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66)
로판 속 공무원 666화(667/945)
일단 사람부터 끌고 온 다음에 끌고 온 이유를 말해주는 경이로운 서순.다른 사람이 한다면 그 자리에서 귀싸대기를 날려도 이상하지 않은 만행이나, 현명공이 하면 다들 그러려니 하는 기적이 일어난다.
현명공은 일반인의 가치관과 상식으로 이해하면 안 되는 사람이니까. 그깟 서순 정도야 바뀌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실제로 보야르 공작령에서 체네스 공작령까지, 체네스 공작령에서 레비아탄까지 의문의 여정을 떠난 황금공은 꿋꿋하게 침묵을 지켰고,
“호오.”
뒤늦게 사정을 설명한 것에 대한 분노보다 레비아탄의 존재에 대한 기꺼움을 보였다.
역시 이해관계에 철저한 인간답다. 이유를 뒤늦게 들은 것 따위는 황금공에게 아무런 해가 되지 않았지만, 레비아탄이라는 희대의 유물이 오시덴 가문에게 호의를 보이는 건 명백한 이득이지 않나. 황금공은 후자에 집중한 것이다.
“과연. 내 선조께서는 실로 위대한 일을 하셨군.”
– 그 말이 옳다, 오시덴의 후예여! 그대의 선조는 로이가스 황가를 도와 트리카의 번영을 이끈 위대한 신하였다!
레비아탄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과 호의가 듬뿍 담겨있었다.
– 이 몸이 2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잠들었기에 더 이상 트리카의 흔적은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를 깨운 자들이 오시덴의 후예를 데려왔으니, 이는 실로 로이가스 황가가 말한 ‘때’임이 틀림없다!
그 말과 동시에 레비아탄의 몸체가 부르르 떨렸다.
지진과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땅이 갈라지지도, 건물이 무너지지도 않는 지진이라 조금은 신기했다. 이 세상에 이보다 안전한 지진이 어디 있을까.
– 충성으로 섬겨야 할 황가는 존재하지 않으나, 약조로 인해 존중해야 할 친우는 남아있었다! 이 레비아탄, 2천 년 전의 약조에 따라 그대 오시덴 가문의 친우가 되리라!
“이잉, 먼져발견하건 난댕…”
– 물론 그대들이 이 몸을 찾아 깨웠기에 오늘의 만남이 가능했었지. 오늘부로 그대들 역시 나의 친우로 여기리라!”
“우왕! 고마어!”
현명공의 투덜거림에 레비아탄은 흔쾌히 레비아탄 자유 이용권을 현명공과 나에게 선사했다.
너무 즉흥적인 결정이 아닌가 우려스럽지만, 조국을 잃은 상실감을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는 상황이라 생각하니 이해할 수 있었다. 레비아탄 입장에서는 심연 속에서 빛을 찾은 기분이겠지.
“이거 참. 예상도 못 한 일이라 얼떨떨하군그래.”
졸지에 레비아탄의 친구가 되어버린 황금공은 헛웃음을 흘리며 시가를 입에 물었다.
그러면서도 황금공의 눈빛은 진중히 가라앉아있었다. 마치 레비아탄의 유용성과 활용도를 계산하는 것처럼.
“레비아탄이라고 했나?”
– 그렇다, 친우여. 이 몸은 바다의 제왕 레비아탄이다.
“로이가스 황가의 명으로 잠들었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황금공의 직설적인 질문에 레비아탄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 …과연. 오시덴의 후예조차 모를 정도로 우리에 대한 기록은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졌나 보군.
이윽고 아까까지 깃들었던 기쁨 대신 짙은 씁쓸함과 서글픔이 울려 퍼졌다.
– 좋다. 우리가 세상에서 지워졌다면, 다시금 세상에 우리의 이름을 적어나가면 되는 것이다. 모두 설명해 주마.
“호의에 고맙네, 친구.”
처음 보는 고래를 순식간에 친구로 삼은 황금공의 대답 이후, 레비아탄의 설명이 시작됐다.
– 우리는 로이가스 황가의 예상보다 너무 거대해졌다.
“음?”
“으엥?”
– 본래 예정대로라면 우리는 지금 크기의 20% 정도여야 했지. 허나 우리를 만든 트리카의 학자와 기술자들은 너무나 유능했고, 기존 예상을 아득히 초월한 성장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묘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말에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거,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소형견인 줄 알고 키웠는데 대형견이라 유기했다는 거잖아.’
레비아탄이 듣는다면 광분할 만한 이야기지만 제3자로서는 그런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레비아탄은 버려진 게 아니라 잠든 것이니 유기라고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잠든 거나 버린 거나 감당 못 해서 치운 건 매한가지잖아. 그나마 죽이지 않은 것이 트리카의 양심이라고 할 수준이다.
“그럼 자네. 앞으로도 지금보다 커진다는 건가?”
어느새 친구에서 자네로 호칭을 격하한 황금공이었으나, 레비아탄은 눈치채지 못한 듯 말을 이었다.
– 그건 아니다. 우리가 잠든 것은 성장기를 아무런 영양 섭취 없이 넘기기 위함이었으니까. 몇 백 년도 아닌 2천 년이나 공복으로 있었으니, 더 이상 우리가 자랄 일은 없다.
“다행이군. 친구가 여기서 더 커진다면 조금 무서웠을 거야.”
다시 친구로 호칭이 복귀했다.
…
‘영양 섭취?’
“져기! 래비아딴! 너는 머먹꼬 사라!?”
내가 레비아탄의 말에서 위화감을 느낌과 동시에 현명공도 입을 열었다.
타당한 질문이다. 생각해 보니 레비아탄도 생물이라 밥은 먹고살아야 한다. 그런데 저 덩치로 유지하려면 대체 얼마나 먹어야 하는 거지?
특정 물고기를 먹는다면 그 물고기는 씨가 마를 것이고, 다른 고래들처럼 플랑크톤을 먹는다고 치면 이 바다에 있는 고래들은 집단 아사할지도 모른다.
– 우리는 자연의 마나, 혹은 신성력을 먹고 산다. 평범한 음식도 먹지만 그건 효율이 좋지 않지.
“마아-나?”
– 그렇다. 너희의 마법이 평소보다 쉽게 뚫리지 않았더냐. 그건 내가 이 주변의 마나를 흡수 중이어서 그런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레비아탄의 수둔에 박살 났던 방어 마법이 생각났다.
어쩐지 고작 물 때문에 공작 호위 마법사들의 마법이 뚫린 게 이상했었다. 마법 자체가 약화된 상태라 그랬구나.
– 더 궁금한 점은 있는가?
“나는 없다네. 굳이 말하자면 소중한 친구가 보야르 앞바다에서 지내는 걸 편안해할까, 그게 걱정이로군.”
– 그런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 몸은 모든 바다의 제왕이었고, 오시덴 가문의 앞바다라면 잠들기 이전에도 몇 번 가봤다. 따뜻하고 좋은 곳이었지.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황금공은 현명공을 쳐다봤다. 더 할 말이 있다면 지금 하라는 시선이었다.
“더 업쓰면 지브로가쟈! 께속 바닫빠람마즈니 추어!”
허나 황금공의 시선에 현명공은돌아가자는 말을 꺼냈다.
사실 더 물어봐야 할 것은 많다. 레비아탄이 말한 ‘우리’는 정확히 누구인지, 그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있다면 그들의 성향은 어떠한지, 마지막으로 레비아탄을 비롯한 세 개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등.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한 손으로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지금 묻는 것은 하책이다. 레비아탄은 지성과 감정이 있고, 황가가 몰락하자 다른 가문의 후예를 친우로 삼는 자율성도 존재했다. 그런 대상을 상대로 심문하듯 정보를 캐내는 건 도리어 반감만 살 수도 있다.
차라리 오늘 얻은 호감을 기반으로 조금씩 레비아탄의 마음을 열어 가는 것이 옳다. 그러면 언젠가는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얻을 터.
‘어차피 답해줄 존재는 많으니까.’
게다가 내 주변에는 트리카 제국 시절을 기억할 불멸자들이 널려있다. 여차하면 레비아탄이 아니라 신이나 정령왕, 드래곤한테 물어보면 된다.
– 귀한 인연과 과거의 친우를 만난 기쁜 날이다. 이 몸이 특별히 그대들을 육지까지 인도해 주겠다.
“오오옹! 고마어!”
“바다의 제왕을 타고 바다를 누빈다라. 이거 참 기쁜 일이로군.”
그 와중에 두 공작은 레비아탄의 제안을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레비아탄의 친우가 된 황금공은 물론, 자유 이용권을 얻은 현명공도 레비아탄의 존재가 널리 퍼지는 걸 바랄 입장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존재가 두 공작과 우호 관계라는 걸 알면 현명공과 황금공의 입지가 급격히 넓어질 테니까.
– 그럼 꽉 잡아라.
그리고 고요했던 레비아탄의 몸이 급격히 요동치더니, 바다에 잠겨있던 지느러미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상하다. 헤엄을 치는데 지느러미를 왜 빼는 거지? 꼬리의 힘만으로 이 거대한 몸을 움직일 수 있…?
“아니 미친.”
뒤이어 이어지는 광경에 절로 입이 열렸다.
“우왕, 우와아아아앙! 고뢔가난다아아앙!”
옆에서 들리는 현명공의 환호 소리에도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레비아탄이 날았다. 지느러미로 바다를 헤쳐나가는 게 아니라 하늘을 헤엄쳤다.
“씬기해! 고레가 날쑤도잇써!?”
– 인간들도 육지에서 살지만 수영을 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나도 그것과 비슷하다.
당연한 일이라는 듯 말하는 레비아탄의 목소리에 실소가 터졌다.
아니, 수영이랑 하늘을 나는 걸 동일선상에 두는 게 맞나? 게다가 바다의 제왕이면 하늘이 아니라 바다를 돌아다녀야 하는 거 아니야?
‘고래가 날면 새가 뭐가 돼.’
문득 레비아탄의 등짝에서 봤던 그림이 떠올랐다.
분명 새와 소, 고래가 있던 그림이었는데, 새의 영역이어야 할 하늘에 고래가 침범했다. 새는 섭섭해서 어떻게 살겠어.
“비행 고래, 날아다니는 섬…”
이 혼란 속에서 황금공은 턱을 매만지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가장 기뻐해야 할 사람이 가장 잠잠하니 더 무섭다.
***
국왕 전하의 명에 따라 남쪽 바다로 출항했다.
목표는 제레노의 신민들을 위협하고, 항로를 어지럽히는 해상 몬스터 토벌. 그 대의를 위하여 기꺼이 함대를 출항시켜 바다를 누볐다.
비록 그 과정에서 일부 상선들의 발이 묶기기도 했으나, 이는 항로의 안전을 위한 부득이한 결정이다. 이를 모욕하는 것은 눈앞의 이득에 눈이 먼 필부의 마음에 불과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꼼꼼하게 항로를 살피던 도중,
“부관.”
“예에… 제독.”
“혹시 본 제독의 눈이, 잘못된 것인가?”
“저도 제독과 같은 것을 보고 있습니다.”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거대한 고래. 바다를 누비는 고래보다 수십, 수백 배는 거대한 고래가 북서쪽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그것도 등 곳곳에 크펠로펜 제국의 깃발과 오시덴 공작가의 깃발을 꽂은 채로.
‘이게 무슨.’
혼란스럽다. 동시에 이 기괴한 광경 중 어느 것을 트집 잡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거의 섬만한 고래가 등장한 것? 고래가 하늘을 나는 것? 제레노 왕국의 영해에 제국의 깃발이 무단으로 나타난 것?
미치겠다. 대체 무엇을 문제로 삼아야 하고, 어떻게 항의를 해야 하지?
“…부관!”
그래도 고민은 짧았다. 제레노의 제독으로서 제국의 것이 제레노의 영해에 진입하는 건 좌시할 수 없다.
“예, 제독!”
“오시덴 공작가에 정식으로 항의해라! 아무리 고래여도 제국과 공작가의 깃발을 두른 존재! 아국이 영해 진입을 허락한 선박 중에 고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수 시간 뒤, 오시덴 공작가에서 돌아온 답장을 짧고 간결했다.
[ 오시덴 공작가의 친우는 제레노의 영토도 영해도 아닌, 대륙인 모두에게 열린 하늘을 나는 중임. 제레노 왕국의 양해를 구할 필요가 없다 판단됨. ]아주 빌어먹을 대답이었다.