니다.”
잠시 입을 다물자 빌라르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피로를 푸셨으면 좋겠다는 건 수학여행 동안 내가 나설 일을 최대한 없게 하겠다는 의미. 이렇게 일이 터질 때마다 배려를 받으니 뭐라고 해주고 싶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권한이 제한된 빌라르 입장에서는 그저 내가 신경 쓸 일을 줄이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도 그거라도 해주는 게 어딘가. 적어도 받아처먹기만 하고 입 쓱 닦는 건 아니니까.
‘그냥 빨리 귀국만 해라.’
사실 정말 나를 위한다면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다. 제발 빨리 너네 왕자 데리고 귀국만 해줘.
숙소에 돌아오고 나서 한참이나 통신구를 매만졌다. 머리로는 빨리 연락하고 빨리 용건을 말하는 게 좋다는 건 안다. 아직 마음이 머리를 못 따라갔을 뿐.
‘또 뭐 시킬 것 같은데.’
느낌이 온다. 부탁을 위해 연락을 걸었다가 오히려 무언가 받을 것 같은 느낌. 저번 요룬 사건은 3과장의 눈물의 그랜절을 통해 어떻게 수습했지만, 그래도 공작 라인 백작가를 빈사 직전까지 팼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 그걸 언급하며 슬쩍 퀘스트를 던지겠지.
물론 황금공은 기브앤테이크가 철저한 사람이다. 아무리 과거를 언급하며 강제 퀘스트를 던져줘도 성공시 보상은 쏠쏠하다. 그래도 귀찮은 일을 하고 돈 받는 것보다, 일 안 하고 돈도 안 받는 게 좋을 때가 있지 않나. 그게 지금이다.
‘꼽다고 승작할 수도 없고.’
망설임 끝에 결국 한숨을 내쉬며 황금공에게 연락을 걸었다. 장관에게 꼬우면 언젠가는 장관이 될 수도 있지만, 공작에게 꼬우면 혀 깨물고 죽어야 한다. 어쩌겠나, 공작보다 아래인 신분으로 태어났으면 순응하며 살아야지.
– 감찰부장인가. 기다리고 있었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금공의 얼굴이 떠올랐다. 깨끗하게 정돈된 반백 머리의 중년이 입에 문 시가를 내려놓는 모습. 얼핏 서류가 턱 부근에 보이는 걸 보면 일하다가 받은 모양이다.
예법대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려고 하자 황금공의 입이 먼저 열렸다.
–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삼국에서 온 호위 전력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예, 그렇습니다.”
– 들어와도 상관없네. 전부 와도 무방하니 규모만 알려주게나.
“알겠습니다, 각하. 감사합니다.”
– 제국의 충신을 위한 일이니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나.
아무렇지 않다는 듯 허허 웃는 모습이 역시 쿨거래의 상징인 황금공이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알아서 원하는 걸 들어줬다.
– 아, 이건 개인적인 부탁이네만.
그리고 예상한 것처럼 황금공의 강제 퀘스트 시간이 왔다. 공작의 개인적인 부탁? 말이 부탁이지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
“말씀하십시오. 경청하겠습니다.”
– 흐음.
드물게도 황금공이 잠시 뜸을 들이며 한 손으로 턱을 괴었다. 경우에 따라 비비 꼬아서 돌려 말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말 자체를 망설이는 것은 별로 본 적이 없다. 썩 좋지 않은 징조다.
– 자네, 크라켄이라고 들어봤나?
“예, 들어보기는 했─”
잠깐만, 설마.
“…습니다만.”
– 그렇군. 이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네.
‘개새끼야.’
그딴 소식을 뭘 잘됐다는 것처럼 말하고 있어.
바다를 누비며 함선을 쿠크다스 마냥 부수고 다니는 거대 오징어 크라켄. 흔히 볼 수 있는 존재는 아니지만 딱히 보고 싶지도 않고, 봐서도 안되는 놈이다. 그런데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개뿔이.
만일 같은 부장급 인사가 했다면 바로 온갖 욕을 꽂아 박았을 발언에 할 말을 잃자 황금공도 머쓱한지 가볍게 웃었다. 그래, 양심은 아직 있구나.
– 최근 완공한 리조트 근처에 크라켄 서식지가 있었지 뭔가.
아닌가? 없나?
– 오해하지는 말게. 안전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만들기 시작한 것이니까. 너무 깊숙한 곳에 있던 놈이라 다 만들고 나서야 눈치 챘네.
“휴양지로 괜찮은 것이 맞는지 우려스럽습니다.”
– 서식지는 깔끔히 지웠다네. 크라켄도 성체는 모두 토벌했고.
문제는 새끼가 하나 도망쳤지, 라고 덧붙이는 황금공의 말에 잠시 턱을 매만졌다. 황금공이 도망쳤다고 표현하는 걸 보면 새끼 하나만 겨우 살아서 눈물 겨운 탈출기를 찍는 모양이다. 일단 리조트 안전 문제는 해결됐다.
– 그런데 새끼가 보통 영악한 게 아니야. 동족이 토벌 당하는 걸 봐서 그런지 아주 조심스러워. 숨어있는 걸 겨우 찾아도 수면 위로 올라올 생각을 안 한다네. 전격 마법을 바다로 날려야 잠깐 올라오는 정도니.
“골치 아픈 일이군요.”
보통 크라켄은 자신이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거대하고 강하다는 걸 아는지라 함선이 떠다니면 당당하게 나타난다.
물론 그 함선에 공작령의 정예 마법사단이 탑승했을 줄은 몰랐겠지. 수면 위로 올라오자마자 두들겨 맞고 통오징어찜으로 진화했을 거다. 진화가 아니라 퇴화인가? 일단 맛으로 치면 진화기는 하겠네.
아무튼 부모가 그 꼴이 되는 걸 실시간으로 직관한 새끼는 이 악물고 바닷속에서 버티는 중이겠고. 얼마나 깊게 숨었으면 전기로 지져도 잠깐 튀어나왔다가 다시 잠수하는 건지.
– 그러니 수면 위로 나온 찰나 동안 크라켄을 토벌할 사람이 필요하다네.
황금공의 말이 끝나자 어울리지 않게 잠시 뜸을 들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 새끼를 언제 찾을 줄 알고.’
수학여행으로 오는 나에게 이런 요청을 하는 걸 보면 나름 등장 지역은 파악한 모양이다. 정말 기약 없는 일로 묶어둘 정도로 경우 없는 사람이 아니니까. 문제는 그 등장 지역을 전부 살피는 동안 내가 얼마나 함선에 발이 묶여야 할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
막말로 수학여행 기간 내내 바다 위에 있다가 마지막날에 겨우 잡을지도 모른다. 그건 많이 별론데.
– 바쁜 감찰부장에게 부탁하는 것이니, 내 이 정도는 힘쓸 수 있네.
그러면서 손가락 3개를 펴는 황금공. 평소 감찰부에 찔러주는 자금보다 30% 더 얹어주겠다는 말.
흐으으으음.
“영민들과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마땅히 토벌해야 할 존재군요.”
짧은 고민 끝에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리조트를 만든 후에야 알 정도로 조용히 살던 크라켄 일가의 서식지를 난데없이 파괴하고 가족들을 전부 죽인 건 황금공이긴 하다. 하지만 어쩌겠나, 꼬우면 인간으로 환생해야지. 착한 몬스터는 죽은 몬스터 뿐이다.
– 역시 감찰부장의 애국심은 남다르군. 영민들을 위한 감찰부장의 노력은 본작이 기억할 걸세.
“영광입니다, 각하.”
그렇게 모두가 만족한 대화가 끝났다.
학생들이 놀아야 할 바다에 크라켄 같은 것이 떠돌고 있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이 사악한 크라켄, 애비애미 곁으로 보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