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62)
로판 속 공무원 662화(663/945)
트리카 제국. 대륙 역사상 두 번째 제국으로 군림했던 국가.
그러나 고아 출신 용병이 일신의 무력으로 세운 천년 제국 뮤노, 대륙 역사를 연구할 때 이상한 게 보이면 대개 범인인 아펠스, 현시대의 제국인 크펠로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빈약한 비운의 제국.
물론 존재감이 희미해도 제국은 제국이다. 그 시대를 주름잡은 최강국이었으며, 뮤노와 마찬가지로 천년이나 이어진 국가였다. 그 국력이나 유산조차 희미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학문이나 제도적 성과는 역사상 제일이었지.’
현시대에서 당연하게 통용되는 제도나 학문, 이론, 기술 등은 대부분 트리카 시절에 정립되었다. 흔하디흔한 오등작 체계조차 트리카 제국 때 보편화된 것이니 오죽할까. 심지어 트리카 제국은 자신들의 상징을 책으로 삼을 만큼 지성의 나라였다.
다만 그 지성을 기반으로 아펠스의 폭발적인 기술 성장과 찬란한 혐성이 개화됐다는 유감스러운 역사가 존재하나, 그만큼 트리카가 쌓아 올린 지성은 굳건했다.
‘트리카 제국 시절의 유물…’
그렇기에 현명공의 말은 결코 가볍게 넘길만한 발언이 아니다. 아마 이 소식을 들으면 황궁에서 농사를 짓던 상황마저 쟁기를 내던지고 현장으로 달려갈 거다.
트리카의 지성과 기술로 만들어진 유물. 무수히 많은 신들이 난립하던 시기라 상당한 신성이 깃들었을 확률도 높은 유물.
– 어때에에에에? 죠카두 흥미가지!?
내 머리가 바쁘게 굴러가자 현명공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분하지만 현명공의 말이 맞다. 아펠스 시절의 물건조차 발견만 되면 대륙을 뒤흔들지 않나. 게다가 현명공이 직접 연락할 정도면─ 엄청 신기하다고 말할 정도면 단순히 땅 파다가 나온 그릇이나 무구 같은 것도 아닐 터.
이건 최소가 문화성 장관이 나설 일이다. 어쩌면 황제가 현지 시찰을 오고, 대륙 각지의 학자들이 제발 구경이라도 하게 해달라 애원할 수 있다.
‘조금만 발을 걸쳐도 이득이야.’
어쩌면 내가 레온 왕국에서 파밍한 영지보다 현명공이 발견한 유물에 숟가락 조금 얹는 것이 더 이로울 수 있다.
고민된다. 마음 같아서는 유물이고 뭐고 집에서 쉬고 싶기는 한데, 현명공이 직접 접촉을 할 정도면 어마어마한 유물에 적지 않은 지분을 약속받을 수 있다. 귀찮다는 이유로 넘어가기에는 보장된 이득이 너무 막대하다.
내 휴가를 위해 아이들에게 물려줄 유산을 포기해도 될까? 내가 휴가를 누리는 것도 아이들 덕분인데? 아이들이 없었으면 이 휴식도 없는데?
“언제까지 가면 되겠습니까?”
결국 치열하게 고민하던 이성은 내 평온이 아닌 아이들의 미래를 택했다.
이게 맞다. 훗날 아이들이 자랐을 때, 현명공이 발견한 유물을 보고 눈을 반짝인다면 난 죄책감에 고개도 들지 못할 거다. 아이들이 눈을 빛내며 바라보는 물건에 지분을 주장할 수 있었지만, 나 편하자고 포기한 것이기에.
– 느져도내일까지? 물논빠룰쑤록 죠아!
“알겠습니다.”
– 마따! 구리고 하나더!
헤실거리던 현명공은 검지를 세우더니 나름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 우뤼 리리~ 동섕들 자아아안뜩 델꼬와! 리리가 보고시퍼해!
“리리만요?”
– 시른 나듀!
솔직한 고백이라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이들에게 현명공은 보여주기 부끄러운 친척이지만, 외숙부와 소공작과는 자주 만나는 것이 좋다. 친척과 친하게 지내서 나쁠 건 없으니.
이왕 아이들 전부 데려가는 거, 부인들과 성수들도 같이 데려갔다.
“우왕! 다둘어숴와!”
다행히 배로 늘어난 손님에 현명공은 당황하기는커녕 더욱 기뻐했다.
애초에 남편의 조카인 나조차 가족이라는 이유로 아끼는 현명공이지 않나. 그 조카의 부인과 아이들, 애완동물이 우르르 몰려온다면 가족이 늘었다며 좋아할 사람이다.
“가죡드리이~ 자아안! 뜩! 모여서~너무죠타!”
바로 지금처럼.
“쟈! 화녕의포옹!”
히히 웃음을 흘린 현명공은 잔뜩 발개진 얼굴로 부인들과 포옹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화, 환대에 감사드려요.”
“히힣, 가죡끼리 고맙따는마른 피료업써!”
그리고 첫 번째 부인이라는 숙명 덕분에 가장 먼저 안긴 마르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거기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어쩔 줄 모르는 것이, 현명공이 풍기는 알코올 향에 정신이 없는 모양이다.
“다움은 우뤼! 듈째! 죠카며누리! 마죵공!”
이어지는 광경에 무심코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헤죽헤죽 웃으며 트릭시에게 다가가는 현명공, 그런 현명공을 보며 착잡한 표정으로 양팔을 벌리는 트릭시. 도저히 맨 정신으로 볼 자신이 없었다.
미안해. 이 남편이 현명공보다 항렬로 밀려서 미안해.
“주인.”
“왜.”
그렇게 애써 잔혹한 현실을 외면하는 사이, 내 발치에서 어슬렁거리던 겸손이 입을 열었다.
“주인이 저 인간과 피를 이은 친척이 아니라는 것에 감사한다.”
그 말에 침통히 눈을 감았다.내가 현명공 같은 미치광이 꽐라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말이었으니까.
전직 악신들이 봐도 현명공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라는 말이었으니까.
“그리고 저 인간이 돌연변이인 것은 대륙의 홍복인 것 같다.”
“네가 봐도 그러냐?”
뒤이은 말에 본능적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그래, 겸손의 말이 맞다. 다행히 현명공은 살론 공작가에서 튀어나온 희대의 돌연변이지, 살론 공작가 전체가 기인들의 집합소인 건 아니다.지금도 소공작은 페디를 비롯한 동생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고 있지 않나.
“우리가 친척이기는 하지만, 난 살론 공작가의 후계자야! 그러니 나를 부를 때는 소공작 누나라고 해야 돼!”
“누나?”
“아니, 앞에 소공작을 붙여야지!”
“누나! 누나!”
“소공작 누나!”
“누나~”
“너, 너희는 누나가 아니라 언니라고 하는 거야!”
어깨를 으쓱이다가도 금방 허둥거리며 동생들을 가르치는 소공작.마치 찬란히 빛나는 살론 공작가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절로 눈물이 나왔다.
앞으로 릴리아나 살론이 아니라 빛빛빛빛 살론이라 불러야지.
“칼.”
“외숙부님?”
슬슬 빛빛빛빛 소공작의 모습에 눈이 멀어버리려던 찰나, 헌명공 옆에 있던 외숙부가 조용히 다가왔다.
“휴가 중에 갑자기 불러서 미안하구나. 혼자 와도 피곤했을 텐데, 네 외숙모 부탁 때문에 다 같이 온 거겠지.”
“괜찮습니다.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이겠습니까.”
민망하다는 듯 미소 짓는 외숙부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현명공이 부탁한 것은 아이들까지다. 그 너머는 내 의지로 데려온 것이니 딱히 외숙부가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그리 말해주니 고맙구나.”
내 대답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는지, 외숙부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너희도 작은 몸으로 이 먼 곳까지 와줘서 고맙다.”
“어, 음, 뭐어. 우리야 주인이 가자면 가는 거지.”
외숙부의 감사 인사에 겸손은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였다.그 작은 끄덕임에서 ‘왜 이런 인간이 저런 인간과 결혼한 거지?’ 라는 의문이 보인 것은 기분 탓이 아니리라.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지 마라.’
친척인 나도 아직까지 풀지 못한 미스터리니까.
현명공에게 손이 붙잡힌 채로 집무실까지 끌려갔다.
일방적인 납치였지만 그러려니 했다. 언제 어디서나 돌발 행동을 서슴지 않는 양반이잖아.
“죠카죠카! 다가치 와져서고마워! 역씨 가죠근 마늘쑤록죠아!”
그리고 놀랍게도, 현명공의 모든 행동은 악의가 아닌 선의에서 비롯된다. 나를 친척이라며 좋아해 주는 사람을 싫어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몇 년을 봐도 안타깝다. 이 인간이 꽐라만 아니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저도 아이들이 좋은 친척을 만날 수 있어서 기쁩니다.”
“히히, 죠은친척이라니~ 부꾸러운대!”
순간 ‘당신은 좋은 친척이 아니니 괜찮습니다.’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치솟았다.
“그보다 외숙모님. 그, 트리카 제국의 유물은…”
“맛따! 그거먼져 말해져야지!”
내 말에 현명공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책상 위에 있던 서류를 뒤적거렸다.
지금 보니 끔찍할 정도로 높게 쌓인 서류의 탑이다. 24시간 취해있는 상태로 어떻게 저런 업무량을 감당하는 거지?
“여깃따!”
게다가 저 서류의 탑에서 원하는 서류를 바로 찾아내는 능력도 경이롭다.
“여기! 죠카가 일거바!”
“아, 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현명공이 건넨 서류를 받았다.
내가 가족들을 이끌고 제국 서쪽 끝까지 오게 만든 유물이다. 현명공이 친히 언급한 유물인 만큼 절대 시시한 물건은 아닐 거다.
이제는 아이들의 미래도 미래지만 인간으로서의 호기심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대체 어떤 물건이─
[ 할란항에서 북서쪽으로 130km 떨어진 해상에서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섬 출현. ]…?
[ 섬의 위치가 육지와 상당히 떨어져 있었고, 주요 항로에서 크게 벗어난 곳이기에 이전까지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제시. ]?
[ 허나 트리카 중엽 시절의 지도까지 분석한 결과, 해당 지점에는 섬이 없던 것으로 확인. ]???
[ 또한 섬 발견 닷새 후, 섬의 위치가 기존 위치에서 동쪽으로 5km 가량 이동한 것을 추가 확인. ]‘이게 뭔.’
읽을수록 혼란스러운 내용이라 눈을 몇 번이나 깜빡거렸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던 바다 위에 섬이 나타났고, 그 섬이 움직이기까지 한다고? 내가 읽은 내용이 맞나?
“게속 일거바! 디에재밋는 내용이써!”
‘이것보다 더한 내용이 있다고?’
현명공의 말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바다 위에 나타나 움직이는 섬보다 재밌는 내용이라니. 내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떨리는 눈으로 뒤에 적힌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솔직히 읽기 두렵지만 궁금하기는 해.
[ 섬에 상륙하여 탐사한 결과, 흙으로 보였던 물질은 전부 이끼였던 것으로 확인. ] [ 이끼를 파헤쳐 보다 자세한 조사를 시도했으나, 이끼 아래에 존재하던 무언가를 건드리자 섬이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 ] [ 탐사대 일시 철수. 채취에 성공한 이끼 및 ‘무언가’를 연구팀에 인계. ] [ 연구 결과, 탐사대가 채취한 물질은 고래의 피부와 동일한 것으로 판정. ] [ 수면 아래에서 해당 섬을 재조사. 섬이 아닌 거대한 고래였던 것으로 확인. ]그리고 내 상상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결과에 실소를 흘렸다.
‘고래…’
유물이 물건이 아니라 생물이었네.
아니, 애초에 이거 유물은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